85화 EP0084-0079화-익어가는 과실들
루크레치아는 멍하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만년설만큼 하얀 피부와 커다란 가슴.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 들어 가슴이 더 커진 것 같았다.
거의 엘레노아와 비슷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첨단에 달려 있는 분홍빛 유두.
그 크기는 가슴에 비례하듯 남들보다 큰 편이었기에, 셔츠 자락에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음란하기 그지 없었다.
“아….”
평소와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오늘은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여기가….”
그녀는 자신의 복부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살결 너머의 탄탄한 근육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근육 너머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하읏….”
그곳을 어루만지자 옅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루크레치아는 스스로 내뱉은 신음에 깜짝 놀라며 자신의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질척
그저 복부를 살짝 어루만졌을 뿐인데, 다리 사이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최근 들어 몸이 자기 멋대로 흥분하는 경우가 잦았지만 그건 대부분 남성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이상한 망상을 하는 경우였다.
심연의 사도가 카엘에게 내린 저주가 자신에게도 전이되면서 생긴 영향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갑자기 몸이 젖어 버리는 건 지금까지 겪었던 일과 조금 달랐다.
“카엘….”
루크레치아는 카엘의 저주가 모종의 계기로 더욱 강해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엘레노아와 카엘이 있는 옛 발테른의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똑똑
“누구시죠?”
“접니다. 영애.”
문밖에서 들려온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황제가 그녀에게 붙여준 전담 시종이었다.
오랫동안 귀족의 생활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루크레치아를 배려한 황제의 안배였다.
그 덕분에 루크레치아는 큰 문제 없이 가문의 재건을 진행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과거 로엔하임이 소유했던 광산들의 채굴 수익 일부를 돌려받을 권리까지 얻었다.
아직 예전의 위세를 되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킬 기반으로는 충분했다.
루크레치아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시종의 모습을 떠올렸다.
푸근한 얼굴을 지닌 중년의 남자였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자신을 보필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곁을 지켜주었던 로엔하임의 시종장이 떠오르곤 했다.
잠시 빛바랜 기억에 잠긴 루크레치아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지금 옷을 입고 있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알고 있습니다.”
끼이익!
문의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허락되지 않은 자의 침입을 알렸다.
“이게 무슨…!”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허락 없이 문을 연 적이 없던 시종의 행동에 루크레치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무슨 짓이에요! 당장 나가…….”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급히 옷자락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하지만 시종과 눈이 마주친 순간, 뒤이어 나오려던 말이 목구멍에서 그대로 멎었다.
푸근하기만 했던 그의 눈빛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그녀의 몸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루크레치아는 마치 고양이 앞에 놓인 쥐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저벅 저벅
시종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푸근했던 미소는 어느새 음흉한 미소로 변해 있었다.
디트리히나 레오폴트 황태자가 그녀를 바라볼 때 짓던 미소와 닮아 있었다.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음란한 암컷을 바라보는 듯한….
그 노골적인 시선이 얼굴에서부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루크레치아는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옷을 갈아입기 위해 거의 발가벗은 상태였기에 아무 소용없었다.
주르륵….
그녀는 하얀 레이스 팬티를 적시다 못해 자신의 다리 사이로 애액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복부에서 느껴지던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으읏….”
그녀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시종을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시종은 그녀의 경계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 느긋한 걸음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그녀가 한 걸음 물러날 때마다 두 걸음씩 다가온 시종은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천천히 뻗은 그의 손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백옥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
“하아….”
손이 천천히 내려가 셔츠 자락에 숨겨진 가슴에 닿았다.
“한 손에 다 담지 못할 정도의 가슴.”
꽈악!
“흐윽…. 당신…!”
“흐흥…. 거기다가 이렇게 큰 유두라니…. 음란하기 짝이 없네.”
“하윽…!”
루크레치아는 유륜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와서 눌러줘……!
“하앗?!”
루크레치아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그녀의 의지와 달리 그 감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누구라도 당장 범해달라고 이런 곳이 약점이기까지 하네?”
꽈악!
푸슈슈슛!!
“호오오응❤️!!!”
루크레치아는 그대로 거칠게 애액을 뿌리며 전신을 떨었다.
고작해야 손가락 두 개로 유두를 집었을 뿐인데, 전신을 강타한 쾌락에 루크레치아는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마아앙❤️ 허윽❤️! 허으읏❤️!!”
“황제가 참으로 취미가 고약해…. 예쁜 애들에게 시련을 준다니까….”
“……으오옥❤️! 오옥❤️!”
루크레치아는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하는 쾌락 속에서 귓가에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뭐라 하는지 이해하기에는 이미 뇌가 마비될 정도의 쾌락에 절여져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것 봐.”
시종이 그녀의 몸을 돌려세웠다.
루크레치아의 눈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중년 남자에게 유두가 꽉 잡힌 채 가슴이 짓눌려 있었고 다리 사이에선 팬티를 푹 적신 채 애액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여기 보여…?”
시종은 등 뒤에서 손을 뻗어 그녀의 복부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새하얗게 땀에 번들거리던 피부 위로 묘한 문양이 드러났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괴상한 문양.
가운데에는 눈동자가 달려 있었고 주위로는 촉수 같은 선들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하윽❤️! 하윽❤️! 이건….”
“아아…. 조금씩 과실이 익어가는구나.”
“이, 흐으읏❤️!”
시종은 그 문양을 아주 소중하다는 듯 쓰다듬었다.
“부디 잘 키워줘. 두 사람 모두 좋은 모판이 될 거야. 아주 착실히 쌓아 가는구나.”
“그게 무슨 말이….”
꽈악!
“호오으윽❤️!”
“고작해야 모판 주제에 알려고 하지 마렴.”
“……헤엑❤️! 헤엑…❤️!”
시종은 루크레치아의 유두를 있는 힘껏 쥐어당기며 웃었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짝!
“영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영애. 괜찮으십니까?”
그제야 루크레치아는 정신이 돌아온 듯 고개를 벌떡 들었다.
“아…….”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방금 전까지 무언가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무척 불쾌하고 선명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떠올리려 하자 기억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흩어졌다.
그때 문득 자신의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
하얀 셔츠 하나만 걸친 채, 알몸이나 다름 없는 맨살이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
루크레치아는 깜짝 놀라 셔츠 자락을 끌어당기며 몸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영애.”
시종은 곧바로 시선을 내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몇 번이나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으셔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들어왔습니다.”
“제가 대답하지 않았나요?”
“예. 다행히 별일은 없으신 듯합니다. 요즘 여러 일로 피로가 쌓이신 모양이군요.”
예의 푸근한 미소였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 방금 전 허락 없이 들어온 일에 항의하려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분명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러 번 불렀음에도 자신이 대답하지 않았다면 시종으로서 걱정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반드시 제 대답을 들은 뒤에 들어와 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시종은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품속에서 봉인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이것만 전해드리고 물러나겠습니다.”
“이게 뭐죠?”
“카엘 경께서 영애께 보내신 편지입니다.”
“카엘이…?”
루크레치아가 황급히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시종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루크레치아는 곧바로 봉인을 뜯었다.
종이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가득했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뒤에야 제대로 글을 배운 카엘다운 서툰 필체였다.
반듯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눌러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 가문의 재건을 책임지며 느꼈던 중압감과 불안이 잠시나마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편지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루크레치아의 표정이 굳었다.
편지의 내용을 읽은 루크레치아의 손이 살짝 떨렸다.
카엘과 엘레노아가 잡혀버렸다니….
계획이 단단히 틀어진 게 분명했다.
거기다가 로엔덤이 이종족 리자드맨들과 손을 잡았고 옛 신의 힘을 얻으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당장 둘의 안위가 위험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필 황태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레오폴트…….”
루크레치아는 낮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다른 방도를 찾았을 것이다.
로엔하임의 이름으로 사람을 모으고 황제에게 직접 탄원하거나 자신이 가진 모든 연줄을 동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엘과 엘레노아는 이미 붙잡혔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루크레치아는 황태자를 떠올렸다.
연회에서 카엘과 첫 춤을 춘 날 이후 레오폴트는 그녀에게 별다른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황제의 지시로 로엔하임 재건에 관해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단둘이 마주했을 때조차 그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움을 청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몰랐다.
황태자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도와줄까?
루크레치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헐겁게 걸친 셔츠 아래로 드러난 자신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피부 위에 붉은 손자국이 새겨지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 손자국은 그녀가 영혼까지 사랑하는 연인의 손보다 조금 더 컸다.
아니….
루크레치아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최악의 가정은 미뤄두기로 했다.
최근 황태자의 행보를 보면, 어쩌면 다른 방법으로도 그의 도움을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녀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아…?”
그러다 복부에 희미하게 남은 손가락 자국을 발견했다.
“……이건.”
루크레치아는 손끝으로 그 자리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옷을 입던 중 자신이 무심코 만진 흔적일까?
똑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루크레치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누구시죠?”
“영애. 접니다.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전 방을 나간 시종의 목소리였다.
루크레치아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직이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편지를 아직 다 읽지 못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편지 말씀이십니까?”
“네. 곧 나갈게요.”
“알겠습니다. 영애.”
문밖의 시종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루크레치아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문에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다 문득 복도 반대편을 바라봤다.
저 멀리….
녹색 머리카락이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
시종의 눈썹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이 저택에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가….
잠시 기억을 더듬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루크레치아의 방문 앞에 자세를 바로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로엔하임의 재건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후우……!”
숨을 몰아쉬며 감옥의 비밀 통로 밖으로 몸을 끌어냈다.
마력이 돌아왔지만 비좁은 통로를 기어서 빠져나오는 일은 여전히 곤욕이었다.
흙먼지를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감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갇혀 있던 곳으로 이렇게 빨리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나와 같은 감방에 있던 여자 제국 기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애액과 정액이 만들어낸 자국뿐이었다.
제물로 만들었다는 건 대체 무슨 짓을 했다는 걸까….
리자드맨들에게 넘겼다고 했으니 좋은 일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텅 빈 감방을 잠시 바라봤다.
부디 죽었다면 마지막만큼은 편안했기를.
그렇게 짧게 기도한 뒤 쇠창살 앞으로 다가갔다.
양손으로 차가운 창살을 붙잡고 힘을 주었다.
끼기긱!
쇠창살이 끔찍한 마찰음을 내며 휘어지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강화된 육신 앞에서는 단단한 쇠붙이조차 엿가락과 다를 바 없었다.
몸 하나가 빠져나갈 정도의 틈을 만든 나는 허탈한 얼굴로 휘어진 창살을 바라봤다.
고작 이런 것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니….
마력이 없는 인간의 몸이란 얼마나 나약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감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들어선 다음 벽 너머의 감방을 살펴봤다.
역시 그곳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바닥과 벽에 말라붙은 핏자국만이 어지럽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흔적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중요한 것은 엘레노아를 구하는 일이었으니까….
감옥의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멈춰 선 나는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곧 두꺼운 천장과 계단 너머의 풍경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