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73화
73.
푸슉―!
푸슉―!
총성이 불과 1초 차이로 연달아 터졌다. 위로 쏘아진 탄환이 하임의 귓가를 스치듯 지나가자 균형을 잃은 몸이 기울어졌다. 시야가 뒤집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망연한 기분을 느꼈다. 자각도 하기 전에 나무 아래로 몸이 떨어지고 있었다. 충격에 대비하여 눈을 질끈 감는데 단단한 무언가가 아래에서 저를 받아 냈다.
푹―.
거칠게 당겨진 하임은 익숙한 품에 안긴 채 신음을 터트렸다.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이 제법 컸지만, 뼈가 부러질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그녀는 뒤늦게 무혁이 저를 받아 냈다는 걸 깨닫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위험하게 왜 그리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
무혁의 덤덤한 음성에 하임은 눈물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마구 울음을 터트리고 싶은 걸 억누르며 다급히 말했다.
“아, 아직 아니에요. 저 사람 말고 또 있어요.”
무혁은 총알이 팔을 관통한 탓에 헐떡이고 있는 중성을 냉한 눈길로 보다가 하임을 더 깊게 끌어당겼다.
“잠깐 눈 감고 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총알을 두 발 더 갈겼다. 마음 같아선 중성의 심장에 박아 넣고 싶었으나, 겨우 이성을 붙들어 양쪽 다리에 한 발씩 쏘는 것으로 그쳤다. 이 정도면 목숨은 부지하되 도망갈 순 없을 터였다.
프로펠러의 거센 소리가 귀를 짓누르자 인상을 쓴 하임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혁은 그녀의 머리를 깊이 감싸안으며 어딘가로 무전을 보냈다.
“새끼들아, 왜 이리 굼떠. 빨리빨리 움직이고 헬기 빼.”
이내 나무 사이가 트인 구간 위로 헬기가 낮게 붙으며 그 아래로 로프가 떨어졌다. 곧 검은 그림자들이 연달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발이 지면을 딛는 순간 곧바로 흩어지며 주변을 장악했다. 짧은 수신호가 오가며 총구가 일제히 숲 안쪽을 향했다.
-구역 확보.
낮게 깔린 보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요원들이 방향을 틀었다. 낙엽을 밟는 소리조차 죽이며 숲 안으로 진입했다. 머지않아 멀리서 짧은 충돌음이 터졌다. 하임이 성기에게 일러 준 방향 곳곳에서 둔탁한 제압 소리와 함께 무전이 들어왔다.
-전원 제압 완료했습니다.
그제야 무혁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총을 세 방이나 맞고도 정신을 붙들고 있는 중성을 내내 노려보며 무혁이 입을 열었다.
“전원 포박한다. 무장 해제 확인하고 이상 있으면 바로 보고해.”
짧게 떨어진 지시에 요원들이 즉각 움직였다. 쓰러진 인원들에게 달라붙어 손목을 뒤로 꺾어 고정하고, 발목까지 묶으며 움직임을 차단했다. 주변을 커버하던 인원들은 구역을 나눠 외곽을 훑었다.
중성은 피 칠갑을 한 채로 바닥을 짚고 겨우 몸을 세우려 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균형이 계속 무너졌음에도 살기는 여전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무혁이 때마침 모습을 드러낸 성기에게 하임을 넘겼다.
“우선 내려가서 치료받고 있어요.”
“무혁 씨는요?”
“금방 갈게.”
그녀는 떨어지고 싶지 않은 눈치였으나 마지못해 성기를 따랐다. 두 사람이 사라진 후 무혁은 조용히 낙엽을 밟으며 중성 앞에 멈춰 섰다. 둘 사이에 싸늘하고 무거운 정적이 흐르던 중, 중성이 비틀린 입가로 웃었다.
“끝났다고 착각하지 마라.”
“끝?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고.”
시선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무혁이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였다.
“난 너처럼 복수 따위에 목줄 걸어 놓고, 남이 던져 준 판에 평생을 허비하진 않거든.”
“…….”
“적어도 내 인생은 내가 산다. 인생 저당 잡혀서 살기엔 아깝단 소리지.”
그의 입꼬리가 차갑게 휘었다.
“그리고 그거 아나?”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앉은 무혁이 서릿발 같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만약 내 외조부께서 청명국 전(前) 총무감을 죽이지 않았다면 넌 진작 네 부모 꼴 났을 거라는 거.”
“개소리 집어치워.”
“청명국 요원이었던 네 부모가 정말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다.”
“……그 입 닥쳐.”
“요원으로서 온갖 거지 같은 일을 겪어 놓고, 네 부모 일은 여태 의심 한번 한 적 없나 보지? 과연 네 부모가 작전 중에 우리 손에 죽었을까.”
중성의 시선이 불현듯 흔들렸다.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그렇게까지 맹목적으로 물고 늘어질 거면, 최소한 누구한테 이용당한 건지는 정확하게 따져 봤어야지. 애새끼였을 땐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이제껏 그 꼴이면 답이 없는 거 아닌가.”
“개소리 집어치워.”
“청명국에 너 같은 새끼가 몇 명 있었을 거 같아. 앞에선 동료인 척하면서 뒤에선 칼 꽂으려는 음침한 새끼들 말이야. 네 부모 곁에도 그런 놈 하나 없었을까.”
중성은 헛소리 취급하며 부정하려 했으나 눈동자는 더 이상 예전처럼 곧게 서 있지 못했다. 이내 몸을 일으킨 무혁이 까딱, 턱짓하자 요원들이 중성을 단단히 포박했다.
바로 종만에게 상황을 보고하던 무혁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불쾌한 소식을 접했다. 체포 명령이 떨어진 신철민이 도주했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소진을 인질로 삼아 데려가는 바람에 구출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지금 추적 중인데 목적지는 **호텔로 예상된다.
꽤 규모가 있는 5성급 호텔이었다. 겉으로는 글로벌 체인이나 구조를 뜯어보니 특수 목적 법인을 낀 채 투자사를 여러 개 거쳐 운영사로 연결된 형태였다. 그 중간 지분 일부가 신철민 쪽 자금으로 묶여 있었다.
즉, 신철민이 내부 경영진과 보안 라인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 본인의 요새에 숨겠다는 뜻이었다. 그를 끄집어내 단서를 얻은 뒤 남은 청명국, I.D.C 잔당들까지 추적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투숙객들한테 피해 가는 일 없게 하고, 노출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거 알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혁이 욕설을 읊조렸다. 일반 투숙객들 틈에서 객실을 일일이 뒤져 볼 수도 없거니와, 호텔도 비협조적으로 굴 게 뻔했기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캡틴, 보고드릴 사안 있습니다.”
“뭐야.”
짜증이 서린 그의 한쪽 눈썹이 매섭게 휘자 후임이 잔뜩 경직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연구원이 탄 차량과 연구원을 추적하던 차량이 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무혁의 시선이 순간 멎었다.
“뭐?”
“연구원이 자신을 쫓던 승합차를 고의로 들이받아 동반 추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I.D.C 측 승합차 내 인원은 전원 사망, 연구원은 실종 상태입니다.”
“……추락 위치는.”
“해안 절벽 아래입니다. 수색팀 투입 준비 중입니다.”
“최대한 서두르고 해류 방향 계산해서 범위 넓혀.”
무혁은 현장 수색 인원만 남긴 뒤, 나머지를 데리고 호텔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산 입구에서 응급 치료를 받는 하임을 보자 심기가 더욱 뒤틀렸다. 얼굴을 제외한 곳곳에 멍과 생채기가 생긴 탓에 약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다. 속으로 신랄한 욕을 쏟아 내며 멀리서 지켜보는데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캡틴, 이건 공식 라인 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혁이 날카로운 눈을 들어 올렸다.
“어디까지.”
“정보 분석국은 바로 연결 가능하고, 호텔 진입하려면 조정실 라인도 필요합니다.”
“……그 밥맛 떨어지는 새끼들을 태우라고?”
“민간 시설이다 보니 명분 없이는…… 죄송합니다.”
무혁이 얼마나 대외 안보 조정실을 고깝게 여기는지 아는 후임이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씨발, 일 참 개 같이 돌아가네.”
무혁은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전달해 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쨌든 소진은 국정원 공식 라인 소속이니, 조정실이나 정보 분석국에 협조 요청을 하면 뭐라도 유의미한 처리를 해 줄 터였다. 이동을 위해 돌아서려던 찰나, 하임이 다급하게 뛰어와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지금 소진 언니한테 가는 거예요?”
“…….”
“언니가 나쁜 사람들한테 잡힌 거죠? 많이 위험한 상황인가요?”
무혁은 성한 곳이 없는 그녀를 가만히 훑다가 성기에게 데려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무사히 빼낼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
“호텔로 간다면서요. 객실을 일일이 뒤져 볼 수도 없어서 곤란한 상황인 것 같던데, 그럼 제가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무혁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삼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하임은 요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모조리 엿들은 모양이었다. 다른 요원들은 그녀의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조심성이 없다고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데려가 주세요. 소진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