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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67화


67. ‘너무 무서워.’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저 총알이 누구를 향하고 있을지. 삼동이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이를 악물었다. 무혁 혹은 3인조 중 누군가가 총에 맞으면 어쩌지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형아들 다치면 안 되는데.’ 삼동이는 처음 겪는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몸은 멀쩡한데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겁이 났다. 자기가 겁쟁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바보, 머저리, 겁쟁이. 저를 보며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왕왕 울렸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겨 왔지만 갑자기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누워 있기만 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도망쳐야 하는 건지. 머릿속이 어지럽게 뒤엉키던 그때. “윽.” 저 멀리서 낮은 신음이 들렸다. 아주 잠깐 스친, 짧은 소리에 삼동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분명 3인조 중 한 명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확신할 수 없지만 촉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삼동이의 마음속 어딘가가 거세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제가 아끼는 누군가가 총에 맞았다는 생각이 스치자,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단전 깊은 곳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나쁜 놈들 가만 안 둬.’ 점점 뜨거운 기운이 전신 곳곳에 퍼졌다. 삼동이의 숨이 거칠어지며 축 늘어져 있던 몸이 눈에 띄지 않게 준비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곰 같은 덩치가 잠에서 깨어나는 불곰처럼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남자 둘은 여전히 숲 쪽만 노려보고 있었다. 총을 쏘느라 정신이 팔린 나머지 뒤쪽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였다. 삼동이가 여태 기절해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 삼동이는 숨을 죽인 채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 남자 하나가 총을 내려다보며 탄창을 갈아 끼우려던 찰나, 삼동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덩치가 순식간에 튀어 올랐다. “어……!” 놀란 남자가 완전히 돌아보기도 전, 삼동이가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다. 무술 따위를 배워 본 적이 없어 별다른 싸움 기술은 알지 못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몸을 들이받듯 달려들었다. 두꺼운 팔이 몸을 통째로 끌어안자 남자가 거칠게 반항했다. “이 간나 새끼가!” 순간 몸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려 했다. 어깨가 돌아가고 중심이 낮아졌다. 제대로 된 기술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덮친 것이었다면 남자는 그 틈에 금세 풀려났을 것이다. 하지만 삼동이의 힘은 남달랐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더 세게 팔을 조였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무작정 힘으로 눌러 붙들었다. 다시 남자의 몸이 조금 비틀리긴 했으나 완전히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순수하면서도 특출난 힘이 기술을 짓누른 것이다. “이 종간나 새끼! 당장 이거 놓으라우!” 남자가 몸을 틀며 팔꿈치를 찍어 내렸지만 삼동이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다른 한 명이 숲을 겨냥하던 총구를 삼동이에게로 돌렸다. 휙― 삼동이는 영화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끌어안은 남자를 방패 삼듯 총구를 향해 돌려세웠다. 푸슉―! 총성이 짧게 울리며 총알 하나가 삼동이의 팔을 스쳤다. 살갗이 뜯기며 뜨거운 고통이 번졌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로 발을 구르며 돌진하듯 앞으로 밀고 나갔다. 거대한 덩치가 짐승처럼 달려들자 총을 겨누던 남자가 순간 멈칫했다. 동료를 정면에 내세우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난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죽일 놈의 새끼가.” 남자는 뒤로 반걸음 물러서며 다시 총구를 올렸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호흡을 고르며 삼동이의 머리를 겨눴다. 마치 한 발로 끝내 버리겠다는 듯. 푸슉―! 그때 멀리서 날아온 총알 하나가 남자의 몸을 꿰뚫었다. 남자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방아쇠가 비틀린 채 당겨졌다. 총구가 빗나가며 탄환이 튀자 총알이 삼동이의 어깨를 스쳤다. “아.” 삼동이가 나직이 신음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마터면 머리에 구멍이 날 뻔했다는 걸 인지하자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바로 다음 순간, 삼동이에게 붙잡혀 있던 남자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짧은 소리가 튀며 몸에 탄환이 박히는 진동이 삼동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뒤로 총성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요란하던 숲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가지 소리만 사각거렸다. 삼동이는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무 사이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하자 삼동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형아들.” 씨익 웃으며 중얼거리자 그쪽에서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3인조는 미워할 수 없는 미친놈을 보듯 삼동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녀석 봐라. 총에 맞고도 웃네.” “진짜 물건이라니까.” “어이, 삼동아. 괜찮냐?” “응. 나 잘했지?” 정환이 피가 철철 흐르는 삼동이의 상처부터 지혈하고는 붕대를 감아 주었다. 바울도 총알이 스친 탓에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이어서 무혁도 모습을 드러냈다. 두 번째 탄환을 명중시킨 게 바로 그였다. 무혁은 삼동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남자들의 시신을 확인했다. 역시나 그들의 귀 뒤쪽에 청명국 요원임을 알리는 캡슐이 이식되어 있었다. “…….” 무혁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삼동이를 납치해 이곳까지 끌고 온 것. 그리고 산에 잠복해 있다가 저를 끌어들이려 한 움직임. 전부 의도된 흐름처럼 보이긴 하나 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청명국이 이런 피라미 같은 놈들로 자신을 처리하려 들 리 없었다. 작전을 짜는 쪽이 그 정도로 멍청할 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중성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무혁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봤다. 감각을 최대한 열어 두었지만 더 이상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상황이 지나치게 싱겁게 마무리됐다. 마치 여기까지는 그냥 미끼였다는 것처럼. 무혁의 미간이 아주 미묘하게 좁혀졌다. 문득 고개를 든 그가 경조에게 손을 내밀었다. “단말기.” 경조가 바로 허리에서 단말기를 꺼내 건네자 무혁이 채널을 전환했다. 단말기 손상으로 끊겼던 채널에 재접속하자 소진이 남겨 둔 음성 메시지가 차례로 날아들었다. -저택 상공 미확인 드론 2기 확인. 고도 유지하며 선회 중. 위치 노출로 피보호자 이동 준비 중. -인질 데리고 저택 이탈 완료. 추적 가능성 고려해 도심 방향으로 이동. 차량 교체 예정. -차량 교체 완료. 현재까지 직접 추적 징후 없음. 이동 지속. 무혁은 숨을 죽인 채 음성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잡음과 숨을 고르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연이어 다섯 번째 메시지를 귀담아듣던 그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피보호자 상태 악화. 소음으로 인한 청각 과부하 반응 확인. 점점 통제 어려운 수준. 추적 완전 차단 후 안정 조치 시도. “…….” 마지막 메시지는 이전보다 훨씬 짧았다. -피보호자 상태 심각. 진정제 투여. 일시적 수면 유도 진행. 기록은 거기서 끊겼다. 무혁은 곧바로 소진의 회선을 호출했다. 단말기 화면에 연결 시도 표시가 잠깐 떠올랐다가 금세 멈췄다. 삐― 건조한 신호음이 짧게 울리더니 화면에 에러 코드가 떠올랐다.   NETWORK UNAVAILABLE ERR-412: ROUTE BLOCKED   통신 불가. 연결이 닿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신호 자체가 돌아오지 않았다. 단순히 소진이 받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 회선 어딘가가 통째로 막혔다는 뜻이다. 단말기 문제라면 기기 쪽에서 오류가 먼저 뜨는 게 정상이나, 지금 화면에 떠 있는 건 접속 구간 차단을 의미하는 코드였다. 무혁의 동공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곧바로 채널을 전환하여 성기에게 컨택했다. “배소진 마지막 통신 위치 추적해. 그리고 지금 쓰는 회선 내 채널로 등록해. 단말기 교체한다.” -네, 캡틴. 바로 로그 확인하겠습니다. 무혁은 이곳을 정리하고 삼동이를 치료하라는 지시를 남기고는 총부터 재정비했다. 이내 성기가 보내 준 지도 위에 떠오른 좌표들을 캡처하듯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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