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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42화


42. “…….” “뭐야, 저거.” 날카로운 목소리가 불안하게 울려 퍼졌다. 곧 거리가 좁혀지며 누군가가 땅을 뒤적이는 게 느껴졌다. ‘아차.’ 하임은 저들이 삽주를 발견했음을 깨닫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좀 전까지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눈치챘을 터였다. 이윽고 주위에 싸늘한 정적이 맴돌자 긴장이 배가 되었다. 그러길 몇 초 후, 어딘지 서늘한 느낌에 하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두 남자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 무스로 말끔하게 넘긴 머리, 빳빳하게 떨어지는 검은 코트에 구두 차림. 흙 한 점 묻지 않은 옷차림이 오히려 더 위화감을 키웠다. 산에 오를 복장이 아니거니와 구경 삼아 돌아다니는 사람의 태도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시선이 달랐다. 놀라움도 경계도 없이 이미 확인이 끝났다는 듯한 눈이었다. 사람을 본다기보단 발견한 대상을 갈기갈기 파헤칠 것만 같은 눈빛. 하임은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될 종류의 인간들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 어…….” 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임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그녀의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시선이 엮인 이상 도망칠 수도 없었다. 하임은 잔뜩 경직된 목으로 숨을 한 번 삼킨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냥 약초를 캐러 나온 거예요…….” “…….” “통제 구역에는 안 들어갈 거예요. 한 번만 봐주세요…….” 두 남자는 다소 남루한 그녀의 복장과 흙 묻은 낡은 자루를 차례로 훑었다. 시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바늘이 스치는 것처럼 피부가 따끔거렸다. 잔뜩 겁을 먹고 눈치를 살피는 사이, 그들의 시선이 공중에서 한 번 맞부딪혔다가 갈라졌다. 대화는 없었으나 결론이 난 듯했다. 한 사람이 하임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턱으로 가볍게 방향을 찍었다. 가라는 뜻이었다. 하임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루를 끌어안고 일어났다. 눈을 내리깔고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발밑의 흙이 미끄러질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한 걸음이라도 더 멀어지는 게 살길이었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등 뒤에서 낮고 둔한 진동음이 울렸다. 이내 하임은 뒤통수가 이유 없이 따끔거리는 걸 느끼며 속도를 높였다. 모른 척하고 그대로 가려던 찰나. “잠깐.” 짧고 냉정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떨어졌다. 명령에 가까운 한마디에 하임의 발이 반 박자 늦게 멈췄다. 떨리는 숨을 삼킨 그녀는 저한테 한 말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다시 움직이려던 순간. “임하임 씨.” “……!” “그쪽이 임하임 씨입니까.” 제 이름 세 글자가 발목을 붙잡았다. 남자들이 다시 다가오는 몇 초 동안,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오만 가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확신에 찬 그들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네? 저, 저를 아세요?” “뭐 하나만 물읍시다.” 남자가 코트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장 씨 아저씨의 사진이었다. “이 사람 알죠.” “…….” “얼마 전에 사고를 당한 듯한데. 무슨 일인지 아는 거 있습니까.”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 남자가 이사 가던 날에 그쪽이 찾아갔었다면서. 장기덕 씨와 그쪽이 채무 관계였던 건 알고 있습니다.” “……그, 그건 맞는데 다 끝났어요. 저는 돈도 갚았고 아,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해요.” 그들은 거짓을 구별하려는 듯 하임을 빤히 응시했다. 어딘가 음산한 두 쌍의 눈빛이 께름칙했다. 하임이 그대로 어색하게 목례하고 돌아서려는데, 이번엔 남자가 다른 사진을 들이밀었다. “그럼 혹시 이 사람은 본 적 있습니까.” 작전 중에 찍힌 듯한 무혁의 사진이 등장하자, 하임은 찰나 숨 쉬는 법조차 잃어버렸다. “아니요…….”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잘게 흔들리는 눈망울을 놓치지 않은 그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 몰라요. 이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 “더 할 말 없으시면 이만 가 볼…… 꺄악!” 느닷없이 멱살이 붙잡힌 하임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코앞으로 사납게 얼굴을 들이민 남자가 기세와 달리 태평한 어조로 말했다. “잠깐 얘기 좀 나누시죠.” “왜, 왜 이러시는…….” “아무래도 우리가 아가씨 도움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이 남자 정말 모릅니까?” “모, 몰라요. 정말 몰라요.” “…….” “집으로 보내 주세요…….” “음, 어쩌지. 거짓말하는 나쁜 사람은 곱게 못 보내 주는데.” “……!” “잠깐 조용한 곳으로 자리 좀 옮깁시다. 혹시 그동안 뭐라도 떠오르면 말해 주고.”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떠는 하임의 눈가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웬 손수건을 꺼낸 남자가 그녀의 코와 입을 가볍게 눌렀다. “읍!” 하임이 힘껏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머지않아 시야가 빠르게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몸이 땅 밑으로 꺼지듯 무너졌다. * * * 무혁은 약물과 적당한 충격 요법으로 하루타의 회복 속도를 끌어올렸다. 전보다 의사소통이 한결 수월해진 하루타는 여전히 무혁을 보면 벌벌 떨면서도 묻는 대로 술술 불었다. 꾸준히 하루타를 취조한 결과, 무혁은 그가 I.D.C의 임무를 위해 이곳에 투입된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네 대가리가 어떻게 다친 건지도 기억하라고 했을 텐데.” “와, 와카리마셍……!” “몰라? 또 기억나게 해 줘야겠네.” 무혁은 포박당한 채로 애원하는 하루타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주입과 동시에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다. 짧은 숨이 목에 걸린 듯 컥, 소리가 새어 나왔고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통증 때문이라기보단 몸 안쪽에서 무언가가 뒤집히는 감각에 가까웠다. “읍……!” 턱이 덜덜 떨리며 이가 맞부딪혔다. 제 박자를 잃은 듯 빠르게 뛰던 심장이 한순간 뚝, 떨어졌다가 다시 요동쳤다. 팔꿈치 안쪽이 저릿하게 타오르며 감각이 일그러졌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공기가 폐에 닿지 않는 느낌에 하루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의 잇새로 의미 없는 부정이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등줄기에서 땀이 솟았다.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몸을 웅크렸으나 포박된 팔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기억은 통증보다 빠른 법이지.” 선득하게 꽂히는 음성에 하루타의 숨이 더 가빠졌다. 억지로 눈을 부릅뜨자 끊긴 장면들이 들쑥날쑥 튀어 올랐다. 밝은 형광등, 차가운 금속의 촉감, 귀를 찢는 고주파 같은 울림. 서로 맞지 않는 조각들이 머릿속을 긁고 지나갔다. “죠또마떼…… 자, 잠깐만…….” 하루타의 말끝이 흐려지며 몸이 크게 떨렸다. 공포와 혼란이 뒤섞인 채, 그는 결국 무언가를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돌덩이를 보듯,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던 무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말해.” “…….” 무혁은 두 번 묻는 대신 새 주사기에 약물을 채웠다. 치사량에 가까워질수록 고통은 곱절이 될 테지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그는 약물이 잘 나오는지 확인한 후에 자비 없이 바늘을 겨눴다. 그때, 하루타가 무언가 떠오른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로, 로진!” 막 바늘 끝이 피부를 뚫으려던 순간에 무혁이 손을 멈췄다. 한쪽 눈썹을 추켜올린 그가 서늘한 어조로 물었다. “노인?” “하이! 어, 어떤 노인이가 나를 이빠이 무섭게 막……!” “어떤 노인.” “소, 소레가…… 냄새가 나따요. 흙, 나무, 약 냄새.” “…….” “더 파고드면 그때느 머리만 망가지누 거로 안 끝나루 거라고, 다 이쥬라고(잊으라고)…… 그래, 마쟈, 타시카니(분명히) 그래써…….” 별안간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하루타가 한 단계 유창해진 한국어를 구사했다. 무혁은 반쯤 혼이 나간 듯한 안색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긴말하지 않아도 대번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하.” 그 노인네는 안 끼는 곳이 없군. 무혁은 주사기를 트레이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그가 차고지 문을 벌컥 열고 나가자 성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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