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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24화


24. 한창 체력을 단련 중이던 무혁은 삼동이가 가져온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웠다. 뜨거워진 몸을 지하수로 한 김 식히고 돌아오니 삼동이는 우유 1L를 통째로 해치운 상태였다. 지난번에 혼자 감자전 열 장을 해치운 것도 그렇고, 어마어마한 먹성을 가진 녀석이었다. ‘이 새끼 딱 봐도 타고난 근질인데.’ 몸을 어떻게 쓰는지 배운 적이 없어서 그렇지, 거대한 덩치만 보면 흡사 백두 장사급이었다. 걸신들린 것처럼 먹긴 하지만 근육과 지방의 비율도 적절했고, 혼자 부산 떠는 걸 보면 타고난 체력도 꽤 좋은 편이었다. 육중한 만큼 순발력이 어떨진 모르겠으나,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는 관찰력 또한 내심 무혁을 놀라게 한 터였다. 품평하는 눈길을 느꼈는지 삼동이가 그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왜, 형아? 삼동이가 그렇게 좋아?” 이 씹새끼가. 신랄한 욕을 삼킨 무혁은 못 들은 척하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데 삼동이가 그의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첩보 영화에서 본 주인공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멋있다는 감탄과는 별개로, 삼동이는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흐음, 있잖아 형아. 형아는 특수 요원이라서 그렇게 흉터가 많은 거야? 아니면 원래 군인들은 전부 다 그래?” 어처구니가 없는 무혁이 실소를 흘렸다. 특수 요원과 단순 병역 의무자로서의 군인 생활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표현도 부족하건만. “비교할 걸 비교해라.” “그렇지? 그럼 형아보다 흉터 훨씬 더 많은 사람은? 더 센 군인인 거야?” “제대로 싸울 줄 모르는 좆밥이겠지. 전역하기도 전에 뒤질 운명이던가.” “으음? 영감님은 좆밥 아닌데. 죽지도 않았고 엄청 센데?” 무혁은 뭔 개소리냐는 듯 무심히 일별하고는 마저 옷을 입었다. “우리 마을 최강 보스야.” “그게 누군데.” “임봉주 영감님. 하임이네 할아버지.” “……?” “봉주 할아버지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무서워서 아무도 못 건드려. 근데 할아버지 몸에도 칼자국이랑 총 자국 있어.” 삼동이는 어릴 적에 우연히 스쳐 본 봉주의 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새겨진 여러 흉터들. 당시엔 별생각 없었으나 돌이켜 보니 총 자국, 칼자국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무혁이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하임이 아픈 조부에 대한 걱정이 큰 눈치라 그저 평범하고 허약한 노인이겠거니, 생각한 참이었다. 그런데. “몸에 그런 흉터가 있다고.” “응. 형아보다 더 많아.” 무뚝뚝한 시선이 꽂히자 삼동이가 신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진짜야. 어릴 때 딱 한 번 봤는데 똑똑히 기억나. 여기, 여기, 여기에 일자로 쭈욱― 칼자국 있고, 여기에는 총알 자국 있고, 여기 등에도 이렇게…….” “…….” 근거 없는 호들갑이라 치부하기엔 녀석이 짚는 위치들이 꽤 그럴듯했다. 격투나 근접전에서 가장 먼저 노출되는 부위이거나 치명상을 입기 쉬운 곳이었고, 전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파고들 법한 지점들이었다. ‘헛소리가 아닌 건가.’ 사실이라면 평범한 시골 노인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정도면 사지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몸을 던져 싸운 흔적이라 봐야 했다. 게다가 그 상처들이 한날한시에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진작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테니, 반복된 전투를 버텨 온 몸이란 증거였다. “심마니라며. 그 영감도 특수 부대 출신, 뭐 그런 건가?” “그건 모르겠는데.” 삼동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있잖아, 형아. 우리 영감님은 예전에 천종산삼도 캤어. 천종산삼은 산신이 선택한 사람만 캘 수 있는 건데.” 삼동이가 잡담을 이어 갔지만 무혁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문득 하임의 할아버지란 인물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겹겹이 쌓인 전투 흔적을 몸에 지닌 채 민간인 통제 구역에 고립된 노인이라니. 우연이라 하기엔 무언가 지나치게 맞물려 있는 느낌이었다. “그 영감은 이곳이 고향인가?”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사셨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몰라.” “이곳 출신도 아니다? 그럼 가족이 여기에 있지도 않았을 거라는 거군.” 무혁이 조용히 미간을 모았다. 민간인 통제 구역은 외부인이 마음대로 이사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특정한 사유가 있어야만 이주할 수 있으며 지자체 및 군의 허가도 필요했다. 타지 출신이 무슨 이유로 군사의 통제를 자발적으로 받으며 살아왔을까. 그것도 칼날이 스치고, 총탄이 관통하고, 또다시 봉합되기를 반복한 몸으로. 무혁은 이 사실을 이대로 흘려넘기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촉이 유달리 뛰어난 편이었고, 이런 감각은 대개 틀린 적이 없었다. 허가를 누가 내줬는지, 신원 조회는 어떻게 통과했는지, 애초에 기록이 존재하긴 하는지. 확인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 차분히 정리됐다. 역시 별 볼 일 없는 줄 알았던 이 시골 마을엔 제법 흥미로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형아?” 무혁은 대답 대신 시선을 돌렸다.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삼동이는 천종산삼이 어떻고 산신이 어떻고 계속 떠들어 댔지만, 그의 사고는 이미 다른 궤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연이 겹치면 패턴이 된다. 그리고 패턴은 의도를 품는다. 임봉주. 피라미를 잡기 전 여담 마을을 들여다보려면 가장 먼저 그 노인을 확인해야 했다. “전부 다 헛소리이기만 해.” “거짓말 아니야, 형아.” 삼동이의 낯짝은 너무 솔직해서 거짓이 섞일 여지가 없어 보였다. 무혁은 녀석이 이곳에 가져다 둔 물건을 훑다가 태블릿 PC를 집어 들었다. 데스크톱을 가져다 둘 수 없으니 이것이라도 챙겨 온 것이었다. 연식이 꽤 된 전자 기기는 부팅 속도도 느린 데다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한참 밀려 있었다. “거기에 재밌는 게임 많아, 형아. 내가 가르쳐 줄게.”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허접한 게임들이 대부분의 용량을 차지하고 있었고, 커버에 딸린 조악한 키보드는 자판의 글자가 다 벗겨진 상태였다. 인터넷도 와이파이로만 접속이 가능하니 마음껏 사용할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NEXA 개인 서버 접속은 피하는 게 좋긴 하다만. 그가 기기를 만지작거리며 머리를 굴렸다. “핫 스폿 연결해 봐.” “핫 스폿? 전에 들어 봤던 거 같은데.” “…….” 무혁은 설명 대신 직접 삼동이의 핸드폰을 두드렸다. 마찬가지로 게임 위주인 핸드폰 화면에서 익숙한 개구리 얼굴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Leafhop-frog   대번에 떠오른 얼굴은 남성기였다. NEXA 소속 정보 분석관이자, 한때 제 집에서 신세를 졌던 녀석이었다. 성기와 가끔 심심풀이로 내기나 하던 게임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쩌면 게임으로 접촉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만 이번 일로 성기 또한 의심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제가 직접 NEXA에 데려다 놓은 인재라 놈들과 한패일 가능성은 낮긴 했다. 무엇보다 그 녀석은 중성을 싫어하기도 하고. 툴툴거리며 저를 쫓아다니던 성기를 떠올린 무혁은 작은 도박을 걸어 보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조용히 손을 뻗을 만한 상대는 그 녀석뿐이었다. 뾰로롱― 게임을 켜자 삼동이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무혁의 옆에 철썩 달라붙었다. “게임하려고, 형아?” “떨어져 있어.” 단호한 축객령에 시무룩해진 삼동이가 과자를 까먹기 시작했다. 무혁은 그에게 아무 만화책을 던져 주고는 화면을 두들겼다. 삼동이의 아이디로 접속 중이지만 다행히 성기의 아이디를 알고 있었다. 친구 찾기 검색창에 ‘megaultrapeni’를 검색하고는 친구 추가 및 대결 신청 버튼을 눌렀다.   ‘megaultrapeni’님에게 대결 신청 메시지를 보내시겠습니까?   예스. 무혁은 암호를 이용하여 짤막한 메시지를 적었다. 곧이어 전송 완료 안내창이 떴다. 이제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면 되지만 인터넷 접속이 문제였다. 우선 태블릿 PC에도 게임을 다운로드 한 그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삼동이를 불렀다. 최대한 길게 있다가 가라는 말에 삼동이의 얼굴에 불안하리만치 화색이 돌았다. “왜? 삼동이랑 밤새 놀고 싶어, 형아?” 무혁은 히죽거리는 그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몇 분 뒤.   ‘megaultrapeni’님이 초대를 수락하셨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곧 무혁의 입가에 시니컬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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