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210화
카롤리네 데른부르크의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극도의 중압감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멎었으리라는 것이 의사의 추측이었고, 앙할트 백작이 카롤리네가 밀정 조직에 부탁하여 독약과 필적 위조를 했다는 것을 보고함으로써 그 추측을 뒷받침했다.
데른부르크 백작 부부는 에제키엘과 앙할트 백작으로부터 카롤리네가 꾸미고 실행한 모략의 내용을 듣고는 무덤에 흙을 빨리 덮는 것에 동의했다. 이건 슈바벤만이 아니라 카롤리네를 위해서도 외부로 알릴 일이 아니었다.
슈바벤 내부에서는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정확히 몰라도 그녀가 뭔가 계략을 꾸미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여러 사람이 짐작하고 있었다. 로엘라의 주변 사람들은 더더욱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공을 탐하더니 결국.”
“카롤리네 언니가 너무 야심이 지나치긴 했어요.”
장례식장에서 앙할트 백작 부인과 헤르미네 등이 소곤소곤 속삭였다.
로엘라는 망연한 듯이 관 앞에 서 있었다. 어찌 보면 그녀가 이번 일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처럼도 보였다. 감정을 숨기는 법을 잘 모르는 탓에 그녀의 얼굴에는 참담함과 놀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에제키엘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안아 끌어당겨 안았다. 주인이 시녀를 위해 슬퍼해 주는 일은 나쁘지 않지만, 행여나 감정에 빠져서 실수할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자아, 로엘라, 돌아가자. 윗사람이 너무 비탄에 잠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좋지 않아.”
“진짜야?”
로엘라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에제키엘은 의아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뭐가?”
“카롤리네가 뭔가…, 뭔가, 저지르려다가 실패해서 죽었다는 거.”
“…그 말에는 어폐가 있군.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거라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걸 실패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는 없어.”
“무슨 일을, 하려고 했다는 거야? 걘 내 시녀였어. 나를 위해서 일했어야 했어. 난 걔를 못 믿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지 괴롭히지는 않았다고. 으흐흑….”
로엘라가 결국 참지 못하고 후드득 눈물을 떨어뜨렸다. 에제키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이 아니야.”
“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흑, 거라고 해도… 그래도 내 탓이잖아. 이제, 으흑, 내 시녀로 있어 봐야 출세할 수 없으니까….”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했어?”
그는 결국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 하지만 로엘라는 이미 오열하느라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에제키엘은 그녀를 부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나이 든 측근 하녀의 품에 로엘라를 넘겨주었다.
“충격이 심한 모양이니 잘 돌봐 줘. 친구 같은 시녀가 갑자기 죽었으니 많이 놀랐겠지.”
“네. 이를 말씀입니까….”
측근 하녀의 주름진 눈초리에도 눈물방울이 맺힌 듯 보였다.
그러나 하녀 같은 건 에제키엘에게는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로엘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그녀가 에제키엘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슈바벤 저택의 별관으로 옮겨진 이후로 그녀가 이런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일은 없었으므로 그는 잠시 놀란 얼굴을 했다.
“먼저 돌아가 있어, 로엘라. 나는 아직 장례식장에 더 있어야 해. 저녁에 네 처소로 갈 테니….”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로엘라가 울먹거리며 물었다. 에제키엘은 소매를 쓸어내리듯이 하며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가서 쉬고 있어. 지금 내가 제일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데른부르크 백작가야.”
“흐으윽.”
로엘라는 더욱 큰 소리로 흐느끼며 측근 하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가 서둘러 로엘라를 안고 마차로 향했다.
에제키엘은 그 모습을 잠깐 쳐다보고 뒤를 돌아보았다. 울고 있는 로엘라에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는지, 헬무트가 좀 떨어진 건물 그늘에 서 있었다.
그는 헬무트에게 이리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헬무트가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조문이 아직이라…. 네가 입구에서 황녀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못 들어가고 있었던 거야.”
“급할 건 없으니 잠깐 걷지.”
에제키엘이 말했다. 헬무트는 어깨를 으쓱하고 얌전히 그를 따라나섰다.
둘은 천천히 걸어서 데른부르크 저택의 정원 한가운데로 나섰다. 호위가 충분히 거리를 둔 다음에야 에제키엘이 물었다.
“왜 죽였지?”
“…….”
헬무트는 잠깐 침묵했다.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에제키엘이 모르길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바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꼬리를 자른 거지. 무덤에 들어간 사람에게 죄를 모두 뒤집어씌워 끝내는 것만큼 간편한 일은 없으니까.”
“블루멘펠트에 지금 당장 손을 댈 필요는 없었을 텐데. 후작이 살아날 건 예상치 못했나?”
“거기까지 알고 있어?”
에제키엘이 건조한 얼굴로 헬무트를 바라보았다. 헬무트가 헛기침을 했다.
“하긴, 레이디 카롤리네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으면 짐작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
“데른부르크 백작 영애의 마부는 내가 죽였어. 이 사실이 알려지면 네가 논책 대상이 될 거야. 헬무트, 난 이 일의 어디에서도 네가 위험을 감당할 만한 가치를 찾아내지 못했어.”
블루멘펠트 후작을 암살하는 것은, 성공하면 좋은 일이지만 에제키엘이 보기에 헬무트의 명운을 걸 만한 가치는 없었다. 그러니 혹시 카롤리네를 죽이는 게 목적이었을까 생각해 봤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인이 부정했다.
헬무트가 말했다.
“블루멘펠트 후작을 타깃으로 삼은 건 내가 아니라 레이디 카롤리네 본인이야. 성공하면 큰 이득이 될 만한 뭔가를 해 주길 바라고 자료실 열쇠를 줬는데, 실패했으니 정리했을 뿐이지.”
“네 자료실 열쇠를?”
“이제 오래되어 쓸 일도 없는 것이었으니까.”
헬무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에제키엘이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역시 이해할 수 없군. 뭔가 떠오른 계략이 있다면, 차라리 내게 말하는 쪽이….”
사두마차 한 대가 정문으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검은색이었으나 몹시 화려한 조각이 있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이라고 해서 마차까지 새로 장만하여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특별히 예의에 어긋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은 말을 멈추고 그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촐한 장례식, 데른부르크 백작가의 친척과 슈바벤의 일부 인사를 제외하면 주인인 로엘라와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또래 시녀들-과연 그렇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도가 참석자였다. 저런 마차를 타고 온 게 누구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마차는 저택 로비 앞까지 가는 대신 중간에 멈췄다. 에제키엘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 마차 뒤를 따라온 말에서 테오도르 루트가르트가 내렸기 때문이다.
테오도르가 마차 문을 열었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올리비아가 내려선다. 모자에 달린 검은 망사 베일이 턱까지 가렸지만, 에제키엘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올리비아에게 검은색이 어울린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레이디 라일라라고 불렸던 시절, 그녀는 검은색과 짙은 자주색을 즐겨 입었다. 머리칼의 빛깔은 그때와 달랐지만, 발밑까지 길게 흘러 떨어지는 검은 드레스가 어울리는 것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에제키엘은 무심코 눈을 가늘게 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이니 빛을 반사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눈이 부시기라도 한 듯 약간의 불편감을 느낀다.
심장이 높게 뛰어오른다. 그가 있는 곳까지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여자는 죽음의 신부 같았다.
헬무트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아.”
에제키엘은 문득 자신이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녕.”
그에게서 두 발쯤 떨어진 자리에 선 올리비아가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에제키엘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올 장례식이 아닐 텐데.”
“레이디 카롤리네와는 나도 면식이 꽤 있거든.”
올리비아의 어조에는 애도하는 슬픔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굳이 가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데른부르크 백작 부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고 싶은 거라면 충분히 이해했어. 조문은 해도 좋지만, 분탕 칠 생각으로 온 거라면 소용없어.”
“네가 지키고 있으니 그야 그렇겠지.”
올리비아의 입술이 베일 너머로 가느다란 호선을 그리는 것이 보였다. 에제키엘의 시선이 거기 못 박혔다.
“그래도 고마운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조문조차 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아직 우리 시녀장의 목숨을 구해 준 은혜조차 갚지 못했는데.”
“뭐?”
되물은 에제키엘은 올리비아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헬무트에게 꽂히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그가 첫 번째로 느낀 감정은 어이없게도 질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