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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132화


음악은 계속 흐르고 있었으나 파티장 안이 조용했기에 이 소리를 들은 자가 많았다. 열려 있는 문으로 수십 명의 근위 기사가 열을 지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시종은 눈치 빠르게 문을 닫았으나 분위기는 이미 흐트러졌다. 에제키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로엘라의 경호를 위해 배치된 자들이 아니다. 근위대 일부가 테오도르의 손에 넘어간 지금, 이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호헨슈타인 자작이 머뭇거렸다. 에제키엘은 그에게 계속하라고 눈짓했다. 그리고 보좌관을 불러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라고 작은 소리로 명령했다. 자신이 로엘라의 옆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정말 큰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좌관이 황급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고용인용의 쪽문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정문이 다시 열리고는 근위 기사 하나가 들어와 로엘라에게 다가왔다. 오늘 밤 파티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자였다. 호헨슈타인 자작은 결국 일어섰다. 근위 기사가 심각한 얼굴로 로엘라와 에제키엘에게 경례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각하. 긴급한 사안 때문에 체포해야 할 범죄자가 파티에 참석하고 있어서 왔다고 합니다.” “체포?” “황제 폐하의 조서를 갖고 왔습니다.” 그가 조서를 에제키엘에게 보여 주었다. 에제키엘은 홱 낚아채듯이 문서를 열어보았다. 발트라이히 가문이 황실을 기만하였으므로 그 죄를 묻기 위해 책임자를 구금하라는 내용이었다. 틀림없이 국새가 찍힌 조서였으며, 황실 기만죄는 근위대가 수사한다. 에제키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발트라이히도 발트라이히였고, 그가 알지 못하는 황실 기만죄라는 항목도 그러했으나, 황궁 서기관실에서 이게 나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황명을 막는 첫 번째 수단이 그의 수중에서 빠져나갔다는 뜻이었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기사가 질문했다. 에제키엘은 아르노를 노려보았다. 발트라이히가 빠지면 오늘 파티의 목적은 반밖에 달성되지 못한다. 하지만 조서를 가져온 근위대가 있는데 무시할 수는 없다. 공공연한 장소가 아니었다면 그는 조서를 불태워 버리는 쪽을 택했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아르노 발트라이히를 조용히 데리고 나가서 넘겨줘.” “조서가 지목하는 건 그 한 명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발트라이히 가문의 관계자 전원을 쫓아낼 수는 없지 않나. 파티가 끝난 후에….” 하지만 그의 지시가 끝나기 전에 문이 다시 한번 활짝 열렸다. 호명관이 더듬거리며 외쳤다. “게, 게르트루드 발트라이히 후작님과 영애이신 레이디 이졸데께서 당도하셨습니다!” 웅성거리던 파티장은 이제 거의 소란에 휩싸이다시피 했다. 곧 후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발트라이히 후작은 수수한 남성복을 즐겨 입는 편이었으나 오늘은 가문의 문장을 비롯해 여러 개의 작위를 나타내는 휘장과 훈장을 모두 가슴에 달고 있어 화려해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와 나란히 들어온 30대 중반의 여자에게 쏠렸다. “발트라이히 후작의 영애라고…?” 사교계 소식에 밝다고 자부하는 호사가들조차도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졸데의 얼굴에는 분명히 발트라이히 후작과 닮은 점이 있었다. 아르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말리려는 듯한 루이제의 손길을 뿌리치고 그가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후작에게 다가갔다. “고모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후작이 먼저 움직이기를 바라긴 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중요한 파티에 갑자기 이졸데를 대동하고 들이닥치다니. 이건 후작 자신은 물론 발트라이히 자체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였다. 구체적으로 떠올리지는 못했으나, 그의 무의식은 각 가문의 후계자들이 로엘라 황녀에게 충성의 선물을 바치는 자리에 후작이 이졸데를 데리고 나타났다는 것의 의미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발트라이히 후작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어쩔 수가 없구나. 너 때문에 2황녀 전하의 파티를 망치게 되었으니, 가문의 주인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르노가 이졸데를 노려보려다가 흠칫 놀랐다. 창백한 이졸데의 눈에서는 원한과 독기가 서린 광망한 빛이 줄기줄기 쏟아졌다. 그녀가 이를 악무느라 턱이 움직이는 것이 아르노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후작이 이졸데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죄인을 데려가게.” 그때까지도 감히 파티장 안을 침범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던 근위 기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노랗게 질린 아르노가 뒷걸음질을 쳤다. 로엘라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내 파티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요, 후작!” “황공합니다, 2황녀 전하.” 발트라이히 후작은 침착한 태도로 정중하게 그녀에게 사죄했다. “발트라이히가 황제 폐하의 대리인으로서 일곱 개 도시와 항구의 징세를 맡은 지가 벌써 20년인데, 어리석은 혈육에게 책임을 맡겼다가 죄를 지었으니 어떻게 책임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뭐라고?” 에제키엘이 귀를 의심했다. 발트라이히 후작이 말한 일곱 개 도시의 징세권은 9인 회의가 성립되었을 때 그들이 나눠 가진 이권 중 하나였다. 황제의 인증을 받은 자유 도시들은 영주들과 동등하게 황실에 직접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징세에 관한 실무를 대리한다는 핑계로 사실상 각자 원하는 지역의 조세권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발트라이히 후작은, 지금 아르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이 권리를 내던진 것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르노를 비롯하여 발트라이히에 관련된 죄인이 워낙 많은 데다가, 무엇보다도 황실에 지은 죄이기에 황제 폐하께 아뢰었습니다. 죄인들이 황녀 전하의 파티를 어지럽혀서야 안 될 일이지요. 황공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두 내쫓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로엘라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에제키엘을 쳐다보았다. 발트라이히 후작이 유려한 태도로 그녀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 초대된 발트라이히 가문 출신의 모든 손님들보다, 저 한 사람의 축복이 더 무겁습니다. 황녀 전하를 더 명예롭게 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이럴 수는 없어!” 아르노가 고함을 쳤으나 미리 이럴 때를 대비한 지시를 받은 기사가 그의 입에 손수건을 쑤셔 넣고 끌어냈다. 후작은 마치 파티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했으나 기사들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가주의 허가를 받은 기사들은 거침없이 파티장을 돌아다니며 발트라이히 가문의 방계나 친인척들을 끌어냈다. 에제키엘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빨리 끌어내.” 이건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차라리 정리라도 빨리 하는 게 나았다. 에제키엘의 명령을 받은 시종과 경비들이 빠르게 장내를 정리했다. 마침내 조용해진 파티장 안에서 발트라이히 후작이 일어서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이졸데에게 닿았다. 이졸데는 예의 바르게 눈을 내리깔고 예법대로 절을 올렸다. “발트라이히의 이졸데가 로엘라 2황녀 전하와 슈바벤 공작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로엘라의 안색이 더더욱 나빠졌다. 아르노가 끌려가지 않고 그냥 후작과 이 여자만 나타났더라도 돌이킬 수 없이 파티는 망쳐졌을 것이다. 발트라이히 후작의 숨겨진 딸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다른 문제는 모조리 덮여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문제는 그다음에야 터졌다. 파티장 문이 또 한 번 열리고 황족의 도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만 듣고도 로엘라의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새파랗게 질린 호명관이 외쳤다. “올리비아 1황녀 전하와… 오틸리 블루멘펠트 후작님, 그리고… 아. 세 분께서 입장하십니다!” 호명관이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호명된 것은 둘이었으나 입장한 것은 셋이었다. 올리비아가 회색 옷을 입은 늙은 블루멘펠트 후작을 부축해 들어오고, 검을 찬 테오도르 루트가르트가 반보 뒤에서 그녀들을 뒤따랐다. 로엘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이, 이…!” 초대장 같은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발트라이히 후작조차도 파티에 참석하는 데 초대장 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물며 황녀와 블루멘펠트 후작이 오겠다는데 문지기 따위가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올리비아는 화려한 파티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았다. 아니, 화려하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로엘라처럼 온갖 치장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걸을 때마다 우아하게 주름지며 파도치는 자주색 벨벳 가운과 머리에 올리고 있는 에메랄드 다이어뎀은 충분히 그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안녕, 로엘라.” 올리비아가 여왕처럼 오연한 태도로 인사했다. 발트라이히 후작이 마치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듯이 웃으며 로엘라를 바라보았다. “발트라이히가 전하의 파티를 망쳤으니, 조금이라도 명예를 더해 드리기 위하여 1황녀 전하께 청을 올렸습니다. 저와 제 딸만으로는 모자라겠지만, 1황녀 전하와 블루멘펠트라면 죄인들의 자리를 채우고도 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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