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14화
#14
“폐하.”
“너를 알고 있어. 네가 나에게 품었던 음심도…….”
우악스러운 손과 달리 음성은 조용했다. 그럼에도 조악하고 날카로워 난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녀는 입술을 악문 채 눈물을 떨어트렸다. 음심이란 말에 죽을 것 같이 괴로웠다. 납덩이에 눌린 것처럼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황제는 그녀가 처음부터, 그가 그녀를 인지하기 전부터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데 그 지난하고 외로웠던 사랑을 음심이라고……. 그것을 들켰다는 사실에 타올랐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황제는 그녀를 잡아 돌렸다. 그 표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 그런…….”
“네가 날 원했다는 걸 알아. 하여 테아에게 무슨 짓을 하였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아니. 죽도록 내버려두었잖아.”
“그건…….”
세차게 도리질하던 난나가 바짝 굳었다. 스타테이라에게 일어났던 일을 두고 황제가 다시 노여움을 터트릴까 두려웠다. 그 숨 막히는 공포는 온전히 그녀에게만 쏟아졌다. 주인을 두고 죽지 않은 개를 나무라는 눈빛. 그 질책과 당연한 책망 앞에 그녀는 죽고만 싶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템버린 강에 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그 차디찬 물속에서도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로…….”
시선을 떨어트린 채 파르르 떨었다. 스타테이라를 부러워했었다. 질투한 적도 많았다. 어째서 하늘이 그녀에겐 좋은 것이라곤 단 하나도 주지 않았을까, 그리 원망했었다. 그래도 난나는 스타테이라를 음해하거나 증오하여 모함하지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저도 죽지 못하여 안타까웠어요. 어째서 아가씨가 아니라 제가 살았을까. 그리 생각했어요.”
난나는 쉼 없이 눈물을 흘렸다. 황제는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눈이었으므로 더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 난나는 입을 잠갔다. 벗었으니 사타구니 사이를 파고들 것이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문 채 멍하니 그의 가슴팍을 응시했다. 그녀와 달리 벗지 않은 남자가 아래를 압박해 왔다. 엉덩이를 움켜잡았던 손이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황제는 알고 있었다. 이런 행위가 단순한 징벌 혹은 마운팅에 불과하다는 걸. 그가 자신을 두고 ‘암컷’이라 하거나 ‘자궁’ 혹은 ‘변기’라고 칭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죽어도 스타테이라를 흉내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한때는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과거가 부끄러워 혀를 깨물고 싶었다.
“응, 하으…….”
좁은 구멍을 파고드는 두꺼운 물건이 징그러웠다. 둘 곳 없는 시선이 결합 부위를 향했다. 조금의 욕정도 느껴지지 않는 생물학적 행위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애액이 쉽사리 분비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떤 전희도 없는 행위는 무척이나 가학스러웠다.
가끔은 고문을 당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밭은 숨을 뱉으며 잘게 떨었다. 천천히 밀려들던 기둥이 완전히 삽입되었다. 감각이 썩 좋지 않았다. 뿌듯하거나, 벅차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황제가 저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가 밑동까지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 그와 난나가 기어이 이런 사이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이…….
운명이란 무엇일까. 그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난나는 그 시절, 그를 열망하지 않았을까. 설사 그 열망이 불러온 현실이 아니라 할지언정 그를 사랑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난나는 정말로 이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에 발갛게 익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시절이다. 감히 그를 향해 심장이 뛴다는 사실조차 고통스러웠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눈앞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힘겨워서……. 감히 바랄 수도 없고 언감생심 꿈에도 그릴 수 없는 사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스타테이라의 볼에 입술을 맞추는 남자가 황홀했다.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해.”
그가 물었다. 목울대를 긁는 것처럼 낮은 으르렁거림이었다. 짐승의 포효처럼 무척이나 낮은 음역대였다. 물기가 식은 뺨을 흘렀다. 난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짐을 기만하는 게 지겹지도 않나?”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난나의 대답에 남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녀는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끝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돌이키기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난나는 ‘어, 어릴 때요.’ 하고 덧붙였다. 그는 무반응했다. 정물을 더듬는 것처럼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미천하고 천박한 계집이잖아요.”
“해서?”
“폐하와 이런 사이가 될 줄은……. 폐하의 자식을 낳게 될 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난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당장 하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난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생전 만나 볼 이유도, 그럴 순간도 오지 않을 고귀한 이들을 만나게 되었을까. 왜 저 같은 미천한 계집이 황제의 침상을 데우게 된 거지? 어쩌다가 그녀 같은 여자의 배를 빌려 자식을 낳게 된 걸까.
“응, 하읏, 아……!”
문득 그가 허리를 움직였다. 난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밀었다. 한껏 벌어진 다리와 결합된 부위를 생각하면 부질없는 바르작거림이었다. 그럼에도 난나는 그가 밀려드는 게 싫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허리짓 하는 남자를 보았다. 시선을 떨어트리고 싶은데 못이 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둠에 잠긴 호박색 눈동자가 파충류의 것처럼 스산했다. 그녀는 입술을 비틀어 깨물다가 내부를 자극하는 세찬 마찰에 탄성을 터트렸다.
“아, 흑, 아, 아! 흐윽!”
골반을 붙잡고 있던 손이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쥐었다. 발딱 선 젖꼭지를 엄지로 누르며 부드럽게 둥글렸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음핵이 딱딱해지며 그를 머금은 구멍에도 윤활액이 돌기 시작했다. 그 기계적인 전희에 난나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황제는 개의치 않았다. 난나는 손으로 입술을 가린 채 그가 하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그는 생각보다 천천히 모든 행위를 했다. 허리를 돌리는 동작, 그녀의 음핵을 둥글리는 손짓. 모두 느긋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말에 대한 반응은 하지 않았다.
난나는 그게 찝찝했다. 노여워하지 않는 황제는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난나를 혐오했다. 그녀가 숨 쉬는 것만 보아도 짜증스러워 했다. 왜 살아 있느냐고. 왜 그렇게 임신이 잘 되느냐고. 그는 그마저도 혐오하였다.
그러니까 스타테이라는 갖지 못한 것이라……. 모든 것을 가지고도 어미가 될 수 없었던 스타테이라와는 정반대였으니까. 난나는 그런 이유로 황후가 되었으나 결국은 그런 이유로 황제에게 증오받았다.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배반은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으므로. 난나는 당연하게 그의 염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폐하. 빠, 빨리…….”
난나는 그를 견디는 게 힘들어 차라리 빨리 끝내 달라 요청했다. 황제 또한 얼른 사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 역시 그녀를 안는 게 고역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난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랭한 시선이었다. 그녀는 물기 어린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젖힌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말없이 삽입을 반복했다. 흔들리는 젖가슴을 쥐고 마른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허리를 몇 번 반복하던 남자는 이내 사정을 했다. 난나는 그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체액이 벌름거리는 구멍 사이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헐떡임을 참았다. 아래를 정리한 그가 침실을 벗어났다.
난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휩싸인……. 이슥한 밤빛으로 가득 차 느린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세상이 깊고 아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