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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22화


22화 온 세상이 눈과 얼음이었고, 햇볕 아래서 크리스털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몸통이 땅을 닿을 듯 휘어진 나무도 있었다. 그 모든 것에 눈과 얼음이 내려앉아 있었다. 윙윙,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一한겨울에 눈 여왕님 오시면. 一온 세상이 몸을 떠네. 一보석 같은 얼음 옷을 입은 여왕님. 一수정 마차 타고 내려오시면.     나는 노래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나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一재잘대던 강의 노래도 멈추고. 一흉포한 곰도 잠에 드네.     불순물 없이 언 얼음처럼 청아한 목소리였다.     一한겨울에 눈 여왕님 오시면. 一숲속의 나무들 새 옷을 입네.     노래를 부르던 아나는 말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날렵하고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우리는 근처 나무에 말을 묶어 놓고 바닥에 널린 나뭇가지들을 발로 부러뜨리거나 피해 가며 호수로 다가갔다. “그런데 우리가 이 호수 위로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선생님. 그동안 얼마나 추웠는데요. 돌보다 더 단단하게 얼었을걸요. 아마 내년 봄에도 녹지 않을 거예요.” “그런가요.” 나는 이 별세계에 대해선 완전히 무지했기 때문에 아나의 말을 의심 없이 믿었다. 아나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제가 미끄럼을 어떻게 타는지 알려 드릴게요.” 나는 아나를 따라 조심조심 빙판 위에 올라갔다. 과연, 얼음은 미끄러웠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균형을 잡기 힘들어 다리에 힘을 주어야 했다. 내가 얼음 위에서도 간신히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자 아나는 내 손을 놓았다. “자, 선생님,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나는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양발을 교차하며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아나는 얼음을 지치며 빠르게 달리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나는 사실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동작이라 그런지 금방 숨이 차고 후끈 몸이 달아올랐다. “아나! 멀리 가지 마세요!” “선생님! 빨리 오세요!” 아나는 마치 눈과 얼음에서 태어난 요정 같았다. 끊임없이 얼음을 지치며 내게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나의 볼은 금세 발그레해졌고, 즐거움으로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이윽고 아나가 손이 닿지 않은 큰 호수 저편 중앙까지 멀어지자 나는 걱정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우지끈, 빠지지직! 갑자기 섬뜩한 소리가 나더니 아나의 몸이 쑥, 하고 꺼졌다. “아나!” “선생님! 선생님!” 깨진 얼음 위로 머리와 두 팔만 나온 아나가 울면서 발버둥 쳤다. 찢어지는 비명에 나는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나는 깨진 얼음가로 나가려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아나가 붙잡는 족족 얼음들이 깨지고 있었다. 그 틈으로 생긴 물구덩이 속에는 깨진 얼음의 잔해와 함께 아나가 둥둥 떠 있었다. 아나가 엉엉 울며 외쳤다. “선생님!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내 손을 잡아요!” 가까이 다가간 내가 주저앉아 손을 내밀려 했을 때였다.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달렸다. 쩌저저저적. 내가 디딘 얼음에서 나는 소리였다.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쳤다. 눈물범벅이된 아나가 발버둥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영영 그 눈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버릴 거예요?'라고 묻는 그 파란 눈을. 그러나 지금 손을 뻗어 아나를 잡았다간 같이 빨려 들어갈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해!' 그때 머릿속에 번뜩하고 번개 치듯, 나뭇가지가 떠올랐다.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진 나무의 잔해들! 나는 외쳤다. “아나! 기다려! 나오려 하지 말고!” 나는 필사적으로 얼음을 지치며 호숫가로 달려갔다. 몇 번이나 넘어져 턱을 부딪쳤지만 아파할 때가 아니었다. 호숫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나뭇가지를 찾았다. 다행히 근처에 충분히 길고 튼튼한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걸 들고 다시 달려 도착했을 때, 아나는 물구덩이 속에서 깨진 얼음을 붙잡고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거 잡아!” 아나는 덜덜 떨며 나뭇가지를 붙잡고 올라왔다. 안전하다고 느낄 만큼 단단한 얼음 위로 아나를 끌어낸 뒤 나는 그대로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사이 딱딱해진 아나의 몸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아나의 긴 머리칼도 옷도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다. 공작의 조언, 추위에 노출되면 동상에 걸리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 나는 일단 아나의 젖은 옷부터 벗겼다. 본능적으로 그 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음 위에서 옷이 벗겨지자 아나는 더 심하게 떨었다. 나는 내 모자를 벗어 아나에게 씌웠다. 외투도 벗겨 입혔다. 그것도 부족했다. 나는 내 신발을 벗어 아나에게 신겼다. 미친 듯한 추위가 노출된 피부와 맨발을 물어뜯었다. “이거 입어, 어서!” 따뜻한 옷에 휘감기자 살았다는 감각이 뒤늦게 아나를 엄습했을 것이다. 얼어붙어있던 아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아나를 달래 줄 틈이 없었다. 나는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둘러 감싸고 일으켰다. “가자! 어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것은 몸속에 내재되어 있던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우리는 호숫가로 달렸고 나는 두 말의 고삐를 나무에서 풀었다. 아나는 혼자 말을 몰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나는 브륄에 아나를 태우고 나도 그 뒤에 올라탔다. 그러곤 아나를 한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브륄에게 외쳤다. “브륄, 달려!” 브륄은 신속하게 달렸다. 안장 위에서 아나가 휘청휘청 흔들렸다. 추위에 아나는 정신을 거의 잃어 가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론 고삐를 쥐고 다른 손으론 아이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 외쳤다. “아나! 노래를 불러요! 아까 불렀던 노래! 어서!” 계속해서 재촉하자 아나는 덜덜 떨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一한겨울에 눈 여왕님 오시면. 一온 세상이 몸을 떠네.     이를 딱딱 부딪치며 노래를 부르는 아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친 듯이 후회했다.     一보석 같은 얼음 옷을 입은 여왕님. 一수정 마차 타고 내려오시면.     '내가 잘못했어.'     一재잘대던 강의 노래도 멈추고. 一흉포한 곰도 잠에 드네.     '위험한 곳에 데려가면 안 됐어.' 어른으로서 안 된다고 말려야 했다. 위험한 곳에 깊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一한겨울에 눈 여왕님 오시면. 一숲속의 나무들 새 옷을 입네.     그런데 오히려 아나에게 휘말려서는, 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선생이 되어서.     一바람이 호수와 들판에 불면. 一고드름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네.     어린아이를 안내자로 만들었다. 교사 실격인 동시에 어른으로서도 실격이었다. 나는 자격이 없었다. 죄책감으로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나가 죽으면 나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죄책감으로 나도 죽어 버릴 것이다. “아나! 노래를 불러요! 계속!” '내가 제대로 된 선생이라면 이 아이를 보호했어야 했어.'     一한겨울에 눈 여왕님 오시면. 一온 세상이 몸을 떠네.     아나는 다시 노래를 불렀지만 이전보다 그 소리는 희미했다. 마치 에코같이.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생각보다 더 이 아이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내 동생처럼, 그래, 친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떡하지? 아나가 죽으면?'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렸다. '이곳에 사랑할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털모자도 외투도 털 부츠도 없었지만,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저택까지 도착했는지, 도착한 뒤 어떻게 되었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와중에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저택에 다다랐을 때 들었던 안도감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일단 저택에 신속히 아나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위에 엎드려 쓰러졌다. 저택 안은 따스했다. 눈물이 울컥 날 정도로. “살려 주세요!”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절규했다. 문득 들려오는 다급하고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의식은 거기서 소실했다. ❖ ❖ ❖ 가라앉았던 의식이 떠오른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익숙한 공간에 누워 있었다. 내 방이었고, 바로 앞에는 벽난로에서 난 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뒤척여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 고개를 수그려 보니 나는 긴 소파에 누워 있었고, 내 위엔 담요가 무더기로 덮여 있었다. 누군가 긴 소파를 벽난로에 끌어다 놓고 나를 눕혀 둔 듯했다. 이 정도라면 더워 죽을 지경이어야 하는데 으스스 오한이 일고 온몸이 으스러질 듯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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