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season2. 69. 빈자리(2)
season 2
69. 빈자리(2)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방법은 없다.
대신 기찬은 나름의 방식으로 일일 정도는 가늠했다.
‘2리터짜리 생수병 하나 비우는 데 대략 하루.’
지금까지 네 통을 비웠으니 4일 정도 지난 걸로 추측했다.
재난 상황치고 아주 넉넉한 음수량이었다.
매장용 생수 한 트레이를 전부 가져다 놨더니 여덟 개 한 묶음짜리가 열두 개나 있어서 아주 넉넉하다.
‘최초 생존자가 구조된 게 13일 차였으니, 빠르면 앞으로 9일.’
게다가 육포까지 챙겼다. 그것도 역시나 아주 넉넉하게.
갇혀있는 동안 굶어 죽거나 물이 없어 죽는 일은 없다.
추가 붕괴의 위험도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4일 차 이후에는더 이상의 붕괴는 없었다.
다만, 구조 과정에서 무너진 돌더미를 치우다가 내력벽에 얹혀있던 구조물이 다시 무너지는 경우는 있었다고 했다.
‘그게 이쪽이 아니길 바랄 뿐.’
그건 기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숨쉬기가 편해져서 다행이에요.”
하아, 하아.
방보연이 숨결을 고르며 한 말이었다.
건물이 무너지던 순간부터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혔던 게 먼지였다.
쉽게 가라앉지 않고 호흡할 때마다 코와 목을 고통스럽게 했다.
구조가 진행되면서 계속 소방수를 뿌려서인지, 이틀이 지나는 시점부터는 먼지 대신 물이 그들을 적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철제 선반으로 지지대를 만들고 그 위에 각종 천과 비닐을 덮어 둔 덕에 구정물을 직접 뒤집어쓰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균열로 기울어진 바닥 덕에 일정 주기마다 흐르는 그 물이 세 사람의 오염물까지 쓸어가 주어 큰 도움이 됐다.
그것만 해도 피부병이나 짓무름을 겪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방어가 됐다.
아무리 재난 상황이나 생존 방법 등에 무지해도,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 그 정도는 상식처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여자는 틈날 때마다 기찬에게 고마워했다.
특히 방보연은 언제 공포에 떨었냐는 듯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진지하게 고민해 봐.”
뜬금없이 내뱉은 말에 기찬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또 헛소리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정미는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뭘요?”
방보연이 물어봐 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기찬이 말이야. 여기서 살아서 나가게 되면, 나한테 장가오라고.”
“아.”
이미 수차례 했던 말이라 이정미도 또 그 소리냐는 듯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저 동의가 없었음에도 마음대로 반말을 찍찍 내뱉는 게 못마땅할 뿐이었다.
어둠 속.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에 짓눌려 있을 때, 그 두려움을 조금 밀어내려 대화를 시도했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이를 알게 됐고, 그 후로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다며 언니 노릇, 누나 행세를 했다.
‘그래 봐야 한 살 많은 걸 가지고.’
이정미는 스물아홉 살이다. 방보연이 서른. 그에 비하면 기찬은 까마득히 어린 나이였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
하지만 지금 세 사람 중 가장 어른스럽고 가장 믿음직한 건 가장 어린 기찬이었다.
그래서 이정미는 모든 걸 기찬에 맞췄다.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까지 기찬이 우선이었다.
특히 이정미의 경우, 이미 사고 이전에 기찬의 손에 매달려 난간 밖에서 간이 떨어질 뻔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를 믿는 것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단순히 목숨만 빚진 게 아니었다.
지난 며칠,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평생 느낄 오르가슴을 전부 느껴버린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극한 상황이었기에 더 강렬한 쾌락을 느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최근, 옅은 진동과 함께 철제 선반이 굉음을 내며 조금 주저앉는 것 같더니, 다행히 큰 위험 없는 선에서 멈췄다.
그 덕에 오히려 공간이 넓어졌다.
기찬의 무거운 몸에 눌려있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아쉬웠다.
답답하기는 했을망정, 기찬이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을 때가 좋았다.
지금은 셋이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간혹 물이 쓸고 지나가게 되면 체온 유지 때문에 셋은 서로 꼭 끌어안는다.
그나마 이정미는 그 순간에 사심을 채웠다.
“좀 추운데.”
방보연의 말에 기찬이 움직였다.
살짝 팔을 둘러 그녀를 안아준 것이다.
‘여우 같은 년.’
춥기는 개뿔.
좀전까지 기찬에게 안겨 있었으면서 또….
하지만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의 단단한 몸에 맨살로 닿으면 당장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처럼 짜릿했으니까.
무슨 마법인 건지, 살이 닿는 것만으로 그랬다.
처음에는 젖꼭지가 단단해지는 걸 그에게 들키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의 말마따나 지금 부끄럽고 말고 할 개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방보연을 품은 그의 등에 이정미도 찰싹 달라붙었다.
셋은 다시 껌딱지가 되었다.
* * *
- 말씀하신 대로 일본 행사 일정 조정해서 내보냈습니다.
“그래. 잘했어. 어떤 경우라도 알아서는 안 돼.”
- 네. 대표님.
김선주는 수화기 너머 비서 대답을 듣고서야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러고는 가운을 벗고 마사지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지금 재영이가 기찬이 소식을 알면 안 돼.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거야.’
기찬의 소식은 안타깝지만, 회사 대표로서 할 일은 해야 했다.
고민이 깊었다.
사고 소식과 그 사고 희생자 중에 기찬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녀도 충격이 컸다.
슬프기도 했다.
그래서 더 냉정하려 애썼다.
“오늘은 따뜻한 오일로 준비했습니다.”
젊은 마사지사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재료에 대해 안내했다.
곧 아주 적절한 온도의 오일이 아랫배를 적셨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몸 곳곳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오랜만에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사지사의 나긋한 목소리에 김선주는 어쩐지 언짢은 기분이었다.
평소에도 하던 안내였고, 단골 VIP 고객에게 할법한 사탕발림임에도 몹시 거슬렸다.
‘내 마음이 문제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는 하나였다. 역시 기찬이 때문이었다.
사실 이곳에 발길을 끊은 것도 기찬 때문이었고, 지금 다시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요 며칠 계속 기찬만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그의 품이 그리웠다.
그의 손길이, 그의 명품이.
기찬과 나누었던 그 쾌락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내키지 않음에도 마사지샵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마사지사가 눈치 없이 자꾸 그 흥을 깼다.
그래서 점잖게 요구했다.
“오늘은 조용히. 아무 말 하지 말고.”
마사지사는 얼른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원하시는 도구가 있을까요?”
김선주는 그것까지는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으로만.”
“알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내실에는 정적이 소복히 쌓여갔다.
간간이 옅은 호흡만 흐를 뿐이었다.
흐음. 흠.
마사지사의 손가락이 오일을 머금은 중년 여자의 젖가슴과 젖꼭지를 훑었다.
다른 한 손은 하복부를 누르며 지나가다가 사타구니에서 맴돌기를 반복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고 여자의 허벅지에 옅은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에 맞춰 아랫배에 고여있던 소량의 따뜻한 오일이 마사지사의 손길을 따라 씹두덩 아래로 흘렀다.
하아.
갈라진 대음순 사이로 소음순이 벌어졌다.
마치 그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사지사의 손가락이 소음순을 가르고 들어갔다.
흠! 흐음.
살짝 허리가 휘더니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 잠깐 사이, 따뜻한 오일과 함께 부드러운 손이 갈라진 틈을 누르며 대음순을 벌렸다.
손가락 마디 끝이 자연히 클리토리스를 자극했고, 몸이 움찔 떨리는 동시에 손가락 하나가 구멍으로 찔러 들어갔다.
“하응.”
마사지사는 능숙하게 질 입구와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힘 조절을 해 가며 자극의 정도를 분배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선주는 오르가슴에 헛숨을 토해냈다.
하응! 흠!
두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쭉 뻗은 다리가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고, 그 순간도 놓치지 않고 마사지사의 손가락과 손바닥은 김선주의 G스팟을 공략했다.
“어머, 자기야!”
김선주는 저도 모르게 헛소리를 내뱉었다.
한순간, 기찬의 대물이 자신의 보지를 쑤셔대며 일으켰던 그 쾌락이 얼추 비슷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인지, 김선주는 마사지사의 손길에 아주 만족했다.
물론 기찬의 명품에 댈 건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썩 훌륭했다.
잠깐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김선주가 담배를 물었다.
그러자 마사지사가 불을 붙여 주었다.
칙.
스읍.
후우우.
처음 내실에 들어섰을 때보다 확실히 마음이 말랑해진 김선주는 조금 더 욕심이 났다.
그래서 평소에는 해본 적 없던 부탁을 했다.
“이름이….?”
“아, 혜련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유니폼에 신혜련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단골이었을 때도 늘 이 아이가 담당이었는데, 이름을 처음 알았다.
“오늘 너무 좋았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김선주가 나직이 말하자, 혜란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즐거우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녀의 웃음 뒤에 김선주가 넌지시 말했다.
“혹시, 입으로도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