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season2. 51. 단서 1(1)
season 2
51. 단서 1(1)
연장 쓰고 칼 밥 먹는 놈들 세계에서는 아주 오래된 격언이 있다.
한 번 밟을 때 확실히 밟지 않으면, 언제고 등 뒤의 칼이 된다는 말이었다.
기찬도 단순히 그 생각으로 이태석을 상대했다.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온갖 계산이 이루어졌다.
지금 이태석을 밟는 게 무슨 소용일까?
내가 이 바닥에서 뭘 이루려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가 숨기고 있어야 할 힘으로 두려고 하는 지금, 이태석 정도 되는 자와 어떤 관계를 만드는 게 좋을까?
득일까, 실일까.
단지 마음이 약해 갈등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번듯하고 허울 좋은 성기찬이지만, 전생의 양우석은 야차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그 양우석, 어디 가지 않았다.
전생과 다른 게 있다면,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고,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지금 찰나의 갈등도 그래서다.
‘내 손에 피 묻히지 않는다.’
그것이 결론이었다.
그래서 이태석의 턱을 향해 뻗어가던 발길질을 멈췄다.
척.
기찬이 전의를 거두고 바로 서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이태석이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살짝 놀란 눈으로 기찬을 올려다보던 그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납작 엎드렸다.
“고, 고마워, 성 실장!”
그가 격정적으로 토해낸 감사에 기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지만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무게의 말을 대답으로 내놓았다.
“송지연 복수 대신 적당한 값을 받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는지, 이태석이 잠깐 눈을 멀뚱히 떴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얼마가 됐든, 나야 고맙지.”
딱 자신의 수준에 맞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기찬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보탰다.
“합의금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 값이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는 거고.”
그러자 이태석도 ‘아.’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몸을 일으켜 섰다.
기찬과 마주 선 그의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약간의 웃음기가 묻어났다.
“그렇다면 뭐, 나야 뭐든 좋아.”
진심에서 우러나온 대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기찬에게 느꼈던 건 살기였다. 그 발길질이 그대로 제 턱을 후려 찼다면, 평생 다시는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만 아니어도 은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막상 위기를 넘기고 보니 돈 내놓을 일이 내키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뜯어내려고 저럴까, 덜컥 의심부터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그걸 거절할 수는 없어 마지못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합의금이 아니란다.
이 어찌 흡족한 결말이 아닐 수 있겠나.
‘역시 나이 어린 풋내기는 이런 데서 티가 나. 이바닥에 나중이란 건 없어. 멍청한 새끼.’
이태석은 표정 관리에 힘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찬이 그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서로를 위해 한 가지만 말해둘게요. 나, 생각하는 것 만큼 어리지 않아요. 어리숙한 건 더더욱 아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태석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찜찜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 걸린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이 스멀거리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런 불분명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도 참 한심하군. 저런 애새끼 상대로 이렇게나 쫄다니. 쯧.’
그런 그의 생각과 속마음을 다 읽기라도 하듯, 기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태석의 눈을 가만 들여다봤다.
그러다가 가볍게 픽 미소 짓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회사에서 봐요.”
기찬이 그렇게 자신의 바이크를 타고 사라질 때까지, 이태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생각에 잠겨있었던 탓이었다.
나름의 계산이 있었고, 그 계산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늠했다.
“오늘 일, 사장님께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해. 우선 그것부터 신경 쓰자.”
이태석의 눈빛이 번득이며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 * *
“기분 좆같네.”
기찬은 스로틀을 풀로 당기며 도로를 질주했다.
욕정을 해소하지 못해 그런 건지, 이태석을 내키는 대로 두들겨 패지 못해서 화가 난 건지, 기분이 최악이었다.
자꾸 이유 모를 화가 치밀었다.
자칫하다가는 누구라도 걸리기만 하면 짓이겨 놓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후우.’
속으로 화를 삭이며 질주하던 기찬은 뒤늦게 자신이 달리고 있는 강남 대로변을 자각했다.
저도 모르게 이모가 근무하고 있는 호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이 이끌었군.’
그러고 보니, 아랫도리는 이미 단단하게 서 있었다.
기찬에게 이모는 그런 존재였다.
생각만으로도 흥분이 되는.
사실 섹스 능력만 놓고 보자면 김선주 대표나 송지연이 최고였다.
하지만 기찬은 이모가 제일 맛있었다.
그건 개인 취향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육덕진 스타일을 좋아하는 줄은 나도 몰랐지만.’
이모를 생각하다 보니 금세 호텔에 도착했다.
기찬은 야외 주차장 한쪽 구석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로비로 들어갔다.
‘오늘 이모 근무일이어야 할 텐데.’
무작정 찾아와놓고, 바람도 많다는 자책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멀리 데스크에 있는 이모를 발견한 것이다.
기찬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으로 보아 밤샘 근무 조 같은데, 기회를 봐서 화장실이든 직원 휴게실이든 노려볼 생각이었다.
‘빨리 돈 벌어서 여기저기 거점을 마련해야지 원.’
새삼 김종태 회장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중에 이모가 바로 앞을 지나갔다.
“이모.”
김주희는 ‘이모’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기찬을 돌아봤다.
눈이 동그랗게 커다래져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앓는 소리를 내며 아는 체했다.
“너, 여기서 뭐 해?”
“이모 보러왔지.”
“언제 온 거야?”
“지금 막.”
기찬이 소파에 묻었던 몸을 일으키며 이모에게 다가갔다.
타이트한 유니폼이 이모의 우람한 육덕짐을 잘 드러내는 것이 아주 보기 좋았다.
주변을 슬쩍 살핀 기찬이 펑퍼짐한 이모 엉덩이를 슬쩍 더듬었다.
“이모, 언제 쉬어?”
김주희는 기찬의 방문 목적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조카의 말에 가슴 설렌 자신이 바보 같고 한심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손길 한 번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아랫도리였다.
어쩔 줄 모르는 마음과 달리 몸이 반응하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모. 꼭 말을 해야 아는 건 아니잖아. 내가 이모 보고 싶을 때마다 찾아오면, 매일 출근해야 해. 괜찮겠어?”
잘생긴 조카의 너스레에 금방 마음이 풀어졌다.
어쩌면 아랫도리가 움찔대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으이그. 말이나 못 하면.”
김주희는 조카의 가슴팍을 툭 치고는 주위를 확인하고 열쇠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직원들 쉬는 휴게실인데, 5층 복도 맨 끝이야. 호실 잘 확인하고 들어가 있어.”
“나, 들어가 있어도 되는 거야?”
“오늘 야간조 근무자 중에 여직원 나 하나야.”
두 사람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 후, 기찬은 곧바로 5층으로 올라갔다.
이모와 떡칠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달아올랐다.
달칵.
어렵지 않게 휴게실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직원 휴게실이라더니, 화장품 냄새가 확 풍겼고, 호텔 특유의 옅은 조명이 기찬을 맞아주었다.
여직원 휴게실이라고는 하지만, 호텔 일반 객실과 똑같은 구조와 구성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침대가 기숙사에서나 쓸법한 2층 침대라는 것과, 벽면을 따라 소파가 죽 둘러져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안을 둘러보던 기찬은 순간 멈칫했다.
“…?!”
소파 위에 누군가 얇은 담요 같은 것을 덮고 누워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왜소한 체격.
분명 여자다.
한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여직원 휴게실.
오늘 야간 근무자 중 여자는 이모 혼자.
그런데 비어 있어야 할 휴게실에 누군가 있다.
일단 여자는 맞는 것 같은데.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아마도 이모와 교대한 이전 근무자일 확률이 높았다.
피곤해서든 몸이 안 좋아서든, 한숨 자고 갈 생각으로 휴게실을 이용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씨발, 진짜 오늘은 날이 아닌가. 안 도와주네. 쯧.’
이모와의 뜨거운 몸짓을 기대하며 이미 달아올랐던 흥분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하지만 실망과 짜증도 잠시, 힘이 빠지던 아랫도리가 한순간 불끈 되살아났다.
덮고 있는 담요 밖으로 사과 같은 엉덩이가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파 주변으로 옷가지와 속옷이 널려있었다.
‘알몸이야?!’
조명이 흐린 탓에 속옷 색깔이 살구색인 건지, 정말 알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저 웅크리고 있는 자세라 작은 엉덩이가 무척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 꼴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박아버리고 싶은 자세였다.
‘어쩌지?’
어쩌나 마나, 바로 나가야 맞는 것임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테이블 위에 양주병 하나가 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