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season2. 42. 개강 파티(2)
season 2
42. 개강 파티(2)
* * *
“직접 배웅하지 못해 죄송해요.”
전화 수화기 너머로 미안해하는 제자의 목소리에 오명환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 때문에 경찰서에 가 있는 기찬이 공항까지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데, 면목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쪽팔려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내가 너한테 정말 면목이 없구나.”
그 외의 다른 말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오명환의 처지를 이해하기라도 한 듯, 기찬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냥 참고인 조사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일단 편히 돌아가 계세요. 제가 조만간 제주도 한 번 내려갈게요.”
오명환은 그런 기찬이 너무 고맙고 기특하고 믿음직했다.
그래서 그만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고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래. 꼭 와야 한다. 내가 또 맛있는 흑돼지 잡아주마.”
“네, 감독님.”
전화를 끊은 기찬은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제주도에 내려가 사모님을 임신시킬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당신 때문에 경찰서 가는 값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기찬은 차 대신 김하익에게 빌린 바이크를 탔다.
경찰서까지는 멀지 않았고, 조사도 금방 끝났다.
그래서 학교에 가기 전, 스타 레코드 사무실에 들렀다.
“대표님 안 계시는데….”
이진주가 기찬을 맞으며 괜스레 얼굴을 붉혔다.
전생자의 감과 눈치까지 겸비한 기찬은 어렵지 않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김선주랑 떡 치던 나를 떠올리는 건가? 귀엽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몸매의 이진주를 보며, 기찬은 딱히 성적 욕망을 느끼지 못 했다.
다만, 필요에 의해 한 번 안아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기름칠을 좀 해두기로 했다.
“오늘은 제 볼일만 보고 금방 갈 거에요. 그런데, 실장님 오늘 되게 예쁘신데요?”
“네? 아이, 아니에요. 그냥 평소랑 같은데….”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기찬은 살인미소를 날려주며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럼 평소에도 예쁘단 얘기네.”
그러면서 일부러 그녀가 시선을 느끼도록 천천히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를 훑었다.
그러자 이진주의 얼굴이 빨개졌다.
몸도 살짝 움츠리는 것이, 확실히 기찬의 시선을 느낀 모양이다.
‘지금은 이 정도로 성추행이니 성희롱이니, 그런 개념이 없을 때니까.’
그래서 기찬은 그녀의 움츠린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올렸다.
이진주는 흠칫했고, 기찬은 슬쩍 손을 옮겨 등을 토닥였다.
그때, 그녀의 브라 끈과 밴드 쪽까지 더듬었다.
‘가슴도 평범한 것 같은데, 밴드는 꽤 넓네.’
자신보다 예닐곱 살은 더 많은 누나에게 존대를 받으며 성희롱을 마음껏 누리다니, 새삼 신기한 기분이었다.
기찬은 제 의도대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에 만족스러워 절로 웃음이 났다.
“전 그럼, 내려가서 일 보고 갈게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네….”
그는 곧바로 지하 녹음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터줏대감 석철이 소파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형, 오랜만이네.”
“어? 어쩐 일이냐? 당분간 바빠서 못 온다더니.”
엔지니어 석철이 기찬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기찬의 학벌이나 이력보다 작곡과 편곡 등, 순수하게 음악 실력을 높이 평가해 그를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기찬은 그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 히트곡들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었다.
‘이미 나를 천재로 생각하는 그라면, 내가 어떤 곡을 내놔도 의심은커녕 감탄만 할 테니까.’
기찬은 그가 좋아하는 빵이 가득 담긴 봉투를 내밀며 인사했다.
“바쁘지. 바쁜데, 형이 보고싶은 걸 어떻게 참아.”
어울리지 않는 기찬의 애교에 석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어우, 이 새끼. 나한테만 이래. 사람들이 네가 이러는 거 모른다는 게 억울하다, 새꺄.”
그러거나 말거나, 기찬은 그를 쫒아가 얼른 와락 안아버렸다.
그리고 이마며 볼에 뽀뽀를 남발했다.
쪽, 쪽.
“내 사랑을 받아줘.”
“아오, 씨, 꺼져!”
두 사람의 한바탕 소란스러운 재회가 끝나고, 기찬은 가방에서 악보 몇 장을 꺼내 내놓았다.
“형, 재영이 요즘 활동 좀 어때? 안 힘들어해?”
“그건 운영팀에 물어봐야지. 난 정확히는 모르지만, 매번 임시 매니저랑 다니느라 좀 힘들어하는 모양이던데.”
“그렇겠구나. 내가 얼른 일 정리하고 매니저 해 줘야지.”
그 말에 악보를 들여다보던 석철이 기찬을 돌아봤다.
“그 말, 정말이었어? 네가 매니저 할 거라고….”
“응. 내가 한다고 했어.”
“굳이 뭐 하러?”
기찬은 정말 궁금하단 표정을 지속 있는 석철에게 솔직히 말했다.
“형. 나보다 연예계, 그쪽 바닥 더 잘 알잖아. 지금 한창 주가 올리는 젊은 여자 연예인, 어떤 일들을 겪는지.”
“…….”
석철은 예상대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기찬의 말대로, 그 바닥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드런 새끼들이 득실대기는 하지. 맞아. 지금쯤 재영이, 여기저기서 그런 더러운 제안에 시달리고 있을 거야.”
“응. 그래서. 내가 재영이 보호자나 마찬가지니까, 지켜줘야지.”
그러자 석철이 쓰게 웃었다.
“야, 너라고 별수 있냐? 이 바닥 베테랑들도 어쩌지 못하는걸.”
“한번 봐. 내가 하나 못하나.”
기찬이 픽 웃으며 말하자, 석철은 잠시 그런 그를 빤히 봤다.
이 녀석이라면, 어쩐지 재영을 지킬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신기한 새끼. 정말 난 놈은 난 놈이다.’
괜히 저도 기찬을 따라 웃게 됐다.
“그나저나, 이 곡 뭐야?”
기찬이 건넨 악보를 들어 보이며 석철이 물었다.
기찬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벌써 반년째 같은 곡으로 활동하고 있잖아. 공백 없이 바로 2집 가야지.”
“오.”
석철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다시 악보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한동안 입을 다물고 곡에 집중했다.
“이거, 언제 쓴 거냐?”
“틈틈이.”
“이 새끼, 아주 작정했네.”
그의 머릿속에서 재생된 악보의 음들이 강렬한 메탈 사운드를 연상케 했다.
동시에 재영의 유연하고 화려한 춤사위가 덧입혀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석철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아. 이거 진짜 대박이다.”
기찬도 속으로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석철이 형. 천재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진가를 알아보는 안목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단순히 음악적 지식이나 엔지니어 기술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뛰어난 감각의 영역인 것이다.
그 또한 작곡을 하기는 하지만, 전문 작곡가가 아니기에 히트곡은 내지 못했다.
대신 석철은 히트곡 냄새를 맡는 감각이 탁월했다.
“어때? 바로 작업 들어갈 수 있겠어?”
기찬의 물음에 석철이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엄지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우리 회사를 한방에 띄운 이사님 말씀인데, 안 될 게 뭐 있어?”
기찬도 마주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그럼. 그래야지. 신석철 실장님. 그럼, 준비 잘 좀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피식피식 웃을 뿐이었다.
다음 후속곡의 대박을 확신하면서.
* * *
높다란 빌딩이 즐비한 강남 한복판, 그 이면의 한 나이트클럽 입구로 앳돼 보이는 학생들이 줄줄이 들어가고 있었다.
“와, 씨발. 여길 정말 빌릴줄은 몰랐네.”
고상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 말에 유세현이 핀잔을 줬다.
“야, 촌놈처럼 뭘 그렇게 두리번 거려? 클럽 처음 와 봐?!”
그러자 고상민이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 나이트클럽, 처음 와 봐. 와아. 진짜 분위기가 이렇구나.”
그 모습에 유세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사실 그도 알고 있다.
학과 동기들 대부분이 나이트클럽은 처음일 거라는 것을 말이다.
공부 말고는 다른 데 눈 돌려본 적 없는 전국의 범생이들을 모아놓은 데가 서울대 의대 아니던가.
간혹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잘 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천재로 불리는 극소수 말고는 희박했다.
‘문제는, 성기찬 그 새끼가 그런 부류라는 거지. 젠장.’
인상을 찌푸린 채로 지하 클럽 문을 열고 들어간 유세현이 그만 눈이 번쩍 뜨였다.
“어?”
자신들만의 개강 파티라고 들었는데,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많이 파인 상의와 거의 팬티가 보이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자들이 다수 보인 탓이었다.
쿵, 쿵, 쿵.
쿠쿠쿠쿵.
심장을 울리는 비트에 더해 코끝을 끌어당기는 짙은 향수, 그에 더해 어스름한 묘한 빛깔의 조명까지.
유세현의 불만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그는 오늘의 개강 파티가 형편없기를 바랐다.
장소만 클럽이지, 다들 뻘쭘해 하다가 돌아가게 될 거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 옆에 있는 고상민이 눈깔이 돌아가서 침을 질질 흘리는 걸 보며, 개강 파티의 대박을 예감했다.
“왔냐? 총무가 이렇게 늦어. 빨리 가 봐. 혜수 혼자 바쁘잖아.”
언제 왔는지, 기찬이 핀잔을 줬다.
하지만 유세현은 대답도 하지 못 하고 키 큰 기찬을 올라다 봤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꼴깍.
클럽에서 본 기찬은, 학교에서 보던 그가 아니었다.
같은 남자가 봐도 너무 잘생기고 멋있었다.
분하지만, 그는 기찬의 멋짐에 매료돼 버렸다.
‘아, 동훈아….’
이유 모를 어떤 한탄을 삼키던 중,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유세현에게 착 달라붙었다.
“헉.”
그녀가 흘리는 눈웃음에, 출렁이는 가슴에, 아랫도리를 지그시 누르는 빵빵한 엉덩이에, 유세현은 결국 정신을 놔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