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season2. 35. 흔한 일(1)
season 2
35. 흔한 일(1)
* * *
김하익은 홀로 남은 빈 사무실에 석상이라도 된 듯 한참이나 그대로 서 있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뭐부터 생각해야 할지 단서도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
송지연.
오명환.
그리고….
“성기찬.”
그의 입에서 나지막이 기찬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나마 생각하고 고민할 범위라도 정해져있다.
하지만 기찬은 아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날 보호하는 게 제 일이라고?’
김하익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본 기억이 없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아버지조차도.
그런데 기찬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주 낯선 감각이고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 생경함이 싫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유 모를 안정감이 느껴지며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또 무작정 자신 편이라고는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엄연히 스타 레코드의 김선주 대표가 진짜 사업 파트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계약 기간만이라도 날 지키는 게 제 일이라고 했어.”
그게 영 거짓말 같지 않았다.
그는 실제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자신이 붙인 송지연 일만 해도 그렇다.
솔직히 의심이 드는 마음까지 다 밝히지 않았던가.
“하아, 이 새끼. 대체 진심이 뭐야?”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만약 그 계약서 내용이 내 지분이 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러자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뒤늦게 생각났다.
원석이니 보석이니, 저하기에 따라 진짜가 되니 어쩌니.
그중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말은 ‘뺏긴다’라는 말이었다.
뭐가 됐든, 뺏기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몰라, 씨발. 누가 내 걸 빼앗아? 어?! 성기찬은 내가 찜했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이 기찬의 비범함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찬이 순순하게 제 밑으로 들어올 인물이 아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의 꼼수로 송지연을 갖다 붙이려 했던 건데, 하필 그년이 아버지 수족일 줄이야.
이번엔 아버지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그래서 분했고, 두려웠다.
김종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다루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자식이라도, 해가 되고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매장 해버릴 사람이다.
‘아직 안 돼. 내가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려고 한다는 걸 벌써 들키면, 난 그날로 끝이야.’
불행 중 다행히도 그가 송지연을 쓴 건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김종태 회장이 전 체육협회 회장으로 일궈놓은 터전을 지키는 데 방해가 되는 자들의 뒤를 캐고 약점을 잡아두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알게 돼도 크게 혼날 일은 아니었다.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멋대로 섣부르게 움직였냐는 꾸짖음 정도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시 기찬의 문제로 옮겨갔다.
왜 하필 기찬이 오명환의 제자인지,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잘못하면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흐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을 모르고 흐르는 생각과 고민이 두통을 일으켰다.
그래서 일단 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 띠, 띠띠띠, 띠.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 김하익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송지연을 생각했다.
‘기찬을 구워삶는데 실패했다더니.’
기찬은 정말 그녀와 사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그녀의 능력이니까.
하지만 송지연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병원으로 가 봐?’
마침 전화 연결음이 끊어지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낮은 중저음의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안녕하셨습니까, 최 회장님. 저 김하익입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워낙 바쁜 여자라 인사와 동시에 용건을 건네야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부자간에 회합이라도 있었나 봐? 안 그래도 조금 전에 회장님 호출이 있어서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
“네? 아버지가요?”
“그래. 호텔로 들어오라고 하시던데, 무슨 일이 있었어?”
김하익은 대답도 못 하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얼버무렸다.
“무슨 일은요. 아시겠지만, 이번에 송지연이 좀 다치는 바람에….”
말하다 말고 멈칫했다.
최 마담이라면 송지연을 다치게 한 게 저라는 것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이다.
그래서 급히 태세 전환 해 예정에 없던 사과를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만나 뵙고자 했습니다.”
“뭐, 그만한 일로 사과씩이나. 사업하는 사람이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역시 최 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제 딸처럼 키운 송지연이 얻어맞고 입원해 있어도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가해자를 대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일로 다른 무언가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아버지만큼이나 무서운 사람.’
김하익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얼른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리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식사 한번 하시죠.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인터폰으로 기사를 대기시켰다.
“상철이, 차 빼놔. 나 바로 내려갈 거야.”
“네, 사장님. 혹시 어디로…?”
“성북동.”
“회장님은 지금 호텔로 가셨습니다.”
“알아, 이 새끼야.”
“네! 차 빼놓겠습니다!”
김하익은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담배 연기에 실어 내뱉으며 사무실을 서둘러 나갔다.
후우우.
“나한테 송지연을 붙여? 아버지만 빨대가 있는 게 아니라고. 흥.”
* * *
기찬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객실로 뛰어 들어가 보니, 침대와 주변에 피가 낭자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나체 상태의 여자가 피떡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었다.
“대체 무슨….”
오명환은 피 묻은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싼 채로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왔냐.”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기찬을 맞는 오명환의 눈을 보니, 아직 흥분상태였다.
‘혹시, 약 했나?’
기찬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흥분상태의 그를 자극하게 될 것 같아서다.
그래서 먼저 여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호흡과 동공 상태가 정상이었다.
그저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기찬이 그녀를 살피는 모습을 본 오명환은 뒤늦게 자신의 제자가 의대생임을 깨달았다.
“내가, 흥분해서 막, 모르겠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냥, 정신을 차려 보니까 저 여자가 저렇게….”
여전히 정신없이 횡설수설이었다.
거기다 대고 약했냐고 물을 수는 없어 진정시키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괜찮아요. 이 여자, 심각한 상태는 아니에요.”
후우우.
그 말에 오명환이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누가 봐도 안도였다.
패 놓고 걱정한 것이다.
‘무아지경에서 폭행했구나.’
가학적인 성애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면 나오는 버릇, 혹은 본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섹스처럼 수컷의 본능이 충만한 행위 중에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정말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낮에 총장과 미래에 도모해야 하는 일에 대해 그리 의기투합해놓고, 바로 일을 치는 모습을 보며, 기찬은 실망감이 컸다.
인성이야 그렇다 쳐도, 공사 구분하는 날카로운 이성은 있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일을 친 건지 쉽게 이해도 되지 않았다.
“일단, 씻고 옷 갈아입으세요. 그동안 여기는 제가 대충 정리해놓을 게요.”
기찬은 수건에 물을 적셔 여자의 몸을 닦으며 지시하듯 말했다.
오명환은 별말 없이 조용히 일어서서 기찬이 시키는 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하아, 내가 왜 그랬지? 왜?!’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린 제자에게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여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약점을 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가 솟구쳤다.
한배를 탔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에게는 마음이 다 열리지 않는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특히 사적으로는 그런 마음이 더 컸다.
‘아까도 그랬어.’
섹스를 즐기며, 절정에 다가갈수록 기찬이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그날 꾸었던 생생했던 그 꿈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아내와 붙어먹는 녀석의 모습은….’
분하고 화나고 머리꼭지가 돌 것 같은 중에도, 흥분이 됐던 기억.
그 꿈속에서 아내가 어린 제자와 뒤엉켜 교성을 질러대며 허리를 흔들던 모습이 진짜처럼 생생했다.
그날 그 순간의 감각이 무의식에 깊이 박혀있었다.
물론 오명환 자신은 그런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찬을 보는 자신의 알 수 없는 마음이 마냥 의아했고, 어리둥절하기만 한 것이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오명환은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씨발.”
그 꿈을 생각하자 아랫도리가 힘차게 발기한 것이다.
그때, 밖에서 기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씻고 나오시면 라운지에 올라가 계세요. 룸 청소 부탁해 놓을게요.”
오명환은 기찬이 어디로 갈 것 같아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어디 가?”
“저는 이 여자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 주고 올 게요. 위급한 건 아니어도 이대로 두면 위험해질 수 있어서요.”
그렇다는 데 가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 그래.”
곧이어서 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명환은 잠시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서 있다가 제 손을 들어 봤다.
여자를 때릴 때의 감각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리고 동시에 흥분이 일기 시작했다.
‘나 왜 이래? 미쳤나?’
그런 자각과 다르게, 그는 제 자지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였다.
“씨발년아, 젊은 놈이 쑤셔 주니까 좋아? 어?!”
그는 기찬과 제 아내의 섹스를 상상하며 자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