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179화 - 자양강장제.
밖에 나가 있던 엘피와 글라사씨가 돌아오자 마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모의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 글라사씨의 집에서 하는 일종의 작전 회의 같은 것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은 글라사씨의 집에서 숨어 지내는 마르티가 함께 한다는 것 정도.
그러니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 것이었지만, 항상 이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아니… 그러면 몰래 아들레어가 지내고 있는 곳에 잠입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죠. 이전까지는 혹시나 해서 선뜻 나서지 못했지만… 이번일을 겪으면서 확실 해졌으니까요.”
마왕 아들레어는 마왕이 아니라, 그저 뿔이 달려 있는 평범한 마족이다.
아마 글라사씨의 추측으로는 강제로 원소 마법을 받게 한 노예 출신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냥 뿔을 만들어서 붙여 놓은 것 같다는데.
어찌됐거나 뭐가 됐든, 그 사람이 아무런 마법적인 능력도 없는 마족임은 틀림없었다.
“예상은 했습니다만… 너무 마법적인 능력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굳이 인식 저해 마법을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둔감하더군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휴가를 갑자기…”
“네, 엘피씨에게는 미쳐 말 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말 하는 군요.”
“…”
피곤할 법도 한데… 대단하구만 그래.
그만큼 글라사씨는 여기 사람들을 해방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이겠지?
어찌됐거나 그 아들레어라는 사람은 우리의 예상대로 바깥세상에서 오는 물건을 건네어 받고, 동시에 파라리스에서 생산되는 마석을 가져다주는 중간 연결다리 역할이 맞았다.
문제라면 파라리스 내부 말고, 외부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우리의 추측대로 클라닥은 맞았지만 그 연결고리가 꽤나 거물이라고 한다.
“아도나흐면… 분명 둘째 아들이었지 왕 언니?”
“그래, 기록을 보니까 실제로 직접 와서 물건을 서로 교환한 것 같더라고.”
“대박… 아들이 직접 움직일 정도면 보통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
“응. 단순히 군신 관계는 아닌 모양이야.”
아들이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클라닥이 파라리스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
그러니 군신 관계가 아닌 최소 동등한 입장이라는 건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상황 자체가 조금 의아하다.
어째서 파라리스와 클라닥의 이런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거지?
“…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저 같으면 그냥 파라리스를 점령해 버릴 것 같거든요.”
막말로 파라리스를 그대로 쓸어버려도 아무도 모르는 일.
굳이 거래 같은 귀찮은 절차 없이 싹 정리하고 마석광산을 독점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물론, 클라닥이 인간적인 성향의 단체였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이때까지 글라사씨에게 들어왔던 클라닥의 이미지는 그런 것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기에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파라리스는 돈만 많은 호구에 불과 해 보였거든.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 그러니 분명 파라리스 측에서도 마석 말고 뭔가 다른 카드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군요.”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교류를 하게 하는 힘.
그것은 단순히 파라리스의 내부 사정을 몰라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거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거대한 거구 셋을 보고 위압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1차원 적인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건 나도, 그리고 글라사씨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 일단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우선 오늘은 스코티아에 집중하죠. 괜히 이런 이야기해 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마음 같아서는 인식 저해마법을 쓰고 잠입하고 싶지만… 스코티아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 섣불리 움직이기에는 리스크가 큽니다.”
혹여나 마법적인 능력이 있는 마족일지도 모르는 노릇.
그러니 일단 병원에만 처 박혀 있는 그 의사양반을 밖으로 나오게 할 거라는 데.
이야기를 듣자니 그 방법이 다소 과격해 보인다.
“아시다시피 스코티아는 밖으로 나오질 않죠. 그러니 일단 나오게 하는 겁니다.”
“…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쓰러질 겁니다. 그러면 엘피씨가 가서 스코티아씨를 제가 있는 유치원까지 불러 내는 거죠.”
“쓰러진다고요? 연기를…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뇨, 연기는 자신이 없어서… 대신 이 약을 먹을 겁니다.”
“약…?”
30ml 남짓해 보이는 둥그스름한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정체 불명의 액체.
도대체 저런 걸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르겠는데… 저걸 먹으면 극심한 복통을 일으킬 거라고 한다.
진짜 의사 양반을 안 부르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지.
문제라면 저게 무슨 약이길래 극심한 복통을 일으키냐는 건데, 이상하게도 글라사씨는 약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니… 하지만 너무 무모한 것 같은데. 도대체 그게 무슨 약이길래…”
“그래 언니! 도대체 이게 무슨 약인 줄 알고 그러는 거야?”
“마르티 너도, 그리고 찬혁씨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생명에 지장은 없으니까요.”
“아니… 그래서 무슨 약이냐니까요?”
“그건… 그러니까…”
“…”
대답을 망설이는 흰 머리칼의 마족.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라사씨의 시선이 엘피에게로 향한다.
마치 뭔가 허락을 구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야, 엘피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어? 너는 글라사씨가 걱정도 안 되는 거야?”
“아… 아니 나도 걱정되지… 되는데 그게… 어…”
“…”
수상해.
아까 전부터 입 꾹 다물고 있던 것부터 영 수상했는데, 지금은 더 수상하다고.
나는 뭔가 있음을 감지하고는, 목표를 바꿔 글라사씨가 아닌 엘피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너 이 약 뭔지 알지?”
“응?”
“왜 못들은 척해? 너 설마 이 약…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약은 아니지?”
“아… 아니야! 이건 그…”
“…”
가뜩이나 눈도 큰데, 저 큰 눈이 움직이니까 눈 돌아가는 게 아주 그냥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냥 누가 봐도 단단히 죄를 저지른 게 두 눈에 선하다고.
하… 이 시발년… 이걸 어떻게 해야 돼?
“… 야, 솔직하게 말하면 봐 줄게.”
“그게 그러니까 그… 자양… 강장제야.”
“자양강장제? 야, 복통을 일으키는 자양강장제가 어디 있어?”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너무 과다하게 먹으면 그렇다는 거지. 그쵸 글라사씨?”
“네? 아… 네. 그렇습니다.”
“…”
시발… 너무 수상한데?
그러면 내가 지금 저걸 절반 정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거지?
“… 어?”
“뭔데 그 반응은… 과하게만 먹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는 자양 강장제라고 네가 그랬잖아.”
“그… 그렇긴 한데…”
“글라사씨, 거기 물약 많으니까 절반 정도는 먹어도 되죠?”
“예? 아니… 하지만!”
“…”
다급하게 말려보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탁자에 놓여있던 3개의 물약 중 하나를 집어 절반 정도를 들이켜고.
동시에 글라사씨와 엘피는 그런 나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방금 내가 먹은 이상한 액체를 음미하며 꿀꺽 삼킨다.
“뭐야 이거? 맛이 이상한데? 뭔가 바나나랑 샴푸 같은 게 섞인 맛이야…”
“그… 그래? 그나저나 좀 어때? 기운이 나는 것 같아?”
“어…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자양강장제라고 해봐야 다 상술 아니겠냐고.
나는 엘피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들고 있던 병을 탁자에 내려 놓는다.
그리고는 잠깐이나마 엘피를 의심했던 나 자신을 다그치며, 내심 속으로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었지만.
그런 죄책감이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그러십니까 찬혁씨? 어디불편한 거라도…”
“죄송하지만 저… 쇼파에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예? 아… 예. 얼마든지요.”
***
작전은 앞으로 4일 뒤.
나는 그때 맞춰 휴가를 쓰고, 병원 근처 보이지 않는 덤불 속에서 대기.
동시에 유치원에서는 글라사씨가 약을 먹고 쓰러지고, 엘피는 시나리오 대로 글라사씨가 쓰러졌다는 핑계로 스코티아씨를 밖으로 데려 나온다.
그러면 병원이 텅 비게 되고, 나와 마르티는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서는 간단한 작전.
그러니 작전을 숙지하는데 있어서는 딱히 어려움이 없었지만, 진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시발… 왜 발기가 안 가라 앉는 거지…?)
(설마 그 자양강장제 때문인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쇼파에 있는 담요로 대충 가렸지만.
시간이 지나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음에도 발딱 선 거시기는 가라 앉지 않았고.
결국 나는 고간에 뭘 키우고 있는 거냐는 마르티의 성희롱과, 누가 봐도 내 거시기로 고정되어 있는 글라사씨의 시선을 느끼며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애초에 저 두 사람은 내 거시기 다 본 사람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고.
그런데 지금 씻고 자려고 누운 지금도 발기는 가라앉지 않았고, 나는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 열감을 느끼며 힘겹게 팬티를 벗는다.
“… 왜 그래? 어디 아파?”
“하… 엘피, 나 발기가 안 가라앉아… 진짜 터질 것 같이 아프다고.”
“그 정도야?”
“어… 혹시 자양 강장제 부작용 중에 이런 경우도 있나?”
몸도 존나 덥고, 무엇보다도 시발 고추 쪽으로 너무 피가 많이 쏠려서 퉁퉁 부운 것 같다고.
내가 고통을 호소하자, 엘피의 의미심장한 한 마디가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그 자양강장제 말이야… 이상한 약이라고는 생각 안 해?”
“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전과가 있잖아.”
“믿는 거지… 다시는 그런 짓 안 하기로 약속했잖아.”
라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그저 물증이 없으니 이렇게 나오는 것일 뿐.
나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엘피를 떠보기 시작한다.
“… 엘피. 우리가 같이 산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이때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낸 이유가 뭘 것 같아?”
“응? 그… 천생 연분이라서 그런가? 하하;;”
“그런 것도 있겠지.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신뢰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만큼 중요한 게 없다.
신뢰는 사실상 목숨과도 같다.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며, 신의를 저버린다는 것은 앞으로 함께 할 원동력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결별을 선언하겠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는 아무 말 대잔치로 엘피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동시에 엘피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물드는 것 것까지 확인한다.
“엘피…”
“응…?”
“그래서 말인데… 그 약 진짜 자양 강장제 맞아?”
“지…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 해 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