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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106)


520. #26. 잔인하다고 할지라도 (1)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아니, 미움 받지 않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너무 튀지 않게..... 조심스럽게 지내왔건만.... 그 와중에서도 나와 거리를 두는 이는... 날 싫어하는 누군가는.... 꼭... 어김없이 생겨났다. 처음엔 그게 너무 싫어서... 어떻게 하든 가까워지려고 애를 썼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존재가 아니다 보니.... 생각대로 되지는 않고.... 오히려 점점 지쳐서는..... 제풀에 주저앉게 되었다. 하긴.... 나를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쉬울 수 없는 일인데.... 그걸 억지로 하려 했으니.... 얼마나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을까. 그래도.... 대부분.... 어느 정도 내가 노력하면 바뀌었던 것에 비해... 그녀는 요지부동.... 변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차가워지고 더욱 멀어져만 갔다. 마치... 절대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벽과 같았다. 무슨 전생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그때.... 문득.... 단짝 친구가 옆에 와서는.... 나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그런 애.... 신경 쓰지 마. 어떻게.... 다 맞춰주고 사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신경 끊어버려. 언제나 단호했던 그녀 성격 답게.... 명료하게 딱 잘라 말하는.... 충고 한 마디. 강하다면 너무도 강한.... 그런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간.... 너무 힘들었던 탓이었을까? 평상시라면.... 난 할 수 없어 그런 건... -이라고 흘려버렸을 그 말이...... 그때 그 친구의 말이 마치.... 잔뜩 찌푸린 먹구름이 사르르 양쪽으로 걷히며.... 그 사이로 따듯한 햇살이.... 내 주변으로 환하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처럼.... 일종의 광명처럼 다가왔다. 아마도... 그건 교회에 다니면서.... 보고 들었던 성경 속 이야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그 어려운(?) 조언을 순순히 따를 수 있게 되었고.....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거라고.... 받아드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 모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난공불락의 그녀와 사이가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노력해보고 안 되는 인간관계에 대해.... 전보다는 느긋해지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에 상처조는 것을 보지 않고.... 생각 속에서 지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 " 그러고 보니까.... 발인이 내일이었던가? " 멍하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보고 있는 중에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독백이었다.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민희 생각에.... 머릿속 뇌세포가 제멋대로 입술을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삼일장.... 어느새 뇌리에 자리 잡은 장례일정에 따르면.... 내일 오전이면 발인해서 장지로 출발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 화장한다고 했었지.....? " 민희의 대화 속에서 얼핏 들었던 내용을 되뇌며 생각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 뒤 아버님을 어디에 모신다는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세세히 그런 것까지 말할 이유도 없었고.... 또 남들 시선도 있어서 민희와 길게 통화도 하지 못했다. 나도 민희를 생각해서 최대한 말을 줄이고.... 오히려 내가 짧게 통화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에게.... 간간히 그녀의 목소리만 들려준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릴 정도로 벅찰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 와중에.... 화장한다는 얘기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하긴.... 요새.... 다들 화장하는 분위기이긴 했으니까.... 매장이라는 절차도.... 번거롭기도 했고.... 장지 또한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어느새 장례 또한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모시는 선택지가.... 각광을 받고 있었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참 정신없는 와중에..... 화장을 권해온 장례지도사의 말에 따라서.... 그대로 진행했었다. 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한 매장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할.... 상황도 아니었다. 민희네는... 선산이 있다고 했었던가? 새롭게 떠오른 질문. 그리고.... 바로 이어진 대답. 하..... 난 정말 아는데 왜 이리 없냐. 민희에 대해 제일 많이 아는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건 전혀 얘기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쩝.... 민희에 대해... 정말 띄엄띄엄 봤구나.... 띨띨한 녀석....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절로 다시게 되는 입맛은 고삼차를 마신 듯 쓰디쓰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났던 민희가 기억하던 모습과 달랐던 것처럼.... 정말 온 마음으로 그리워했던 사람에 대해 고작 이 정도 밖에 알고 있는 것이 없다니....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했다면서..... 민희에 대해 또 뭘....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난..... 어느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빠졌던 것이 지금 처음 하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 옛날.... 갑자기 민희가 이별을 고했을 때도.... 이와 같은 생각에 깊숙이 빠져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민희의 한마디. 그리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골똘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특히... 군대라는 곳에 갇혀 있어서... 더욱 돌아버릴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서.... 당장 민희에게 달려갈 수 없는.... 내 상황이.... 심지에 불이 붙은.... 화약과 다를 바 없었다. 내 마음대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내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있는 동안.... 연인과의 문제가 생기는 사병은.... 문제 사병으로 따로 관리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총기류 같은 위험한 물건을.... 다룰 수 있었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훗.... 나도 어쩌면.... 그 상태 그대로 계속 이어졌다면.... 정말 탈영했을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면.... 류주신.... 중대장은 내 평생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탈영했다면 그대로 육군 교도소에 잡혀가서... 붉은 줄이 쭈욱 그어졌을지도 모를.... 인생의 나락 속에서.... 구해준 존재였으니 말이다. 전역하고도 몇 년간 연락했었는데... 류주신 대위도 이후 소령 진급에서 미끄러지고는.... 군복을 벗게 된 뒤 왕래가 끊어졌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류주신 대위가 어느새 전화번호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끊어져 버렸다. 아마.... 자존심이 나름 강했던 사람이라.... 자신의 실패를 알고 있었던 나와의 연락이.... 그리 달갑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군인 시절의 기억은 싹 지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내 나름대로 추측해보기도 했지만.... 뭐.... 진실은.... 류주신 그 만이 아는 일이었다. 나름... 진짜 그런 사람이 좋은 지휘관이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군대는 그렇게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준 높은 점수는.... 날 좋게 대해준 부분에서 나왔던 결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또 충분히 기울어진 호감 속 편견에서 나온 결과물이긴 했으니.... 공평한 평가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휴가를 받아서 마음껏 민희를 생각할 수 있었고... 또 그녀와 짧게라도 통화도 하면서.... 연락을 계속 주고받고 있었으니.... 천국과 지옥의 거리만큼.... 차이가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평온한 것도 아니었다. 민희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초조함이....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초조함. 민희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과는 다른.... 무언가가 계속 꿈틀거리며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 그게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오히려 넘치는 시간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 가운데..... 불안한 마음을 붙잡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외줄을 타고 있는 심정이었다. 그때.... 그런 나를 구원해준 것은.... 전화 벨소리였다. 멍한 나를 깨우는.... 익숙한 내 휴대폰 전화벨 소리. 그리고.... 핸드폰 액적을 보자마자....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하게 만드는... 발신자 이름이 떠있었다. " 미..민희야! " 받자마자 튀어나오는 이름 하나. 말하면서도 감정이 솟구치며 저절로 목소리가 떨리는 듯 싶었다. 그에 비해... 수화기 너머 들리는 민희의 목소리는 작고 은밀했다. " 훗.... 뭘 그리 급하게 받아? 깜짝 놀랐잖아..... " 수화기 너머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민희의 얼굴이 보이는 듯 싶었다. " 급하게 받긴.... 옆에 폰이 있어서 빨리 받았을 뿐이야. " " 흣.... 전혀 그런 거 같지 않은데? " 확실히 옛날 민희보단 장난치는 것이 단수가 늘어 보였다. 순진하고 언제나 돌봐줘야 할 것 같던.... 그 시절 민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민희도.... 세월 속에서 혼자 설 수 있도록.... 단단해진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은 아쉬운 것 같았다. 아직 내 도움이 필요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민희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존재였으면 좋겠는데.... 왠지 품속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에.... 허전함이 밀려왔다. 누군가 들으면.... 민희를 옴짝달싹 못하게.... 내 품 안에 묶고 싶어 한다고.... 눈을 가늘게 뜨고 홀겨 볼 일이었지만..... 솔직한 마음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 옆에... 내 곁에 영원히 묶어두고 싶은.... 욕심.... 끝없는.... 탐욕 속에..... 갈구. " 오빠... 뭐하고 있었어? " " 응? 나? " " 으응... 지금.... 뭐하고 있었는데? " 순간 듣자마자 하마터면 바로 튀어나올 뻔 했다. " 민희 네 생각... 네 생각하고 있었지! " 하지만 급하게 입술을 앙다물며 꿀꺽 삼켰다. 일단.... 남사스럽기도 하고.... 지금 아버지 상중인 민희에게 할 수 있는... 농담도 아니었다.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 속.... 상주에게 그런 말은.... 역시.... 해서는 안 될 말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해.... -라고 말하는 것도.... 궁색했다. 이것 또한 사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언제나 옳은 대답은 아니었으니.... 부드럽게 돌릴 말이 필요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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