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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90)


504. 진주에서 유명한 가게로 도착하니.... 한참 식사 때라 그런지 북적거리고 있었다. 성삼재 휴게소도 그렇고.... 오늘은 어딜 가도 사람들 인파에 시달리는 하루였던지.... 여기서도 어렵게 주차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가게가 커서 그런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대표 메뉴인 물냉면과 비빔냉면.... 그리고 육전을 시키고 나니.... 조금 숨을 돌리는 느낌이었다. 우태가 얕은 한숨을 쉬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자 민희가 씽긋 웃었다. " 뭘 그리 긴장해? 운전은 내가 하고 왔는데 오빠가 하고 온 거 같아. 훗.... " 그녀의 말에 우태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긁적거렸다. " 그러게. 왜 이리 몸이 뻣뻣한지 모르겠다. 하..하... " 우태 자신도 왜 그런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마주 보고 있는 민희와 지금 자신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인지.... 아니면 식당에 들어서서 본 시계를 보면서 잊혔던 시간의 흐름 속에.... 묻어 두었던 무언가가 떠올라 그런 것인지.... 정확히 가늠이 되진 않았다. 어찌 됐든 지리산 산행 이후.... 제대로 요기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빠르게 나온 냉면과 육전은 맛있었다. 제일 맛있는 반찬은 허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앞 접시에 비빔냉면을 덜어주고... 그 답례로 물냉면을 담아주며.... 함께 먹은 저녁은 연신 우태와 민희의 얼굴에.... 연신 미소를 피어나게 만들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여유가 돌아오는 듯 싶었다. 함께 식당을 나서는 순간.... 손을 잡고 있는 둘이었다. 물론.... 다시 차를 타야 해서 곧 놓기는 했지만.... 잠시 느꼈던 손의 온기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졌다. 냉면을 먹고도.... 몸이 이리 따듯할 수 있다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우태였다. 이미 시내엔 주차가 어렵다고 해서.... 약간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는.... 화려한 전등불이 가득한 성곽을 향해 함께 걸었다. 남강에 반사된 화려한 불빛. 유려한 성벽 위 전각의 곡선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듯 싶었다. " 예쁘다.... 생각했던 거 보다 훠얼씬.... 더 예쁜 거 같아..... "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민희는 연신 감탄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하긴.... 이렇게 야경을 꾸며놓은 곳은.... 우태도 처음 보는 듯 싶었다. 서울 경복궁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긴... 궁궐과 성을 비교하는 것이 걸맞지 않은 일이긴 했지만.... 공원처럼 꾸며놓은 풍경 속 누각들이.... 하나하나 예술 작품 같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불이 켜져 있는 수많은 조형물 또한.... 귀엽고 아기자기함을 덧붙여.... 보고만 있어도 방긋 입 꼬리가 올라갔다. 특히.... 그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민희를 보니.... 우태 또한 모든 것을 잊고 마음껏 함께 웃었다. 불빛 가운데 걷던 민희가 문득 한마디 던졌다. " 왠지 좀 슬픈 거 같아. " 난데없는 말에 우태가 민희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민희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씁쓸한 목소리를 냈다. " 여기... 옛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곳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그런지 마냥 예쁘다고 하는 게 죄스러운 거 같아. " " 응? "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순간 깨달은 우태가 끄덕였다. " 임진왜란...때 2차 진주성 전투 말하는 거구나? " " 어.... 우리 같이 리포트 쓰면서 진주성 조사했던 거 생각 나? " 민희의 말을 듣기 전에 이미 우태 또한 그 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학기 교양으로 무엇을 들을까 고민하다가 골랐던 강의에서.... 나왔던 과제 중 하나가 진주성에 대한 것이었다. 후일 사극 드라마들 보면서도... 여기에 관련된 애기가 나오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면서.... 저거 설정 오류라며 토론을 벌이곤 했었다. 왜군의 수가 십만 명에 다다르는데.... 병력도 적은 상태에서 권율도 수성을 포기하길 권했고.... 의병으로 이름이 높았던 곽재우도 중과부족이라고 구원을 포기했던 상황에서.... 의병장 김천일을 비롯한 황진 등 일부 장수와 군인, 그리고 의병들이.... 결사 수성을 결의하며 들어간 2차 진주성 전투. 패배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 작은 성에 모였던 것이... 그때 몰려왔던 수만의 피난민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어.... 차마 버릴 수 없어 더욱 목숨을 걸고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도 있었다.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이때 참가했던 조선 측 장수들은.... 한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수호신으로 성을 지키던 황진이 전사하고... 다음날 9일째 성이 함락되면서.... 거의 6만의 사람들이 죽었다. 병졸은 물론 피난해 있던 수많은 백성들까지.... 왜군에 의해 끔찍하게 학살되었다. 남자, 여자.... 어린애까지.... 왜군들의 총칼에 목숨을 잃었다. " 당연하지. 그때 우리가 낸 리포트.... 에이플러스 받았잖아. " " 훗.... 오빠가 자료 조사하고 내가 글 작성하고 그랬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우리 공부했던 도서관도 한번 가보고 싶다..... " 멀리 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는 민희의 눈동자에.... 야경을 밝히는 전등불이 비치며 반짝거렸다. 우태도 함께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옛날 많은 이들이 왜군을 피해 투신해 목숨을 잃었던 강물은.... 색색의 불빛 속에 아름답게 빛나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강물에는.... 논개 라는 야사 속 인물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문득 민희의 말대로 화려한 저 불빛이 슬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함께 리포트를 쓰면서.... 언제 소설을 쓰고 싶다던 민희의 말도 떠올렸다. 우태와 함께.... 부부가 되어 부부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예쁜 소망을 속삭이던 그녀. 어쩌면 지금 하고 있다는 번역도.... 그 길의 범주 안에서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함께 소망을 나누었던 우태는... 이제 그 길은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였다. 또한 둘은 부부가 되지 못하고.... 남남의 위치로 함께 이 자리에 서있었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며 작은 한숨이 길게 새어나왔다. 민희가 듣지 못하게 조용히 내뱉었지만... 눈치 빠른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우태의 팔을 꼬옥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 왠 한숨이야....? 나 한숨 쉬면 복 달아난다고 맨날 구박하더니.... 한숨 쉬지 마. 웃어! 활짝.... 내가 오빠 옆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 자신을 올려다보며 생글생글 웃는 민희의 얼굴을 보니.... 우태도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뻣뻣한 얼굴 근육을 움직이느라.... 고장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 그러게. 민희 너랑 같이 있는데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어? 대학 시절이 떠올라서 그랬나 봐. 하...하.... " 하지만 우태의 말에 민희 또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내 시선을 떨구었다. 둘 다 말을 잃은 가운데.... 선선한 밤바람이 그들을 감싸고 지나갔다. ************** " 짠! " 우태와 민희는 맥주 캔을 부딪쳤다. 그리고는 시원스럽게 꿀꺽꿀꺽.... 들이켰다. 진주성 야경을 보고 난 뒤 들어온 모텔. 말은 모텔이었는데 새로 오픈한 것인지... 깨끗하고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어제 묵었던 호텔에 비하면.... 천지차이였다. 오히려... 그곳이 모텔 같고.... 이곳이 호텔처럼 느껴졌다. 특히 욕실이 완전히 달랐는데.... 커다란 욕조에 크기도 넓어서.... 마치 온천에 있는 가족탕이라도 온 거 같았다. " 와아... 여기 욕실.... 되게 크다..... " 민희가 양팔을 쫙 벌리며 말하는데.... 베이지색 타일 속에서 마치 날개를 편 듯 보였다. 우태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다. " 그러게. 여기 모텔 지으면서 욕실에 포인트를 몰아줬나 보다. " " 히히... 오늘은 진짜... 오빠하고 같이 씻어도 되겠는데? " 장난기 가득한 민희의 말에 이번엔 우태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쳤다. " 훗! 됐어! 피곤할 텐데 민희 너나 푹... 따듯한 물에 몸 담구고 있어. " " 히히... 오늘은 엉큼한 생각 안 해? " " 어제도 안했거든? 먼저 씻고 있어. 그 사이에 음료나 사올께. " " 훗! 음료는 무슨! 오빠 우리 맥주나 마실까? " " 맥주? " " 그으래! 시원한 맥주 마시고 싶어. " " 민희가 마시고 싶다는데 사와야지. 기다리고 있어. " " 싫어! 같이 갔다 와! " 쪼르륵 달려와서는 그의 팔에 매달리는 민희였다. 그렇게.... 둘이서 함께 편의점에 가서는....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왔다. 양손에 가득 찬 비닐봉지를 들고.... 팔짱을 끼고 돌아와서는.... 샤워하고 나서 나와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아까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캔 맥주를 꺼내서.... 힘차게 건배하는 참이었다. 둘만의 엠티처럼.... 어제는 피곤해서 자기 바빴다면.... 오늘은 훨씬 여유로운 밤이었다. 아까 잠시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옛날 기억들 중 행복했던 일만 꺼내며 얘기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각자 맥주 캔을 세 개째 먹고 나니 알딸딸한 취기가 올라왔다. 그래서 그런지... 민희는 자꾸만 웃었고.... 우태의 리액션 또한 점점 커져갔다. 아니.... 분위기에 취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었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방안을 채워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야할 시간이 다가왔다. " 이제 자자, 오빠. " 발그레한 볼로 술자리를 끝내자고 먼저 말한 것은 민희였다. 우태도 어깨를 으쓱하고는 느릿느릿 답했다. " 그럴...까? " " 응. 자야지 그래야 또 내일 놀러가지. " " 훗... 그래. 운전하느라 고생했는데 울 민희 쉬어야지. " " 치이... 운전하는 거 힘들지 않다니까 그러네.... " " 하하... 알았어! 그래도 민희 팽팽한 피부 건강을 위해서 수면이 필요하니까 이제 자자. 오키? " " 흥... 나... 나이 먹었다고 놀리고 그러는 거지? " 얄밉다는 듯 홀겨보는 민희를 보면서 우태는 힘껏 손사래를 쳤다. " 와아아... 억울해. 민희 네가 나이 먹었다고 하면 난 할아버지게? 나 봐. 완전 아저씨 됐잖아. " " 아니거든! 오빠는... 흠.... " 잠시 고민하는 듯 생각하던 민희는 단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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