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79)
493.
그렇게 시작된 여행....
정말....
뜬금없이 시작된 야간 드라이브였다.
난데없이....
남해를 보러 간다는 것도 전혀 생각 못한 전개였지만...
하루 종일 우태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이건 차라리 해피(?)한 이벤트였다.
물론...
정말 행복한 사건이냐고 물으면....
상당히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일단 민희를 만나고....
민희를 보고...
바로 자신의 옆에....
그녀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부분을 감수할 수 있는....
행복한 사건이었다.
" 훗... 그렇게 걱정 돼? 오빤... 피이... 내가 운전하는 게 여엉.... 못 미덥나 봐? 저번에 동해도 잘 갔다 왔는데!? "
옆으로 눈을 홀기는 민희....
우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 아냐, 그런 거.... "
" 피이... 아닌 거 같은데? "
" 아니야, 정말. 그냥.... "
우태는 민희를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운전하면서도....
틈틈히 자기를 생글생글 보고 있는 민희를 마주하고 있자니....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는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내가 운전을 못해서.... 민희 네가 고생하는 거 같아서 그래. 미안하기도 하고.... "
" 하하하... 고생은 무슨 고생이야? 오빠도 참.. 하하... 그러게 진작에 운전면허 안 따고 뭐했어? 차는 없어도 면허 따두었으면 이럴 때 오빠가 운전하고 좋았잖아! 하하하..... "
민희도 다시 앞쪽을 보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
방울 소리 같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차 안에 흐르는 음악 소리에 섞여서.....
더욱 맑게만 들렸다.
둘만의 공간에....
채워지는....
민희의 목소리.
우태는....
생각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은 채....
그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자신을 따듯하게 채워주는....
그 파동에 모든 것을 맡겼다.
**************
#24. 파국이 우리를 덮친다고 해도 (4)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괜히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만 불편하고....
복잡해져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닌....
괜히 걱정만 많아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닥쳐올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미래에 생길...
위험...
혹 생길 지 모를....
사건 사고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대책을 만드는 건...
당연히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괜히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을...
계속 떠올리고 생각하면서...
그 속에 빠져 있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무시하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질문에 대해...
황혼을 맞이한 노인들이 답한 것 중...
가장 많은 답으로 나온 게....
쓸데없이 걱정하는 일이었다고.....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무책임하고...
무대책이지만....
그냥 지금을 즐기는...
그런 마음가짐.
**************
" 흐으음..... "
잠시 누워 있었는데도 온몸이 찌뿌둥했다.
중형차라고 해도....
차 안이 안락한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의자를 젖히고 잠을 청했지만....
불편함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 시간....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
그곳에는 수많은 트럭들.....
컨테이너 트럭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모두들....
바쁜 하루를 보냈던 것인지....
아니면....
심야 운전을 하기엔 무리라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동반자들은 마치 고래들이 떼를 이루어....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잔뜩 주차장을 차지하는 중이었다.
뭐...
고래는 서서 잠을 잔다고 하니까...
따지자면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둠 속 트럭들의 모습들이....
자꾸만 고래를 연상시켰다.
우태는 소리 내지 않고...
조심스레 뒤척이는 동안.....
민희는 바로 옆에서 쌕쌕 소리를 내면서....
잠들어 있었다.
쉬엄쉬엄 운전하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새벽 3시가 넘어가니....
안전운전을 위해 조금 눈을 붙이는 게 좋겠다고 말하곤....
들어오자마자 어느새 잠에 빠진 그녀였다.
뭐...
운전대 잡은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데...
우태가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동해에 갔을 때에도....
민희는 쉽게 잠에 빠졌던 듯 싶었다.
데자뷰(Déjà Vu)....
마치 그때로 돌아간 느낌.
창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에....
오똑한 그녀의 콧날....
감고 있는 눈꺼풀....
그리고 도톰한 입술이 보이는 가운데....
우태는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나직이 흘러나오는 한숨.
아니라고 연신 얘기를 했지만....
역시 심야 시간대 운전이 피로했던 것 아닐까 싶어서...
우태는 민희가 깨지 않게 조심해서는...
느릿느릿 자세를 고쳤다.
옆으로 누워서 바라보는 풍경.
창 밖에는 여전히....
커져 있는 가로등 외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하긴 도로에도 차가 없는데.....
휴게소라고 사람들이 많을 리 없긴 했다.
많은 트럭이 주차해 있었지만...
걸어 다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 보니....
어느새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가운데....
이름 모를 풀벌레 우는 소리도....
하나씩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시골 집 대청마루에 누워서....
한밤....
별을 보는 느낌이랄까.
뭐 따지고 보면....
이곳 휴게소 위치가 시골 산자락이니....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마침....
커다란 선루프가 천정을 대신하는 통에....
달이 은은하게 떠 있는 것도....
보이는 중이었다.
구름을 막 헤집고 나온....
달이 노랗게 빛났다.
달빛이 만들어 내는 마법이랄까.
마음이 고즈넉해지는 가운데....
다시 하나 둘 소리가 들려왔다.
쌕쌕 거리는 민희의 숨소리....
벌레 소리....
새 울음소리....
또....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뜻밖의 신호가 우태를 자극했다.
갑자기 시작된....
방광에서 울려대는 알람.
처음엔 긴가 민가 했는데....
한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확실한 신호를 보내왔다.
화장실에 갔다 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다시 가야할 것 같다고 재촉하는 듯 싶었다.
으....
이런....
웬만하면 참아 보겠는데....
한번 시작된 신체 반응은 가뜩이나....
아무 것도 할 것 없이 있는 상태에서.....
점점 강한 자극으로 커져만 갔다.
우태는 좀 더 버터 보다가....
더 이상 저항은 무리라고 생각하고는....
결국 항복은 선언한 채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최대한 시트를 눕혀 놓은 상태에선 일어나기 힘들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시트를 세우는데....
모터가 작동 되며 징징 거리면서 소리를 내자마자....
바로 민희가 눈을 떴다.
그리고....
" 오...빠? "
탁한 목소리.
목이 잠긴 민희의 말에....
절로 우태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의 실수로 일어나 버린 민희의 모습에....
우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 미안.... 일어났어? "
" 흐음... 깜빡 잠들었는데.... 너무 깊게 잔 거 같아. 지금... 몇 시야??? "
" 4시.... 24분... 25분? "
" 하암.... 벌써 그렇게 됐어? 시간 참.... 빠르다.... 오빤.... 좀 잤어? "
" 응.... 푹 잤지. 운전도 안했는데 미안하네..... "
" 으...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자꾸.... 미안하다고 하지 마. 오빠가 그러는 거 싫어.... 난 오빠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너무 고마운 걸..... 그러니까... 오빠도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응! 고맙다고 해주는 게 더 좋아. "
" 하..하... 그래. 나도.... 민희 네가 보러 와줘서... 정말 좋았어. 고마워. "
그건 진심이었다.
비록 생각도 하지 못한 그녀의 갑작스런 방문이었지만....
연락도 할 수 없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며...
걱정하던 참에 이렇게 와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여러 가지 생각을 빼버리면....
너무도 고마울 뿐이었다.
물론....
그 여러 가지 사정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이...
정말 유감이었지만.....
" 아.... 오빠.... 시트는 왜 세우는 중이었어? 어디.... 불편했어? "
그러고 보니....
그제서야 급한 볼일에....
화장실 가려고 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모자란 신체도 깨달았는지....
신호를 다시금 강하게 보내기 시작했다.
" 하..하... 화장실 좀 가려고. "
" 아! 그랬구나.... 나도.... 나도 같이 가! "
그렇게 함께 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마자...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둘을 감쌌다.
확실히 산중에 있는 휴게소라 그런지 밤중에 느껴지는 기온은....
도시보다 훨씬 낮게 느껴졌다.
조금은 두꺼운 옷을 입고 왔어야 하나 생각하는 와중에...
그런 것은 아랑곳없이 씩씩하게 우태를 끌고 앞장 서는 민희였다.
길게 늘어선 트럭들....
어두운 그림자 아래를 지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민희가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우태도 남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밤에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개방된 공간이라 그런지....
벌레들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죽어있는 벌레들...
날아다니는 벌레들....
문득 민희는 괜찮은지 염려가 되었다.
벌레라면 질색하는 그녀인데....
여자 화장실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태는 서둘러 볼일을 마치고...
바로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민희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얼핏 보이는 여자 화장실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하긴..
있으면....
안되지....
우태는 되뇌이며....
살짝 뛰기 시작했다.
동동 거리며 제자리 뛰기를 하는 중....
마침내 민희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자신을 보자마자 또 웃는 민희.
" 풉... 오빠 뭐해? "
" 하하.. 그냥 가볍게 스트레칭... 했어. 하..하.... "
민망함에 웃는 우태.
민희는 킥 웃더니....
그의 팔짱을 끼고는 바짝 붙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