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87화 문제의 발정제
첫인사 후 반나절 뒤.
어느새 바깥 풍경은 늦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가라앉아서 오렌지빛 석양으로 물들더니 이내 선선한 밤바람이 살랑거리는 늦여름의 저녁 무렵이었다.
보통 여자하숙집에서 이쯤이면 무더웠던 하루 일과가 끝나고 가족같은 그녀들과 음란하고 즐거운 일상을 활기차고 신나게 즐겼겠지.
하지만 창현은 평소에 활기 찬 표정과 달리 다소 퀭한 눈빛을 한 채 맥을 못 추리고 있었다.
"...."
그야 지난 6시간동안 유하의 아버지랑 별 대화없이 술만 마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도 70도 도수가 넘는 전통 증류주 안동소주를.
창현은 정신이 얼떨떨해지는 강한 취기에 잠시 멍 때리고 만다.
"윽...."
자신이 나름 40년(?) 술고래 소리 들을 정도로 주량 5병은 기본이었는데 지금의 음주 상태는 처음 느낀다.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고 그냥 감각이라곤 느껴지는 게 없이 그저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게 무섭다. 여기서 술 더 마시면 그 인사불성돼서 기억이 끊기지 않을까?
젠장, 유하 아버님 앞에서 실수하면 안되는데....
창현의 눈앞에서는 여전히 유하의 아버지가 별다른 대화없이 그 독한 안동소주가 담긴 잔들을 계속해서 비워나가고 있었다.
"...."
창현은 정신을 다 잡고자 애써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그동안의 상황을 복기해본다.
지난 6시간.
유하의 아버지는 안주가 준비되자 유하 누나랑 어머니를 다짜고짜 '여자애는 몸 세신이 중요하다.'라면서 목욕탕에서 몇 시간 좀 보내고 오라면서 강제로 내보냈고 그뒤로 창현 자신에게 계속 술을 따라주면서 가끔 정말 형식적인 인사치레같은 잡담만 몇 마디하고 술 마시기만을 반복했었다.
아버지의 대화는 부모님이나 여동생은 정정하시니, 군대 병역은 해결했나. 또 imf 직후인데 직장 안 힘드냐 정도였나.
뭐 그것에 대한 답변은 유하 누나랑 미리 합 맞췄던 '펀드 매니저(?)'라는 02년 시절에는 참 생소했던 직업이 써진 명함카드를 보여드리는 거 정도였지만 아버지는 의외로 별 관심이 없는 반응이었다. 거기에 네가 해병대인지는 진즉에 알아봤다면서 조교 병역만기전역한 아버지에게 필승 경례를 몇 번 해드리니 아버지 딴에는 무표정이지만 뭔가 나쁘지 않은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거 같았다.
게다가 자신이 그토록 술에 취하는동안, 아버지도 많이 드셨지만 딱히 취해보이시진 않았다. 정확히는 묵묵부답했지만 뭔가 고민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을까.
게다가 값비싼 '오리고기 안주'는 본인 체질에 안 맞으시다고 계속 창현 자신만 먹기를 권유해서 억지로 먹었다. 뭐 비싸서 그런지 맛있게 잘 먹었는데 오리고기 특징이라 그런가? 뭔가 먹을수록 몸에 열이 확 올라오는 게 이상했다.
뭐지. 지금 유하 아버지 행동과 태도는? 전혀 모르겠다.
유하 누나 말로는 세상에서 진짜 무섭고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아빠라서 어릴 떄부터 지금까지 딸인 자신과 친하게 지낸 적도, 살갑게 대화해본 적도 없다던데... 뭔가 지금 상황이 반쯤은 이해가 가면서도 또 반쯤은 애매한 그런 기분이다.
딸은 목욕 재계시키고 자신은 하루 내내 술만 마시게 하다니... 젠장, 혹시 금지옥엽같은 딸을 가져가려는 자신을 시험하는 중일까? 아니면 술 취했을 때 한 대 줘패려고? 도저히 모르겠다.
창현이 그저 어떻게든 오르는 취기를 버티려고 애써서 정자세를 유지할 때였다.
"딸꾹."
한편 유하 아버지는 시계를 본다.
"벌써 시간이... 어멈이랑 딸내미가 올 때네."
아버지는 곧장 창현을 향해서 술을 따라준다.
"안창현, 마지막 술 받게. 여기 나 안 좋아하는 오리고기 안주도 마저 먹고."
"아...?"
응?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드디어 막술이라니... 간이 술 알코올에 녹아서 죽기 직전에 구원 받은 느낌이다.
창현이 애써 신난 티를 감추고선 먼저 정중하게 아버지의 술잔을 채운다.
"아버님. 받으십시오."
"... 그래."
직후 아버지는 창현의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주면서 그 무거웠던 입을 여신다.
"안창현."
"네 아버님."
"말 안해도 오늘 상견례 때 유하의 얼굴을 보고선 알아버렸네. 우리 유하가 안창현 자네를 엄청 사랑한다는 것을."
"...."
과연 자식 얼굴만 봐도 감정을 바로 알 수 있는 게 부모란 걸까? 게다가 유하 누나가 자신을 그리 좋아하는줄은 전혀 몰랐다.
창현이 뭔가 어깨가 으쓱거릴 정도로 기분 좋았지만 애써 빈말로 아버님을 추켜세울 때였다.
"아닙니다. 아버님! 유하 누나... 유하는 아버지를 정말 좋아하시고 존경하던데요? 평소에도 자주 말했어요."
아버지는 뭔가 서글픈 눈웃음을 보인다.
"유하, 그 아이가 날...?"
그는 독한 술을 한 모금하더니 이내 회한이 가득한 눈빛을 애먼 시선으로 두고선 말한다.
"자네, 거짓말 안해도 되네. 그 아이가 내 욕을 하면 했지. 좋아할리가 없어."
"아, 아닙니다 아버님!"
"후, 나도 알아. 귀여운 딸내미한테 원망 받는 못난 아버지란 걸...."
"...."
유하의 아버지는 안경다리를 고쳐쓰더니 회한이 가득한 눈초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내가 자라던 때는 1960년대의 경주 시골 깡촌인데 625 한국전쟁 직후 베이비붐 세대라 내 위로 나이차 많은 형 세 명, 누나 둘이나 있는 대가족이었다네. 우리 집은 땅 300평에 사시사철 경운기 한 대, 늙은 소 한대로 윤작, 이모작한다고 쌀, 보리, 콩 키우던 농사꾼인데 농부인 아버지 말론 우리 집안은 그 상대등, 영의정 등을 매번 일군 명문가 경주최씨 집안이라고 해서 유교문화니 해서 엄격하게 자랐다네. 그때 우리 집은 서울에 대학 간 큰형, 작은형들 뒷바라지 한다고 새벽 5시부터 깨우고선 바로 찬물에 세수하고 봄감자 하나 입에 물고선 밭일하고 그랬거든. 나는 그렇게 매일 아침에는 하품 방방하고선 늙은 소 엉덩이 궁짝 때려가면서 논밭을 몰면서 농사 짓고 오후에는 천자문 한자 틀렸다고 매일 회초리로 볼기짝을 맞고 밥도 못 먹곤 했지. 다만 그중에서 불평이었던 건 왜 공부 잘하는 형 둘만 뒷바라지에 용돈 챙겨주면서 힘든 일 안 시키고 나랑 누나들만 생고생시키는 자식차별하는 가였어. 우리 부모님딴에는 형이 머리가 좋으니까 형한테 모두 투자하려던 생각이었나보지. 그때 어찌나 서럽던지... 그래서 나는 어릴 때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하고 다짐했었네. 빨리 취직해서 이 구닥다리 시골에서 벗어나서 결혼하고 우리 사랑하는 가족, 자식한테는 절대로 안 그래야겠다고!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서 나는 해병대 283기에 입대해서 조교를 했다네. 그때 동기 중에 배우도 있었던가? 몸은 더럽게 힘들었지만 제일 편하던 때 같아. 그리고 제대 후 입신양명을 하고자 한빛시에서 기업들 세금을 조사하는 세무직 공무원에 당당히 취직하게 되고 거기서 한 회사의 징세 업무를 하다가 우연히 그 회사에서 비서였던 우리 그이, 유하 엄마랑 업무때문에 자주 만나게 됐다네."
아버지의 아니 땐 과거 회상이었다.
창현이 다소 취했지만 그래도 정중히 경청할 무렵.
"딸꾹... 그렇군요."
아저씨는 추억회상을 계속 이어나간다.
"우리 그이, 집사람... 지금도 그렇지만 마음씨도 얼굴도 너무 예뻐서 사실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네. 이후 남몰래 반 년간 연애한 우리는 급기야 결혼을 허락받고자 상견례를 하기로 했는데 우리 그이는 사실 장인어르신 두 분이 베트남전쟁에서 베트콩 폭격에 그만 안타깝게 하늘나라에 가셨다네. 우리 그이가 울면서 고백할 때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 나는 그래서 안사람을 꼭 잡아주고선 우리 친가에 결혼을 허락 받고자 집안에 상견례를 갔는데 웬걸, 우리 고지식한 부모님이 족보도 없는 집사람이랑 결혼 허락 못한다고 난리를 피더군. 우리 안사람이 얼마나 울먹이고 부끄러워하던데 그때는 내가 어찌나 화가 났던지... 나는 화나서 당장에 부모님한테 쌍욕을 퍼붓고선 우리 그이 손을 잡고선 집을 뛰쳐나왔다네. 그리고 둘이서 당당히 조촐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네. 결혼하고 열 달이 좀 안돼서 우리는 바로 금슬 좋게 유하를 낳았다네. 유하를 처음 가진 그날, 세상에서 나보다 행복한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고레고레 소리 지르고선 지금까지 어찌나 행복했는지... 우리는 유하를 애정과 사랑을 담아서 키웠다네. 하지만 애기던 유하가 실수로 장난감 인형을 망가뜨렸을 때였는데 나랑 아내랑 가정교육에 있어서 견해 차이가 있었다네.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딸에 시대가 다르니까 딸에게 절대 화내거나 강요하지 말고 또 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밀어주자는 반해 나는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시대니까 기본예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어. 그때는 군사정권이니 imf으로 부도이니 어려운 시대였거든. 우리 착한 아내는 결국엔 내 손을 들어줬지. 그러다가 유하가 슬슬 걸음마를 떼고 말도 하고선 유치원 입학하던 때인가 군사정권 때 아내가 다니던 국제그룹이 부도나는 사고가 있었는데 우리 아내가 퇴직하는 거까지는 괜찮았는데 하필 우리 전재산을 국제그룹 주식에 넣어뒀던 때라 퇴직금은커녕 전재산을 잃어서 가정이 힘들어진 시기가 있었다네. 그때 나는 빚도 빚이지만 혼자서 가정을 살려야한다는 책임감과 압박감에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격이 날카로워지고 어두워졌다네. 그래서 아내나 당시에 학생이던 유하에게 더욱 엄하게 대했던 거 같아. 그리고 가정형편이 안 좋아서 제일 사랑하는 맏딸한테 엄마랑 사이즈 비슷하고 그러니 옷이나 화장품, 필기구, 인형 등 새것도 잘 못 사주고 반면에 아들 둘은 그나마 새것을 사줘서 본의 아니게 차별을 해버렸네... 딸이 친구들은 다 예쁜 새 교복 입고 다니는데 왜 자신만 헌옷 입어야하냐고 울먹일 때 오히려 위로는 못해주고 욕하고 화냈다네.... 그떄부터였던 거 같아. 유하가 내 눈치만 보고선 무서워서 피해다니는 게.... 그 아이가 여고생, 여대생, 그리고 졸업해서 경리로 일할 때까지 오붓하게 대화해본 기억이 없네. 반면에 나는 imf니 뭐라고 해서 괜히 쓸데도 없는 부담감에 딸을 더 엄하게 갈궜던 거 같네. 딸이 회사 사내에서 힘들다고 불평해도 나는 imf 직후라 더 정신차려야 한다고 호통이나 치고 말야... 거기에 맞선도 아는 좋은 친구네 좋은 성격인 자제 분으로 고른 건데... 딸아이는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모르겠네. 그야 나는 못나고 못돼서 우리 예전 부모님이 그랬던 거처럼 결과적은 자식인 딸만 힘들게 하고 마음도 전혀 몰라줬으니까 말야. 그러다가 오늘 우리 유하가 안창현, 자네랑 같이 왔고 말야. 나는 우리 딸에게 평생 미안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네."
아버지의 투머치토커(?)같은 회상이었다.
자신이 그 시대를 조금이나 간접경험해본 아재(?)라서 그런 걸까?
창현은 정중하게 들어드리느라 따로 답변은 안해봤지만 공감은 갔었다.
그 시절의 대한민국은 군사정권, 국제그룹 해산, imf 등 진짜 헬조선 그자체였으니까 말이다. 비명에 돌아가신 창현의 아버지도 그랬는데 유하의 아버지도 가장으로서 내심 많이 힘들었겠지. 뭐 지금도 고물가, 취업난, 계엄령 등으로 힘들다고? 야 나 때는 크흠... 대충 넘어가자.
모쪼록 아버지 입장도 공감은 가지만 덕분에 유하 누나가 정말 힘들게 자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거때문에 아버지도 죄책감을 가졌고 말이다.
창현이 눈치껏 말없이 유하의 아버지의 빈 술잔을 채워줄 때.
"아버님, 잔 마저 받으시죠."
"고맙네."
아버지는 창현의 술잔을 따라주고선 왠지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한다.
"안창현."
"네."
"사실 나는 우리 유하가 그 맞선 싫다고선 아버지인 나에게 처음으로 대항하고선 다짜고짜 남친라는 자네를 데려오려던 때 나는 그저 못되고 못난 아빠라서 도대체 어떤 기생오라비같은 놈이 감히 우리 금지옥엽같은 딸을 넘보는 걸까하고선 이놈 멱살을 붙잡을 생각도 했었다네. 그런데 웬걸.... 오늘 자네가 우리 유하랑 같이 올 때 나는 바로 직감했다네. 그 순둥순둥한 딸이 못난 아버지인 나한테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행복하고 수줍은 미소를 안창현, 자네를 볼 때 보여주더군. 정말로 사랑한듯이 말야. 게다가 안창현 자네의 건강한 체격이나 당당한 성격, 올바른 옷가지만 봤는데도 예전에 상견례를 갈 때의 내가 생각나더군. 그래서 더는 질문할 필요를 못 느낀 거라네. 자네라면 분명 우리 유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느꼈거든. 그러면...!"
"예, 아버님?"
그 순간 아버지는 괜히 눈밑이 가려우신지 축축해진 눈가밑을 닦느라 잠시 안경을 고쳐쓰신다.
"음..."
그는 직후 한결 자상한 태도로 허리를 굽혀가면서 창현의 손을 덥석 자상하게 잡아주신다.
"우리 사위, 앞으로도 못난 아비 대신에 우리 유하를 잘 부탁하네!"
"아...?"
사위 코스프레(?)인 창현을 진짜 사위로 인정해주신 아버님이었다.
이거 일이 잘되긴 했는데 점입가경이라고 뭔가 무서워진 거(?) 같다.
창현이 쑥스러운 심경에 공손하게 행동한다고 벌떡 일어서서 어색한 미소를 짓던 때였다.
"하하, 아버님, 저 그게... 크윽?"
그러나 창현은 미처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선 비틀비틀대고 만다.
"윽....?"
그야 6시간 넘게 계속 마시던 음주의 취기가 제대로 올라와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창현 자신이 나름 술고래라고 불릴 정도로 술에는 자신이 있는데 왜 이리 몸을 가누지를 못하겠지.
거기다가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몇 시간 전부터 이상하게 자신의 하체, 그 소중한 생식기인 자x가 불끈불끈거려서 미치겠다.
자신도 모른 사이에 최대 크기로 발기돼서 어쩔줄 몰라하고선 말이다.
뭐지? 단지 술 마시는데 대체 흥분하고 발기하는 걸까? 덕분에 양복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사타구니가 솟구쳐서 부담되는데 말이다.
때마침 아버지가 창현을 부축해더니 사타구니를 힐끔 보고선 마음에 든다는듯이 말한다.
"우리 사위 것이 늠름하군."
"아버님 죄송합니다. 그그 이건 딸꾹...."
"부담 갖지 말게. 사실 지금 술에 인사불성 안된 거만으로도 대단한 거네. 참 그윽한 술이거든. 거기다가 자네만 먹으라고 하던 오리고기가 좀 특별한 거거든."
"네?"
"그 오리고기에 일본에서 구한 초특효발정제와 강장제를 잘 넣었다네. 덕분에 사정 몇 번을 해도 끄떡 없을 걸세. 오늘 우리 유하랑 신방에서 몇 번을 해도 말야!"
"네...?"
그것은 문제의 발정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