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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미소녀가 된 니베리아 대공 (1)


인간이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영혼까지 뒤흔드는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내 몸의 중심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고, 그 폭발은 마치 핵폭발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휩쓸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나를 향해 환호하던 시민들의 비명이, 이번에야말로 진짜 절규가 되어 도시를 뒤덮었다. 이건... 이건 드래곤이 아닌, 인간에 의한 공격이었다. 감히, 자신들을 지켜준 수호신을 향해...! 그렇다면 범인은 단 하나. 이 도시에서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 '니베리아 대공...!!' 크르르르르르르르르-!!!! 분노가 모든 고통을 집어삼켰다.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억지로 펄럭여, 나는 추락하는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비늘은 곳곳이 찢겨 나가고 피가 비처럼 흘러내렸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 붉은 눈은 오직 한 곳, 용살포 발사를 지휘하고 있는 가장 크고 높은 망루를 향해 고정되었다. 그곳에, 니베리아 대공이 있었다. 나는 복수를 위해, 산사태처럼 그 망루를 향해 돌진했다. 콰지끈! 쿵! 내가 분노에 차 망루 꼭대기에 착지하자,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피를 흘리는 거대한 용의 머리를 숙여, 망루 위에 선 작은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내 콧김만으로도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세차게 흩날렸다. 하지만 내 거대한 눈앞에 선 니베리아 대공은, 예상과는 딴판으로 검을 뽑거나 맞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라? 저 냉혈한 지휘관 어디 갔어? 방금 전까지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팥죽처럼 창백해져서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손을 휙휙 내저으며, 마치 재판받는 피고인처럼 필사적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오, 오해이십니다! 위대하신 붉은 용이시여! 이건 저 사악한 흑룡을 노린 공격이었는데, 으음… 통신 오류로 인한 딜레이 때문에 발사 중지 명령이 늦어진 것뿐입니다! 진짜입니다! 맹세코!" 그리고는 주변의 용살포 지휘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열변을 토했다. "이놈들! 이 무능한 놈들! 감히 우리의 수호신께 포탄을 날리다니! 제가! 제가 직접 이놈들의 목을 베어 위대하신 용께 속죄하겠습니다!" 와, 태도 보소. 완벽하게 비굴했다. 강자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고, 약자에게는 으스대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나는 드래곤의 본능으로, 아니, 세라였을 때의 직감으로도 놈의 말이 전부 거짓임을 바로 간파했다. 이 자식, 처음부터 흑룡이랑 나랑 둘 다 제거할 생각이었구만! 당장이라도 저 얄팍한 거짓말쟁이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죽이는 건 너무 시시하잖아?’ 내가 그의 부하들에게 당했던 그 끔찍한 짓들(물론 자세한 건 생략한다)을, 바로 이 니베리아 놈의 손으로 직접! 나에게 갚아주게 만드는 것. 이거야말로 진정한 복수 아니겠어? 팝콘 각이다! 나는 드래곤의 거대한 입을 열었다. 인간의 언어 따위는 쓰지 않았다. 내 의지를 정신에 직접 울리는 텔레파시로 말했다. 『...거짓말은 그만둬라, 작은 인간.』 "히익!" 니베리아의 얼굴이 아예 새하얘졌다. 푸딩처럼 흔들리는 눈동자. 나는 말을 이었다. 『네놈의 부하들이, "세라"라는 인간 여자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들을 자행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흑성기사단의 단주 아이작 월튼, 그리고 네놈의 대공성 병사들과 기사들. 그들이 숲과 대공성에서 저지른 몹쓸 짓들을… 전부.』 내 말에, 니베리아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세라'라는 이름. 그가 그토록 집착하던 그 이름이, 내 입에서 나오자 그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긴 하네. 『그 여자는 나의 것이다. 나의 소유물에 감히 손을 댄 네놈의 개들을… 네놈의 손으로 직접, 내 앞에 끌고 와라.』 그 순간, 니베리아의 얼굴에서 모든 비굴함이 사라졌다. 허세 가득한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는,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이글거리는 살기만이 남아있었다. "감히… 감히 나의 세라에게…!" 그는 내가 누구인지, 이 거대한 드래곤이 왜 '세라'를 언급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직 자신의 소유물에 흠집이 났다는 사실에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놈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아앙! 망할 니베리아 자식! 방금 전까지 질질 짜던 놈이 갑자기 눈깔을 부라리면서 "나의 세라!"라고 외치잖아?’ 내 거라니까 내 거! 어딜 감히 내 소유물에 네 거라는 이름을 붙여?! 내가 지금 귓방망이를 날려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드래곤의 품격이 있지…. 『작은 인간 주제에 건방지구나.』 나는 다시 텔레파시로 낮게 깔린 목소리를 보냈다. 내 목소리가 니베리아의 머릿속에서 천둥처럼 울렸을 거다. 그 순간, 니베리아의 표정이 다시 푸르딩딩하게 질렸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는 꼴이라니.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세라"는 나의 것이다. 네놈의 하찮은 손아귀에 들어갈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고의적으로 내 거대한 발톱을 니베리아가 서 있는 망루 바닥에 살짝 '탁' 하고 찍었다. 쿵! 하고 망루 전체가 흔들리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히,히아아아악!” 니베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풀썩 주저앉았다. 오, 연기력이 늘었군. 『다시 한번 그 여자를 네놈의 '것'이라 칭하면… 네놈의 대공성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네 것'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명심해라.』 내 텔레파시가 끝나자, 니베리아는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은 완전히 새하얗게 질려서, 방금 전의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공포에 질린 눈빛만이 가득했다. 그래, 역시 이렇게 겁을 줘야 제맛이지! 드래곤 앞에서 감히! "흐… 흐읍… 예… 예… 위대하신 드라고나이시여… 분부대로…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겨우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니베리아를 보니 좀 웃겼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좋다. 그럼 지금 당장 그 '개들'을 내 앞에 끌고 와라. 그리고 그동안… 그 여자를 감히 탐했던 네놈의 죄에 대해 스스로 뉘우쳐라. 내 심기가 불편하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망루에서 살짝 몸을 떼어냈다. 그제야 니베리아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쫄아 있어라, 대공. 내 복수극은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그런데 그렇게 내가 니베리아 대공의 죄를 심문하고 있었을 때, 하늘 저편에서 작은 그림자 두 개가 빠르게 접근해왔다. 하나는 붉은 아룡(兒龍) 형태의 레드 드래곤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 등에 올라탄 작은 인간 소년이었다. “주인님! 역시 무사하셨군요. 헤헤헹….” 한 쪽은 드라고나이의 충직한 (?) 집사 큐브. 그리고 다른 한 쪽은, 일전에 내가 푸르셔스 마을에서 레이프비어드 일당에게 당할 뻔 했을 때, 목숨을 구출해준 적이 있었던 소년 ‘효잔’이었다. 나는 그를 구출해주며, 유그나 대산으로 가서 레드 드라고나이에게 내 소식을 전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녀석은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모양이다. 해서 효잔을 발견한 순간, 드래곤으로서의 이성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인간 '세라'로서의 순수한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효잔!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야!』 내 목소리가 효잔의 귀에 천둥처럼 울리자, 효잔은 겁에 질린 눈으로 큐브의 등 뒤로 황급히 숨어버렸다. 으음… 그렇지. 나한테는 그저 '세라 하트소울을 구해준 위대한 드래곤'일 뿐, 내가 그 세라 하트소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이 상황을 즐겨야지! * * * 나는 곧, 니베리아 대공의 '안내'를 받으며 그의 성으로 향했다. 대공성은 흑룡 반드세우크가 날뛰었던 탓에, 거의 가루가 되어 있었다. '흑암의 아다말티움 합금으로 성을 통째로 제작했다더니, 그건 아니었나 보군.'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폐허가 된 알현실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내게 몹쓸 짓을 했던 자들이 모두 끌려와 있었다. 아이작 월튼과 레이프 비어드는 물론, 그날 밤의 흑성기사단과 성의 수비대 전원이 공포에 질려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내가 세라였을 때는 하늘처럼 무섭게 느껴졌던 그들이, 지금은 내 거대한 용의 그림자 아래에서 벌벌 기는 한낱 벌레에 불과했다. 니베리아 대공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들을 향해 외쳤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너희가 감히 나의 세라 대공비께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네놈들은 물론이고, 네놈들의 삼대까지 멸족시켜주마!" 그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연좌제를 적용해 모두를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잠깐. 나는 그 순간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내가 그들에게 당했던 그 부끄럽고 끔찍한 일들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다. '세라 하트소울이 성안의 모든 경비대들에게 돌려졌다'는 사실이. 안돼! 그건 절대 안 돼! 나는 거대한 발톱을 들어, 니베리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연좌제라고 했나?』 내 목소리에 니베리아는 물론,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그렇다면 너 역시 책임을 져야겠지. 네놈의 개들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죄. 그 죄는... 네놈이 직접, 내게 몸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이 남자를 어떻게 요리할까. 죽이는 건 너무 싱겁고, 그렇다고 내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할 수도 없고. 아, 좋은 수가 떠올랐다! 복수도 하고, 내 비밀도 지키고! 게다가 내 취향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아주 완벽한 방법! 나는 드래곤의 마력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푸른 마나가 니베리아의 몸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드래곤이 인간 외형으로 변신할 때 쓰는 트랜스포메이션 마법! 마법력이 높을수록 더 아름다운 외모로 변신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마법! 물론, 나 자신에게 쓰는 게 아니라 남에게 쓰는 건 처음이었지만… 뭐 어때, 내가 드라고나인데! 『네놈의 죄는… 네놈의 모든 것을 바꿔서 갚아야 할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 내 입에서 뿜어져 나간 마력이 니베리아의 몸을 감쌌다. 그의 우락부락했던 근육이 부드럽게 변하고, 굳건했던 턱선은 날렵하게 깎여 나갔다. 덥수룩했던 수염은 사라지고, 거친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끄럽게 빛나기 시작했다. 투박한 손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변했고, 키는 훌쩍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불쾌한 남성적 특징들이 깔끔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완벽한 곡선미를 지닌 여성의 몸이 드러났다! 섬광이 걷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더 이상 니베리아 대공이 아니었다. 새하얀 피부, 커다란 적안(赤眼)은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 빛나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똑한 콧날 아래로는 앵두 같은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성인 남성이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미소녀'였다! 그야말로 외모력 천만 포인트를 찍는 역대급 미소녀의 탄생이었다! 내 마법력이 이 정도라니, 새삼 나에게 감탄했다. 그러자 새하얀 은발이 흩날리며, 니베리아 대공의 새하얀 미소녀 얼굴이 비틀렸다. “끄아아아아악!!!” 그건 절규였다. 천년 묵은 성채가 무너져 내릴 듯, 유리창 수천 장이 동시에 깨지는 듯, 대지를 흔드는 울부짖음. 붉은 눈동자가 눈물에 젖어 번뜩였다. 기품 넘치던 대공의 흔적은 사라지고, 남은 건 벼랑 끝에 몰린 한 미소녀의 분노와 원통함뿐. “나,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다니… 드라고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이를 저지를 수가?!!” 그러자 니베리아 대공의 가신들이 군침을 다시기 시작했다. “감히 니베리아 대공 저하를 이런 꼴로 만드시다니…!” “오우~ 예! 감사합니다! 드라고나이 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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