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큰일은 술자리에서 생긴다
대학 축제가 끝난 뒤풀이 술자리.
행사를 뛴 크루원들은 하나둘씩 술자리에 모였고 근처에 살던 래퍼들까지 진우형이 말한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치이익.
고기가 익으면서 식욕을 돋구는 냄새가 코로 흘러들어온다.
'배고프네.'
테이블도 거의 다 채워졌고 20명이 넘게 들어온 가게 안은 점점 시끌벅적해지던 중에,마지막으로 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드르륵.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아저씨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더니 진우형을 찾아갔다.
아저씨는 진우형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다들 무대 멋지게 잘했어. 오늘 술자리는 여기 계신 형님이 쏜다고 하니까 마음껏 마셔!"
""잘 먹겠습니다!""
스무 살인 나도 소주와 고기를 먹고 싶었으나 진우형의 눈치가 보여서 마시지 못한 채로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음료수나 마시며 형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돈, 술, 여자 등등.
형들의 입에 술이 들어갈수록 점점 다양하면서도 수위 높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술자리를 계산한다고 했던 아저씨가 가게 중앙에 서서 이야기를 꺼냈다.
"얘들아. 그 얘기 들었냐?"
"뭔 이야기요?"
"이번에 LM기획사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LM이라는 이야기에 테이블이 떠들썩해졌다.
"아이돌 기획사 말하는 건가?"
"LM? 거기 아이돌 만드는 곳이잖아."
"거기 걸그룹만 만드는 데 아니야? 고추달린 놈들은 하나도 안 뽑던데."
"오늘 에델린도 행사 뛰던데, 설마 여기 오나?"
아저씨는 웅성거리는 놈들을 무시하고 설명을 계속했다.
"거기서 이번에 남자아이돌 뽑는다고 하더라고."
"에이 형님! 고추 새끼들 이야기 하려고 분위기 잡은 거예요?"
남자 이야기가 나오니까 순식간에 김이 샛는지 불평이 쏟아졌다.
쪼르륵.
탁!
이야기를 꺼냈던 남자는 술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야 이 참을성 없는 놈들아.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라."
"그래, 술자리 사 주시는 고마우신 분이 말씀하시는데 다들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이 가게를 예약한 진우형이 아저씨의 편을 들며 크루원들을 진정시켰다.
불평이 줄어든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아이돌로 데뷔할 연습생 뽑는다고 하는데 너희 중에 하고 싶은 사람 있는가 해서 물어볼려고 온 거다."
"래퍼요? 연습생 중에 뽑는 게 아니라?"
"응. LM에서 연습생 볼 때 실력을 가장 중요하게 보거든. 랩만 잘하면 일단 붙여 준다고 하니까 생각 있는 애들 있으면 준비해 봐."
그 이야기를 끝으로 술자리는 조용해졌고, 누군가가 말한 한마디가 가게 안을 채웠다.
"우리 얼굴에 아이돌은 무슨."
그 한마디에 나는 테이블을 싹 훑어봤다.
못생긴 사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TV에 나와서 아이돌을 하기에는 부족한 얼굴들 뿐이었다.
'하긴, 얼굴을 아무리 안 본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생겨야 할 테니까.'
다들 나처럼 생각한 건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저씨도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내가 너희들한테 말했겠냐? 저기 쟤한테 말한 거지."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나를 보고 있었다.
"저요?"
"그래. 생각 있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다른 형들이 대신 대답했다.
"형. 얘는 우리가 아는 동생이에요."
"그래요. 얘는 아직 어려서."
"무슨 소리야?"
아저씨의 질문에 평소에 나를 괴롭히듯이 대하던 신현오가 대신 대답했다.
"얘가 비트찍고 프로듀싱 하는 거는 재능이 있는데 랩은 좀 아쉬워서."
"그건 재우가 아직 어려서 그래. 고삐리잖아."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나를 보는 눈이 한층 달라졌다.
"뭐야. 고등학생이었어?"
"네."
"그럼 더 좋지! 야! 잠시 따라와봐."
"네?"
"너는 말을 '네'밖에 못하니?"
"아니요. 그게 아니라…"
나는 나를 데려온 진우형을 쳐다봤다.
진우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진우형도 이야기 들어 보라고 한 거니까.'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
가게 밖으로 나온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면서 물었다.
"너 프로듀싱 할 줄 안다는 거 진짜야?"
"네. 저기 있는 형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거의 다 제가 건드린 것들이기는 해요."
"이야. 귀한 재능을 가지고 있네. 그런데 왜 랩은 못 하는 거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 랩 할 줄 알아요."
"응? 아까 쟤네들은 못한다고 하던데?"
"아까 그 형은 가사에 욕 안 들어가면 랩이 아니라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그냥 싸우기 귀찮으니까 있는 거지."
"아하. 그래?"
아저씨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훑어보다가 손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명함이었다.
[LM 엔터테인먼트 총괄실장 최민기]
"여기 내 명함이니까 아이돌 생각 있으면 연락해."
명함에 적혀 있는 LM이라는 글자를 본 뒤에 아저씨를 다시 살펴봤다.
그러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술자리에서는 몰랐는데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비싼 브랜드였고, 입고 있는 옷들도 전부 명품이었다.
'돈 많은 아저씨였구나.'
"LM에 들어오면 진우가 준 장비들보다 좋은걸로 지원해줄게."
"네?"
"진우가 너한테 줬던 장비들, 그거 우리가 지원해 준 거야. 오늘도 진우가 너 추천해서 온 거거든."
"……."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최근에 진우형은 나한테 독립할 생각이 없냐고 종종 물어왔다.
뜬금없이 왜 그런 건가 했는데 상황이 이해가 갔다.
"아이돌 이야기도 진짜니까 생각 있으면 바로 연락줘. 우리 회사는 재능 있으면 합격이야."
"제가 춤은 춰 본 적이 없는데요."
내 대답에 아저씨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했다.
"춤은 연습하면 결국 늘더라. 아이돌 생각 없어도 연락해. 프로듀싱 하는 거 보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아저씨,"
내 대답이 거슬렸는지 아저씨는 나를 힐긋 보면서 말했다.
"……다음부터는 아저씨라는 단어 말고 실장님이라고 부르고."
"네."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택시를 부르고 사라졌다.
#
"아으 춥다. 일단 들어가야지."
나는 팔을 비비며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자리를 이동해가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고성방가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오. 재우 왔다."
"이 새끼 이거 아저씨 따라가서 비밀친구 하고 온 거 아니야?"
"그러게에? 왜 이렇게 늦었대?"
"우리 이쁘장한 재우가 아저씨를 꼬셨어?"
내가 들어온 것을 본 형들은 내 곁으로 와서 어깨동무를 걸면서 나를 놀렸다.
"아으, 술 냄새."
나한테 다가온 형들은 이미 술에 취했는지 붉어진 얼굴로 술 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어허! 술 냄새라니. 달콤한 향수지."
"그래! 이게 힙합이지."
그렇게 말한 형들은 내 잔에도 소주를 따라줬다.
"으하하하. 재우야. 너도 마셔라!"
"그래! 너도 올해 스무 살인데 술 좀 마셔봐야지 괜찮아 임마!"
형들은 나에게 술을 권했지만 나는 마실수 없었다.
지금 내 앞에 온 사람때문이었다.
"형들, 뒤에."
"어허! 형이 마시라고 줬으면 마셔야지!"
"아니, 뒤에 보라고."
"뒤에 뭐가 있길래……."
그제야 뒤에 있는 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에서는 진우형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뭐 하냐?"
"어?"
"아니~. 진우야 재우도 성인인데 한잔 정도는……."
진우형은 정색한목소리로 화냈다.
"내가 재우 술 먹이지 말라고 했지."
"아니 그게…"
"내일 학교 가야 하는 애한테 술 마시게 하지 마."
"알겠어."
"미안하다."
크루원들에게 사과받아낸 진우형은 나에게 경고를 했다.
"계산하고 올 테니까 사고 치지 말고 있어."
"응……."
그 말을 한 진우형은 가게 안에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많이 취한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 하자. 2차 갈 사람들은 2차 가고,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고."
"오케이."
"그래~."
"잘 먹었다."
진우형은 계산을 마친 뒤에 나랑 가게 밖으로 나왔다.
#
12시가 다 돼 가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길거리에는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택시! 택시! 아 씨발!"
"승차거부만 몇 번째냐…"
"우웨에에에엑!"
사람이 술을 마신 건지, 술이 사람을 삼킨건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술에 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한심해 보였다.
'나는 저렇게 마시지 말아야지.'
한심한 사람들을 보며 다짐을 하고 있을 때, 여자 세 명이 나와 진우형한테 다가왔다.
"오빠들. 우리랑 같이 갈래?"
"히히. 우리가 술 사줄게."
"연예인이야?"
나한테 오빠라고 말하는 여자들의 얼굴을 보니 잘 쳐줘도 20대 후반쯤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얼굴로 나한테 오빠라고 하는 걸 보면 얼굴에 철판을 단단히 깐 여자들이었다.
나는 거절하는 의미로 말했다.
"저 고등학생이에요."
하지만 여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머! 그러면 더 좋지."
"혹시 처음이라 부끄러워서 그래?"
여자들은 더 엉겨서 붙어왔다.
"얘는! 이 얼굴에 처음이겠니? 이미 해 봤겠지."
"그래도 여자 셋이랑은 안 해봤을 걸?"
"엎에 매니저는 빠져 주실래요?"
나는 진우형을 쳐다봤고, 진우형도 나를 쳐다봤다.
'도망가자.'
'달려.'
타다닷.
우리는 여자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쳤다.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달리자 아까 아저씨가 했던 말 때분에 복잡했더너 기분이 싹 날아갔다.
그래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숨이 차도록 달린 우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택시 타자."
"그러니까 형은 운동좀 하라니까."
"이 새끼가?"
나는 진우형에게 맞기 전에 택시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