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36.술자리
세진이와 나는 수업을 들었지만 따로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수업도중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세진이를 보았고, 세진이는 내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어쩔 줄 몰라했다.
단지, 그런 태도, 그리고 그냥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 마음속의 응어리가 조금 풀어지는 듯 했다.
세진이는 중학교 때부터 붙어 다녔던 단짝친구였다..
이제 부모님도, 친척도 없는 내게 몇 안되는 마음 기댈 녀석이었다.
사실 여자가 되기 전에는 진서보다도 세진이가 가장 마음 편한 녀석이었으니...
그 만큼 세진이와 가진 추억들이 많았다.
그를 용서해 줘야 할까?
그렇게 된다면 다시 옛날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만약 용서해 줬다가 그 때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까?
머릿속에 수업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교수님이 나가고 어수선한 교실 분위기.
수업이 마치고도 세진이와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때 한 여학생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언니, 저는 과대, 지수연입니다. 편입생이시죠? 혹시, 오늘 개총하는데 참가해주실 수 있냐 해서요..."
아 개강총회...
가봐야 하나?
가고 싶긴 하다.
오티에도 참가를 안 했기에 이것마저 빠지면 정말 학과 생활에 적응하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참가를 해도 되나?
"네? 아... 참가를 하고 싶은데... 물어보고 해야되서요. 전화만 한 통하고 말씀드리면 안될까요?"
갈 수 있다는 말에 여자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띈다
예의상의 행동일지 모르지만 그런 사글사글한 태도가 기분이 좋게했다.
"아, 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아, 그리고 혹시 연락처가...."
과대는 내게 슬쩍 전화기를 내밀었다.
나는 그 전화기에 내 전화번호를 적었고, 그녀는 내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게 제 번호니 저장하세요 언니."
"아, 네!"
여자에게 번호 따인 건가?
"아 그리고 오빠도 가실꺼죠?"
그녀의 질문을 세진이에게로 향했다.
"나? 아... 난..."
세진이는 과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내 눈치를 살폈다.
"가."
"...그럼 갈께."
내 허가가 떨어지자 그제서야 세진이는 과대의 말을 수락했다.
그렇게 내가 껄끄러운가 싶다.
"아... 네 그럼 가시는 걸로 해 놓을께요 오빠."
과대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아마도 우리 사이에 있는 냉랭한 기류를 읽은 모양이었다.
왜 쓸데없이 내 눈치를 살피지?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녀의 시선에서는 내가 나쁜 사람 같아 보였겠지?
왜 지가 세상 상처 다 받은 척 구는걸까?
순간 짜증이 났다.
나는 여전히 자리에 붙박이처럼 앉아있는 세진이를 내버려두고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떴다.
*********
2학년부터는 전공수업 많았다.
그렇기에 세진이는 같이 수업을 맞춘 것도 아닌데 다음 수업에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수업부터는 굳이 같이 앉지는 않았다.
나는 수업을 들으며 진서에게 카톡을 했다.
[진서야 나 개총있다는데 잠깐들려도 돼?]
[과 생활이니깐 갔다와]
확실히 pc카톡이라 그런가 답장이 칼 같다.
[응 알았어]
[그런데 대신 지금 잘 넣고 있는지 사진 찍어서 보내봐.]
진서의 카톡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괜히 누가 본 사람이 있는지 옆을 둘러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아직 뱃속에 든 콘돔을 빼지 않았다.
세진이 때문에 잊고있었는데...
의식하게되니 희미했던 뱃속의 이물감이 선명해지며 아랫배가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응...]
다음 쉬는 시간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위에 앉았다.
스커트를 들고 팬티를 내리고 다리를 벌려 셀카모드로 내 음부를 비췄다.
왁싱한지 얼마 안된 민둥한 음부 위에 '진서의 육변기'라고 써진 굵은 글씨가 보인다.
바빠서 확인을 안했었는데 내가 써 달라고 한 말의 반대로 써놨다.
뭐 어쩔 수 없다.
나는 앙 다문 균열 사이로 튀어나온 실과 글씨들이 잘 보이게 허리를 앞으로 빼서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민망함을 무릅스고 사진을 진서에게 보냈지만 진서는 만족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안에 제대로 넣고 있는지 콘돔 빼서 보여줘봐]
까탈스럽다.
나는 다시 실을 잡아당겨 콘돔을 틈 사이로 살짝 보이게 만들었다.
그 뒤 다시 한 장을 찍고 전송하였다.
[이제 됐냐?]
[엉]
치... 별걸 다 체크한다.
그런데 이 콘돔은 어떻게 하지?
사실 넣었을 땐 당장이라도 빼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러자니 처치하기 곤란하다.
옷은 주머니가 없는 옷이었고, 가방에 넣자니 쉽게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대참사겠지.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중지로 콘돔을 다시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중지가 축축하다.
나는 하반신에서 올라오는 야릇한 감각을 애써 무시한 체 다시 팬티를 올렸다.
*******
개강총회는 기억과 똑같았다.
시끄럽고 활기찼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시킨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에 편입하게 된 서지우라고 합니다. 사정 상 휴학을 많이해서 아마 2학년 남자애들이랑 동갑일 꺼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와~"
"예쁘다!"
"언니 예뻐요."
사소한 소개에도 큰 호응을 해준다.
착한 마음씨였지만 기가 빨린다.
그렇게 나는 주변과 어울리며 술을 마셨다.
다른 한쪽 구석에 세진이의 얼굴이 보였다.
세진이의 테이블은 여자애들이 많았다.
그리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여자애들의 시선 또한 세진이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개총에 참가해달라고 권했던 과대도 저기 앉아있었다.
'하긴 저놈은 인기가 많았지.'
키 크고, 몸,좋고, 얼굴 괜찮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법 했다.
"지우라고 불러도 되지?"
"어? 응 편하게 불러."
한 남자 복학생의 질문에 가식적인 웃음을 띄며 대답했다.
세진이와 반대로 내 테이블은 다 남정내들 뿐이다.
여자가 되었다고 한들 팔자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여자애들이랑 하하호호 이야기 하고 싶은데...
내 주위를 둘러싼 선배들과 복학생들,
난 몇 몇 애들의 대충 아는데 그들은 날 모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색하다.
"어쩌다 휴학했어?"
"아, 몸이 좀 안 좋아서."
"어디 살아?"
"저기 xx동에 아파트에요..."
그렇기에 그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단답형으로 대답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2학년 복학생 중 하나가 내게 질문을 했다.
아마 휴학하기 전에 얼굴을 아는 애였다.
김서준인가? 그랬을 꺼다.
"그런데 세진이랑 잘 아는 사이같던데... 혹시..."
"아, 아 아니야 그런거... 그냥 중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라서 그래..."
그러자 그 남자애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뻔한 이야기들과 농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술에 취했고, 한자리한자리 쥐도 새도 모르게 비기 시작했다.
나도 이만 가야되나 생각하고 있을 때 한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아까 그 과대였다.
"언니! 혹시 저희 2차 갈 생각인데 같이 가실레요?"
"2차?"
"네, 2학년끼리만 소소하게..."
그녀는 술이 들어갔는지 처음 봤을 때 보다 훨씬 친근한 모습으로 옆에 앉아 팔짱을 껴왔다.
"그,그럴까?"
뭐, 괜찮겠지? 진서도 2차 가지말란 말은 안했으니.
그렇게 그녀의 손에 이끌려 다음 술집으로 향했다.
나 빼고 5명의 남녀, 그리고 그 중에는 세진이도 있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세진이에게 꽤 관심있어 보였다.
과대라는 여자애는 술에 취한 척 웃으며 세진이의 팔을 두들기기고 있었고 그에 세진이도 맞춰서 웃음을 짓는다.
아마 과대 여자애가 세진이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녀는 충분히 끼를 다 부렸는지 이제는 내게 질문을 날렸다.
"언니 근데 세진오빠랑 무슨 사이에요?"
아까 들었던 질문
2학년들은 첫 수업 때 세진이와 내가 늦게 들어온 것이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그냥 중학교 동창이야."
"아~ 그렇구나... 세진이 오빠가 언니 2차가면 갈꺼라고 한 거 알아요?"
아, 그래서 나보고 2차가자고 한거구나.
그런데 세진이 이 녀석은 날 그렇게 껄끄러워 하더니 뭔 생각인 거지?
그래도 이 녀석도 나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생각은 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진이의 얼굴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그 말 때문인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그 때 날 범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래... 그 때는 술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거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그냥 용서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술에 취했을 때 그런 행동을 반복하기라도 하면....
"그런데 언니, 세진이 오빠랑 싸운거에요 아까?"
그녀는 그 때 냉랭했던 분위기를 읽은 것 같았다.
"아... 응... 그냥 세진이가 좀 잘못한 게 있어서."
그 말에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 다물고 있는 세진이와 아무렇지 않게 안주를 입에 무는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
"아, 뭘 잘못했는데요? 물어보면 안되나? 헤헤.."
"별거 아니야, 말하면 쪼잔해져서 사람이..."
별거 아니기는, 그게, 내가 답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세진이 오빠 용서해주면 안돼요? 세진이 오빠 착한 거 같은데...이 오빠 아까부터 언니 눈치 엄청 봐요."
그녀는 애교 섞인 말투로 내게 조르듯 말했다.
"어? 어....봐서."
그녀의 오지랖 넓은 알지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몰라서 하는 말이었기에 그 닥 밉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모르는 질문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술자리는 더욱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