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010. 오후 교육(1)
이세계에 온 지 삼 일 차.
현재 나는 오전 교육을 마치고, 소피아와 함께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다.
한 손에는 쿠키가 잔뜩 들어있는 바구니를 든 채.
'이런 거 안 줘도 된다니까.'
소피아가 챙겨준 간식거리였다.
방금 점심을 먹은 터라 내키지 않았지만, 소피아가 날 위해 열심히 만들었다는 걸 알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저 멀리 대현자가 보이자 소피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전 이만 가볼게요. 오후에도 교육 열심히 받으세요!"
"…."
내가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고 있자, 뒤늦게 자그마한 소리로 한마디를 붙인다.
"…정우님…."
그제야 웃으며 대답해준다.
"응, 소피아도 이따 봐~."
베시시 웃고 왔던 길을 돌아가는 소피아.
그녀의 뒷모습을 잠깐 쳐다보다가, 대현자를 향해 걸어간다.
"안녕하세요!"
"자네 왔는가."
대현자는 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날 반겨주었다.
그런 대현자의 옆에 실제로 처음 보는, 하지만 보자마자 뭔지 바로 알만한 커다란 물건이 존재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간이 건물에 바퀴가 달린 형태.
그것은 '마차'였다.
신기하다는 듯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대현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자네가 오늘 운전해볼 거라네."
바로 시작할 건지, 마차에는 이미 말들이 네 마리나 연결되어 있었다.
그중 두 마리는 익숙한 녀석들이었다.
"어? 얘넨…."
내가 가까이 가서 말들을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마차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어제 기사님께서 타셨던 애들입니다."
어제 오후 교육 내내 말 함께 했던 도와줬던 중년 남성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이고, 기사님. 말 편히 하시라니까요. 선택받으신 분이 저 같은 평민에게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대현자의 눈치를 슬쩍 보는 중년 남성.
대현자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인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내게 전전긍긍하며 존댓말을 한다는 게, 어릴 때부터 장유유서를 배웠던 나에겐 무척이나 어색했다.
'이게 계급사회인가….'
어제 소피아의 반응도 그렇고 영 적응되지 않는다.
"그러면 바로 시작하겠네. 우선… 음…? 잠깐, 자네…!"
대현자가 말하다 말고, 갑자기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다.
"벌써 마나를 모았는가. 이건 마법사보단 기사들의 마력 운용법인데…."
순간 내 직업이 기사인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내 대현자가 방금 말한 게 흔히들 말하는 나이트, '기사(騎士)'라는 걸 깨달았다.
이놈의 번역 마법이 문제였다.
"혹시 어제 교육이 끝나고 누군가에게 따로 배웠는가."
진지한 대현자의 물음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대단하군, 대단해. 역시 신탁을 받은 용사들인가.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고 마나를 이렇게 정제시키다니…!"
"…?"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싶다.
그냥 마나를 단전에 모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것도 만화나 소설에서 나온 걸 따라 했을 뿐인데….'
게다가 어제 보니까 하은은 마나를 이용해서 마법이라도 쓰지, 난 모아두기만 하고 사용법도 모른다.
아, 하나 알긴 하네.
성관계 때 여자를 한 방에 보내버리는 방법.
'앞으로 쓰지도 않을 거지만….'
그건 내 고통이 너무 심하다.
혹시 단전에 모아둔 마나를 다른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나 싶어 물어봤는데, 대현자의 대답은 날 벙찌게 만들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나. 난 기사가 아닌데. …물론 이론상 알기야 하지만, 그냥 나중에 제이드 후작한테 배우게나."
막상 알려주는 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적휘적 젓는 대현자.
그러더니 다시금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바뀐다.
"그건 그렇고 자네 능력에 대해서나 더 알아보겠네. 얼른 마차로 오르게나."
휙휙 바뀌는 그의 모습에 잠깐 당황했다.
"…운전석으로 오를까요?"
"아니, 우선 마차 안에 타보게나. 그때도 능력이 발휘되는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대현자의 말을 듣고 마차에 올랐다.
생각 없이 마차를 오르다가, 안에 한 사람이 타고 있는 걸 보곤 깜짝 놀랐다.
의외이면서도 한편으론 이곳에 있는 게 당연한 인물.
대현자에게 교육을 받는 하은이었다.
미리 마차에 타고 있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날 흘깃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
멋쩍게 인사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녀는 시선을 옮겨 내가 들고 있는 쿠키 바구니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드실래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린다.
내가 하은에게 바구니를 건네주었을 때, 밖에서 대현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능력은 어떤가?"
"아…! 잠시만요!"
순간 마차에 탄 이유를 까먹고 있었다.
황급히 나 자신을 살펴본다.
마나는 새로 생성되는 것 없이 그대로.
생각해보니 홀로그램 창도 안 떴다.
"안되는 거 같은데요?"
"서 있지만 말고 앉아보게나."
대현자의 말에 마차를 둘러본다.
마차의 내부는 꽤나 넓었다.
좌석은 앞뒤로 마주 보게끔 되어있었는데, 족히 여섯 명, 무리하면 여덟 명까지도 탈만 해 보였다.
그리고 한쪽 좌석엔 하은이, 마차 정면 쪽을 바라보게 앉아 있었다.
나는 고민할 것 없이 그녀의 건너편 쪽에 앉았다.
그러자 쿠키를 먹고 있는 하은의 얼굴이 바로 보인다.
평소 같은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왠지 눈이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 밖에서 대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도 그런가?"
"네. 안되네요."
"흠…. 그러면 내려서 운전석에 올라보게나."
대현자의 말에 따라 마차에서 내리려다, 바구니에서 쿠키를 몇 개 꺼내 챙겼다.
아무리 봐도 운전석에 다녀오면 쿠키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 바구니에 한가득 들어있었는데, 벌써 바닥을 보인다.
"아저씨도 좀 드세요."
마차에서 내리며,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중년 남성에게 쿠키를 하나 쥐여줬다.
그러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두 손을 공손히 내미는 남성.
"앗, 감사합니다…!"
나이 지긋이 드신 분이 저런 행동을 하니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세계가 계급사회라는 걸 생각해 내색하진 않았다.
"대현자님도 드실래요?"
사실 이건 예의상 물어본 거였는데 선뜻 손을 내미는 대현자.
"잘 먹겠네."
덕분에 내 수중엔 한 개만 남았다.
'소피아에게 미안한걸.'
날 생각해줘서 만들어줬는데, 겨우 하나 맛보게 생겼다.
마지막 남은 쿠키를 입에 털어 넣고 운전석에 올라갔다.
중년 남성도 입 안에 남은 쿠키를 꿀꺽 삼키곤, 황급히 내 옆 조수석에 올랐다.
-탈것에 탑승하셨습니다.
-직업 [기사]의 능력이 발휘됩니다.
기다렸다는 온몸에서 마나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대현자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석에 올라야 하는 건가."
"기사님. 마차를 끌 때는 먼저…."
조수석에서 중년 남성이 무언가 말하려 할 때, 내가 먼저 익숙한 듯 고삐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말하다 말고 내 눈치를 봤다.
"아… 이것도 승마 때처럼…."
점점 작아지는 그의 목소리.
따로 배운 적도 없는데, 이미 마차를 끄는 방법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미 한번 경험해본 거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고삐를 당겨 마차를 움직여 본다.
공터가 좁아 달리진 못하지만, 천천히 마차를 움직이는 건 문제 없었다.
"잠깐 멈춰보게나."
대현자의 말대로 멈춰 세우자, 그는 가까이 와서 마차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차의 기능적인 부분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강도는 올라가는군. 이어진 말까지도 마나가 흘러가는 걸 보면 기능적인 부분도… 그런데 마나의 흐름이 어제랑은 살짝 다른 거 같은데…."
평소처럼 점점 작아지는 대현자의 혼잣말.
그러나 전과 다르게, 이번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제 말을 탈 때와 지금 마차를 끌고 있을 때, 마나의 움직임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감각적인 부분이라 표현하긴 어려웠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마나가 단전을 거치지 않는다?
덕분에 어제처럼 마나를 단전에 쌓아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내려보게나."
내가 운전석에서 내린 후에도 한참을 살펴보던 대현자는,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네. 기사는 이쪽으로 와보게나."
대현자는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의 방향으로 날 데려갔다.
그러더니 말 두 마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두 말과 다른 두 말의 차이를 알겠는가."
"…어제 제가 탔던 말들 아닌가요?"
"맞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 두 말에겐 자네의 '마력 잔여물'이 남아있다는 거라네."
"…?"
내가 이해를 못 하고 있자, 그걸 알아챈 대현자가 인자하게 웃었다.
"쉽게 말해주겠네. 자네가 직접 탄 말들은 영구적으로 마나를 갖게 되었네. 이런 건 유명한 명마들이나 가능한 건데, 자네가 탄 것만으로도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거지."
"마나를 갖게 되면 좋은 건가요?"
"당연하다네. 인간만 해도 마나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니, 동물은 어떻겠는가. 물론 마나의 양이 너무도 미미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무조건 낫다네. 아마 자네가 탄 말들은 다른 말보다 건강하고 병치레도 적겠지."
'건강하고 병치레가 적어진다니….'
그 말을 듣자 바로 생각난 게 소피아였다.
그녀도 분명 내 마나를 받아들였으니 저런 혜택(?)을 받지 않겠는가.
속으로 기뻐하고 있는 동안 대현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반면에 마차를 운전할 땐, 자네의 마나가 기사들이 자신의 신체나 칼을 강화하듯 사용됐네. 이해되는가?"
거기까지 듣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검기나 오러 블레이드 같은 건가?'
각종 창작물을 봤던 나로선 익숙한 내용이었다.
전에 소드 마스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떠올렸던 단어이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엔 그 대상이 검이 아니라 마차였지만 말이다.
"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자네는 내일부터 여기에 올 필요가 없다네. 앞으로 소드 마스터인 제이드 후작에게 배우게나."
"…네? 내일부터요?"
소드 마스터에게 배우는 건 다음 주부터 아니었나?
그러나 대현자는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어차피 자네는 벌써 마나를 다룰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자네에게 가르칠 건 다 가르쳤다네.'
뭐 가르쳐 준 게 있나…?
마나 느끼는 법이나 다루는 법 전부 나 혼자 한 거 같은데….
어쨌든, 1주일을 예정했던 대현자의 오후 교육은 이틀 만에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