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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도망


[쾅!] “푸후...그래서 자네는 이제 어쩔 생각이지? 다른 출구라도 찾아볼 생각인가?” [콰-앙!]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로 긴장을 풀던것도 잠시 여성은 콘크리트 두께의 철문이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더니 침음을 삼키며 나에게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이곳이 유일한 출구이자 입구야. 설령 다른 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 녀석을 대리고 이 넓은 벙커 안을 수색할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어떻게든 여성을 대리고 저곳을 뚫어야 한다. “...하아” 담배를 한 손에 꼬나쥔 채 여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잠시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수류탄을 가져온 장소 너머에 먼지가 쌓인 박격포랑 고폭탄들이 나열되어있는걸 봤네, 차라리 그걸로 저 녀석들을 날려버리는 게 어떤가?” “무리야 수류탄에 맞아서 곤죽이 된 벌레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저러고 있는 거 봤잖아. 다음에는 나조차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더 거대해질지도 모를일이야 너무 위험해” “그럼 자네는 어찌하고 싶지? 이대로 담배나 줄창 태우다가 강철문을 뚫고 나온 저 괴물이랑 맞서 싸울 생각인가?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괴수들의 싸움에 괜히 끼어들어 죽고 싶지 않다네” “....” “내 생각에는 다른 방법은 없어. 시간도 우리편이 아니고 저 괴물까지 곧 밖으로 나오려고하네. 다른 시체들에 들러붙은 벌레들까지 전부 한곳에 모아서 박격포로 완전히 곤죽을 만들고 난 다음 여기서 나가는 게 제일 현명한 방법이겠지.” 나는 손에서 타들어 가는 담배를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고폭탄이 여기서 터지면 그 여파는 어쩌려고? 잘못하면 그대로 벙커가 주저앉을 수도 있어 차라리 내가 저새끼들을 유인하는 사이에 너 혼자 먼저 밖으로 나가. 한두 마리 정도 보초로 서 있긴 할 텐데 속도는 달리는 좀비들이랑 비슷하니까 어찌어찌 가능할 거야. 그 뒤로 내가 나가면 되는 거고. 저뚱땡이 따돌리는 정도야 쉬울것 같으니까” 또 다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금이라도 당장 열릴 듯이 한껏 뒤틀려버린 강철 문과 그 너머로 잠깐씩 보이는 거대한 살점으로 이루어진 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하... 자기 희생이라니. 대단하군그래. 조종당했을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갔군. 자네밖에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는데 말이야. 어느쪽이 본성인거지?” “...내가 기억하는건 방안에 혼자 박혀있던거야.” “방에 박혀있던 사람이 그렇게 강한힘을 손에넣었다고?” “말했잖아. 나도 기억이 제대로 안 난다고. 밖으로 나가면 집으로 되돌아가서 차근차근 기억을 되찾아 나갈거야. 이딴 몸이긴 해도 튼튼한것 같으니 어디 가서 맞아 죽을 일은 없겠지.” “그래 그럼 나는 자네가 열심히 뛰는 동안 숨어있도록 하지. 열심히 달려보게나” 툭 하고 여성은 내어 거를 몇 번 두드리고는 그대로 전등이 깜박거리는 복도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완전히 자신이 상관이라는 태도에 어이가 없어 잠깐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으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받은 담뱃값까지 합쳐서 빚은 이걸로 다 갚았다고 쳐도 되겠지. “키에에에엑!” “그래그래 난 준비됐으니까 그만 울어. 너희 같은 새끼들은 절대 쫓아오지도 못할 테니까 열심히 쫓아와 보렴” 나는 문틈으로 보이는 녀석을 도발하며 몸을 풀었고 하나로 합쳐진 거대한 녀석이 도발에 반응하 듯 지금까지 보다 더욱 크게 몸을 휘적이더니 이윽고...강철문이 그대로 뜯겨나가 반대편 벽면에 처박혀버렸다. “이거 많이 화난것 같은데?” 마치 거대한 하나의 육벽처럼 거대한 몸통 하나에 그 몸을 지탱하기 위해 꾸역꾸역 달린 여러 개의 팔과 다리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공허한 눈알들. 옛날 영화...그래 무슨 무슨 행방불명에서 나오던 모든 것을 먹어치울 것같이 생긴 탐욕스러운 귀신과도 같은 생김새의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내 몸을 먹어치우기 위해(혹은 그대로 박살을 내버리기 위해) 손을 우악스럽게 뻗었다. 팔뚝에서 팔뚝이 이어진 기괴한 손의 모습에 잠깐 움츠러들긴 했으나 간단하게 몸을 숙여 그 손길을 피한 나는 곧장 여성이 사라졌던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놓치지 않겠다는 듯 커다란 비명과 함께 벙커 전체가 뒤흔드는듯한 굉음을 내뿜으며 나를 뒤쫓아오는 살아있는 육 벽. “(확실히 이 정도 속도라면 일단 따라잡힐 걱정은 없을 것 같은데 괴물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따돌려서 밖으로 나가면 되겠지.)” 생김새치고는 녀석들이 굉장히 느리다는 안일한 마음 가짐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뒤를 돌아 나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따라오는 녀석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야 그렇게 느려터져서 따라잡을 수 있겠냐?” 우당탕하는 커다란 소음을 일으키며 작은 벽면이나 쌓여있던 시체 그리고 갖갖이 물품들을 말 그대로 박살을 내며 다가오는 녀석들... 아니 녀석들이라고 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분명 육 벽은 나를 착실히 따라오고 있었으나 그 옆에 있던 녀석들은 말 그대로 녀석의 몸을 타고 올라 입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일개미가 다른 일개미들을 따라가듯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시체들이 입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커지는 육 벽의 몸체는 어느새 통로를 가득 메워가기 시작했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머금었던 웃음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남은 건 그저 추악한 육 벽에 의해 가로막혀진 통로를 보고 처절한 현실을 깨달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만이 남았다. “빌어먹을..” 입에 착 달라붙는 욕설에 흠칫한 것도 잠시 나는 곧장 육 벽의 입가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시체들의 행렬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나갔으나, 육 벽에서 부터 날아오는 수십 개의 기다란 팔들이 그것을 방해했다. 숙이고 피하고 어떨 때는 바닥까지 뒹굴어가며 어찌 저찌 앞으로 나아갔으나, 자신의 동료들이 입으로 들어갈수록 자동차의 기어를 올리듯 더욱더 빨라지는 손들의 속도에 이대로라면 더 접근하기도 전에 잡혀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유인을 하지 말고 나오자마자 얼굴을 짓밟았어야 했는데..아 그러면 여성이 나가지 못했으려나? 뒤늦은 후회를 하며 거기를 벌린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앞을 향해 나아갔다. 아마...내기억대로라면 얼마 안 가 벙커의 끝에 다다르겠지만 그 옆에 작은 창고 같은 방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을 들어간다면 괴물과 그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돌아온다면 이성을 잃겠지만, 저 육 벽에게 잡혀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났겠지. “키에에에엑!” 내가 다시금 거리를 벌리자 더욱더 화가 난 듯 나를 뒤쫓기 시작하는 육 벽의 고성을 뒤로하고 나는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한번씩 뒤를 돌아볼수록 조금씩 커져가는 육 벽과 좁혀지는 거리. 쉼없이 입으로 들어가는 시체들.... 도대체 저 벌레들은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설마 그 엄청나게 쌓여있던 시체들 전부가 벌레들이 아니었을까? “허억...허억” 전력으로 달리자 금세 모습을 드러내는 벙커의 끝. 그곳은 전력이 들어오지 않아 무척이나 어두웠지만, 나는 기억이 이끄는대로 곧장 옆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쿠웅! 나를 쫓던 속력 그대로 벽에 박았는지 거대한 진동이 내부를 뒤흔들었다. “크으으에엑!” 어서 나오라는 듯 팔 하나가 방안을 휘저었고 잠깐 숨을 고르고 있던 나는 다급히 떨어져 나간 문짝을 들어올려 팔을 내려찍었다. 쿠웅 쿠웅. 파리채로 벌레를 잡은듯 바닥에 쳐박힌 으깨진 팔이 꿈틀거리며 토사물과도 비슷한 빨간색액체를 내뿜자 방귀벌레의 시체냄새와 역한 구정물이 섞인 기이한 냄새가 방안에서 퍼져나갔다. “역겹고 징그럽네..” 코를 막은 채 콱하고 발로 펄떡거리는 팔을 발로 무참하게 짓밟자 내용물이 실한 벌레를 밟는 감촉과 함께 풍선이 터지듯 사방으로 팔 모양으로 뭉쳐있던 벌레들이 흩어져 밖에있는 육벽으로 향했다. “징그럽군..” 발에 밟혀있는 벌레를 계속 밟아준 나는 그제야 자리에 앉아 다시금 숨을 골랐으나 팔이잘린것에 더욱더 화가났는지 거대한 손을 억지로 방안으로 집어넣으려는 육 벽의 소리에 한숨을 내쉬며 몸을 숨길만한 장소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꽤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듯 먼지가 잔뜩 쌓인 방안에 널브러진 군복을 입은 뼈다귀들. 쌓여있는 병장기... 정말 이곳이 군부대가 사용하던 공간이라는 것이 이제서야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웃기네 군용 전투식량을 그렇게 먹었던것 같은데 이제서야 군용 벙커라는게 실감이 나다니” 하긴 이렇게 큰 벙커가 한국에 있으려면 군용이겠지... 실없는 소리를 하며 나는 구석진 곳에 쌓여있는 탄박스 사이에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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