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감금(2)
그 괴랄 한 이빨을 사정없이 들이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순한 애완동물 마냥 그르렁거리며 여성의 손에 자신의 거대한 얼굴을 비비는 괴물을 한동안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이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그 자리에 쓰러져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정신 나갈 것 같네...빌어먹을”
분명 꼬맹이와 좀비들에 의해 죽어있을 터인 괴물이 멀쩡하게 살아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골치가 아파 죽을 것 같은데, 그 괴물이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뭉텅이로 뜯겨나갔던 정신력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차라리 자고있던 여성의 목이라도 한번 졸라봤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괴물이 움직이기 전에 달려 도망쳤다면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막막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뇌가 멋대로 뻔히 실패해 단숨에 여성의 입으로 직행할만한 생각들이 계속해서 떠올렸기에 나는 그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꼬맹이를 생각했다. 나를 바라보며 웃던 모습, 처음 백신을 사용해 어눌했던 말을 꺼낸 모습, 첫 섹스...
“키에엑”
“응....그...게 좋을 것 같아”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망상의 굴레가 나를 집어켜가던 도중, 내 등 뒤에서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괴물과 여성의 목소리가 억지로 비참한 현실로 의식을 되돌려 주었기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엿 같은 현실에서 도피해 드러누웠거나 말거나 현실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 또다시 그걸 잊을뻔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이대로 주저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꼬맹이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이상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또...자는 거야? 안돼 일..어나”
“일어날 거다 빌어먹을 새끼야. 왜? 또 내 몸이 먹고 싶어지기라도 한거냐? 맛보기만 한다면서 아주 뼈까지 싹싹 발라먹을 기세네”
잠시도 내가 편히 쉬고 있는 꼴을 보기 싫은 건가 싶어 얼굴을 찌푸리자, 방금까지 괴물옆에 서있던 여성이 단숨에 내 곁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변한적 없는 표정. 마치 얼굴 근육이 굳어버린 듯한 소름 끼치는 얼굴에 나는 몸을 뒤로 물렸다.
“그...래? 그럼....”
내가 여기서 오줌을 싸든 똥을 지리던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을 것 같은 인형 같은 모습과 또 다시 어디한군데 뜯어 먹힐 것 분위기에 또다시 생존본능이 경보를 울렸다.
아무리 몸이 튼튼하게 변했다고 해도 이번에도 피를 빨아먹히거나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빠르게 생각해 입을 열었다.
“이봐 아무리 튼튼한 나라도 지금 먹으면 단번에 죽어버릴걸? 사냥인가 뭔가 한다며 나중에 먹지그래”
지금까지 여성이 했던 말들과 행동들을 떠올렸다. 여성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사냥이라던가, 힘을 얻는다든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나를 단숨에 죽여 먹어치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나는 그 가능성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여성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 그럼 나..중에 맛...보기 할래”
겁먹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여성의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계속 마주 보자, 여성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내 목에 얼굴을 파묻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방금 피를 빤 걸로 배가 다 찼으리는 없을 테니 아마 자신이 새긴 상처에서 나는 피 냄새만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식욕을 참으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식욕을 참아가면서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이유가 있는 거냐?”
“사냥...강해져”
“그건 아까도 말했잖아. 사냥인가 뭔가 그 엿 같은 말좀 그만할 수는 없는거냐? 뭐 먹을수록 강해진다거나 그런 거냐?”
“....”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지그래 애당초 사람이었을 때 기억은 남아있냐?”
여성은 더는 내 말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엄청난 식욕을 억누르기에 여념이 없는 것인지 계속해서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씹....그래 내가 뇌가 썩어 문드러진 년한태 너무 많은걸 바란거겠지.”
주인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괴물의 그르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방안에 흥분한 여성의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고 그 역겨운 숨소리가 점점 나를 옥죄는 것 같았기에 나 또한 욕설을 마지막으로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여성의 식욕이 가라앉기만을 얌전히 기다렸다.
“음....됐...어”
“하 참 오래...!!”
“키에엑”
인고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여성이 내 품 안에서 떨어져 나가 안도하던 것도 잠시. 됐어라는 말이 끝나자 마자 괴물의 양팔이 방안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나를 낚아챘다.
“뭐,뭐하는건데!”
“갈..곳있어”
여성은 내 질문에 짧게 대답을 해주고는 곧장 어두컴컴한 복도를 앞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고 뒤이어 내 의견 따위는 묻지도 않은 채 괴물이 그 뒤를 따라 이동했다.
내가 남은 한쪽 팔로 어떻게든 벗어나기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나를 붙잡은 괴물의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기에 결국 벗어나는 것을 포기한 나는 문뜩 내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가득 들어찬 어두컴컴한 복도를 걷고 있는 피 칠갑한 여성과 괴물 그리고 한심하게 끌려가는 나. 마치 무슨 B급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림인 것 같아 누구에게 보내는지 알 수 없는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왜..웃는거야?”
“정신적으로 몰려서 이상한 생각을 좀 했거든 왜 마음에 안 들어?”
한참을 혼자 미친 듯이 웃고 있자 여성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으...음?”
“너희가 굉장히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우스꽝스러운 놈들한테 붙잡혀서 몸을 뜯어먹히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이도 들고... 뭐 여러 가지 생각이나서 그런거지”
“생...각”
그저 기다란 복도만이 이어져 있는 공간의 딱 중간지점에서 생각 이라는 단어와 함께 여성이 발걸음을 멈춰 새웠다.
“쓸데없는 생각이지 뭐 어찌하겠냐 사람 팔이랑 손가락이 뜯겨나가고 겨우 죽였다고 생각한 중간보스가 최종 보스랑 짝짜꿍하고 있는데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모..르겠어”
“그래그래 뇌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먼지가 되어 죽어버린 시체가 이해할만한 생각은 아니 긴하지”
“...음”
여성이 괴물에게 붙잡힌 나를 올려다보았다. 인형과도 같은 얼굴의 미소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무표정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내 옆으로 다가온 여성이 내 목을 움켜잡았다.
“살아...있어”
온몸이 가시로 찔리는듯한 감각 순식간에 적막했던 분위기가 살기로 돌변했다. 무언가 역린이라도 건드린 건가 싶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여성은 만족했는지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자신이 멈춰 섰던 위치로 되돌아갔다.
“응...이제 그러...지마”
“콜록, 콜록 ...알았으니까 빨리 움직이지 그래 머리가 어지러워서 기절할 것 같으니까 할꺼면 빨리해”
“다..왔어”
여성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을 두드리자 복도의 벽면이 돌아가며 숨겨진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고차판매장에서 보았던 숨겨진 방과 비슷한 모양새에 놀라던 것도 잠시 여성이 뒤이어 말한 단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엄…. 마 인..사해 사냥할 먹이야”
“그...어어”
열린문 안쪽에서 풍겨오는 죽은자의 냄새와 간헐적으로 깜빡거리는 전등사이로 남성과 여성 모습을 한 좀비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가 그랬어. 음식을..먹을땐 인사하라고”
“가정교육한 번 잘 받았네”
양다리가 잘려 엉금엉금 기어오는 좀비들과 여성의 말. 그제야 조금이나마 여성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성은 처음부터 나를 자신이 먹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의 간을 보듯 정말 맛만을 본채 이 녀석들에게 나를 먹일 생각이었다.
“순순히 살아서 저 새끼들 입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는데”
“알...아 오늘은...인사만”
나의 반항 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말을 이어가는 여성의 모습에 어쩐지 사라진 팔부분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던 환상 통이 더욱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빨리... 건강해져야 해”
여성은 건강이라는 단어만을 되뇌이더니 숨겨진 방안 한곳에 가득 쌓여있던 음식을 하나 집어 내곁으로 다가왔다. 썩어있거나 시체가 아닌 정말 사람이 먹을 수 있을만한 음식.
“이거 전투식량이잖아? 어디서 구한 거냐?”
“몰...라 엄마가 필요...하다고했어 옛날...부터 있었어”
“옛날? 그러니까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부터 이런 걸 준비했다 그거냐?”
“으...응”
뭐 저 좀비들이 변하기 전에는 극단적인 생존주의자였던 건가? 여기는 일종의 패닉룸이고?
“....이런걸 전부 준비했는데 결국에는 써보지도 못하고 변해버리다니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불쌍하다고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