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문제가 생기다
“그 저격총든 남자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그렇게 우리보고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건데? 이유나 좀 알고 알았다고 하자고 응?”
내 질문에 범죄자는 살짝 윙크를 하더니 우리에게서 멀어져 방 밖으로 나가며 슬쩍 입을 열었다.
“대장이 엄청 많은 함정을 깔아뒀거든 까딱하다가는 오빠도 크게 다칠만한걸로 잔뜩”
“함정?”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총알이 날아오거나 가구들이 떨어지거나 바닥으로 떨어져 꼬챙이가 되거나 기타등등 평범한 사람이라면 즉사할 만한 것들이 엄청 많아 내가 오기 전에도 약탈자들이 많이 오갔다고 하더라고 장소가 장소잖아 어쩔수없지 히히”
멸망한 세상에 음식과 사용할 만한 가구들이 잔뜩 모여있는 대규모의 할인점이니 그럴 만도 한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자, 범죄자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우리 인원수가 별로 안돼서 이 큰 건물 전체를 감시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대장이 함정을 여러 개 깔아놓자고 한 거야 아! 대장이 가진 총도 여길 털려던 새끼들한테서 뺏었다나 뭐라나 하여튼 조심해 밖에 있는 좀비들은 며칠만 있으면 흩어질 거야 내가 왔을 때도 그랬거든.”
“...그럼 다행이고 뭐 며칠 있다가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난 도망칠 거야”
“두고 보면 알아 우리 꼬맹이랑 같이 밤 잘보내고 아 혹시라도 3P 하고 싶으면 나 불...”
나는 쓸데없는 말을 하던 범죄자를 흘겨보고는 문을 강하게 닫아버렸다. 3P는 무슨 얼어죽을 끝까지 자기 할말을 내뱉고 가다니...
“꼬맹아 집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아...”
조용히 메트리스 위에 누워있던 꼬맹이를 붙잡아 꽉 끌어안았다.
“널 지키려면 더 강해져야 하는데 말이야”
◆
밥, 섹스, 잠,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약간 지루하긴 했어도 크게 불편한 것 없이 그저 좀비들이 하루 빨리 흩어지기를 바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도중 5일째가 되어서 갑작스럽게 문제가 발생했다.
[쾅!]
헐벗은 상태로 꼬맹이와 서로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우는 커다란 소음과 함께 판자로 대충 막아놓았던 창문에서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기다란 팔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마치 노리기라도 한 듯 아직 잠이 덜 깨 귀엽게 눈을 깜빡거리던 꼬맹이를 향해 거세게 휘둘러졌다.
“개새끼가 어딜..!”
꼬맹이를 향해 날아오는 촉수 같은 팔을 몸을 비틀어 간신히 등으로 막아낸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꼬맹이를 끌어안은 채 첫날 바닥에 꽂아 놓은뒤 방치해두었던 칼을 뽑아들어 그 역겨운 팔을 잘라냈다.
“빌어먹을...”
“키에에엑!”
역한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짐과 동시에 칼날까지 같이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잘라낸 팔에 대한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는 건지, 아니면 오래간만의 사냥에 희열이 느껴졌는지 썩어버린 뇌수가 질질 흐르고 있는 흉측한 얼굴을 창문 안으로 들이미는 변종은 끝까지 꼬맹이만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있었다.
“엎드려!”
나는 그 역겨운 시선에서 꼬맹이를 구하기 위해 곧장 팔에서 칼날을 빼내 목을 잘라버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뒤에 있던 문이 열리더니 권총잡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탕!]
들려온 목소리에 따라 고개를 숙이자마자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얼굴에 상처가 생긴 변종은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안으로 몸을 틀어넣으려 버둥거렸지만, 권총잡이는 용서 없이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몇주동안 보이지도 않더니 왜기어나온거야?”
고막이 터질 정도의 소음 끝에 마침내 변종이 움직임을 멈추자, 권총잡이는 나에게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봐 구해준 건 고마운데 공격받은 건 우린데 네가 왜 고통스러운 표정이냐?”
“그렇...? 크흠 아무리 그래도 옷은 입고 잠을 자는 게 좋을 거야”
괴로운 표정으로 변종을 쳐다보던 권총잡이는 이내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그대로 얼굴을 조금 물들인 채 뒤로 돌아버렸다.
“...확실히 여자이긴 한가 보네”
“어, 어?! 방금 뭐라고 한 거야?”
“그냥 혼잣말이니까 그냥 앞에 보는 게 좋을걸? 아니면 내 성기가 그렇게 보고 싶냐?”
“어 아 아니...”
뭐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듯한 행동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이제는 꿈틀거리지도 않은 채 축 처진 변종의 시체 앞에서 천천히 꼬맹이의 옷을 입혀나갔다.
“미안 꼬맹아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
“다됐으니까 여기 봐도 돼”
흘러내리려던 바지를 붙잡아 끌어올리며 말하자, 총잡이는 기다렸다는 듯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더니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
“음 아무리 여자친구라도 유아퇴행이라면서 마음대로 그...성욕을 해소시키면..”
“그건 우리일이니까 신경끄고 여기까지 도와주러 온 거 보면 밖은 괜찮은가봐?”
“...변종들만 어떻게든 하면 어디든지 안전한 거 알잖아? 일단 따라와 오늘따라 변종들이 많거든 좀비들도 이상하고 아마 뇌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
“뇌?”
“좀비들을 통솔하는 녀석 있잖아 우리는 뇌라고 부르거든 방금 죽인 놈은 팔이 기괴하게 늘어나니까 팔이라고 부르고 옥상에 자리 잡아서 뼈를 던지는 녀석은 멀리서 저격하니까 눈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뭐 그런 식으로 이름붙였어”
“얼핏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있는거냐... 하아 그래 말이 안 되긴 했지 나를 잡으려고 포위망을 만들거나 물러나게 하거나”
지금까지 상상했던 최악의 변종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듯한 권총잡이의 말에 나는 담배라도 있었다면 한 갑을 다 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속이 타기 시작했다.
“설마 몰랐던 거야? 이거…. 이야기 해줄 게 많겠네”
권총잡이는 자신의 권총을 주머니에 쑤셔 박더니 나에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한 후 유유히 앞을 향해 걸어 나갔고 나는 꼬맹이를 안아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욥! 오빠 왔어?”
밖에 있는 시체들의 역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조심히 권총잡이의 뒤를 따라간 끝에 여러 가지 가구들을 쌓아놓은 홀 중심에 도착하자 구석 침대 위에 여유롭게 누워있던 범죄자가 내 얼굴을 보더니 반가운듯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왔다.
“오빠?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새 친해진 거야?”
“아니 그냥 호칭이야 나이도 많아 보여서 히히”
“그…. 래?”
[파-앙!]
“뭐야 몸통이라도 나왔어?!”
“아 그대로 넘어지면서 수십은 깔려 죽었을걸?”
2층 난간에 설치되어 있던 밧줄을 통해 밑으로 내려온 남성은 사용한 듯 보이는 저격총을 양손에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지금 까지랑 움직임이 확연하게 달라 변종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려고 하는 모습하며 좀비들의 움직임이라던가 염병 아무튼 뭔가 이상해 썩어버린 뇌가 뭘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고”
“아니면 드디어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걸지도 모르지 며칠간 잠잠했던 것도 병력을 모으느라 그런 걸지도 모르고”
내려온 남성은 권총잡이와 몇 마디 나누더니 이내 뒤에 있던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꺼내 나에게 던졌다.
“상황이 바뀌어버렸어 친구 아니면 뭐 이방인?”
“니 편한 대로 불러 상관없으니까”
“그래그래 아무튼 이방인 좀비들의 움직임이 평소랑 달라 달려드는 변종들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 하며 최소한 몇 달은 여기서 썩어야 할지도 몰라”
“...그래서?”
불길한 예감에 나는 꼬맹이를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처음 말했었지 않아? 여기서 지켜주는 건 며칠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에게 한 달간 식량을 공짜로 줄 수는 없어”
“나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나가면 빚은 확실하게 갚는다고”
“구두약 속일 뿐이잖아. 난 너를 몰라 이방인, 이 며칠 간 아무말 없이 보호해 준것도 저 녀석이 사정 사정해서 그런 것뿐이야.”
철컥하고 방금까지 좀비를 쓰러뜨리던 저격총이 나에게 겨누어졌다.
“...대장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오빠에겐 그 방법은 진짜 진짜 별로야 우리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닥치고 있어 나도 그냥 뒤지라고는 하지 않아 통로가 하나 있어 지하배수로 거기도 좀비가 몇 있긴 할 텐데 바깥만큼은 아니야 거기로 빠져나가”
“거짓말 밖이나 거기나 비슷하잖아. 잊었어? 우리도 거긴 포기했던 곳이잖아! 거기로 기어가나 문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가나 똑같이 죽으라고 하는거나 마찬가지야 난 절대 반대야!”
“그러면 계속 아무것도 안하고 벙어리 여자친구랑 떡이나 치는 연놈들을 내버려 두자고? 무슨일 때문에 그룹이 해체된건지 잊은건 아니지?”
“그건…. 말 안 하기로 했잖아”
범죄자와 권총잡이가 반론했지만, 남성의 의지는 확고한 듯 보였기에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어쩔수없이 손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너, 너 뭐야”
뿌드득 하고 손을 뚫고 나온 칼날을 보고 얼어붙은 남성과 권총잡이를 향해 나는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띄워 보였다. 약해진 내 몸이 총알을 아직 막아주려나?
“야 권총잡이 난 첫날에 말했다? 더 쉬운 쪽을 고른다고”
“잠깐 오빠 기다려 제발 말로 해결할 수 있잖아 응? 싸운다고 한다면 나도 필사적으로 싸울거고 꼬맹이가 다칠수도있어?! 대장도 마찬가지야 제발 진정하고 대화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