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학교 (10)
“어째서 두고 가는 건데.. 우리가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너?”
자신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빠르게 수긍해 뒤로 빠진 게이와는 달리 멍하니 죽어버린 노예를 내려다보고 있던 남성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 그 몸으로 따라온다고 한다면 말릴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마음대로 행동해도 상관없어. 단지 같이가면 개죽음당할게 뻔히 보이니까 차라리 여기서 퇴로나 확보해주는 게 나나 너희들이나 좋은 거 같아서 말했을 뿐이야”
“큰형님 쪽이 밀리기 직전이라면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소리냐?”
남성이 얼굴을 들어 올려 나를 마주 보았다. 어느새 얼굴을 베었는지 볼살이 덜렁거리며 찢겨져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
“말해보라고 괴물 새끼야!!”
내가 한마디라도 말을 잘못한다면 광견처럼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으려 할 것이 눈에 훤히 보였기에 나는 쥐고있던 해머를 고쳐잡고 남성을 마주 노려보았다.
“만약을 준비할 뿐이야. 정문쪽으로 갔을때 대머리가 이미 죽어있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도 빠져나가야 할 거 아니야? 다 같이 죽자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겠지?”
“큰형님을 중심으로 모인 그룹이니 큰형님이 돌아가시면 그 즉시 붕괴할 거다. 게다가 쳐들어온 건 우리니까 보복도 들어올 거야 여기서 끝을 봐야 해 큰형님이 돌아가셨든 그렇지 않든 도망칠 생각은 집어치워”
대머리가 도대체 이 새끼한테 뭘 했길래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걸까?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리자 남성이 마체테를 뽑아 들었다.
“한번 해보자는거야?”
“됐으니까 둘다 그만해... 형씨 말이 맞아 우리가 가봐야 개죽음일 뿐이야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큰형님도 칭찬할만하잖아? 진정하고 물러나”
“칭찬? 지랄하지 마, 큰형님을 배신하고 자기만 살겠다는 말인데 뭐가 칭찬받을 일이야 씨발!!”
“하아... 이봐 형씨 권총이라도 가져가 저새끼는 내가 진정시킬게 약을 너무많이 쳐받아서 의존증이라도 걸린거겠지.”
시체들이 쌓여있던 땅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경찰관이 약간 이성을 되찾았는지 부딪히는 우리를 중재하며 피가 덕지덕지 묻은 떨어져 있는 자신의 권총을 가리켰다.
“남은 탄환은?”
“장전되어있는 3발 그게 전부야, 그것도 권총이 버텨줄지는 모르겠으니까 조심해. 그렇게 마구잡이로 갈긴 뒤에 수리는커녕 손질조차 하지 않고 다시 쓰는 거니까”
“총알이 남아도는 것 처럼 이야기하더니 10발도 채 남지 않았던 거냐? 강심장이네”
“어쩔 수 없잖아? 그대로 갔으면 노예 말고도 희생자가 더 나왔을 테니까... 어쨌든 가져갈 거지 형씨?”
경찰관은 자신의 옆에 떨어져 있던 권총을 움켜잡고는 내 품 안으로 던져 넣었다.
말했던 대로 땀과 누구의 피인지 모를 액체들로 범벅이 되어있어 누군가를 대변하듯 금방이라도 망가질 듯 위태로워 보이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100배 낮겠지.
“뭐 머리에 맞추면 3발도 필요 없을 거야. 고맙다 잘쓰고 돌려줄게”
“아니 오히려 미안하지, 나도 상처만 추스르고 따라갈 수 있으면 따라갈게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줘”
“아니 좋아져도 따라오지말고 여기나 지켜줘 아까 말헀잖아 퇴로를 확보라고 부탁한다”
잠시 권총을 쓰다듬듯 만지던 나는 이내 권총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분명 격렬했던 사격으로 인해 열이올라 뜨겁게 느껴져야 할 권총은 그 짧은 사이에 식은것인지 아니면 바이러스로 인해 몸이 뜨거운 것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차갑게 느껴졌다.
“그럼 출발할까 괴물 양반?”
도끼를 손에 퉁퉁 튀기면서 나를 지켜보던 여성은 준비가 끝나자 환호성을 내지르며 않길 듯 가까이 다가왔다. 나조차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년은 지치지도 않는 건가?
“... 그래 미친년아, 가보자고”
다행히도 따라올 생각은 없는 것인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남성의 적의 어린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전부 죽여!!”
“으랴아아아!”
학교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역하게 몰아치는 피 냄새가 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한대 뒤섞여 혼란스러운 운동장, 불타는 버스와 승용차들, 누구의 살점인지 모를 살덩어리들이 낭자한 지옥과도 같아 보이는 풍경... 나는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살폈고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나의 이목을 끌었다.
“있잖아 굳이 굳이~ 돌아와서 죽는 이유가 있는 거야 빡빡머리새끼야? 그동한 해준일이 있어서 얌전히 보내줬는데 쭉쩡이들 모아서 덤벼들다니.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내가 그 잘난 너의 모가지를 꺾어버릴 거거든 조금만 기다려라?!”
마구잡이로 송곳을 던져대며 홀로 적의 대장과 싸우고 있는 대머리와 어째선지 대머리와 멀리 떨어진 벽면 쪽에 몰아붙여져 있는 다른 노예들, 상황은 무척이나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돌아갈까? 아니면 들어갈까?)”
곧 숨이 끝어질 듯 격렬하게 싸우는 대머리를 보며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절로 찌푸려졌다.
만약 지금 들어간다면 빠질틈도 없이 끝까지 싸워야하지만 돌아간다면 저쪽에 몰려있는 인원들까지 전부 버려야한다.
“저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빨리 가자고?!”
고민에 빠진 나와는 달리 여성은 아직까지 싸우고있는 대머리를 보더니 흥분한 것인지 콧김을 뿜어내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저 싸움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무섭지도 않냐?”
“응 왜? 우리가 이길 텐데 너도 있고 큰형님도 있고 나도 있잖아? 나머지는 쭉정이긴 하지만 으하하하”
“...그러냐 그렇겠지 우리가 이긴다.”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여성을보며 고민을 저멀리 날려버린 나는 적의 대장을 향해 해머를 바닥에 질질 끌며 전진했다.
“뭐, 뭐야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자신들의 대장과 대머리의 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던 한 사람의 다리를 그대로 짓뭉개 쓰러뜨린 후 머리를 밟아 단숨에 터트렸다. 끈적거리는 혈액이 신발 바닥에 눌어붙었고 주변의 시선들이 단숨에 우리 쪽으로 향해졌다.
“이야 동생 생각보다 많이 늦었네?! 이 새끼는 금방 처리할 테니까 나머지만 좀 치워줘라 알았지~?”
대머리는 자신과 싸우고 있던 대장의 단검을 송곳으로 기세 좋게 흘리더니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역겹게만 느껴지는 대머리의 미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갑작스럽게 머리를 잃어 제멋대로 몸을 배배 꼬아대는 몸통을 해머로 내려찍었다.
“지랄... 자연스럽게 명령하지 말라고 빌어먹을 대머리 새끼야 쯧”
나를 보고 있던 인원 중 한 사람이인원들 중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방금까지 싸웠던 인원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빠른 속도에 대머리에게 한눈을 팔고 있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목이 배어졌고 목에서부터 끊임없이 피가 뿜어져 나와 배배 꼬인 시체를 적셨다.
대머리의 놀란 표정과 나를 지켜보던 적의 대장이 하품을 토해냈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마 겨우꼴랑 두명이서 지원을 온 건 아니겠지? 이런 병신들뿐이라면 간식거리도 안 되는데 말이야.”
나를 베어낸 남성은 이내 차가운 미소와 함께 힘이 빠져있으리라 생각한 나의 가슴을 걷어차려 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팔을 들어 올려 그 다리를 붙잡았다.
“내가 할 소리야 병신새끼야 이런 새끼들뿐이라면 간식거리도 안된다고”
“이거 놔 개새끼야! 씨발 무슨 힘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치유되어가는 목의 상처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남자를 비웃으며 나는 그의 다리를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때마다 눈에 띌 정도로 망가져 가는 남성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 나는 나를 보고 있는 적들에게 쥐고있던 남성을 내던졌다.
“...”
간신히 숨을 쉬고 있긴 하지만 온몸이 흙과 피로 엉망이 된 것도 모자라 눈알이 튀어나오고 코와 이빨이 부서져 있는 엉망진창이 된 자신들의 동료를 본 나머지 인원들은... 생각과는 달리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도와줄 생각도 없는거냐? 참 대단한 동료들 나셨네 빌어먹을”
“푸핫 야 저거 봐 대장 나으리 내가 최고로 아끼는 동생이 진화했어! 이젠 죽지도 않는 거 아니냐?!”
“나도 몰라 말 걸지...”
“헤헤 너 진짜 재밌네! 저번에 만났을 때는 그냥 단단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대머리와 싸우고있던 적의 대장이 들뜬 한숨을 내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순식간에 공기가 뒤바뀌며 어딘가 먼 허공을 보는듯한 눈동자가 내몸을 핥듯이 관찰하는게 느껴졌다.
“있잖아 너,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 아직까진 유효한데 어때? 저런 썩어빠진 녀석보다는 내가 좋지 않아?”
다정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