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129화
129.
“난 당신과 앞으로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아.”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난 당신과 이런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난 당신과 즐거운 섹스를 하고 싶어. 한쪽이 일방적으로 고생하거나 또는 한쪽을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그런 섹스 말고.”
“저... 저도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니. 그렇게 좋은 거 말고 말이야. 물론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아. 내가 흥분하는 모습에 당신도 흥분이 되고, 어떨 때는 당신 스스로가 날 이렇게까지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도 느끼는 그런 좋음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아...”
“물론 고마워, 너무 고마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당신 부탁을 내가 들어줘서 나에게 뭐든 해주고 싶다. 거기에서 당신의 모든 행동이 시작되는데... 난 솔직히 그렇지 않아. 내 생각은 당신은 나에게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이젠 철우도 없으니 솔직하게 말할게.”
“왜요? 왜 내가 고마워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나도 그러고 싶었거든.”
“예?”
“나도 당신과 이런 관계가 되고 싶었거든.”
“아...”
“나 역시... 물론 꼭 찝어 당신이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거야. 그렇지만, 나 역시 밤이 되면 세상의 모든 등불이 꺼진 것과 같이 외로웠거든. 그래서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번 수천번도 더 했어.”
“......”
“그런데 기회가 생긴 거야. 겉으론 아닌 척 했지만, 당신과 이런 관계를 내가 원하고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말이야.”
“......”
“미안해. 사과할게.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음... 제가 한마디 해도 돼요?”
“응. 얼마든지 말해도 돼.”
“당신이 어떻게 말을 해도 난 여전히 당신에게 고마워요. 예를 하나만 들어볼게요. 만약에 당신 집에 정말 버리고 싶은 가구가 하나 있다고 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무거워서 혼자 버릴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을 써서 버리기는 돈이 아까운 거예요. 그런데 우연히 내가 그 가구가 너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당신에게 돈을 주고라도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내가 그 가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아주 인심을 쓰면서 나에게 줬다고 해요. 그런 경우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하나요. 아니면 당신이 버릴 것이 분명했는데, 나에게 줬다고 하면서 오히려 원망해야 할까요?”
“음... 어렵네.”
“아니죠. 전혀 어려울 것이 없죠. 그건 그냥 고마워해야 하는 거예요. 난 그 가구가 너무 필요했으니까요. 당신이 버릴 건지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죠. 게다가 무료로 나에게 준 것에 더 고마워해야 하는 거죠.”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죠. 당신에게는 선택권이라는 것이 있었잖아요. 날 줄 수도 있지만, 사람을 써서 버릴 수도 있었고, 또 다른 필요한 사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잖아요. 물론 나에게 주는 것이 제일 효율적인 건 맞지만, 아무튼 당신에게는 선택권이라는 게 있잖아요.”
“음...”
“우리 관계도 그래요.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있었어요. 당신도 말했잖아요. 나, 반드시 나일 필요는 없었다구요. 저녁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여자만 있었으면 되는 거잖아요.”
“음... 그 부분은 부정하기는 힘드네.”
“그러니까요. 그중에 날 선택한 거죠. 그래서 어떤 이유든 간에 전 당신에게 고마운 거예요.”
“아...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 역시 너무 고마워. 당신 말대로 가구를 준 것에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거니 말이지.”
“그럼 우리 서로 고마워 하기로 해요. 난 가구를 받아서 고마운 거고, 당신은 가구를 치워줘서 고마운거고... 그리고 그 고마움을 서로 표현하면서 더 사랑하구요.”
‘사랑? 지금 이 여자가 나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고 말한 건가?’
“으응... 그래... 알았어.”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수씨는 나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난 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지금 혼돈 속에 빠져 있는 중이다.
내가 하는 모든 사랑이라는 것들이 전부 배신과 모략 속에 있다.
내가 당했건, 내가 하고 있건 말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나에게 또 사랑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여자를 내 머릿속 어떤 서랍 속에 넣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서랍엔 어떤 네임택을 붙여야 하는 것인가?
난 단순히 저녁에 만날 여자를 원했던 것인데, 내 머릿속 서랍의 한 부분에 자꾸 들어가려고 하고 있고, 자신에게도 네임택을 붙여 달라고 하고 있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
“괜찮아요?”
“으응? 뭐가?”
“갑자기 좀 이상해지신 거 같아서요.”
“내가?”
“거기도 가라 앉았고...”
“아...”
나의 고민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내 자지는 힘을 잃고는 땅에 몸을 붙여 쉬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내가 생각하는 동안 방해하지 않을게 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이 자식은 이럴 때만 적극 협조한다. 나쁜 새끼...
“내가 좀 그런 것 같아.”
“어떤 거요?”
“여자가 괴로운 것을 보면 성욕이 줄어 드는 것 같아.”
“아하.”
“아마도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여자가 괴로운 것을 보면 좀 불편해.”
“음... 남자들은 다 좋아하는 거 아니예요? 막 묶고 하고 입 속에 깊게 넣고 하는 것들.”
“당신 도대체 누구에게 섹스를 배운 거야? 그런 이상한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응?”
“아... 아니 솔직히 말해서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우리 부부 초반에 그랬어요. 그이가 너무 안되는데 원인은 모르겠고,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데, 그이가 당시 컴퓨터와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너무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가 있나 싶어서 제가 출근 안하는 날 컴퓨터를 살펴봤죠.”
“아...”
“그랬더니 제가 컴맹인줄 알고 떡하니 인터넷을 열자마자 그런 싸이트가 나오고 심지어는 바탕화면에 그런 동영상 폴더를 만들어놨더라구요.”
“음...”
“그래서 나랑 못하니깐 발기 자체가 안되는 줄 알고 엄청 걱정했다가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솔직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가 또 한편으로는 괴씸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도 모른 척 하고 넘어갔구요.”
“음... 그건 당신이 잘못한 거야.”
“예?!”
“그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지 않는 것이, 남자들의 불문율이야. 큽.”
“에이~ 그게 뭐예요.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좀 심각했어요. 그리고 그 동영상 내용이 처음에는 충격을 받을 정도였거든요.”
“그래?”
“지섭씨는 그런 거 안봐요?”
“나? 내가 여기서 '난 그런 거 안보는데?' 하면 이 세상 모든, 모든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남자가 날 손가락질하면서 욕할걸?”
“대부분 봐요?”
“서로 토의하지는 않아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보지 않을까 싶어. 물론 그걸 싫어하는 남자도 존재는 할 거야. 물론 내 주변에는 없지만.”
“아... 그럼 그런 충격적인 것들을 지섭씨도 좋아하는 거예요?”
“어떤 충격적인 것들인데?”
“뭐. 묶고, 강간에 가까운 짓을 하고... 뭐 그런 것들요.”
“음... 세상에 거의 모든 남자들이 다 본다고 하지만, 다 같은 걸 보는 건 아니야. 특히 그런 방면에서는 워낙 각자의 취향이 확실하다 보니 다 다르지 싶어. 물론 인기가 있는 건 많이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개개인의 취향이 달라.”
“개인의 취향이 다르다?”
“응. 아까도 말했지만, 난 여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거. 물론 거긴 전부 연기이겠지만, 그래도 굉장히 고통을 줄 만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 지금처럼 시무룩 해지거든.”
“호호호. 시무룩~ 맞네요.”
“물론 좀 다른 건 있어. 화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저건 고통스럽겠다고 느끼는 것과 좀 달라. 예를 들어 그런 동영상에서 주된 스토리이기도 한데, 남자 주인공이 처형의 씻는 모습에 처음에 달려들어 처음에는 반항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육체를 탐하는 내용이 있다고 쳐. 그런 걸 여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아서 못 보겠다는 건 아니야.”
“그럼요.”
“음... 내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은데...”
“아. 아니예요.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어요.”
“여자가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이 보이더라도 온몸을 끈으로 묶는다든지, 또는 여자가 눈물, 콧물을 흘리는데도 마구잡이로 쑤신다든지. 뭐 그런 걸 보고 싶지 않다는 거지.”
“아... 대충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돼요.”
“이해가 돼?”
“예. 제가 본 동영상도 그런 거였어요. 그래서 전 그이가 그런 걸 해줘야 섹스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나 걱정이 됐죠.”
“음...”
“뭐. 곧 그렇지 않다는 거, 아니면 그걸 받아주는 여자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곤, 그이 걱정은 안하는 걸로 했어요.”
“큭큭큭. 그때쯤부터 바람이 난 거야?”
“예. 그때부터 여자가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일이나 가정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구요. 옆에서 봐도 딱 성욕을 해결하는 정도만 하더라구요.”
“음...”
“그래서 나에게서는 못 느끼는 그런 성욕이라 제가 어떻게 못 하니 그냥 이해해 주기로 했죠.”
“그래서 이렇게까지 됐구나.”
“그렇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저도 서서히 열받는 거죠. 저도 성욕이라는 게 있는 여자인데.”
“음... 그 뒤는 이렇게?”
“그렇죠. 이렇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안겨 왔다.
“그런데 이제 좀 쉬면서 천천히 이야기할까?”
“예? 지금까지 쉬면서 이야기한 거 아니었어요?”
“음... 내 말의 뜻은 그게 아닌데?”
“그럼요?”
“내 말은 쉬~면서 이야기 하자는 건데.”
“아...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자는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