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업적달성
-크르르르…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천막으로 진입하니, 바닥에 누워 꿈틀대는 고블린이 보인다.
‘고블린이 맞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괴한 광경.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를 향해 온몸의 핏줄이 도드라진, 아주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암컷. 게다가 새끼를 밴 것 같았다.
‘하지만 저딴 모습이라니. 마치 지 애미의 양분을 강제로 빨아먹는 것 같잖아…. 우웩.’
10년 차 똥패용병의 촉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대충 도망을 잘 간다는 뜻이었으나, 적어도 그 덕분에 지금껏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아니야, 좀 더 확인해 보자.’
평소의 나답지 않게 이유 모를 이끌림이 생겨 가까이 다가가 버렸다.
‘몬스터 처치에 대한 의무감?’
설마. 그딴 병신같은 감정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좆같은 걸 쳐 죽이고 싶은 혐오감에 더욱 가까우리라.
접근할수록, 뱃속 ‘어떤 것’의 몸부림이 점점 더 심해진다.
그에 따라 핏줄이 가득한 뱃가죽에 태아의 손과 발, 심지어 얼굴마저 비치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살가죽을 찢고 뛰쳐나올 것처럼….
-키에, 키에엑!!
어미 고블린이 고통에 겨워 발작한다.
하지만 자궁 안의 작은 악마는 제 어미를 걱정하기보단, 나의 접근을 훨씬 더 두려워하는 듯 발광을 멈추지 않는다.
‘후우, 이 맛이지….’
눈앞의 소름 끼치는 광경과는 반대로 내 맘속엔 뽕이 차오른다.
뭔가 엄청나게 기괴한 것이 나의 발걸음 하나에 공포를 느낀다니, 굉장히 흥분됐다.
이 순간만은 밑바닥을 전전하는 똥패용병이 아닌 금패용병 혹은, 기사나 마법사처럼 우월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뒤져라, 악마! 지옥의 악귀라도 전설의 용병 카터님에겐 안 되지.’
낄낄거리며 칼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내려찍어, 그대로 고블린의 복부를 관통해 버렸다.
-끼에에엑!!!!
끔찍한 비명과 함께 피가 터져 나오며, 어미 고블린의 생명이 꺼져간다.
녀석의 눈알에선 눈물이 줄줄 새고 있지만, 어쩐지 뭔가에서 해방됐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진짜 기생충…. 뭐, 그런 거에 당했던 건가?’
찝찝했지만, 확실히 마무리하기 위해 박아 넣었던 칼날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뭐가 됐든 이 정도 했으면 뒤지긴 하겠지….’
하지만 그때.
-카아아아악!!
복부의 열린 틈에서 주먹만 한…. 아니, 이제는 반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주먹의 반만 한 태아가 튀어나왔다.
허리가 절단나서 내장을 질질 끌고 있었지만, 붉은 눈을 빛내며 미친 듯이 기어 오는 모습이 아주 섬뜩했다.
‘뭐야, 씨발!!!’
너무 놀라 비명조차 나오질 않는다.
‘젠장!’
거기다 다소 방심하고 있던 터라, 꼴사납게 쓰러지며 검까지 놓쳐버리고 말았다.
-턱
하지만 운이 좋게도 허우적대던 팔에 큼지막한 짱돌이 걸려 주었다.
‘개씨발!’
나는 그 돌을 손에 쥐고, 기어 오는 놈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퍼억!
다시 올라가는 팔 사이로 핏덩이의 면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붉게 빛나는 눈깔, 거기다 대가리엔 뿔까지 달려있어 진짜 개 징그러웠다.
-퍽, 퍽, 퍽!!
‘뒤져, 뒤져, 뒤져!!!’
하지만 뭐가 됐든, 그래봤자 주먹보다 작은 좆밥 새끼일 뿐이다.
나는 놈이 아예 으스러질 때까지, 반복해서 짱돌을 내려찍었다.
“하아, 하아….”
신나게 빨빨거리던 놈은, 이젠 바닥에 눌어붙은 피딱지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 성취감과 함께 약간의 현타가 찾아왔다.
‘그래도 뱃속에 있던 핏덩이에 불과한데…. 너무 진심이었나?’
마치 뭔가에 홀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로 도망가지 않았던 것도 이상해.’
나는 좀 전에 느꼈던, 알 수 없는 혐오감과 터무니없는 증오를 떠올려 봤다.
분명 처음 만나는 존재임에도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는 점이 굉장히 거슬렸다.
‘마치 내 것이 아닌 듯한 감정….’
고민을 거듭하는데 문득 소름 끼치도록 경건한 느낌이 나를 엄습했다.
‘뭐지!? 신전을 방문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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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달성〗
마왕(유생체)를 처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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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음과 함께 알 수 없는 문자가 떠올랐다. 분명 처음 보는 글자임에도 이해가 된다는 점이 아주 신기했다.
‘뭐야, 이게….’
너무나도 생소한 경험에 잠시 넋이 나가버렸다.
하지만 금세 그 의미를 깨닫고 환희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업적?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업적이 맞나!?’
뭔가 대단한 일을 했을 때 ‘업적 달성’이라는 신의 축복이 내려온다고 들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 아니, 모든 생명체가 간절히 원한다는 그것.
그런 대단한 일이 내게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무려 마왕 처치? 그 좆만이가 마왕이었다고!? 어쩐지 밑도 끝도 없이 좆같더라니만.’
언젠가 소문으로 들어봤던 업적 달성자에 대해서 떠올려 봤다.
‘모험가였던 주제에 업적 보상을 얻고, 지금은 어느 왕국의 공작이 되었다던가…?’
물론 용병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라 그닥 믿을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었으니, 마냥 헛소문이라 치부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업적을 얻기 위해, ‘고행’이라 불리는 생고생을 하는 무수한 사람들도 떠올려 봤다.
누군가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또 누군가는 울창한 정글에서, 그것도 아니라면 신비로 가득 찬 미궁에서까지….
모두 ‘업적’이라는 기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불사르는 놈들이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본 적이 있었던 만큼, 내 위업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져 정말 기분이 끝내줬다.
‘개쉐이들! 좆뱅이치면 뭐하나? 업적은 이 동패용병 카터님이 달성해 버렸는데.’
물론 내가 업적을 얻었다고 해서, 그들이 몫이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특히. 예전에 업적 달성을 간절히 원하던 어느 모험가에게 무시당한 경험이 있어, 더욱 그러했다.
‘똥패 모험가였지, 아마.’
9년 전쯤인가?
용병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모험가를 만났을 때였다.
‘모험가 놈들에게 기묘한 물건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강탈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빼앗긴커녕 개처럼 털려 버렸다.
3 대 1의 싸움. 물론 이쪽이 세 명이었는데, 전혀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놈이 우릴 보고 비웃으며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 어린놈들 같으니, 이쯤에서 봐주마. 그리고 같은 동패라고 해서 너희 용병 놈들과 우리가 비슷할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너희가 집 지키는 똥개라면 우리는 야생의 늑대이니.』
똥패 주제에 더럽게 폼을 잡아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멋있어 보이긴 했다.
‘지금이라면 놈을 이길 수 있을까?’
이 바닥에서 10여 년을 굴렀지만, 아직도 확신할 순 없다.
그 정도의 격차….
모험가와 용병.
어찌 보면 비슷한 일을 한다지만 문명의 안쪽을 거니는 용병과 그 바깥을 헤매는 모험가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뭐 하냐구. 업적은 이 카터님이 얻어버렸는데, 쿠쿠쿠.’
그 새끼를 생각하니, 너무 고소하고 즐거워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어졌다.
‘아직도 그놈은 업적을 얻지 못했겠지!?’
뭐. 업적 달성이 동네 개새끼마냥 흔한 것도 아닐진대, 당연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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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보상〗
특수 스킬 【운명 강탈】을 획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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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다시, 신비한 문자가 나타남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그에 관련된 정보가 밀려들어 왔다.
‘운명 강탈?’
새로 알게 된 지식에 따르면, 누군가의 생(生)을 송두리째 빼앗을 수 있는 개사기 스킬이었다.
약간의 조건이 필요한 듯했지만, 충족만 된다면 황제나 드래곤의 운명이라도 강탈할 수 있는 진짜 미친 스킬….
‘와, 씨발! 진짜 마왕 잡길 잘했네!!!’
너무 신나 큰 소리로 외쳤다.
“획득!! 획득한다.”
‘당연히 콜이지. 이걸 거절할 미친놈이 있을까?’
그러자 내 몸에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