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세계 (1)
낯선 천장...아니, 낯선 풍경이다.
비단 그것이 나 혼자만은 아닌 듯, 자신도 모르게 끌려온 사람들이 당황한 채로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난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마지막 타겟을 죽이고 나서던 길이였다...환각 상태라 하기에도 정신은 멀쩡하다. 결코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인가.
푸른 하늘과 우거진 숲. 적어도 한국에는 이런 곳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대 초목이었다.
그곳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사람들.
평소 즐겨 읽던 소설들과 비슷한 도입부의 현장감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사람들. 그리고 앞에 나타난 이상한 괴물. 그럼 이제 게이트 열리는 건가?’
아니지, 애초에 그럼 숲에 떨어지지는 않았겠지.
난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차라리 이세계로 떨어지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어차피 의뢰는 실패했고, 거기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이런 씨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핸드폰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도대체 이게 무슨…!!”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구별이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 혹은 아예 주저앉아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파악한 사실이지만 나 또한 단검이나 휴대폰 같은 소지품은 전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만한 인원이 갑자기 모든 물건이 사라진 채, 같은 곳에 떨어졌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인 것투성이다.
‘아마. 정말로 이세계에 소환당했다는 설정이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나에게 납득이 가는걸.’
“그나저나 아무것도 없는 채로 낯선 곳에 떨어졌다라...썩 유쾌한 상황은 아닌데.”
아니,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예전 기억도 나고 하니...
그 순간이었다.
“뭐야!!? 안 그래도 지금 씨방 덥고 짜증나구만…!!! 죽고 잡는겨!!?”
연배가 좀 있는 것 같은 아저씨가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눈이 향한 곳에는 아무래도 의도치 않게 부딪힌 듯한 남성이 죄송한 표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아...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하!? 그게 썅 나랑 무슨 상관..!!”
아재의 눈빛은 지금 이 상황에 화풀이하고 싶어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난 성난 아재의 상태보다는 부딪힌 남성이 더욱 신경 쓰였다.
‘저놈...허리춤에..’
아재가 힘 화난 표정을 지으며 손찌검하려던 순간이었다.
딱 봐도 덩치가 좀 있어 보이는 청년이 나타나 아재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만두시죠. 보니까 나이도 있으신 분 같은데, 전부 같은 처지에 적어도 선 넘는 행동은 하지 마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이..이..호로 잡것이..!!”
아저씨의 표정이 울긋불긋해졌다.
하지만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는지 분을 삭지 못한 얼굴로 자리를 피했다.
난 속으로 안심했다.
중재를 나서야 하나, 아니면 굳이 눈에 띄지 않게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고민했기 때문이다.
덩치가 좀 있는 청년이 자리를 뜨며 막 손찌검당하려던 남성에게 말했다.
“다들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민해서 그럴 거예요. 나쁜 의도는 없었을 거예요. 그럼..”
그렇게 상황을 중재한 청년이 뒤돌아선 순간이었다.
“큭...크흡..!!”
움찔!
‘이건...위험하다.’
경험상 지금 저 남성의 눈빛, 사람을 한두 번 죽여본 놈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미쳐 날뛰기 직전의 살인마의 눈빛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남성의 어깨가 들썩였다.
동시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 큰 소리로 미친 듯이 웃어 재끼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이..이봐요..!! 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서걱. 툭.
단 한 순간이었다.
한 소리 하려던 여성의 목이 떨어졌다.
여성은 자신이 죽은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죽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이제서야 숲에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
“미...미친!!! 사...사람이..!!”
“꺄아아아악!!! 꺄아아악!!”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이미 다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살인사건이 일어났어도 똑같은 반응이지 않을까.
난 지긋이 시체를 난도질하고 있는 남성을 쳐다보았다.
‘제압은 어렵지 않다. 솜씨도 기껏해야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여준 정도. 하지만...’
내가 나서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혼자 활동하는 게 편한 나로서는 더더욱.
“잠깐..근데 저희 아무것도 없지 않았나요..? 어떻게 저 사람은 칼을..”
한 남성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성적인 관찰이었다.
물론 그 전에 이미 허리춤에 있던 것을 이미 봤었긴 했지만 말이다.
서슴지 않게 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임과 동시에 혼자 칼을 들고 있었다는 점은…
‘먼저 이곳에 와 있던 사람일 것이다. 적어도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시간대에 온 인물은 아니야.’
지금 내 판단은 어차피 혼자 다닐 생각이니 빠르게 제압하고 장비를 빼앗는 것과 혹시 다른 동료들이 있을 수 있으니 아직은 조금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남성은 다른 사람은 죽일 생각이 없었는지 잡은 사냥감을 신나게 도륙하며 소리쳤다.
“하하하!!! 형님들 이 년 이거 찌르는 맛이 죽이는데요!!? 죽이지 말 걸 그랬나?”
콱!! 서걱!! 서걱!!
남성은 주변 사람이 소리치든, 도망치든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쓰러진 여성의 시체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들썩이며 사방에 피가 튀었다.
한 마리의 짐승을 도축하듯, 죽은 자의 시신을 훼손하던 남성은 마치 누군가 곁에 있는 것처럼 소리쳤다.
“형님들, 이제 슬슬 시작하죠!!? 저 이제 좀 다른 거 가지고 놀고 싶은데..”
‘내통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
유추해보건대 누군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눈에 띄지 않게 살며시 사람들 속에 섞인 뒤,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동시에 귓가에 아슬아슬하게 들리는 파공음과 무언가 박히는 소리.
‘7시 방향 상단 나무, 무기는 활인가?’
사람들이 도망친 방향이었다.
포위된 상황이 확실하다면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난 주저하지 않고 소리쳤다.
“도망쳐!!!!”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쉽게 몰이사냥 하게 둘 수는 없지.’
난 이미 사람이 많은 쪽을 피해서 달아났다.
굳이 인원이 하나인 쪽을 노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한 둘 정도는 달라붙어도 떼어낼 자신이 있기도 하고.’
아무튼 정신없이 한참을 달렸을까.
내 주변에 같이 도망쳐오던 사람이 없었던 탓인지, 굳이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라 판단했겠지.
내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고.
"어쨌든 한시름은 놓았고..."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활동할 시기를 놓쳤다는 뜻이다.
물론 암순응은 질리도록 했기에 칠흑 같은 암흑이 아닌 이상에야 평범하게 활동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밤이라 추적도 힘들 테고, 나 하나 잡자고 내 쪽으로 추적조를 꾸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것도 예상일 뿐이다.
상대의 규모도 목적도 모르는 상황이라 만약 내가 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상하는 것일 뿐.
“대충 가려놓고 자야 하나.”
노숙은 진짜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했지만 그래도 어렸을 적의 기억을 되살려 난 주섬주섬 임시 거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
거대한 나무뿌리 밑으로 들어가 입구를 가리자 그럴싸한 위장이 생겼다.
난 대충 넣어둔 나뭇가지와 이파리로 멍석을 깔기 위해 조금 더 들어갔다.
추위를 피할 수 있게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끄트머리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형태는 보였다.
“잠깐...이건 시체..? 아니, 해골인가?”
난 손을 뻗어 해골을 더듬었다.
손 위로 느껴지는 뼈의 감촉...이여야만 했는데 흉부에 있어야 할 갈비뼈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죽...단단한 금속의 느낌..갑옷인가?’
섬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좀 더 주변을 더듬자 매끄러운 무언가가 만져졌다.
‘이건...두개골은 아니고...뭐지..?’
집어서 들어볼 수 있을까 싶어서 좀 더 만져보던 순간이었다.
팟!
“허억!!”
나는 번쩍이며 섬광한 무엇인가에 깜짝 놀라 발라당 넘어질 뻔했다.
또한 확 밝아진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방금 내가 만진 건가…??’
투명한 유리 안에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보금자리 안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전구는 결코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전구는 전기 공급 없이는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마법 수정구? 뭐 그런 건가...”
사실 이곳에 오면서 별의별 동물을 다 본 터라, 이미 이곳은 내가 알던 지구가 아니라고 반 확정지은 상태긴 했다.
그 상태에서 이런 걸 보면 거의 확실시하는 게 맞다고 본다.
“아! 잠깐만 혹시 그러면 그런 클리셰라던가 설정이라던가 있지 않을까?”
워낙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이세계로 넘어온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물론 정석 판타지라면 없겠지만...손해 보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난 지금은 한물갔을지도 모르는 그 마법의 주문을 외쳤다.
“상태창.”
띠링!
이름:하승민
클래스:옵저버[observer](normal)
소속:없음
능력치:근력 39[40-1] 속도 43[44-1] 지구력 28[29-1] 마력 75 행운44
전용 능력:
마나 감응(S):마나를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습니다. 부연 설명을 개방할 수 없습니다.)
위기 감지(D):행운 스탯에 기반하여 의외성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습니다. 부연 설명을 개방할 수 없습니다.)
클래스 전용 능력:
영역 탐지(F):영역 안의 모든 것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마나를 통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장시간 체력 소모로 인해 체력이 감소한 상태입니다. 능력치가 일정 시간 감소합니다.]
“오, 진짜 되네??”
역시 사람은 아는 게 많아야 한다.
이렇게 써먹을 데가 다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근데 이거...도대체 뭐라는 거냐??”
어떻게 열기는 했는데...여러모로 난감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