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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화 40. 모녀의 하루 (3)


**** 배달시킨 갈비찜으로 배를 채운 두 사람이 오랜만에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최근 일이 바쁜 탓에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던 한가연은 이렇게 시간이 날 때면 되도록이면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다. 대부분은 한다혜가 말하고 한가연은 듣는 입장이었지만, 이렇게 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이 즐거웠다. “이번 여름 방학 때는 나도 다른 애들 눈치 보여서 놀러 가는 건 포기해야 할까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 3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형벌이다!’라는 말로 학생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단적으로 표현했다. 속 된 말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대학 입시를 위한 긴 마라톤에 돌입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정도로 한국에서의 교육은 대학 입시에 모든 것이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특히, 수능을 앞둔 고 3이 되면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나날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엄마의 배려로 인해서 공부라는 속박에서 해방된 다혜지만, 대한민국에서 한가연과 같은 엄마는 사실 희귀종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다혜와는 사정이 다른 친구들 입장에서는 싫든 좋든 수능이라는 마라톤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음 같아서야 고등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여름을 친구들과 같이 즐겁게 보내고 싶었지만, 아무리 다혜가 만사태평한 성격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 눈치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쉬운 것만은 어쩔 수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며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그럼 이번 여름에는 엄마랑 다혜 둘이서만 조촐하게 놀러갈까?” “엄마랑 둘이?” 왠지 시큰둥한 느낌이다. 하기야 친구들도 아니고 엄마와 둘이서 가는 휴가가 딱히 달가울 리가 없다. “아니면 오랜만에 할머니 집에 가 볼까?” 할머니라는 말에 다혜가 조금 관심을 보인다. 몇 년 전에 갑작스런 뇌출혈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가산을 모두 정리하여 남해의 한 섬에 집을 얻어 혼자서 살고 있는 중이다. 남해군에 자리 잡은 해도(海島)라는 곳인데, 주민들이 채 서른 명 안 될 정도로 작고 한적한 섬이었다. 그런 곳에 할머니 혼자 들어가 살고 있다 보니 올해는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일이 바쁘다 보니 선뜻 시간을 내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이참에 할머니나 한 번 찾아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다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저씨도 여름에 휴가 가려나.” “아저씨?” 아저씨라는 말에 한가연의 귀가 솔깃한다. 다혜가 아저씨라고 부를 만 한 사람이 한 사람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아저씨랑 같이 가자고 해 볼까? 할머니 집에 남는 방도 있잖아.” “얘가. 휴가가 장난이니? 게다가 일 때문에 서로 시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아서라.” “뭐,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번에 놀이 공원에 다 같이 갔을 때 재밌었잖아. 그래서 휴가도 같이 가면 좋겠다 뭐 그런 거지.” 놀이공원이라는 말에 한가연의 머릿속으로 강호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강호씨와 함께 휴가라...’ 해도는 남해군에 위치한 조도와 호도의 서남쪽에 자리잡은 곳으로, 외부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숨은 명소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다만 조도와 호도가 먼저 알려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는 것에 비해, 해도에는 펜션 같은 숙박시설은 커녕 민박을 운영하는 집조차도 없다 보니 아무래도 조도나 호도로 사람들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해도가 다른 두 섬에 비해 관광지로서의 메리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섬 내부에서 바다의 암벽지대로 해양 동굴은 개발 여부에 따라 관광명소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다. 한가연의 머릿속으로 섬의 동쪽에 위치한 암벽지대의 해양 동굴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강호와 둘이서 걷는 모습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같이 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본인 입으로 말했듯이 휴가라는 것이 서로의 일정을 맞추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강호의 가족들과 안면을 트기는 했지만 같이 휴가를 가자고 할 정도로 친분이 깊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작년인가 해도에도 펜션이 들어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작년에 안부 전화를 하던 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나자 조금은 혹하는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참. 엄마! 아저씨 하니까 하는 말인데. 이거 봐라.” 갑자기 생각났다는 호들갑을 떨던 다혜가 스마트폰의 화면으로 미튜브 영상 하나를 실행해서 보여준다. 바로 백구가 핏불테리어를 참교육 하는 영상이다. 무슨 일인가 하며 눈을 껌뻑이며 보던 한가연이 눈에 익은 장소가 등장하자 대번에 관심을 보이며 집중했다. 그리고 이어진 백구와 핏불테리어의 싸움을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기 이 개가 백구거든. 엄마도 저번에 봤었지? 아저씨가 기르는 개 말이야.” 일전에 카페를 찾았을 때 보았던 하얀 강아지를 떠올리던 한가연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당시 보았던 개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었는데, 화면 속의 개는 거의 성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꽤나 덩치가 컸던 것이다. “이게 그때 그 강아지라고?” “많이 컸지? 아저씨 말이 개들은 원래 한두 달 사이에도 부쩍 큰다고 하더라고.” 어릴 때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똑같다. 그래도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원래 개들이 이렇게 빨리 자라던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길러 본적이 없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게다가 순식간에 끝난 싸움 뒤에 펼쳐진 장면으로 인해 사소한 의문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어머! 어머?” 두 마리의 핏불테리어를 앞에 앉혀 두고서 훈계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 한가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기하지? 마치 혼내는 거 같지?” “그... 그러네. 어머머!” 진돗개가 똑똑하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똑똑한 수준을 넘어 사람이 개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기한 모습이었다. “조회수가 벌써 삼백만이 넘었네. 대박!”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한 다혜가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확인해 보았는데, 수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성견도 아닌 것 같은데 핏불테리어 두 마리를 이겼다고? 아무리 진돗개라도 이게 말이 돼? ㅅㅂ. 나도 오늘 부터 진돗개 기른다. -역시 호랑이도 때려잡는 한국의 국견 진돗개! 핏불같은 잡종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ㄴ 호랑이를 때려잡긴 뭘 때려잡아. 하여간 국뽕충 새/퀴들 별 ㅈ같은 걸로 다 빨고 지랄이누. ㄴ 중공놈이 왜 한국에서 국뽕 국뽕 거리는 거임? 가서 핑핑이 똥구멍이나 빨아 뷩신아! -근데 진돗개가 맞나요? 저도 진돗개를 오래 길렀는데, 뭔가 생긴 게 미묘하게 다른 것 같은데. ㄴ 사람이 생김새가 천차만별이듯 진돗개도 종류가 다양하고 생김새도 천차만별이에요. 그래도 확실히 진돗개라기보다는 늑대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들긴 하네요. ㄴ 늑대랑 진도의 잡종인 거 아님? ㄴ 무식하긴. 늑대랑 개가 종이 다른데 어떻게 교배가 됨? ㅉㅉㅉ ㄴ 하아! 가만이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이 이래서 생겼구나. 늑대랑 개 교배 가능하단다 뷩신아. 늑대개 모름? -근데 아무리 진돗개가 똑똑하다고 해도 저런 게 가능하긴 해? ㅅㅂ. 이거 주작이라는 것에 내 손모가지 두개 다 건다. ㄴ 주작 아니면 나중에 밥은 어떻게 먹을라고? 그냥 하나만 걸지? ㄴ ㅇㅇ 그걸 생각 못했네. 그럼 하나만 거는 걸로...... ㄴ 불알달린 남자 새키가 한 입으로 두 말하네. 븅신! ㄴ 나 불알 달렸다고 한 적 없는데? 근데 왜 시비임? ㄴ 님, 손모가지 하나 잘라야 겠는데요? 저 카페 제가 가끔 가는 곳인데, 저 개가 저 카페 사장님이 기르는 개인데 이름은 백구구요. 진짜 순하고 애교도 많은 개에요. 근데 저렇게까지 싸움을 잘 할 줄이야. 하여간 카페에 가면 볼 수 있는데 평소엔 정말로 순하고 착해요. ㄴ 어딘지 정확하게 알려주삼. ㄴ ㅇㅇ 성남구 동명 캠퍼스 근처에 있는 산마루 카페라는 곳임. 네비 찍고 가면 찾기 쉬움. ㄴ 감사! 오늘 당장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한다. 손모가지 건 놈인지 뇬인지 박제했으니까 잠수타지 말고 대기해라. 댓글창이 상당히 시끄럽다. 하기야 하룻밤 사이에 댓글만 수천개가 달린 상황이니 시끄럽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인기 동영상에는 의례히 똥파리가 꼬이듯이 영상과 전혀 상관없는 글로 분탕을 치는 인간들까지 등장해 실시간 댓글로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다혜가 댓글을 확인하며 여전히 호들갑을 떨고 있는 사이, 한가연은 강호와 관련하여 조금은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강호를 모델로 기용하는 방안에 대한 내용이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강호를 모델로 기용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이 거의 5대 5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한가연의 촉을 믿고 강호를 모델로 선택하자는 방안에 찬성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오랜 세월 같이 일한 창립멤버를 위시한 직원들이다. 그들은 한가연과 긴 시간을 함께 한 만큼 그녀의 과감하면서도 엉뚱한 선택이 생각지도 못한 대박으로 이어진 경우를 몇 번이나 보아 왔기에 전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반면, 강호를 모델로 선택하는 방안에 반대를 피력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뒤에 입사를 한 직원들이다보니 아무래도 리스크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반대하는 직원들은 강시연이나 박찬성과 같은 스타를 섭외해서 최대한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자는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번 광고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만큼 직원들의 이런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고, 그에 따라 한가연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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