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39. 백구, 유명세를 떨치다! (2)
“그... 그럼 일일 게스트로 부르는 건... 야구부 일일 매니저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하아!”
“아니, 사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그렇잖습니까. 이 영상이요. 이거 어떻게든 살려야 할 거 아닙니까.”
조연출의 항변에 최병철 PD의 눈이 모니터를 향했다.
한 여자가 너른 공터의 한 가운데 주저앉아 있고, 그런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멧돼지가 보인다. 그리고 멧돼지로 부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앞을 막아선 채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남자의 모습도 보인다.
장면 그 자체로만 보자면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긴박하면서도 스펙타클한 장면이었다.
그 화면을 보며 최병철 PD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조연출이 살살 간을 보듯이 가려운 부분을 긁기 시작한다.
“강호씨 아닙니까. 우리 출연진인 서강호씨요. 우리 프로그램이 야구 예능이기는 하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아닙니까. 선배가 항상 말하던거요. 웃기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찍어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최병철 PD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결국 그 근본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람을 벗어나 재미만을 추구하는 순간 본질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방송을 대하는 최병철 PD의 신념이었다.
“여기에 오하영씨를 일일 게스트로 출연시키면 이야기의 연결고리도 자연스럽고, 마녀들 분위기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림을 만들 수도 있고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서강호씨도 띄울 수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서강호씨는 띄워야 합니다. 그게 우리 목적이고요.”
조연출의 이어진 설득에 최병철 PD도 조금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진 한 마디에 혹해 있던 마음이 대번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강시연씨 친구 아닙니까. 한 번 부탁해 보시죠? 혹시 압니까? 대신 섭외해 줄지.”
“어휴! 어째 잘 나간다 했다. 왜? 박찬성씨한테 부탁해서 메이저 리그 선수들 출연도 좀 부탁해 보라고 하지. 응? 어휴, 이걸. 학교 후배만 아니면 진작에 짤라 버렸을 텐데. 에잉!”
“이거 왜 이러세요. 누가 들으면 낙하산인줄 알겠네. 그냥 제 의견이 그렇다는 겁니다. 오하영씨 출연해서 인터뷰 따고 영화 같은 이 그림이 딱 나가면 시청률이 못해도 2프로는 무조건 올라갈 것 같아서 하는 말이죠.”
2퍼센트라는 말에 최병철 PD가 또 다시 입맛을 다셨다.
과거에 비해 시청률이 프로그램 인기의 중요한 척도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상파나 케이블의 경우에는 시청률을 온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당장의 인기를 측정하기에는 시청률 만한 표지가 없는데다가, 광고 수익과도 직결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선배 주특기가 그거잖아요. 못 먹는 감 찔러 보기. 강시연씨도 그래서 출연이 성사된 거고. 그리고 오하영씨 계약 기간도 3개월인가 4개월인가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재계약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거 보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고. 그 말은 오하영씨만 설득하면 의외로 섭외가 쉬울 수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최병철 PD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사와 소속 아티스트들 사이에는 보통 5년에서 7년의 계약 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아이돌 가수의 경우 7년 계약이 업계의 기준으로 잡혀 있다.
오하영이 속한 핑크캣츠는 올해로 데뷔 7년차의 걸그룹으로 이제 몇 달 뒤면 계약이 종료된다.
보통 이 바닥의 경우 늦어도 4, 5개월 전에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은 사실상 재계약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도 있고, 멤버들간의 불화가 있다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그런 소문들은 보통 재계약 만료 시점이 되면 의례히 흘러 나오는 찌라시들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그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재계약 소식이 없다는 것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그 때문에 핑크캣츠의 팬 커뮤니티에서는 대표를 향한 원성의 목소리가 강하게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최병철 PD 입장에서는 섭외가 오히려 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일 게스트로 출연 시키고 인터뷰를 따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러자면 최대한 빠르게 섭외를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폰을 꺼내어 섭외 담당 작가와 연락을 하려던 최병철 PD가 조연출을 힐끗 보더니 강시연에게로 바로 전화를 했다.
일단은 오하영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는 게 중요했고, 강시연에게 부탁을 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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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후 백화점에 들려 쇼핑을 하는 내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시시각각 변하는 오하영의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때론 아련한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하다가 때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한 숨을 푹 내쉬더니 우울한 얼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고민이 가득한 눈빛으로 멍을 때리기도 하는데,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보니 강시연으로서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거 진짜 재밌네. 하영이가 이런 걸로 정말 고민을 하고 있다니.’
지금 상황에서 할 고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한가연이다.
‘지금 가연씨가 강호의 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거야.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한가연에게 강호를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먼저 가랑이를 벌리는 거지. 그래서 더 고민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강시연이 저도 모르게 살짝 혀를 핥았다. 하지만 오늘은 오하영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는 게 좋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혼자서 고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효과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원래 사람이란 혼자서 고민이 깊어질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강한 까닭이다.
그렇게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강호에게 어울릴 만한 화장품에 옷가지들을 꾸입하고는 내부 카페에 들려 막 차를 주문할 때였다.
가방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폰을 꺼내어 보니 최병철 PD다.
“네. PD님.”
기분이 좋은 탓에 전화를 받는 목소리도 매우 살가웠다. 그러자 전화를 건 최병철 PD도 그녀의 목소리에서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꼈는지,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강시연씨. 식사는 하셨어요?]
[그럼요. 하영이랑 같이 밥 먹고 쇼핑을 하고 나오던 참이에요.]
하영이라는 말에 최병철 PD가 대번에 자세를 바꾸어 앉았다.
전화를 건 목적의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말 한마디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지금 통화가?]
“괜찮아요.”
[아, 네. 그보다 어제 첫 방 시청률이 6,7퍼센트에 최고 순간 시청률은 10.8퍼센트가 나왔습니다. 첫 방송 치고는 꽤나 선방을 해서 방송국 내에서도 일단은 분위기가 좋습니다.]
“호호호! 그럼 이달 안으로 평균 10퍼센트는 넘길 수도 있겠네요.”
10퍼센트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하는 바람에 최병철 PD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말이 10퍼센트지 그 고지를 넘기 위해 지금 수많은 예능들이 피 튀기는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10퍼센트의 고지를 넘기는 커녕 5퍼센트조차 넘지 못하고 종영하는 예능이 대부분이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보통 첫 방은 시청률이 잘 나오는 편에 속한다. 그러다 2, 3화로 넘어가면서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4, 5화 정도 진행이 되고 나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 수준이 대략 산정된다. 즉, 첫 방 이후 다음 회 차에서 시청률이 상승하는 경우는 꽤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예능 PD들이 어떻게든 화제성을 유지하며 시청률을 방어하기 위해 눈에 다크써클이 내려앉도록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문제로 잠시 상의할 것이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며칠 전에 보내어 주신 메모리 카드 말입니다. 거기에 오하영씨랑 식사하면서 나눈 대화 있지 않습니까.]
오하영의 이야기가 나오자 강시연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시연이 굳이 오하영과 만나 그런 장면을 찍었던 것은 강호에 대한 화제성을 좀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강호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3년차 대역 배우에 불과했고, 방송계에서는 아무런 인맥이나 인지도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박찬성과의 승부도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강호의 인지도가 거의 일반인 수준이다 보니 단숨에 치고 올라갈 탄력을 받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강호의 이름값과 인지도를 끌어 올린 만 한 또 다른 사건이 필요했는데, 멧돼지 사건은 방아쇠가 되기에 매우 적당했다.
박찬성과의 승부는 어떻게 보면 야구인들 사이에서나 화제성을 조명 받은 사건이다. 하지만 멧돼지 사건은 다르다.
위기에 처한 인기 아이돌 가수를 구한 무명 단역 배우라는 타이틀은 잠시이긴 햇지만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 왔던 뉴스였다. 그런데도 크게 포텐을 터뜨리지 못한 것은 역시나 강호의 인지도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마녀들에서 두 개의 사건이 동시에 거론 되면 강호라는 인물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단번에 이름을 각인시킬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
이른바 강시연 방식의 프로모션이자 마케팅이다.
여기에 강호의 모교와 관련된 뇌물 스캔들에 의한 과거가 더해지면 생각 이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후의 일은 진인사대천명이라, 화제성을 바탕으로 최병철 PD가 어떻게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오하영에게 부탁해서 그런 장면을 촬영한 것이었는데, 역시나 최병철 PD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