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38. 개화(開花) (1)
오하영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술자리가 끝나고 간단히 세면을 한 후 잠자리에 든 것이 대략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아이돌 가수를 하면서 온갖 행사를 다니다 보면 차 안에서 쪽잠을 자는 생활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눕기만 하면 금방 잠에 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선뜻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눕기 무섭게 강시연과 나누었던 온갖 대화들이 떠오른 것이다.
특히, 한가연을 언급했던 대목이 그녀의 머릿속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서는 끊임없는 상념의 꼬리를 만들어 내었다.
오하영도 여자였고, 여자는 여자가 제일 잘 안다는 말처럼 한가연이 강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은 첫 눈에 알아보았다.
그 관심이라는 것이 단순한 호감 따위가 아니라 하나의 암컷으로서 수컷을 향한 구애의 눈빛을 담은 관심이라는 것 역시 모를 수가 없었다.
이후로 한가연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는데, 오늘 강시연으로부터 그런 말까지 듣고 보니 온갖 망상이 머릿속을 잠식하며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가연과 강호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고, 두 사람이 알몸으로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급기야 강시연과 한가연이 강호와 함께 뒤엉켜 흐느끼고 있는 모습까지 연상되자 숨이 턱 막혀오는 듯한 느낌에 오하영은 기겁을 하고야 말았다.
‘안 돼. 강호씨는...’
나만의 것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 자리는 강시연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옆자리마저 한가연이라는 여자에게 빼앗기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안 돼. 그 자리는... 그 자리는...’
차마 내 것이라는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지만 어느새 오하영의 머릿속에는 강호의 옆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 참을 뒤척이던 오하영의 귓가로 어디선가 미약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소리의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아이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했다.
영화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고 AV를 통해서 보기도 했지만 실제로 경험한 적은 없었기에, 여자가 쾌락에 젖어 내뱉는 신음성이 때론 아이가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갈수록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점점 커져가기 시작하더니 언젠가 부터는 아예 노골적으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소리는 분명 오하영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어... 언니!’
흐느낌의 주인공이 강시연이라는 것을 떠올리기 무섭게,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 온갖 감정의 쓰나미들이 폭발하듯 일어나며 심장을 쥐어짜듯이 밀려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오하영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특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정의 내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흐느낌은 송곳처럼 날아와 심장에 비수처럼 박혀들고만 있었다.
[아흥! 아흐흥! 강호씨! 아아아아!]
[더 세게! 더 세게 박아줘요! 아흐흐흑! 아아! 좋아!]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가 잠들어 있을 방으로 뛰어 들어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귀를 막고 모른 척 하고만 싶었다.
이대로 나가서 두 눈으로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가치관의 탑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오하영이 진실로 두려운 것은 그 이후였다.
자신을 지탱하는 가치관의 탑이 무너져 내리고 나면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두려움의 실체였다.
‘안 돼. 가지마. 귀를 막아!’
그렇게 소리치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귀를 막아 보지만 그럴수록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고,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흐느낌은 머릿속으로 직접 파고 들어와 북처럼 울려대었다.
‘이건 환청이야. 그래! 내가 지금 헛것을 듣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어떻게든 외면하려 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을 가득 채워오는 하나의 목소리가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오하영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특정한 형태나 방식이 있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형태의 방식이 있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형태의 방식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강시연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천둥이 치듯 크게 울리며 메아리처럼 퍼져나간다.
[그 사람은 나 혼자서는 절대로 감당이 안 돼.]
[남자라는 동물은 다 똑같아. 만족을 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여자를 찾게 되어 있는 것이 남자라는 동물이야.]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강호씨를 포기 못 해!]
[혼자가 안 되면 둘, 둘로도 안 되면 셋으로 그 사람을 감당하면 되는 거야.]
어떻게 다른 여자와 사랑을 공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진 강시연의 목소리는 한가닥 남아 있던 오하영의 의지마저 꺾어 버리며 지독한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난 차라리 한가연씨 보다는 하영이 네가 더 좋아.]
순간, 오하영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마냥 멍한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서서는 문을 향해 다가섰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오하영!’
머릿속으로는 제발 이 문을 열지 말라고 외쳐 대었지만, 이미 혼돈으로 가득 차버린 그녀의 마음은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미닫이문을 당기자 걸림쇠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스르륵 밀려 나간다. 동시에 벌어진 문틈으로 강시연의 목소리가 볼륨을 키운 것처럼 방안으로 강하게 밀려들어 왔다.
[아아아아아! 보지가 찢어질 것 같아. 더 세게 박아줘요. 으흐흐흥! 당신 좆이 최고야. 아흐흐흑!]
처음에는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언니? 아니야. 언니가 저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리가 없어.’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 보려 해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하영이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또 다시 부정해 보지만 이어진 대화에 그녀의 부정은 외면당하고 말았다.
[말해줘요. 내 보지 어때요? 맛있어요?]
[시연씨 보지는 최고예요.]
[아흑! 강호씨 좆도 최고예요. 아아! 온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아!]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온 대화.
‘시연이 언니랑 강호씨.’
부정하려 해 보았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고 명확해서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오하영은 지금 자신이 들은 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남녀 간의 섹스는 이렇게 원색적이고 추잡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섹스라는 행위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달콤하고 사랑스런 밀어를 나누는 몸과 몸의 대화였다.
그런데 막상 귓가로 들려온 두 사람의 대화들은 오하영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오하영을 자극하는 대화는 더욱 노골적이고 그 수위가 높아져만 갔다.
[........다시 말해 줘요.]
[당시은 더러운 암캐에요. 냄새나는 더러운 암캐 같은 년.]
[맞아요. 난 냄새나는 더러운 암캐야. 당신을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가랑이를 벌리고 보짓물을 질질 쌀 준바가 되어 있는 암캐!]
귀를 막아 버리고 싶었다.
심장이 거칠게 뒤기 시작했고 굳게 다문 입가를 비집고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손으로 급히 입을 틀어 막았다.
다행히 안에서는 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돌아가! 돌아가!]
더 이상 이런 곳에 서서 더러운 욕정과 욕망 만으로 가득한 대화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손과 발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두 사람의 더럽고 음탕한 대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방을 향해 발이 움직였고, 방과 복도를 가로막고 있는 문을 향해 손이 움직인다.
분명 자신의 손인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르륵!]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문이 살짝 열린다 싶은 순간,
[아아아! 벌써... 와요. 와요. 쌀 것 같아. 아아아앙!]
방안에서 벼락 치듯 들려 온 소리에 오하영이 저도 모르게 벌어진 문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동시에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압을 쩍 벌리며 경악하고 말았다.
강호의 허리 위에 올라탄 채로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어 대고 있는 강시연의 모습이 보인다. 어찌나 격렬한지 저러다 허리가 부러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어진 광경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강호의 무릎에 뒷짐을 진 채로 허리를 흔들어 대던 강시연의 가랑이 사이에서 오줌이 사방으로 비산하듯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외마디 비명성과 함께 강시연이 엉덩이를 한껏 치켜 들자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물줄기가 맹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