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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37. 정욕의 소나타 (1)


강시연이 집에 도착해서 오하영과 함께 안주거리를 위한 요리를 완성할 즈음해서 시간에 딱 맞추어 강호와 친구들이 도착했다. 역시나 세 친구의 반응은 강호가 예상했던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강시연과 오하영을 보기 무섭게 마치 여신이 강림하기라도 한 것 마냥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며 영접을 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감격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두 사람 앞에서 얼마나 굽실거리며 감개무량해 하는지 보고 있던 강호가 얼굴을 들지 못 할 정도로 창피할 지경이었다. “제가 강시연님이랑 오하영님 한 테서 이런 식사 대접을 받다니. 이거 너무 황송해서.... 흑!” 박형일이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가지 먹음직스런 요리를 보며 조금은 과장된 표정으로 하는 말에 강시연이 웃음을 터뜨리며 화답했다. “그럼요. 영광인줄 아세요. 제가 아무한테나 쉽게 요리를 대접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맞아요. 저도 언니를 알게 되고서 4년이 지나서야 이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니까요.” 이어진 오하영의 말에 사람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생각 이상으로 화기애애했다.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던 강시연의 실제 모습은 친구들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무슨 말을 해도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고 하하호호하며 반응해 주는데다가, 한 때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아이돌 가수로 활약하며 뭇 남자들의 우상이었던 오하영마저 옆에서 같이 분위기를 띄워 주니 분위기가 나빠지려야 나빠질 수가 없었다. “아이고! 이거 영광입니다. 강시연씨가 따라주는 술을 다 마시다니.” 벌써 몇 번이나 술잔을 받으면서도 매번 그렇게 말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강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학창 시절에 같이 운동을 한 친구들이다 보니 겉모습으로만 보면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같이 마음이 여리고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흔히 운동선수 출신들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들의 처한 환경으로 인해 성격이 꽤나 거칠고 단순 무식하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운동부 출신들의 구성 성분에서 비롯된, 일종의 편견에서 시작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과거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운동부원들의 구성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었다. 운동에 재능이 있어 학교에서 선택한 아이들과 순전히 운동이 좋아서 하는 아이들 그리고 집안이 가난하고 먹고 살기 바빠서 거의 운동부에 맡겨놓다 시피 한 아이들이다. 게다가 이들 운동부들은 수업 시간에는 대부분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엎드려 잠만 자다가, 3, 4교시를 마치면 뛰어나가 연습을 한다. 그러다 해가 지면 집으로 가지 않고 운동부실에 모여 라면을 끓여 먹으며 놀거나, 혹은 학교 구석의 어두침침한 공터에 모여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이미지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지금에 와서도 운동부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주체할 수 없는 힘을 가누지 못하고 패거리를 이루며 싸움이나 하고 돈을 뺏고 다닌다는 이미지까지 겹쳐지고 말았다. 이렇게 굳어진 이미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개선되기는커녕, 지금에 와서도 폭력의 온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었다. 강호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운동부에는 경쟁을 빙자하여 체벌과 폭력이 여전히 만연하던 시기였다. 불과 10여 년 전, 가장 폐쇄적이고 폭력이 만연한 군대에서 조차도 부조리한 체별과 폭력이 퇴출되어야 한다며 체질 개선이 한창 이어지던 시기임에도, 체육계에서는 고질적인 폭력의 병폐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여전히 뿌리박혀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운동부 출신의 선수들은 그러한 폭력의 사슬을 운동부 밖으로까지 가지고 나가서 행사하려 들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세상에 운동만큼 순수하고 정직한 노동은 없다. 운동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그 결실을 선사하고, 노력한 만큼 그 흔적이 몸에 고스란히 쌓이고 남는다. 때문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다는 말이 정설로 굳어진 세상이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자장 뿌리 깊은 병폐가 자리 잡은 곳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들의 노력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역설적인 세상이 바로 운동부인 것이다. 그곳에서 강호는 노력하면 대학에 혹은 프로에 진출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티어 왔다. 이는 이 자리에 같이 하고 있는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칠어 투박해 보이지만 순수하고 서로를 아끼는 진정한 친구들이라 할 수 있었다. 강시연은 강호와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아재들이나 할 법한 농담을 하기도 하고 때론 거친 말투가 섞여 나오기도 하지만 입이 거친 것은 영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방금 강시연씨 타격 봤어? 와! 이건 그냥 프로 수준인데?” “고민경은 그냥 포수네. 포수 장비 입히면 아주 그럴 듯 하겠어.” “야수들은 엉망이야. 코치들이 머리 꽤나 아프겠어. 크크.” 마녀들의 방송이 시작되자 역시나 한때 야구를 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이런 저런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꽤 어수선하네. 하긴, 대부분 야구는 해 본적도 없을 테고 합숙 같은 것도 해 본적 없을 테니 분위기가 어수선할 수밖에.” “합숙요?” 합숙이라는 말에 강시연이 귀를 쫑긋 했다. “운동부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합숙 아니겠습니까. 이게 참 힘들고 괴로운데, 또 막상 지나고 나면 다음 합숙이 기다려지거든요.” “합숙을 하면서 큰 솥에 라면을 끓여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 그때는 정말 라면 하나에도 그렇게 행복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민수의 모습에 다른 이들도 잠시 침울한 표정을 하더니 술잔을 들이켰다. 잠시 다운 된 분위기가 한 순간에 역전된 것은 강호의 개인 인터뷰가 등장할 때였다. 강시연의 개인 코치이자 마녀들 보조 타격코치라고 소개했는데, 마침 강호가 배팅 센터에서 강시연을 코칭하는 장면에 화면에 등장한 것이다. “저 빌어... 아니, 저 죽일 놈의 시키가...” “지금 저놈 음흉한 눈으로 강시연씨 훔쳐 본 거 맞지?” “훔쳐보긴 뭘 훔쳐 봐? 그냥 대놓고 봤구만.” “커허험! 강호야. 네가 내 친구이긴 하지만 이건 절대로 쉴드 불가다. 너 내일 길거리 다닐 때 조심해라. 뒤통수에 벽돌 찍히기 싫으면.” 그 누가 보아도 강시연의 엉덩이를 힐끔 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 강호의 모습이 편집도 없이 그대로 전파를 타자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강호는 설마 정말로 저런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낼 줄은 몰랐던 지라 일순간 당황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 모습마저도 강시연은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고, 오하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11시가 넘어가며 첫 방송이 끝날 무렵 다음화의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뭐야? 박찬성이 왜 마운드에 있어?” “어? 강호는 타석에 서 있는데?” 짧게 지나가기는 했지만 마운드에 박찬성이 올라가 있고, 타석에는 강호가 배트를 든 채로 서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대결을 펄치는 듯한 암시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진 바찬성의 한 마디는 친구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부했다. [정말 메이저 갈 생각 없어? 내가 밀어 준다니까!] 진지한 얼굴로 강호를 향해 말하는 박찬성의 모습과 함께 예고편이 끝나자 친구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강호에게로 쏠렸다. 그들도 야구인 출신들이고 야구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던 탓에 시간이 되면 미튜브 같은 곳에서 야구 관련 채널을 자주 들여다보고는 했다. 그러다 본 것이 박찬성과 강호의 대결이 담긴 영상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박찬성과의 대결에서 홈런을 뽑아내고, 끈질기게 승부를 벌인 사람이 강호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타자들은 모두들 자신만의 타격 자세를 가지는 법이다. 게다가 달리는 모습도 영락없이 강호다 보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호를 달달 볶아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 바탕 소동이 지나갔었다. 그런데 박찬성의 입에서 메이저 갈 생각 없냐는 말이 흘러 나왔다. KBO도 아니고 메이저리그다. 메이저라는 무대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찍어 버렸던 박찬성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그날의 승부가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이나 인생 경기 같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왜 그렇게 보는데?” 친구들의 눈빛에 강호가 괜히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자 박형일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넌 야구 다시 해볼 생각 없냐?”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던지는 말에 강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술을 들이켰다. 술잔을 내려놓은 강호가 안주 하나를 집어 먹고는 입을 열었다. “몰라.” “왜!!” 강호의 대답에 민수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 귀청 떨어지겠네. 왜 소리를 질러?” “그니까 왜?” “왜긴 뭐가 왜야? 모르니까 모르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야구를 몇 년 쉬었냐? 1, 2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10년이다 10년. 한국 프로의 문턱도 못 넘은 놈이 메이저는 개뿔이. 메이저가 무슨 중학교 야구 대회 이름도 아니고.” 그러면서 다시 술을 들이키자 옆에 앉아 있던 강시연이 술잔을 채워 준다.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찬성이잖아. 그 천하의 박찬성이 밀어준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잖아.” “그래서 모른다고 이야기 했잖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그게 그거... 어?” 또 민수가 발작을 하려다 말고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사실 나도 내 마음을 몰라. 그래서 이번에 예능을 하면서 내 마음을 확실하게 알아볼 생각이다. 내가 지금도 야구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다른 걸 하고 싶은 건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강호가 슬쩍 강시연을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 만약 내가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정하게 되면 네 놈들에게 제일 먼저 알려 줄게. 됐냐?” 단호하게 하는 말에 친구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강호와 오랜 시간 같이 하다 보니 강호의 성격에 대해서도 훤하게 꿰차고 있는 친구들이다.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이 한 가지로 딱 정의되는 것은 아니지만, 강호의 경우 다른 것은 몰라도 특정 사안에 있어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아무리 채근해도 소용이 없다. 그걸 잘 알기에 친구들도 더 이상 메이저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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