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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화 34. 터부 (4)


**** 오달식 상무는 H&H의 창립 때부터 한가연과 함께 회사를 키워온 창업 공신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인물이었다. 원래 오달식 상무는 여성 운동 용품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본래는 작은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한가연과 만난 것도 바로 그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한가연은 막 회사에 입사를 한 신입 직원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때만 해도 한가연과 오달식 상무는 큰 접점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저 한가연의 사수로 오달식이 지명되었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사실 오달식은 한가연이 자신의 부서로 지명 되었을 때만 해도 환호성을 내지른 사람이었다. 당시 신입사원들 중에 연예인이 울고 갈 정도의 절세미녀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 중이었고, 하나같이 자신의 부서에 그 미녀가 배정받기만을 빌고 또 빌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절세미녀가 마침 자신의 부서에 배정을 받았고, 자신이 그녀에게 일을 가르치는 사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당연히 동료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한가연을 처음 마주한 날, 오달식 상무는 회사에 떠돌던 소문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소문이 부족했다. 처음 만난 한가연은 절세미녀라는 수식어로는 감히 제대로 표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오달식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한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장미에게는 가시가 있다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가시는 단순한 가시가 아니라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한기를 풀풀 날리는 얼음송곳이었다. 한 마디 말을 붙이는 것조차 어려웠고, 사적으로 무슨 질문을 하기만 해도 쏘아 붙이는 눈빛은 시베리아 오지의 눈보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매섭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소문에는 그녀가 미혼모이며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이 있다고 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가 21살인 것을 감안하면 고등학생 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는 것인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문이라 치부했다. 그런데 소문이 점차로 살이 붙으며 커지더니 급기야 직접 아이를 보았다는 이들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우 입사 6개월도 되지 않아 그녀는 회사 직원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의 주요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특히, 여직원들의 도가 넘는 발언이나 행동이 노골적일 정도로 한가연을 향하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며 제 할일만 묵묵히 해 나갈 뿐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능력이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이해하는 수준이다 보니 6개월 지나면서 부터는 오달식이 오히려 옆에서 조언을 구해야 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이 입사를 하고 6개월 차에 어떤 모습이었던가 하고 돌이켜 보면, 그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달식은 한가연이라는 여성에게서 많은 감흥을 받았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다 보니 그녀 스스로 독해지기 위해 저런 모습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직장 동료로서 선을 지키며 관계를 이어오던 중에 돌연 그녀가 회사에 사표를 내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연락이 와서는 스카웃 제의를 해 왔다. [사업을 하나 하려고 해요. 오달식 씨가 절 도와 줬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인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그 말이 다였다. 그 누가 보아도 그런 말 한 마디에 잘 다니고 있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오달식이 다니는 회사가 중소기업이기는 했지만 화장품 업계에서는 나름대로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시장을 넓혀가며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거절을 해야 마땅한데, 오달식은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마냥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서 그녀를 따라 나섰다. 이후, 그녀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 여자와 함께하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힘들다고 불평을 하고 회사를 떠날 때에도 직원들을 독려하며 끝까지 한가연의 옆에 남아 있었던 사람도 바로 오달식이었다. 당연하게도 회사의 직원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 한가연을 잘 아는 인물이었고, 남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육감이 그녀에게 있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고 느낀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한가연이 갑자기 남성 스포츠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하면서, 첫 사업으로 야구 용품 사업에 뛰어 들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직원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고, 오달식 상무마저도 이때만큼은 한가연이 그동안의 작은 성공에 취해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럼에도 오달식은 한가연을 믿어 보기로 했고, 군소리 없이 그녀를 푸쉬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렇게 한가연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야구 용품 사업의 책임자가 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오달식 상무였다. 하지만 아무런 인맥도 없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오달식 상무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오달식 상무는 특유의 친화력과 능글맞은 성격을 바탕으로 지난 3년 동안 차근차근 야구판에 인맥을 넓혀 나갔고, 그 와중에도 치밀한 계획 아래 사업의 준비를 진행시켜 나갔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서 이제 광고 촬영만을 앞둔 상황에서 한가연 특유의 육감이 발동해 버리자 참으로 난감해진 오달식 상무였다. 모델의 선정에만 벌써 두 달이 넘게 매달려 있었음에도 한가연의 입은 열리지 않았고, 출시 일자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러다 한가연의 입에서 비로소 박찬성과 강시연이 언급되었고, 확실한 타겟과 목표가 정해졌다. 그 와중에 며칠 전, 박찬성과 대결을 벌였던 아무추어에 대한 추가 조사 지시가 떨어졌다. 일전의 회의에서 그 인물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적이 있었으나,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것인지 최 우선순위로 그 인물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 오라는 지시였다. 그때 반짝이는 한가연의 눈동자를 보며 오달식 상무는 어쩌면 이번 사업의 마지막 퍼즐의 완성이 무명의 아마추어에게 달려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한가연과 함께 사업을 하면서 자연히 늘게 된 눈치와 육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쌓아온 야구인들의 인맥을 총 동원해서 무명의 아마추어의 정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는 지인으로부터 그에 대한 조사 자료를 넘겨받은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JCBC에서 기획하고 준비한 마녀들의 도전이라는 최종 기획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보통 이런 기획안은 대외비로 취급된다. 기획안이 빠져 나간다는 것은 경쟁사에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안이 아주 철저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이미 기획이 승인을 받고 제작에 돌입한 상황이라면 기획안이 빠져 나간다고 해서 줄기에 큰 변동을 주기는 어렵다. 때문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마녀들 기획안이 알에 모르게 돌아다니는 중이었고, 그 중의 하나가 오달식 상무의 손에 들어 온 것이다. 그리고 기획안을 살펴보기 무섭게 한 달음에 회사로 달려와 한가연의 집무실로 곧바로 뛰어 들었다. “사장님! 박찬성과 상대한 무명의 아마추어 말입니다. 이거 잘하면 정말 대박일 것 같습니다.” 집무실로 뛰어들기 무섭게 하는 말에 막 서류에 결재를 하려던 한가연은 그저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일단 이거부터 읽어 보십시오.” 오달식 상무가 내민 것은 마녀들의 기획안이었다. “기획안에는 실명이 거론되어 있지 않지만, 거기 보조타격 코치겸 보조매니저라고 적힌 사람 있죠? 그 사람이 바로 박찬성과 대결을 벌였던 사람입니다.” 그의 말에 기획안을 읽어 내려가던 한 가연의 표정이 점차로 진지해져 간다. 그러다 페이지를 뒤로 넘길 때마다 진지한 표정 위로 놀라운 감정이 자리 잡는다. “이거 진짜에요?” “이팩트 컴퍼니의 기섭이.... 아니, 강기섭 사장에게서 얻은 정보입니다. 일전에 박찬성이 마녀들의 도전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기사에 그 남자도 동반 출연한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기억나서 사장님 지시를 받기 무섭게 그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았겠습니까. 강 사장의 인맥을 통해 알아낸 정보인 만큼 확실합니다.” 이팩트 컴퍼니라면 회사의 광고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광고 대행사로, 강기섭 사장은 한가연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능력도 출중하고 실력이나 재주도 뛰어나서 광고업계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무엇보다 마당발로 매우 유명했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능력이나 실력만 뛰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영업력이 중시 되는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인맥과 처세술이다. 광고업계라는 것은 천재적인 감각과 재주를 타고 나지 않은 이상은, 업체들의 능력은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런 업계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능력이 바로 영업력인데, 강기섭 사장은 그런 부분에서 만큼은 확실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오달식 상무와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였기에 더욱 신뢰할 만한 정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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