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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31. 변태의 사랑 방식 (4)


**** “으윽!” 눈을 뜨기 무섭게 온 몸에서 고통이 엄습해온다. 전신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머리를 강하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고 무겁다. 잠시 눈을 깜빡이자 흐릿하던 시야가 선명해지며 낯선 천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 어디지?’ 확실히 집은 아니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자 온 몸이 비명을 질러 댄다. “윽!” 고통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강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낯선 방이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다시금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그제야 방의 주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연씨 방!’ 동시에 강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강시연의 얼굴이 떠오르기 무섭게 지난 새벽의 일이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모든 기억이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밀려 든 것이다. 잔뜩 흥분한 채로 게란트에서 넘어와 욕실에서 어떻게든 이성을 찾으려 했던 행동들이 떠오른다. 뒤를 이어 강시연을 떠올렸고, 다짜고짜 그녀의 집으로 쳐들어 간 것 역시 뒤따르 떠올랐다.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 그녀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이성이 뚝 끊어지며 그녀의 옷을 찢어발기던 모습도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진 겁탈.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탓에 기억이 흐릿하기는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범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짐승처럼 헐떡이며 거칠게 겁탈을 하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그녀가 자신을 거부하며 밀어내던 모습도 떠올랐고, 계속해서 무슨 말을 하던 것도 떠올랐지만, 당시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어 오르는 흥분과 살심을 식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그녀를 겁탈하고 사정을 할 때마다 흥분이 식어 내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에 고무되어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사정을 했다. 마지막 정력을 그녀의 몸속에 쥐어 짜내는 순간 그제야 이성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신의 아래에 갈려 있는 강시연을 보며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들었다. 모든 기억을 떠올린 강호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강간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강간을 해 버렸다. 아프다면서 계속해서 거부하고 밀어내던 강시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부 사이에도 원치 않는 관계는 강간으로 인정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부부도 아니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관계에서 그녀의 의사에 반한 채로 겁탈을 하며 성욕을 채워 버리고 말았다. 평소 강간은 살인에 버금가는 범죄라고 생각하던 강호였기에 그녀를 향한 죄책감과 함께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혐오감이 쓰나미처럼 밀려 들었다. ‘지구로 돌아오지 않고 게란트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했어.’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리고 말았다. “하아!” 방을 나서면 그녀와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대체 어떻게 변명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 단 말인가. 이건 변명 따위로 용서를 구하고 자시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누나나 조카가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당했다면, 설령 가해자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그랬다고 한다면, 그래서 과연 용서하고 납득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테지.’ 무심코 동반자 창을 열어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동반자로 등록되어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두렵고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아직 동반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가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후우!” 깊이 숨을 들이 마셨다. 어차피 그녀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처럼,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미룬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미룰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강호가 시트에 가득 묻어 있는 검붉은 흔적을 발견하고는 흠칫 했다. 척 보아도 피가 말라 비틀어진 흔적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진짜 미친 짓을 했구나, 서강호.’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다. “하아!” 또 다시 한숨을 내쉰 강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잠시 휘청했다. 온 몸이 무겁고 기운이 없다. 라그놀과의 전투 이후 상처를 입은 몸을 제대로 치료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동하다 보니 체력이 많이 소모된 영향도 있겠지만, 지난밤에 무리를 한 것이 지금의 몸 상태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내려서자 의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옷가지가 보였다. 어제 자신이 입고 온 옷이 아닌 것을 보면 아마 그녀가 준비한 옷일 터였다. 그러고 보니 옆구리의 상처가 거즈와 붕대로 테이핑이 되어 있고, 온 몸의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에도 반창고가 붙어 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자신을 위해 옷가지를 챙기고 치료까지 해 놓은 모습에 그녀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커진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는 살며시 문으로 다가섰다. 살짝 문을 열고는 문틈으로 귀를 가까이 대어 밖의 상황을 살폈다. 조용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외... 외출했나?’ 어쩌면 병원에 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그녀의 침실은 현관에서 들어와 우측으로 꺾어지며 이어진 복도에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현관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거실과 주방 쪽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강호가 살며시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섰다. 당당하게 나서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자고 했던 것이 조금 전이었건만, 정작 문을 나서는 강호는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하고서 곧장 현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도망치듯 사라지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분명 알고 있는데, 막상 밖으로 나서자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성은 그녀와 대면하여 용서를 구하고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와 마주하고 나면 그것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파탄 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강호를 엄습했다. 본래 사람이란 잘못을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그것에 당당히 맞서기 보다는 유야무야, 스리슬쩍 넘어가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는 강호도 마찬가지여서 관계가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치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관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었다. “도망가시게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강호의 몸이 굳어 버렸다. “몰래 도망가는 걸 보니 어젯밤에 당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고는 있나 봐요?” 이어서 들려오는 말에 갑자기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냥 못들은 척 하고 이대로 문을 열고 도망쳐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정말로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강호야. 더 이상 추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 그런 생각으로 주뼛거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돌아섰다. 거실 너머 마당을 접한 창가에 자리 잡은 소파의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인다. 거리상으로는 현관에서 겨우 십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그녀가 그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시선을 현관을 향해 고정시키고는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할때 이불 속에 머리만 숨기면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가서 어쩌려고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강호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대역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일단 이리 와서 앉아 봐요. 이야기 좀 해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소파를 가리키는 모습에 강호가 침을 삼켰다. 왜 여자들이 저런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남자들이 벌벌 떠는 지 그 심정이 고스란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사형성고를 받으러 가는 사람의 심정이 이러할까.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만 느껴진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앞으로 다가서서는 그녀의 얼굴을 힐끗 살폈다. 무표정한 얼굴과 눈빛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다. 화난 표정이라도 하고 있으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겠는데, 아예 아무런 표정도 없다 보니 절로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며 온 몸을 압박하고 짓눌러 오자 강호의 어깨가 한없이 움츠려 들었다. 결국 무거운 침묵을 이기지 못한 강호가 먼저 입을 열려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분위기에 짓눌려 숨이 막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 것이다. 그 순간, 강시연의 입이 기다렸다는 듯 먼저 열렸다. “몸에 그 상처들은 뭐에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무심한 목소리. 마침, 숨 막힐 듯한 침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야말로 방심의 허를 찌른 기가 막힌 타이밍. “그... 그게 라그놀과 싸우...” 저도 모르게 라그놀을 언급하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강시연같이 똑똑한 여자가 강호가 삼켜버린 뒷말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싸우다 생긴 상처!’ 그 말 하나로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라그놀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연락이 닿지 않은 어딘가에서 라그놀이라는 것과 싸움을 벌였다. 몸에 생긴 상처로 보아 라그놀이라는 것은 꽤 험악한 동물이 분명하고, 그 싸움 역시 굉장히 위험했을 것이다. 지난밤의 일은 그 싸움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아 그런 식으로 이성을 잃고 그런 행동을 저질렀다. 한 순간에 상황을 정리한 강시연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다음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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