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29. 사냥 전야 – 육정(毓精) (3)
“배트도 느리고 허리도 늦게 돌아. 이거 제대로 집중 안 하지?”
그런 소리에 뒤를 돌아본 강호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박찬성과 그 옆으로 핸드캠을 든 강시연이 사람들 무리에 섞여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는 무슨. 이런 공도 못 치면서 메이저를 가겠어?”
메이저라는 소리에 옆에 서 있던 최태성이 한 숨부터 푹 내쉬었다.
“배팅 공이라도 100마일이다. 메이저도 그렇게 쉽게 못 때려낸다고.”
최태성 선수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리 메이저라도 100마일의 공은 쉽게 접하기 어렵다.
이름난 타자들이 100마일의 공에 번번이 헛스윙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한테 홈런을 뽑아 낸 놈인데 이런 공에 쩔쩔매면 제 체면이 뭐가 됩니까?”
“네 체면 때문에 100마일의 공도 뻥뻥 때려내야 한다는 거냐?”
“아니 뭐, 그게 아니라 늦은 나이에 메이저에 가려면 그 정도 임팩트는 보여줘야 한다 뭐 그런 거죠.”
“어휴! 너 오늘도 메이저 이야기 할 거면 그냥 가라.”
두 사람이 투턱거리는 것을 보면서 강호는 그제야 들뜬 기분에서 빠져나왔다.
라그놀의 전투를 앞두고 생각이 많은 것도 있었고, 강시연과의 시간을 보낼 궁리를 하느라 잡생각이 많아지면서 확실히 집중을 하지 못했다.
박찬성의 옆에 선 강시연을 보자 오히려 들뜬 기분이 좀 더 진정되는 기분이다.
왠지 안정이 되는 느김이랄까.
‘좋아. 집중해서 쳐 보자.’
박찬성 선수의 말이 맞다.
메이저는 논외로 치더라도 160키로에 육박하는 공이다.
시스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 집중을 하기는커녕 잡생각을 하고서 타석에 올랐으니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천재였다고.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잡생각을 털어버린 강호가 타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분위기가 달라지자 뒤에서 어수선하던 사람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조용해진다.
다시 공이 날아온다.
‘틱!’
빗맞은 공이 내야로 흐르는 것을 보며 강호가 다시 배트를 잡았다.
몇 개의 공이 이어지고 속도가 눈에 익기 시작하자 배트 타이밍이 빠르게 맞아가기 시작한다.
채 7개의 공이 날아오기도 전에 배트 중심에 정확하게 걸린 공이 홈런성 타구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연이어진 장타.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는 두 마는 둥 하며 강호는 이어진 공을 계속해서 때려내고 또 때려내었다.
‘쉬워!’
확실히 집중을 하자 160Km에 이르는 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때려내는 데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스텟도 꽤 올랐기에 쉽게 느껴지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공 자체가 단조롭다.
공의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박찬성과 승부 할 때에 비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위협적인 느낌이라거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박찬성과의 대등한 승부를 벌였다는 흥분으로 인해 그의 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제대로 인식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피칭 머신에서 날아온 160Km의 공을 쳐내면서 비로소 박찬성의 공의 진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3세트를 끝내자 또 다시 시시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집중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것을 느끼고는 타석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강호는 왠지 시큰둥한 기분이었다.
그때 박찬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표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박찬성의 눈이 왠지 모르게 이글거리고 있다고 강호는 느꼈다.
만약 지금 박찬성이 공을 던진다면 그 날의 흥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연의 훈련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실속 있게 진행되었다.
어릴 때 소프트볼을 했던 경력이 있는 강시연이다.
소프트볼이나 야구나 타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기본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보니 가르치는 족족 습득하는 능력도 빠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최태성과 박찬성이 옆에 붙어서 이런 저런 조언을 같이 해주다 보니 첫 날임에도 강시연의 타격은 눈에 띌 정도로 쑥쑥 늘어갔다.
훈련을 진행하는 동안 옆에서 박찬성이 계속해서 메이저를 언급하면서 귀찮게 굴기도 하고, 최태성과 투덕거리기도 하면서 시간 가능 줄 모르고 촬영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강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스킬 하나를 얻었다.
바로 타격 코칭 마스터리다.
[타격 코칭 마스터리 2 – 타격 코칭에 의한 훈련생의 습득력이 10% 향상된다.]
그 스킬을 보며 강호는 대체 시스템이 스킬을 생성하는 기준에 대해 또 다시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이번에 생성된 스킬은 강호 본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위한 스킬이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스킬이 있기는 했다.
섹스 마스터리 스킬이 그것이다. 본인이 아니라 파트너의 만족도를 향상 시켜 주는 스킬. 하지만 섹스라는 것은 엄연히 멀티플레이다. 다른 사람의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결국 본인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그에 반해 타격 코칭 기술은 온전히 코칭을 받는 사람에게만 이득이다. 당연히 이런 스킬로 내게 이득이 될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전혀 없었다.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이상하네. 강호씨가 알려주니까 뭔가 좀 더 쉽게 알아 듣는 듯한 느낌이네요.”
아마 코칭 마스터리의 영향이겠지만, 겨우 10퍼센트의 보정치인데 사실상 거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 정도의 수치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시스템이 제 꼴리는 대로 스킬을 생성하든 말든 어떠랴 싶었다.
“후후후! 잘 가르쳐 줬으니 이따가 특별히 보상을 해 줄까 봐요.”
그러면서 슬쩍 가슴을 모으는 시늉을 한다.
지난번에 말한 젖치기를 말하는 모양이다.
사실 훈련을 하면서 강시연이 은근히 도발을 해 오지는 않을까 하며, 내심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이기는 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 자칫 그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시연의 성향을 잘 아는 강호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강시연은 훈련하는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훈련을 하면서 집중력을 잃을 뻔 했던 것은 강호였다.
‘하아! 앞으로 복장도 무난한 걸로 입고 오라고 해야겠어.’
강시연의 복장은 몸에 착 달라붙는 하얀색 탱크탑에 아래는 스포츠 레깅스를 입었는데, 그 바람에 몸의 굴곡이 한 치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특히 레깅스 같은 경우에는 앞에서 자세히 보면 하초의 도톰한 살집과 도끼자국까지 드러나 보여 도무지 시선을 돌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솔직히 남자 입장에서는 여성이 그런 옷을 입어주면 ‘어이쿠, 감사합니다.’하며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문제는 카메라다.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 와중인데도 저도 모르게 멍한 눈으로 강시연의 엉덩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강시연은 집중력 있게 훈련을 했는데, 그 바람에 상의엔 살짝 땀까지 젖은 탓에 더욱 선정적인 느낌이었다.
그나마 옆에 박찬성이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정말 훈련하는 내내 강시연 엉덩이만 훔쳐보는 장면이 찍혔을 지도 몰랐다.
7시에 시작된 훈련은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배팅 연습장을 나와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강시연이 키스를 해 오자 이미 잔뜩 기대를 하고 있던 강호도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혀를 빨았다.
“몸은 좀 어때요?”
“이제 괜찮아요. 약도 계속 먹었고 연고도 부지런히 발랐더니 이제 다 나은 것 같아요.”
“그럼...”
강호가 뒷말을 흐리자 강시연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지난번처럼은 안 돼요. 일주일을 또 독수공방 하기 싫으면 오늘은 적당히 해요. 아프다고 매번 거부했다가 당신이 아무 여자나 안고 다니는 건 보기 싫으니까. 사실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 솔직한 내 마음이 그래요.”
얼핏 들으면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절대로 안 돼.’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보통의 여자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시연이 일전에도 말했듯이, 그녀가 한 말의 핵심은 ‘다른 여자’가 아니라 ‘아무 여자’라는 데 있다.
“시연씨가 있는데 제가 왜 아무 여자랑 합니까. 전 시연씨면 족합니다.”
“피! 이제 보니까 당신, 바람둥이 기질이 농후하네요?”
“네?”
“여자가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알잖아요. 바람둥이가 별 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술술 하면 그게 바람둥이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니 이거 억울한데요. 저 그렇게 까지 나쁜 놈 아닙니다.”
“그럼 하영이는 필요 없다는 말이죠? 아니, 그 전에 정말 저 하나로 만족할 수 있겠어요?”
갑자기 날아온 돌직구에 강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봐. 이러니 내가 무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지. 당신 같은 남자는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괜히 제 기분 생각하느라 에너지 낭비할 필요 없어요.”
확실히 다른 여자와는 생각하는 방향 자체가 다르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것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녀만의 방식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그녀의 사랑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강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