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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미끼 (3)


​ 지하 감옥은 여전히 조사 중인 사람들로 분주했고 정화자 직속 부대가 사용하던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도 마찬가지였다. ​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부지런히 걸어가며 아직도 이어지는 기묘한 연결감을 되새겼다. ​ “지금도 느껴지고 있다는 거지.” ​ “응.” ​ 최지윤은 투척용 단검과 활을 점검하며 몸을 가볍게 풀었다. ​ 화살 없이 오로지 수면 마법으로 이루어진 마나 화살을 빗어 쏘아내는 것이 그녀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 물론 단일 지정으로 수면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저렇게 만들어진 수면 화살은 초장거리 저격도 가능하다고 한다. ​ “신체 능력이 매우 우수해. 재생능력이 있고 흡수한 대상으로 모습을 바꿀 수도 있어. 아마 부피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을 테니 환풍구 쪽도 경계해.” ​ 길드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괴물의 능력을 브리핑했다. ​ “그리고... 내가 정화 전쟁에서 만난 그놈처럼 학습하는 능력도 있을지 몰라. 속전속결로 제압한다. 여의찮으면 그냥 사살해.” ​ “응.” ​ 이유라는 덤덤하게 말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 “본체. 그러니까 세리안 렐리트는 상처가 남았었다며.” ​ 한세희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어두운 복도를 밝히는 광구를 전방으로 쏘아 보내며 길을 열었다. ​ 길드장은 잠시 고민했다. ​ “세리안 렐리트가 괴물의 데미지를 대신 받고 있는지도 모르지.” ​ “그렇다고 세리안 렐리트가 죽을 때 괴물도 죽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길드장 님의 말씀대로 속전속결로 치워버리는 게 현명해요.” ​ 피피의 물약 가방에서 꺼낸 물약이 내게도 전해졌다. ​ “비상용이에요. 혹시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는 즉시 따서 마셔버리세요.” ​ “아, 응.” ​ 솔직히 말하면 발키리 길드 전원이 모인 이 비대칭 전력은 괴물 놈에게 상당히 과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그런데도 방비를 철저히 하는 이유는 이게 끝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 세리안 렐리트를 잡아내거나 사살하고 나면 닥쳐올 후폭풍. ​ 현재 세리안 렐리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침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것’이다. ​ 세리안 렐리트에 대해 보고받은 정부에서 내린 결정으로 각 길드의 길드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들은 베키가 그랬던 것처럼 전쟁 영웅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을 놓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베키는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 정화자 둘이 더 파견됐다고 한다. 그들의 목적은 당연히 ‘조사’였지만 이미 정화자들이 한통속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어, 말해.” ​ [정화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사자왕 갤리어드와 천익장 유레이 입니다. 둘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색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정비를 마치는 대로 바로 진입할 것 같습니다.] ​ 길드장의 귀에 꽂혀있는 소형 통신 장비에서 청란의 보고가 들려왔다. ​ ‘사자왕에 천익장?’ ​ 매우 드문 수사자 수인에 6장의 날개를 가진 상품 천사가 등장했다. 둘 다 정화자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이었다. ​ “좋아, 상황 보고는 계속해줘. 애들아, 빠르게 움직여야겠다.” ​ 우리가 가고 있는 장소는 돔 스타디움의 비품 창고였다. ​ 현재는 모든 대부분의 물품을 꺼내 쓰고 빈 곳인 그곳에서 내가 마기를 풀어내 괴물을 불러들일 예정이다. ​ “가자.” ​ 빠르게 달려가는 길드장을 선두로 나를 품에 안은 레베카와 나머지 길드원들이 달렸다. ​ *** ​ 사자왕 갤리어드는 거대한 체구의 수사자 수인이었다. ​ 그는 연신 멋들어진 노란 갈기를 쓰다듬으며 방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 “유레이.” ​ “네.” ​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고 앉아있는 맞은 편의 천사는 6장의 날개를 고이 접어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 “미끼를 문 것 같은데. 아닌가?” ​ 갤리어드는 다소 즐거운 어투로 손톱을 뽑아 다듬으며 웃었다. ​ 찻잔을 내려놓은 천사 유레이는 어깨 한쪽으로 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다른 미끼와 접촉한 게 아닌 이상 세리안의 조각이 이상 현상을 나타냈으니 희망적인 관측을 해도 될 듯하지요.” ​ “다른 미끼는 전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드디어 찾은 거지.” ​ 갤리어드는 격정에 찬 눈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 도저히 가만있을 수 가 없다. ​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핵’을 찾아냈으니 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다. ​ 언젠가 하늘이 갈라졌을 때. 그 검은 무저갱을 날아오르던 백룡을 기억한다. ​ 아름다운 비늘을 좀 먹어가는 검은 물결의 너머에 모든 것을 굽어보던 거대한 눈동자도. ​ “흐으...” ​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온몸의 털이 곤두서서는 느낌에 진저리가 처진다. ​ 한없이 초라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린 그 무력함이 지금도 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 같았다. ​ 우웅- ​ “자, 갤리어드. 조금 진정하시지요.” ​ 유레이의 헤일로에서 번져 나온 빛이 갤리어드를 비추자 그는 편안한 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 “후- 이거 미안하군. 잠시 그때가 떠올라서.” ​ 유레이는 눈을 감은 채로 살포시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 ​ “오늘 우리는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겁니다.” ​ “그래, 그래야지. 미끼를 풀어놓은 지 벌써 7년이다. 이제 결실을 볼 때가 되었어.” ​ ‘파편’을 가져온 큰 공을 세운 세리안 렐리트가 하필 반응을 보인 것은 안타까우나 진실을 목도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온 버러지에게는 어울리는 최후 같기도 했다. ​ “크흠. 그래서 ‘핵’의 위치는 특정했나?” ​ 갤리어드는 다시 위풍당당한 태도를 회복하고 물었다. ​ “아직입니다.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봉쇄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크흐흐. 곧이다. ‘신살자’를 완성하기까지 이제 한 걸음이야.” ​ 필멸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각성할 세계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 *** ​ “그쪽은?” ​ 길드장의 물음에 저격할 위치를 잡은 최지윤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 내 좌우에 자리 잡은 레베카와 이유라가 서늘한 기세를 뿜으며 무기를 고쳐잡았다. ​ 한세희의 마법까지 캐스팅을 마치자 길드장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후우!” ​ 심호흡과 함께 눈을 감고 아랫배의 느낌에 집중했다. ​ 꿈틀거리는 마기와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마나가 합쳐진 기운을 움직이며 기묘한 연결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 아랫배를 중심으로 공명음이 퍼지며 마기가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 “온다.” ​ 이유라의 중얼거림과 함께 지하를 울리는 파열음. ​ “...벽을 부수고 오고 있어요.” ​ 레베카의 등 뒤로 신성력이 날개처럼 펼쳐지며 그녀의 몸을 감싸고 돌았다. ​ 쿵- ​ 쿠궁- ​ 점점 더 커지는 소리에 내심 떨면서도 길드원들을 믿었다. ​ 이 세계에 떨어지고 5년이 지난 지금. 내 몸에 감춰진 비밀에 대해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 대답 없는 신. ​ 거대한 전쟁의 배후가 만들어낸 목적을 알 수 없는 괴물과 관련된 몸뚱이. ​ 다른 세계에서 온 영혼. ​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의 일 뿐이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쾅!! ​ “준비!” ​ 길드장의 검이 뽑혀 나오며 백색의 불길을 터트렸다. ​ 아랫배에서 이어지는 선으로 방향을 특정한 나는 손을 들어 그곳을 가리켰고 길드원들은 빠르게 전열을 정비했다. ​ “온다!” ​ 콰아아앙!! ​ [키에에엑!!!] ​ 무너져내리는 벽면에서 고개를 내밀고 포효하는 괴물은 예전과 달리 이목구비가 달려있었다. ​ 세리안 렐리트의 얼굴을 하고 찢어진 커다란 주둥이를 가득 벌려 검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처참한 몰골. ​ 그것을 향해 한세희와 최지윤이 쏘아낸 마법과 화살이 빛무리를 남기며 폭발했다. ​ ----!!! ​ “쉴드.” ​ 후폭풍을 막아낸 한세희의 마법. ​ “아직이야! 움직이고 있어!” ​ 최지윤의 눈앞에 떠오른 투시 마법이 괴물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경고했다. ​ “흡!” ​ 이유라가 올려 친 검에 잘려 나간 검은 손이 하늘을 날았다. ​ [끼아아악!!] ​ 비산하는 먼지 속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괴물은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멈춰.” ​ 덜컥! ​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튀어 오를 듯 다리를 굽힌 놈이 그대로 멈춰서고 덜덜 떨었다. ​ 길드장은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려 잠시 공격을 중단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경계했다. ​ “그대로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아서 바닥에 붙여.” ​ [키르르르...] ​ 세리안 렐리트의 얼굴을 한 괴물의 체고가 3미터는 넘어간다. ​ 예전처럼 검붉은 살덩이를 비대하게 키워놓은 근육질의 몸. ​ 그것이 서서히 자세를 낮추고 바닥을 향해 내려앉는다. ​ 꾸득- ​ 용수철이 한껏 뭉쳐지는 듯한 묘한 소리가 난 것을 그때였다. ​ “피해!” ​ 길드장과 이유라가 각각 백색과 푸른색의 불길을 검에서 터트리며 베어가고 레베카가 내 앞을 막아섰다. ​ [크아아악!!] ​ 한계까지 굽힌 무릎을 펼치며 쏘아진 괴물이 그 검에 갈라지고 베어지면서도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 ‘아...’ ​ 느려지는 사고의 흐름 속에서 팔 한쪽과 허리 아래쪽을 베어지고도 날아오는 괴물이 보였다. ​ 괴물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짙은 그리움과 갈망. ​ 레베카가 휘두른 법봉이 괴물을 머리통을 처 올리며 떨쳐내고 토막 난 채 바닥을 구른 괴물이 한쪽 팔로 나에게 기어 오며 입을 열었다. ​ [아, 아아. 시우 님.] ​ 젖소 누나의 목소리로 애타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 어느새 피눈물을 흘리는 젖소 누나의 얼굴로 변해버린 괴물의 얼굴을. ​ [아, 아아아아!!] ​ “...X발. 소름 끼쳐.” ​ 평소 거친 욕을 하지 않는 한세희마저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괴물에게서 한걸음 물러섰다. ​ [시우님. 저예요. 저라구요.] ​ 잘려나간 하반신과 팔이 꾸물꾸물 기어 오는 것을 최지윤의 마나 화살로 꿰어 바닥에 고정했다. ​ 나를 향해 발버둥 치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왔다. ​ “...왜 그 사람들을 죽인 거야?” ​ [아아, 아아아.] ​ “세리안 렐리트는 어떻게 됐지?” ​ [시우님. 시우님.] ​ “...” ​ 급격하게 재생하는 괴물을 바라보던 길드장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 “네 명령을 듣지 않는 것 같은데. 더 물어봐야 소용없어. 애초에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냐. 더 재생하기 전에 결정해야 해.” ​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을 보니 나도 덩달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알아?” ​ 한세희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덩이를 허공에 띄우고 당장이라도 그것을 떨어트릴 모양새였다. ​ 화르륵-! ​ 내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길드장의 검이 괴물의 목을 쳤다. ​ 백색의 불길이 휘둘러지는 것만 같은 검격에 괴물의 목이 몸뚱이에서 떨어져나와 굴러갔다. ​ [키키킥. 왜 죽였냐고?] ​ 다시 세리안 렐리트의 얼굴로 돌아온 머리통이 비웃음을 흘리며 광기에 찬 눈을 번들거렸다. ​ “...애들아, 아직인가 보다. 전투 준비!” ​ 콰아앙!! ​ 괴물이 튀어나왔던 쪽의 반대편 벽면이 부서지며 그곳에서 머리가 괴물의 검붉은 살점으로 뒤덮힌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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