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준비 (1)
태양 빛보다도 더욱 강렬한 조명이 경기장을 비췄다.
장마 기간에 경기가 열리는 만큼 돔으로 만들어진 경기장은 태양이 없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삐질삐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끕!♡”
“...시우야~?”
이마에 혈관이 툭툭 불거지는 와중에도 웃는 얼굴을 하고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길드장이 살벌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 나 아냐.”
난 진짜로 억울하다고! 입장 전에 갑자기 위험한 얼굴을 한 레베카가 내 손을 잡더니 작은 자동차 키 같은 걸 올려놨다.
뭐냐고 물어도 대답도 없이 대기 줄에 가서 서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스위치를 올려보고 바로 알았다.
저 분홍 머리 음탕한 노출광이 작정했다는걸.
“스, 스위치 내릴까?”
오늘은 정식으로 나와 레베카가 데뷔하는 날이다.
데뷔라고 하니 이상하지만, 대중매체에 나와 공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거기다 새롭게 합류한 청란을 포함한 발키리 길드 전원이 모인 일이 거의 없으니 역사적인 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레베카는 이미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린 혀로 말했다.
“하악!♡ 히-♡ 안대여♡ 끄, 끄면 안대...♡”
레베카의 바지가 조금 젖어 드는 것이 보였다. 워낙 밝은 조명에 새하얀 옷이라 티는 안 나는 게 다행... 다행인가?
길드장은 웃는 얼굴로 복화술을 하며 음산하게 말했다.
“당장 꺼라? 응?”
“넷.”
나를 비추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부우웅--!!
“어라?”
“끄히잇!♡ 으기잇!♡”
손가락에 걸린 스위치가 가장 강한 강도까지 거침없이 올라가 버렸다.
“아...”
길드장의 나직한 탄식과 함께 과도한 시선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레베카가 두 눈을 까뒤집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꼬꾸라졌다.
퓨퓻-! 퓻!
화려한 조명으로도 가리지 못한 애액이 높게 치켜올려진 레베카의 보지에서 힘차게 뿜어졌다.
그 물줄기가 만들어낸 무지개를 넋 놓고 바라본 길드장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새하얗게 타버린 모습이었다.
“...난 억울해. 길드장은 나 이해하지?”
“히이...♡”
퓨퓻...퓻...
레베카의 보지에서 애액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길드장의 생기도 함께 빠져나가는 듯했다.
청란은 우물쭈물한 기색으로 내게 다가와 작게 귓속말을 했다.
“여, 영역 표시입니까? 저도...”
레베카가 부러운 듯 힐끔힐끔 바라보며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는 모습에 차마 뭐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만 헤 벌리고 말았다.
“정상이 없어... 이딴 게 발키리 길드? 그리고 내가 길드장...? 어째서...?”
정신 분열이 일어난 길드장과 애액을 싸지른 성녀. 그리고 영역 표시를 부러워하는 똥개 한 마리.
그리고 그런 모두를 무시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모르는 사람인 척하는 길드원들을 보며 나는 천천히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런 길드라 죄송합니다. 그래도 애들은 착해요.’
유례없는 퍼포먼스에 열광한 관중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레베카를 안아 들고 퇴장했다.
***
본선 진출 팀의 소개가 끝나고 발키리 길드에게 배정된 대기실로 돌아왔다.
“으허어엉!! 내, 내 길드! 자랑스러운 발키리 길드가!”
길드장은 세상이 떠내려가라 엉엉 울었다.
엎어져 대성통곡을 하며 주먹으로 바닥을 쿵쿵 쳐내는데 실금이 쩍쩍 가며 상당히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는 길드원들은 그저 정복을 입은 나를 감싸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오. 진짜 레베카가 사진 하나는 엄청나게 잘 찍네.”
“헤헷. 별거 아니에요.”
노출광 변태 년의 단련된 자위 촬영 솜씨라는 걸 모르는 길드원들은 너도나도 자신을 넘겨받으며 좋아라 했다.
일부러 옷도 갈아입지 않고 축축한 바지를 보란 듯 드러내고 다니는 레베카는 천진하게 웃었다.
옷감이 젖어 보지에 착 달라붙어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도 오히려 내 쪽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은근하게 흔들어댔다.
‘...이 년이?’
요즘 들어서 그녀의 욕구를 해소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오늘 같은 사고를 쳐버릴 줄이야.
나는 휴대폰으로 실시간 방종 중인 무투전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대부분이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며 나를 성적으로 희롱하는 댓글과 발키리 길드의 퍼포먼스에 대한 댓글들이었다.
쾅-!
대기실 문이 부서질 듯 열린 것은 그때였다.
“오줌싸개 길드의 퍼포먼스는 아주 잘 봤다. 도둑년 길드라고 해야 하나?”
내가 봐왔던 그 어떤 용인족보다도 더욱 길고 화려하게 휘어진 하얀 뿔.
파충류의 그것처럼 세로로 갈라진 호박색 눈동자가 대기실을 훑었다.
“길드장님...아니, 베키 님.”
청란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키가 큰 백색의 용인족을 바라보다 슬그머니 내 뒤로 숨었다.
곧 베키라 불린 용인족의 눈동자가 나에게 고정됐다.
이곳 여성의 신장 평균이 대략 165cm 이상이라는 걸 감안해도 무척이나 큰 키를 가진 여자가 대기실로 한걸음 들어왔다.
저벅- 사악-
그러나 채 두걸음을 떼기도 전,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던 길드장이 어느새 검을 뽑아 들어 베키의 목에 겨누고 있었다.
“훌쩍... 가디언 길드장이 여긴 뭐 하러 왔지?”
붉어진 눈가로 코를 훌쩍이며 말하니 위엄이라고는 쥐뿔도 없었지만, 검의 날카로운 금속성이 살벌했다.
“스읍...”
가디언 길드의 정복으로 보이는 푸른 제복에 둘러싸인 커다란 젖가슴이 한 껏 부풀어 오를 만큼 크게 숨을 들이쉰 베키는 곧 드래곤 브레스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이 미친년들아아아!!!”
“으아!”
그 외침에 떠밀려 여자친구들의 품속에 후다닥 파고들어 부드러운 젖가슴으로 양쪽 귀를 막았다.
양쪽에 다른 쿠션감으로 볼 때 이건 이유라와 최지윤의 가슴이다.
“내가! 이 행사! 책임자라고오!!”
“아... 맞다.”
그제야 머쓱하게 검을 내린 길드장은 행사 책임자 베키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다시 엎드려 우는 척을 했다.
“전체이용가 방송에 그따위 장면이 나가게 하면 어쩌자는 거냐! 내가! 내가! 꺼으윽-!”
가디언 길드장인 베키가 뒷목을 잡고 휘청거리자 레베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후다닥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조심하셔야죠.”
분명 자애롭고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 숨긴 음습한 욕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너!? 너어어!! 꺼으으윽-!”
“히이읏-♡ 네엣♡ 저에요옷♡ 하악♡”
“진짜 미친 것 같아...”
진저리를 치며 내게 답삭 안겨 와 덜덜 떠는 한세희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자 그녀는 슬며시 얼굴을 붉히며 눈을 앙칼지게 떴다.
“뭐.”
“...아니야.”
하여튼 여러모로 대단한 발키리 길드라고 생각했다.
***
“구면인 사람도 있겠지만... 새로운 얼굴도 몇 있으니 다시 소개하지. 가디언 길드의 길드장이자 드라고니아 의 한국 지부의 책임자를 맡은 베키다.”
짝짝짝!
레베카의 열성적인 박수 이외에 누구도 관심 없었다.
“이 년들아! 적어도 사과라도 하란 말이다!”
베키는 씩씩대며 호통을 쳤다.
어쩐지 우리 길드장과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서 괜히 웃음이 났다.
작은 웃음소리에 베키의 시선이 내게로 닿았다. 그녀는 마치 기사처럼 절도 있는 몸짓으로 내게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슬며시 붉혔다.
“크흠.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우 님이라고 하셨죠. 저희 길드에서 제공하는 복지에 관심이 있으시면...”
“하악!”
“으르르!”
우리 집 고양이와 강아지의 격렬한 반응에 베키는 한발 물러섰다.
“이, 이런 은혜도 모르는 짐승들 같으니...”
“헹! 언제적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네! 벌써 3년이나 지났다고!”
한세희는 나를 향하는 베키의 시선을 차단하듯 앞을 가로막았다.
“세희, 너 가디언 소속이었어?”
내 물음에 한세희는 힐끔 나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서 청란이랑도 이미 아는 사이였구나.
베키는 영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나를 보다 팔짱을 끼고 의자에 반듯한 자세로 앉았다.
“...아무튼. 내가 찾아온 것은 경고의 의미도 있다는 걸 꼭 알아둬라. 한 번만 더 그런 상황이 오면.”
“꿀꺽. 그, 그런 상황이 오면요...?”
레베카의 기대감 어린 반응에 베키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성녀를 보며 말했다.
“기권패로 처리해버리겠다. 그러니 각별히 유의해. 정혜지!”
“...뭐”
여전히 엎드려 있던 길드장이 움찔하며 그대로 대답했다.
“세리안 렐리트 님에게 또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지? 이제 그만 좀 하는 게 어떤가. 한때는 동료였던 입장에서 하는 진심 어린 충고다.”
뭐야. 이 사람도 발키리 길드였나?
오늘따라 새로 알게 되는 사실이 많네.
정혜지는 소리도 없이 스르륵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곤 터벅터벅 걸어와 가디언 길드장의 목에 대뜸 팔을 걸치더니 이유라에게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샤샥-
재빠르게 움직인 이유라가 대기실로 이어지는 들어오는 유일한 입구를 잠가버리고 그대로 등지고 섰다.
“뭐, 뭐 하자는 거냐.”
“아직도 신의 뜻을 기억하고 있어?”
“뭐?”
길드장의 물음은 솔직히 나도 당황스러웠다. 엘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아샤가 언급했었던 내용인데 왜 갑자기...
“...아직도 그 소린가? 난 이제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잠깐 망설이던 가디언 길드장은 처연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을 전부 마친 가디언 길드장이 일어나려고 했으나 정혜지는 팔을 꾹 눌러 그녀를 다시 주저앉혔다.
“그럼 있잖아...”
빙글빙글 웃는 정혜지의 모습에서 어쩐지 문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이유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말라깽이 엘프 년.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어?”
길드장의 물음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베키를 서서히 우리 길드원들이 둘러싸 갔다.
“무, 무슨 소리를...”
전부 하나같이 이유라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조금 무서웠다.
“예를 들면... 검붉은 살점으로 이루어진 괴물이라거나.”
가디언 길드장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세차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