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블랙카우데이 (1)
시우가 한창 아래쪽에서 용인족 여자 둘을 정액 범벅으로 만들고 있을 때 길드장의 방에 모인 여자들은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라리 저게 나을지도.”
비몽사몽 한 한세희의 말에 박아라는 피식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긴급상황 발생이라는 최지윤의 소집에 전부 모인 길드원들은 잠옷 차림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잡아둔다는 게 말이 돼? 시우가 저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건데.”
그녀의 말에 피피와 레베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청란과 길드장은 침을 꿀꺽 삼켜가며 창문에서 얼굴을 떼지 못했다.
“저, 저렇게 크다고?”
“너무... 너무 큽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최지윤은 시우가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한 것 보다 시우의 자지 크기에 기겁하는 둘을 보며 벌떡 일어났다.
태연한 기색의 길드원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다들 제정신이야? 지금도 하루하루 쪼개가며 데이트하고 있으면서.”
그러나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길드장과 청란은 여전히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자기 배를 슬쩍 내려다봤다가 부르르 떨었고 레베카와 피피는 관심도 없었다.
최지윤은 한세희에게 다가가 그녀가 먹고 있는 과자를 하나 빼먹으며 털썩 앉았다.
한세희는 발끈하며 꼬리를 바짝 세웠다.
“누가 맘대로 먹으래!”
“넌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최지윤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한세희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지만 한세희는 코웃음을 쳤다.
“헹! 시우가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면 막을 수는 있어?”
최지윤은 입을 벙긋거리며 무슨 말이라도, 어떤 생각이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어 도로 다물었다.
“...”
“우리가 시우의 ‘여자친구’라는 걸 잊지 마. 시우를 지배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제 할 말을 마친 한세희는 과자 봉지를 세워 입에 털어 넣으며 우물거렸다.
허탈해진 최지윤이 슬쩍 박아라를 바라봤지만, 눈이 마주친 그녀는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하며 웃을 뿐이었다.
“후우... 그래. 너희들 생각은 알겠어. 하지만! 나는 일단 말이라도 해볼래.”
최지윤이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서려고 하자 박아라가 손을 세워 막았다.
“유라가 하고 있잖아.”
“...일단 나도 여자친구야. 정당한 권리 아냐?”
“유라랑 대화라도 해보고 가는 게 어때?”
박아라의 말에 다시 움직이려던 발을 멈칫한 최지윤은 시우와의 행복했던 데이트 날을 떠올렸다.
아직 지갑에 들어있는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둘을 보자 펄펄 끓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아버렸다.
“아~! 정말! 이래서 반한 쪽이 지는 거라고 하는 거야!?”
최지윤을 외침에 체스를 두던 레베카와 피피가 키득키득 웃었다.
***
아침의 식당은 제법 한산했다. 밤늦게까지 놀고 마시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침대에 있을 테고 결국 먹을 사람만 와서 먹게 되니까.
달그락-
그래서 나는 길드원들이 전부 아침을 먹으러 내려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자, 이것도.”
“아, 응.”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은 이유라가 길드장의 접시에 있던 고기를 한 움큼 집어 내 접시에 올려줬다.
“...죽을래?”
멍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던 길드장은 초췌한 안색으로 말했다.
눈 밑에 커튼처럼 쳐진 다크서클과 평소처럼 정장이 아닌 편한 옷차림에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길드장. 어디 아파? 눈 밑이 시꺼먼데.”
“콜록! 켁!”
길드장의 곁에 있던 청란은 격하게 기침하며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재 뭐해?”
한세희는 앙칼지게 갈비를 잡아 뜯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테이블 너머로 빼꼼 튀어나온 청란의 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런게 있어! 하여튼 다 시우 네 탓이야.”
길드장은 한숨과 함께 계란국을 떠먹었다.
내 접시에 수북이 쌓인 고기를 잠시 바라보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헛기침으로 길드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다들 식사 이후에 시간 좀 내줬으면 좋겠는데. 할 말이 있어. 중요한 얘기야.”
내 말이 끝나자 최지윤은 창백해진 얼굴로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아, 안돼...”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이 귀에 걸리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안 되는데?”
“...됐어.”
의아한 눈으로 다른 길드원들을 봤지만 다른 여자친구들도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게 있나 싶어 눈을 데굴데굴 굴리니 이유라는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신경 쓰지 마. 일단 먹을까?”
“아, 응.”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식사를 마치는 순서대로 자유롭게 흩어지는 길드원들에게 내 방으로 모여달라고 말했다.
끝에 남은 것은 이유라와 나.
“그, 그만...”
“더 안 먹어도 되겠어?”
...이건 날 살찌워서 잡아먹겠다는 선전포고인가?
또다시 접시를 가득 채워온 이유라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젖싸대기라도 때려주고 싶은데 배가 빵빵해져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주, 죽을 것 같아.”
다행히도 이유라는 남은 음식을 더 이상 내게 권하지 않고 혼자 먹어 치웠다.
진공청소기에 음식이 빨려 들어가 듯 그녀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진기명기에 나와도 될 정도였다.
“원래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이야?”
“움... 아니? 이 정도면 적당하잖아. 시우가 남자라서 적게 먹는 거 아냐?”
“...많이 먹어. 보기 좋네.”
“응!”
내 생각엔 겨울잠을 자기 위해 준비하는 곰도 저렇게는 안 먹을 것 같다.
하지만 입가에 소스를 묻히며 행복한 얼굴로 고기를 뜯는 금발 벽안 아가씨는 예쁘긴 했다.
식사 이후에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무투전이 시작하기 전에 하나둘 스위트 룸으로 길드원들이 모여들었다.
방안을 구경하는 이유라와 박아라는 스위트 룸의 이런저런 시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와. 와인 랙도 있잖아... 꿀꺽...”
“룸서비스로 안마도 해준다고 하는데.”
박아라는 침을 줄줄 흘릴 기세로 와인랙의 와인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직접 우린 차야!”
나는 그녀들에게 하나씩 손수 차를 내어줬는데 이제껏 그녀들을 속인 일종의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을 이렇게라도 조금 해소했다.
“가,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도와드릴게요. 시우 님.”
레베카는 나를 도와 찻잔을 돌리고 청란은 찻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유라랑 아라도 와줘.”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 다른 여자 생겼어?”
“엥?”
나는 영문을 몰라 박아라를 얼굴을 바라봤다.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고 있지만 조금은 얺짠아 보이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녀와도 꽤 같이 시간을 보냈으니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길드원들을 바라보니 다들 내 얼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뭐야. 다들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나는 그동안의 내 행동들을 떠올려보며...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지윤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야 시우 네가 이렇게 많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있는데 당연하지!”
난 들고 있던 쟁반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가 발돋움하며 입 맞췄다.
쪽-
“에...?”
넋이 나간 얼굴로 입술을 매만지는 최지윤과 다른 길드원들에게도 확실하게 말했다.
“다들 그런 거 아니니까 안심해. 자, 빨리 앉아. 중요한 이야기니까 집중해서 들어.”
최지윤은 빽 소리친 게 언제냐는 듯 얼굴을 잔뜩 붉히며 다소곳하게 앉았다. 분하다는 기색이 가득하면서도 입술을 우물거리는 게 꽤 귀여웠다.
그제야 한줌 그늘도 없는 미소를 지은 박아라는 뜨거운 차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뭐야? 괜히 긴장했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공손하고 귀...엽게 빌 테니까 딱밤 열대로 끝내주세요... 아름답고 자상하고 꼴리게 생길 게 분명한 여신님!’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들어온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 신비상인이야.”
***
“하아... 도대체 어디 있느냐...”
태양이 뜨면 빛 한점 없는 곳에 몸을 숨겨야만 하는 흡혈귀의 특성상 여름은 상당히 짜증 나는 계절이다.
성을 완성하기 전에나 느껴봤던 이 답답함에 엘을 치렁치렁한 하얀 머리칼의 갈라진 끝을 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이번의 기척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끈질기게도 쫒아오는구나. 제압하기만 해서 돌려보내 주니 만만하게 느끼는 것인가?”
잠시 붉은 눈동자에 서늘한 기색이 떠올랐지만 이내 단념했다.
시우에게 찾아가 그의 곁에 스며들기 전까지는 소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그나마 나를 특정하고 노리는 것은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할지.”
강한 존재들의 피를 탐하는 무리의 수족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백여년 동안 숨어 살며 다른 이들의 눈에서 벗어나는 능력 하나만큼은 세계 제일이라 자부하는 작은 흡혈귀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낮 동안은 이렇게 조용히 있다가 다시 태양이 저무는 시간이 되면 그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그녀의 코가 작게 씰룩이며 이질적인 냄새를 맡은 것은 그때였다.
‘역겨운 냄새... 결국 오는구나.’
아샤와 루시퍼가 그토록 증오하고 분노하던 그들의 냄새가 꼭 이러했다.
피에 갖가지 오물이 섞여 썩어가는 듯한 이 냄새.
빛 한점 들지 않는 지하 주차장의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엘은 구름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블루 블러드의 바보들이라면 몰라도 그놈들 눈에는 띄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신비상인 가이드에서 알립니다. 현 시간부로 신비상인 물품의 대폭 할인이 시작됩니다.]
*블랙카우데이!
*할인되는 만큼 ‘신비상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합니다.
*지금부터 VIP가 아니더라도 ‘신비상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는 신비가 담긴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메시지는 VIP와 비밀을 알게 된 자들에게만 표시됩니다.
마구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던 엘은 어색한 손놀림으로 상태창을 조작했다.
“...무슨 사고를 친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