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이유라는 참지 않아 (1)
그가 돌아간 자리에 남은 빛무리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
깊은 실망과 원망은 익숙하고도 오래된 친구처럼 항상 곁에 있었다.
최초의 신앙부터 방향은 달라도 결국엔 지신에게 도착하는 모든 기도까지.
그들에게 한 줄기 빛을 내리는 것에는 많은 대가가 따랐다.
신의 목소리. 신의 눈길 한번. 신의 편린 한 줌으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면 마냥 신비롭고 즐거울 때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그만두고 다시는 하지 않겠노라는 맹세를 태양과 달에 매달아 두었다.
언젠가의 그 아이가 외치던 소리처럼 시우의 눈빛에 담긴 불신이 사무치게 아팠다.
[이 씨...! 아, 아름답고...자비로운...여신님...끄윽...한 사람당 딱밤 한대는...안될까요?]
[푸흐...]
돌아가자마자 기도라니. 이 얼마나 갸륵하고 신실한 모습일까. 하기 싫어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해도 마냥 귀엽다.
[그러나 조금 양심이 없구나. 그 정도로는 카르마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
귀엽지만 마땅한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면 카르마가 곧 그를 덮쳐버릴지도 모른다.
[기각.]
[느아악! 왜! 아니, 크흠...그, 그럼 여, 여섯대?]
침대 위를 뒹굴뒹굴 구르다 눈을 질끈 감고 내뱉는 제안이 겨우 한 대 더 맞겠다는 거라니.
자꾸만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이 세상의 영혼이 아니기에 세계를 옭아매고 있는 규율과 법칙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존재.
그렇기에 아바타의 형태로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교류할 수 있다.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 자신이 느꼈던 기쁨과 설렘을 그가 알아준다면 좋을 텐데.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단다. 조금만 더 노력해주렴. 그때가 되면...네 곁에 다가가 또 오늘처럼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으면 좋겠구나.]
그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마지막 한줄기의 사슬까지 끊어내고 날아오른다면 기꺼이 너른 품으로 그를 맞이하리라.
***
내 상상 속 여신의 모습이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에서 점차 빈약한 껌딱지를 가진 모습으로 변했다.
“분명 속이 좁을 거야. 가슴도 엉덩이도 없는 그 풀떼기 엘프처럼.”
전부 기각당했다.
딱밤 열대까지 불렀는데!
잘 자고 있는 세희를 남겨두고 다른 방에 넘어와 물 대신 무려 우유까지 떠 놓고 빌었는데.
“우유 안 좋아하나.”
대신 정액을 담을 순 없잖아.
한숨과 함께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잠이나 자려던 그때.
와락-!
“빼액...! 웁!”
누군가가 나를 덮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
“쉬잇!”
익숙한 살 내음에 익숙한 크기의 젖가슴.
“푸하! 이유라...?”
“안녕. 시우야.”
환한 미소를 띤 유라가 내 등 뒤에서 어깨에 턱을 걸치고 인사했다.
“뭐야? 오늘까지 세희가...”
“자정 지났어. 오늘은 시우 내 거야.”
“...세희랑 합의한 거 맞지?”
“세희는 이미 많이 배려해줬어. 너도 알잖아.”
“그렇긴 한데...”
이유라는 그대로 나를 대롱대롱 안아 들고 걸었다. 목덜미에 끈질기게 코를 비벼대는 느낌이 간지러웠다.
“세희랑 엄청나게 했으니까 피곤하진 않지?”
“뭐. 그렇지. 말짱해.”
몽마의 힘을 제어해도 체질은 그대론지 섹스만 하면 힘이 넘쳤다.
덕분에 요즘은 잠도 거의 안 자다시피 했다.
바로 나를 덮쳐오며 뜨거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유라는 나를 보듬고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
“호텔 뒤쪽에 수영장 있는 거 알아?”
“그랬어? 바로 앞이 바단데.”
“원래 호텔이란 게 그런 거지.”
내 정체를 알기 전의 차분한 모습. 빙글빙글 웃으며 길드장을 놀려댈 때랑은 다르다. 물론 그때도 입가만 주욱 늘어트리고 흐흐 웃지만.
“시우 수영복은 내가 챙겨왔어.”
“...설마?”
“흐흐.”
그 특유의 입가를 쭈욱 늘려 웃은 이유라가 성큼성큼 자신의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백화점에서 여자친구들의 수영복을 고를 때 보았던 남자 수영복들의 손바닥만 한 천 면적이 떠오르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사, 사람 살려! 우웁!”
“안돼♡”
***
이전 생에선 섹스용 코스프레라고 하면 대부분이 여자 쪽에서 입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성욕이 반전되다 못해 미쳐버린 여자들이 가득한 이곳은 달랐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그런 옷을 입어주는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의 연애도 어려운 이곳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맞춰주는 경우.
아마 야동 속 남자 배우들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잔뜩 긴장하며 저항했더니.
“...평범하잖아?”
“그냥 발버둥 치는 게 좀 귀여워서.”
이유라는 수건과 튜브를 챙겨 들며 생긋 웃었다.
그녀가 건네준 수영복을 받아서 들고 호텔 계단을 내려갔다.
새벽 시간에도 호텔 밖은 사람들의 인기척이 있었다.
술을 마시거나 산책하는 등.
호텔 앞에 조성된 작은 정원과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사람들이 보인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스낵바에서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와... 다들 제대로 노는구나.”
“괜히 축제가 아니잖아. 이때는 다들 와서 즐기는 편이지. 우리 길드는 아니었지만.”
이유라의 수영복은 하얀색 비키니였다.
따로 포인트도 없고 천의 면적도 일반적인 비키니였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와 아무렇지 않아 하는 태도가 더욱 그녀를 돋보이게 한달까.
아마 박아라와 더불어 가장 몸매가 탄탄한 편인 이유라의 매끈한 자태에 한동안 계속 바라봤다.
아무튼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다정한 눈길로 나를 보던 이유라가 스낵바로 다가가 살폈다.
“오. 맛있겠다. 출출했는데 몇 개 먹을까?”
핑거푸트와 각종 디저트가 잘 준비돼있다.
“난 이거.”
유라는 초콜릿과 몇 개와 참치 카나페를 접시에 담았다. 위에 새빨간 딸기가 반으로 잘려 올라가 있었는데 그 색감이 무척 예뻤다.
나는 눈치껏 다른 쪽에 마련된 칵테일 바로 가 알록달록한 맛있어 보이는 걸로 두잔 받아왔다.
“센스 좋네?”
유라는 나직한 웃음과 함께 앞장서 걸었다.
비키니 위에 걸친 가디건이 살랑거리며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엉덩이를 가렸다.
길쭉한 다리에 나타나는 탄탄한 근육이 날렵했다.
“와... 분위기 있네.”
수영장의 안쪽에 설치된 조명에서 오묘한 빛을 내고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새벽 시간이라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저쪽에 탈의실 있어. 간단하게 샤워하고 와. 준비해 놓을게.”
내 옆구리와 가슴팍을 뭉근하게 쓰다듬은 이유라가 내 등을 떠밀었다.
‘...얘가 왜 이래?’
왜 이렇게 어른스럽지.
“어, 어...”
차분한 목소리와 다정한 손길에 심장이 두근댔다.
빠르게 탈의실 안쪽으로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꼼지락- 꿈틀-
이유라의 엉덩이가 씰룩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뒤에서 지켜보니 챙겨온 가방 속에서 유리병을 하나 꺼내 뒤쪽의 설명서를 읽고 있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정력제?”
“꺅!!”
이유라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약병은 내게로 굴러왔다.
“이거... 여성용이잖아?”
“주, 주운 거임!”
바로 유아 퇴행해버린 이유라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아니, 유라야. 이런 거 굳이 마셔야 해?”
“하, 항상 기절만 하니까!”
“음...”
남자로 치면... 뭐 그럴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걸 먹는다고 해도 몽마 상대로 어떻게 이겨. 그런 건 소설에서나 나온다고.
“그래. 그래. 많이 마셔둬. 허접~ 피히힛~”
“...”
이글이글 불타는 유라의 눈을 보니 아마 차분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나를 방심시킨 후 잡아먹을 예정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야외 수영장에 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유라가 약병을 따 한 번에 들이켰다.
***
챙-
칵테일은 달고 맛있었다. 도수도 상당히 높았는데 그 덕에 우리가 가져온 안주들은 빠르게 하나씩 사라져갔다.
“와. 이거 맛있다.”
“우응...”
“초콜릿도 먹어도 돼?”
“하아...응...”
술이 들어가선지 빨개진 얼굴의 이유라는 멍하니 나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난 고개를 갸웃하며 발을 담근 수영장의 물을 그녀의 허벅지와 배 쪽에 뿌렸다.
“흐엣!?”
“이유라. 어디 아파? 왜 그래.”
“꿀꺽... 시우야...”
“어, 어?”
뜨거운 숨을 길게 뱉은 이유라는 그대로 내 위로 쓰러져왔다.
아니, 덮쳐왔다.
털썩-
“뭐...! 웁!”
쪼옥! 츄르릅! 쪼옵-!
양쪽 팔목이 붙잡혀 그대로 바닥에 눌러지고 그녀의 입술이 나를 삼켰다.
입안에 남아있던 초콜릿이 뭉개지고 녹아내렸다.
녹진녹진한 초콜릿이 그녀와 내 혀 사이를 오가며 뭉개지고 입안 곳곳에 퍼졌다.
가슴팍에 한껏 뭉개지는 그녀의 체온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뜨거웠다.
“푸하아! 하아! 흐아! 자, 잠깐만...! 으붑!”
애달픈 얼굴로 입술을 뗀 이유라는 그대로 손을 뻗어 초콜릿을 자기 입술에 끼우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 밖이야.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으응...키슈...”
달뜬 숨을 코로 내쉬며 커다란 젖가슴을 비비니 나도 슬슬 열기가 올라왔다.
그대로 다시 내게 얼굴을 내린 이유라가 내 손목을 놔주는 대신 허리와 등을 휘감았다.
“하웁...쪼옥...쪽...♡”
등허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묻어나는 애정과 욕망이 절절해서 소름이 돋았다.
작게 뒤척이면 바로 지긋이 자기 몸으로 덮어와 밀착하는 이유라의 몸짓이 야릇했다.
얇은 수영복 너머로 발기한 자지가 그녀의 아랫배에 잔뜩 뭉개지고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흠칫흠칫 떨어댔다.
‘녹아버려...’
그녀와 내 침으로 녹아내린 초콜릿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