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열정 넘치는 헬스 클럽 (1)
“꺄아아악!! 내 과자 먹지 말라고 했지이!!! 과자도 납치 강간하는 거야!?”
“도망.”
왁자지껄한 길드 하우스의 밤.
쇼핑을 마치고 어째선지 나를 사방으로 에워싼 여자들에게 철통 경계를 받으며 돌아왔다.
백화점에서 사 온 물건들을 수북이 쌓아두고 여자들과 함께 정리하고 있었다.
박아라가 내 입에 쏙쏙 넣어주는 한세희의 과자는 역시 수제에 고급이라 그런지 무척 맛있었다.
이유라나 다른 길드원들이 하나씩 빼먹는 게 이해가 간다고 해야 하나.
“근데 광고는 뭐로 찍을 거야?”
두다다 뛰어다니는 이유라와 한세희를 뒤로 하고 함께 물건을 정리하던 박아라가 내가 사용할 유니콘 모양 튜브를 펼쳤다가 접으며 물었다.
“음... 아마 화장품? 무슨 선크림이라던데.”
“오. 나쁘지 않네. 미래의 대스타가 내 남자친구라니. 나 미리 사인해줘.”
“피히힛. 아직 사인 같은 건 없는데...”
조금 우쭐해지는 마음에 그녀가 내미는 종이를 선 뜻 받아들어 무슨 사인을 해줄까 고민했다.
“움... 이거 백지가 아닌...”
[혼인 신고서]
요즘 나를 놀리는데 아주 맛 들인 박아라가 건네준 종이는 혼인 신고서였다.
당연히 뒤로 던져버리고 다시 물건들을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흐흐... 앗! 아깝다. 거의 넘어왔는데.”
“넘어가겠냐?”
그녀들과의 결혼은 당연히 생각해본 적 있지만 이건 너무 빠르다. 아직 준비도 덜 됐고 해야 할게 너무 많다. 무엇보다 아직 내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나중에 해. 아직 대출금도 못 갚았는데 무슨 결혼이야.”
“...해, 해줄 거야?”
“응? 어... 안 하려고?”
“아, 아니이이!! 당연히 하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엉덩이를 달싹이는 박아라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등 뒤에 착 달라붙어서 뜨끈하게 달아오른 젖가슴과 배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걸 보니 아주 행복한 듯하다.
“근데 레베카는 어딨어? 나 출장 다녀오고 한 번도 못 봤네.”
“아. 맞다. 신입도 출장 갔어.”
“어? 진짜?”
“정확히 말하면 출장이라기보단 깽판 치러 간 거지만.”
“...”
“신전에서 자꾸 성녀가 어느 한 길드에 소속되는 건 교리와 전통에 어긋난다는 말을 해대면서 타락했다고 매도했거든.”
“레베카는 그냥 계약직이라고 했는데?”
“우리도 그렇게 말했는데 신전에서 수작을 부리는 거지. 여론을 몰아서 싼값에 다시 레베카를 데려가려고.”
전혀 몰랐다. 사실 레베카가 바로 나를 따라오겠다고 했을 때 별 생각 없이 받아주긴 했고 발키리 길드는 오히려 환영했으니까.
그 뒤쪽에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니.
“사제들의 축복과 치유는 던전을 돌파하는 데 아주 중요하지. 신전에서는 그런 사제들을 용병처럼 빌려주고 엄청 비싸게 받아먹거든. 신입은 특히나 더 비싸고. 신입이 싫다고 계약금 물어주고 나오긴 했어도 신전에서 바로 포기하기 힘들겠지.”
“그랬구나...”
“근데 걱정할 건 없고. 다른 길드도 아니고 발키리 길드에는 함부로 못 하지. 길드장이 가서 신전 기둥 뽑아버릴걸. 이번 일도 신입이 알아서 처리하고 온다고 하니까 참은 거지.”
“...든든하다고 해야 하나.”
길드장도 여기 이 여자들 못지않게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긴, 저번에 이유라가 잡혔을 때도 다 부숴버리고 쳐들어왔었지.
내 아공간에 차곡차곡 쌓이는 물건들이 얼추 밑바닥을 보일 때 한세희가 내 옆으로 와서 철퍼덕 드러누웠다.
“헥...! 헤엑...! 죽여...죽여버릴거야아...학!”
“못 잡았어?”
“빨라... 너무 빨라... 강간마...”
그녀의 손에 들린 과자 봉투는 내용물 없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
“신입. 준비됐어?”
“기, 길드장님. 제가 이 정도를 바란 건 아니었거든요? 그냥 경고만 하면 되는데요. 애초에 제가 처리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 신입. 한 번만 말할 게 잘 들어.”
“네? ...네.”
“인생은 실전이고 센 년이 최고야.”
“네?”
“까부는 년 있으면 일단 쥐어박고 대화를 시작하면 술술 잘 풀린다?”
“...”
“불붙여.”
“음... 그러죠. 뭐. 어떻게든 되겠죠?”
“신입. 우리 길드랑 아주 잘 맞을 것 같아. 인재를 찾아서 만족스럽네. 시우가 복덩이긴 해.”
활활 타는 재건된 신전 건물을 보면서 둘은 히죽히죽 웃었다.
“히야! 잘 탄다! 아, 요즘 스트레스 받았는데. 속이 뻥 뚫리네! 나만 자지 안주는 신을 기리는 신전 같은 건 세상에 필요 없지!”
“...난 몰라.”
*
[어젯밤 23시경 발생한 화제는 새벽 5시경 극적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재건된 신전의 동쪽을 중심으로 발생한 화제의 정확한 원인을 조사...]
“내가 준 운동복이랑 신발 챙겼어?”
“응.”
나는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안타까운 뉴스 소식을 들으며 박아라의 차에 올라탔다.
“흐흐. 아주 제대로 굴려줄 거니까.”
“사, 살살 해줘.”
“...하. 됐다.”
핸들을 잡고 있던 박아라가 한번 얼굴을 쓸어내리곤 나를 재촉했다.
지하 차고에서 스르륵 빠져나간 우리는 곧 큰 도로를 타고 질주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야?”
“내가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체육관이 있어. 요즘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하니까 사람도 없을 것이고. 각성자 전용이라 장비들도 많아서 쓸만해.”
“오오...”
각성자 전용 헬스클럽이나 체육관은 한때 큰 인기를 끌었다.
각성하게 되면 전반적으로 몸매와 피부가 보정되는 만큼 외모에 관심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각성자들에게 꾸준한 관리가 동반되어야 그 몸매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선전했었다.
“근데 사람이 없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하던데...”
“호오... 그래?”
“그렇지.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곳이 아닐까? 아, 지인분에겐 좀 실례될 말인가...”
“내가 잘 전해줄게.”
“...누, 누구한테? 지인분에겐 비밀로 해줘.”
“거기 우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곳이야.”
“...타, 탈룰라!!”
“푸흡!”
차 안에서 박아라와의 사소한 장난과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니 15분 정도 걸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 음...”
“조금 낡았지? 그래도 안은 깨끗해. 가자.”
꽤 커다란 건물의 외견은 여타 다른 건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벽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 덩굴들과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녹슬어버린 간판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변에 따로 건물도 없고 이곳에 들어오는 동안 길 이외에는 다 풀밭이었으니 사람이 없을 만도 했다.
그래도 평소에도 운동을 자주 하던 아라가 추천하고 또 그녀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면 나도 맘 편하게... 는 아닌가?
‘갑자기 부모님을 뵈러 가는 처지라니...’
자연스럽게 내민 박아라의 손을 일부러 꽉꽉 잡아 미리 말하지 않은 죄를 묻고 건물을 향해 걸었다.
박아라는 그런 내 행동에 슬며시 웃기만 할 뿐 전혀 아파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응징했다.
벌컥!
“아라야! 우리 딸... 옆에 계신 분은 네 새아빠니?”
“엄마!!”
차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이에 어떻게 아셨는지 박아라의 어머니... 로 추정되는 여자가 헬스장 정문을 벌컥 열고 나오셨다.
출렁~
“오, 오오...”
위아래로 색을 맞춘 분홍색 필라테스 운동복의 상의는 넥라인이 깊게 파여있어 출렁이는 젖가슴을 모두 모여줬다.
박아라의 풍만한 사이즈는 각성에 따른 보정이 아닌 유전의 힘이었는지 그녀의 어머니도 상당한 글래머였다.
운동으로 다져진 탱탱한 힙라인이 그녀가 걸어올 때마다 근육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보여줬다.
박아라와는 대비되는 하얀 피부에 작은 키의 여자.
박아라처럼 탁한 금발을 단발로 기른 그녀가 내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여보오... 왜 이제 오셨어요? 저... 밤마다 너무 외로웠어♡”
“엄!!! 마!!!”
박아라가 낑낑대며 그녀를 떼어내려고 허리를 잡아당겼지만 박아라의 어머니는 다리가 땅에서 떨어진 상태에서도 내 팔을 오히려 꽉 잡아 왔다.
뭉클~
“오오!”
내 팔이 그녀의 깊은 가슴골에 서서히 파고들 때 박아라는 씩씩대며 그녀의 어머니의 탱탱한 엉덩이를 때렸다.
짝!
“아흣! 왜, 왜! 엄마도 여자야!”
“미쳤어! 진짜! 내 남자친구라고!”
“힝...”
“시우야! 우리 다른 데 가자.”
“알았어!! 안 할게!”
겨우 진정한 그녀의 어머니가 내 팔에서 떨어져 나가 박아라의 허리춤에 대롱대롱 들렸다.
“호홍... 안녕하세요? 아라 어머니 되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김현정으로 나이는 비밀이란다. 겉보기에는 아라와 서 있으면 오히려 그녀의 동생으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 싶어질 동안이었다.
“지, 진짜 어머니 맞으신 거죠? 자매인 줄...”
“...지금 당장 침대로 갈까요. 여보?”
“즉등히 해라...”
이를 악문 박아라의 뜨거운 눈길에 결국 김현정은 찔끔하더니 죽은 척을 하며 박아라의 허리춤에 축 늘어졌다.
“후우... 시우야. 너도 자꾸 휘말려 들지 마. 이런 엄마라 내가 미안해. 가자.”
“어, 응. 괜찮아. 귀여우신데 뭐.”
“정말요!? 히힛~ 아잉~ 우리 여보~♡ 너무 자상하다.”
“어휴...”
박아라의 허리춤에 달랑 매달린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들어간 헬스장.
“오! 시설 진짜 괜찮은데?”
전생에서 조금이나마 깔짝였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일단 환한 조명에 상쾌한 공기는 땀내 나던 전생의 그곳보다는 훨씬 좋았다.
외부와는 다르게 깔끔하게 정돈되고 깨끗하고 다양한 기계들이 널찍널찍한 공간을 두고 서 있었다.
“괜찮지? 내가 어릴 때도 여기서 훈련했으니까. 나도 애정이 있어서 가끔 돌보곤 했거든.”
박아라는 뿌듯한지 환한 미소로 나를 이리저리 이끌며 안내해줬다.
듣기로는 금태양 박아라의 소문을 듣고 여자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손님이 없다고 한다.
어차피 박아라가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라서 그럭저럭 운영하는 개인 헬스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단다.
그녀의 어머니는 원래도 필라테스 강사라 직원으로 고용해서 쓰고 있다고.
“악덕 사장님... 나빠요...하읏!?”
짝!
박아라가 나를 안내하는 동안 조용히 나와 박아라를 번갈아 바라보던 김현정은 장난기 콜타임이 돌았는지 바로 시동을 걸었지만 박아라의 엉덩이 맴매를 한 대 맞고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