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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보스를 잡지 않고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빙의자는 꿀빨이를 원한다.


조심조심. 키야의 눈치를 살피며 주머니를 살짝 펼쳐본다. 천을 들추기 무섭게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너무나 눈이 부셔서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모두 몇 개야?" 각종 보석이 보자기에 감싸인 채 알록달록 빛나고 있다. 유저들은 스킬북이라 불렀다. 정식 명칭은 잼스톤. 예를 들어. 이 보석에는 스킬이 저장되어 있으니 스킬 잼스톤이다. [화산폭발 (소모 / 스킬)] - 땅에서 마그마가 분출되는 스킬. '화산폭발'을 배울 수 있다. 보지에 박는 것만 섹스냐? 이게 바로 섹스지. 흥분으로 가빠지는 호흡.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란하게 반짝이는 금화의 냄새를 들이켰다. "기별룡. 괜찮아?" "어허. 오빠라고 불려야지 키야. 그래야 착한 아이란다." "갑자기 왜 착한 척?" 머리를 쓰다듬자 퉁명스러운 말투가 돌아온다. 하지만 선인 모드가 된 지금의 나는 키야의 반말조차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만약 키야가 매도하는 표정으로 침을 뱉어도, 부처같은 얼굴로 포상을 외치며 그것을 받아먹을 수 있으리라. "키야야." "응?" "오빠가 지켜 줄게." "아저씨. 진짜 미쳤어?" 키야가 의아해하며 눈썹을 들어 올린다. 그녀는 수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러다가 궁둥이를 뒤로 쑤욱 빼더니. 고개를 바닥에 꼬라박은 채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마약은 아닌데..." "마약이라니 무슨 소리야. 기별룡은 코카인 따위는 하지 않는 퓨어한 어른이라고." "아저씨. 평범한 어른은 자신을 삼인칭으로 말하지 않아." 나는 키야의 말을 흘러넘기며 주머니에서 다른 아이템을 들어 올렸다. "운이 좋군." 손에 집힌 것은 스킬북보다 훠얼씬 비싼 물건이다. 그 이름도 찬란한 진화 아이템. 유저들은 진화의 돌이라고 불렀다. 정식 명칭은 레볼루션 잼스톤. [바람의각오 (소모 /진화)] - 특정한 에로몬에게 지니게 할 경우 에로몬이 다른 종족으로 진화한다. "키야―" "응? 왜 불러." "아니 아니 너를 부른 게 아니라. 그냥 감탄사야." "아저씨. 진짜 마약 한 것 아니지?" "고럼고럼." 나는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이며 키야의 말에 대꾸했다. 그렇게 내가 딴청을 피우는 와중에도. 서큐버스는 제가 할 일을 찰떡같이 찾아서 하고 있다. 하나하나 리백단 조무래기를 찾아가는 서비스. 뒤처리는 언제나 맏언니의 몫인 법이다. [서큐버스가 최면술을 사용했다.] "주인님! 최면 갱신 했어요!" "고맙다 서큐버스야. 여윽시 너밖에 없어." "헤헤♡" 칭찬은 서큐버스의 꼬리를 춤추게 한다. 돼지꼬리처럼 비비 꽈배기를 꼬며 쑥스러워하는 서큐버스. 야겜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최면술 스킬의 효과가 굉장히 우수하다. 다른 야겜 스킬들도 이럴까? 나중에 촉수 소환 스킬이 있나 알아봐야겠어. "근데 말이야 아저씨. 혹시 저 아이템을 몰래 가져가려는 건 아니지?" 키야의 뾰족한 물음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봤다. 가늘게 치켜뜬 눈이 나를 바라본다. 명백히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다. 양심의 삼각형은 이미 닳아 없어진 지 오래.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읊었다. "미쳤니? 경찰의 압수 품목인데. 당연히 고대로 가져다 놓을 거야." "이상한데... 그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 나는 멍청이가 아니다. 사이다 먼치킨 판타지 소설처럼 아이템을 전부 먹어 버리면, 붉은 WANTED 글자와 함께 내 얼굴이 찍힌 현상금 수배서가 온 세상에 뿌려지고 만다. 잼스톤의 개수는 적어도 수십 가지. 몇...십 개 쯤 빼먹어도 아무도 모를 수량이다. "그럼 일단은... 여러분, 들어서 옮깁시다!" "엥? 내가?" "아니. 무슨 소리야. 뒤에 계신 분들에게 하는 소리야."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수신호를 보내자. 최면에 걸린 근육빵빵 건강 헬스녀 누님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더니 주섬주섬 물건들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돌멩이가 가득 들어 있어서 무거운 주머니도 가뿐히 들어 올리는 근력. 고장 난 기계도, 증거품이 될 수 있으니 일단은 옮기기로 했다. "주인님, 뭔가 포즈가 요상한데요?" "아, 저거 케틀벨 들어 올리는 자세야." 정신은 침식되었으나 몸은 기억하고 있다 뭐 그런 건가. 역시 야겜이야. 쓰잘데기 없는 부분에서 클리셰에 충실하다. "여러분, 무산소 운동은 그만 하시고요." 아무튼,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등 뒤를 돌아보면 기계와 아이템이 한가득. 두 손이 든든해지니 마음도 덩달아 든든해진다. "자아 그럼 다시 출발하자고!" "네에~♡" "...텐션. 너무 높아." 그렇게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별룡이와 친구들. 오늘은 또 어떤 모험이 별룡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걱정을 털어낸 우리의 발걸음은 아까보다 훨씬 힘이 넘쳤다. "다행이네 키야." "뭐가?" "물건을 많이 뜯었잖아. 피해자 구제 보상금은 많이 받겠다 야." "흠흠." 키야가 그 말을 듣더니 멋쩍은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하기야. 대놓고 하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이야기긴 하다. 그래도 그녀의 얼굴에 붙어 있던 시름이 한결 사라져서, 아까보다 조금 더 어린아이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꼬물꼬물 기차놀이를 하듯. 일렬로 포로와 피해자들의 손목을 묶은 채 쭈욱 걸어가고 있는데. 콕콕-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아채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으..." "응?" "...도와줘서 고마워. 오빠." "뭐야. 이제는 오빠라고 불러 주는 거야?"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토마토처럼 새빨간 얼굴이 나타났다. "어머, 얘 부끄러워하는 것 좀 봐." "크크크- 역시 우리 주인님이셔. 이제는 초등학생까지―" "초등학생이 아니야. 나도 이젠 어른이라고." 살짝 삐졌는지 불이 부풀어 오른 키야. 초등학생이 아니라는 걸 보니 6학년인가 보구나. 물론 한참 사춘기일 아이에게 그런 대꾸를 할 정도로 내가 눈치가 없진 않았다. "시끄러워." "흥액-♡"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서큐버스의 꼬리를 꽈악 움켜쥐며 체벌을 가한 후. 우리는 계속 앞으로 향했다. "도착이다. 여기야." 우리의 앞을 막아서는 허름한 돌벽. 얼핏 보기에는 평범하게 막다른 길처럼 보인다. "여기야?" "응. 여기." 스위치로 추정되는 벽돌을 어루만지며 키야가 대답했다. 이제 마지막인가.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메가 시티 외곽에 위치한 작은 숲이 나온단다. 일단 땅굴에서 나간 다음에 살짝 땅을 파고, 비싼 것 위주로 몇 개만 숨겨 놓으면 끝!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다. 막 스위치를 누르려던 그때. 키야가 손을 들어 그것을 저지했다. [카샤의 간파가 발동했다.] "캐앵- 캐앵-" "뭐라고? 잠깐만 기다려 오빠." "응? 왜 그래 키야." "카샤가, 바깥에 누가 있다고 하는데." 뭐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온몸의 솜털이 오소소 솟아올랐다. 설마 여기서 최종 보스를 만나지는 않겠지. 과도한 걱정이 아니다. 스토리를 따라갔다기엔 이미 정상적인 공략 루트가 아니니까. 승률이 있을까? 최소한으로 잡아도 시청장 레벨이 분명하다. "적의 인원수는?" "...두 사람. 그런데 굉장히 강해." 제기랄. 다시 돌아갈까. 나는 뒷짐을 진 채 뒤쪽에 수신호를 보냈다. 엄지손가락을 뒤로 젖히면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미리 약속해 놓은 시그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눈빛을 나눈 우리는 도둑고양이 같은 백스탭을― 쿠루루루룽- "씹." 이미 늦었나. 도망치기 커맨드를 누르기에 앞서, 먼저 문이 열렸다. 비밀통로를 향해 쏘아지는 환한 빛줄기. 갑작스러운 조명에 너무나 눈이 부신 우리는 겨우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새하얀 배경을 뒤로 두 개의 짙은 그림자가 보였다. "드라이어드!" [드라이어드가 뿌리묶기를 사용했다.] 비록 마나가 충분히 부여되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스킬. 하지만 이름 모를 그림자는 그것은 여유롭게 피해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뒤진다!' 이유 모를 살기. 날카로운 눈매와 눈이 마주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딜!" 서큐버스의 레프트 훅. 하지만 그림자는 고개를 숙여서 그것마저 피해내고, 동시에 나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옷깃을 잡고 들어 올릴 듯 체중을 실어 나를 끌어당긴다. 체중의 급격한 이동은 유도 기술의 신호. 나는 메치기의 충격에 대비해서 눈을 꼬옥 감았다. 그리고. 입술에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닿았다. "츄웁-♡" 뭐지? 이 상황은. 영문을 몰라서 눈만 동그랗게 뜬 가운데. 미끈거리는 혓바닥이 잡아먹을 듯 거칠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뜨거운 숨결의 사이로 시름 섞인 알코올의 냄새가 풍기고. 채 나오지 못한 대사들은 거친 호흡이 되어 내 인중을 쓸어내린다. "무, 뭐야?" 갑작스러운 키스에 당황한 것일까. 아직 어린 키야에게는 조금 이른 이야기. 그녀는 얼음처럼 굳어 버린 채 멀뚱멀뚱 우리의 모습을 바라봤다. 명순응이 진행되며 서서히 시야가 돌아온다. 새하얗기만 하던 풍경에 알록달록 색채가 차오른다. 뇌리를 찌를 듯 눈부셨던 태양에 적응한 안구가, 마침내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 어리둥절한 나를 보며 만족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 입술을 떼어내니 은빛 실이 길게 늘어진다. 나는 호흡을 헐떡이며 의외의 인물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이름을 속삭였다. "성하라 박사님?" 내 중얼거림을 들은 성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인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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