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것이 트레이너 사이의 유대감? 아무리 도움이란 주기도 받기도 하는 것이라지만.
반짝이는 빛가루가 드라이어드의 주변을 휘감았다.
나는 계약이 이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은 상태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알림창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집중했을까.
오래되지 않아 기다리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좋아! 드라이어드와 계약했다.]
성공이군.
나는 몽롱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눈을 떴다.
서큐버스, 운디네, 드라이어드.
지금 나의 팔목에는 벌써 세 개나 되는 고리가 매달려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초보 트레이너는 벗어나지 않았을까?
이 세상에 조금은 적응한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드라이어드+ : Lv.3]
속성 : 풀
종족 능력치 : CC 개별 능력치 : C
특성 : -
기술 : [뿌리묶기]
호감도 : 51 / 100
상세내용 확인은 ☆Click☆
"...?"
"아니 아니. 그냥 좋아서 바라본 거야."
차마 상태창을 확인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
얼버무리며 머리를 쓱쓱 어루만지자. 두 에로몬이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언제 낯을 가렸나는 듯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두 에로몬들.
조금 우여곡절이 조금 있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나를 잘 따르고 있다.
"그럼 그만 들어갈까?"
나는 둘에게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발을 떼려던 나의 몸이 덜컥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내 왼쪽 바짓단은 드라이어드가. 오른쪽 바짓단은 운디네가 붙잡고 있는 상태다.
두 꼬마 에로몬이 내 바지를 붙잡고 있으니 움직일 수가 없다!
"얘들아, 손 좀 놔줄래?"
조심조심. 그녀들을 떼어내기 위해 손가락을 내밀었더니 '우리를 떼어낼 거야?' 라는 눈빛을 그렁그렁 보내오는 에로몬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떼어내려던 손을 내려야만 했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성박사님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첨언했다.
"마치 세 여신 사이에 떨어진 황금 사과 같네요."
"그래요?"
"네. 트레이너의 역량이 너무 높아도 곤란하군요."
황금 사과라...
그렇다면 황금 사과를 쟁취한 서큐버스야말로 비너스에 어울리겠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면. 새파란 하늘 대신 말랑말랑한 허벅지와 분홍색 머리카락이 보인다.
지금 서큐버스는 내 어깨에 올라타 있는 상태다.
솔직히, 굉장히 무겁다.
"서큐버스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지만 내려오는 건 안 되겠지? 주인님이 어깨가 아픈데."
"흐흐- 당연히 안 되죠♡"
저렇게 좋아하는데 강제로 떼어 낼 수도 없고.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다른 트레이너분들이 납득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배틀 덕분에 일이 편해졌어요."
"네? 성박사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스타팅 에로몬을 빼돌리다니. 저희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다고."
찰나간의 침묵 속에서 나와 성박사의 눈빛이 마주쳤다.
- 우리 없던 일로 할까?
= 그래!
따위의 눈빛이. 나와 성박사의 사이를 오고 갔다.
"...좋아요. 똑똑한 사람."
"크흐흐."
"그럼 별룡씨. 저 아이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 훌륭한 에로몬으로 키워 주시길."
육성이라...
사실 그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한숨이 나왔다.
기술 배치나 개별 능력치 올리기 따위는 초등학생 때부터 20년이 넘도록 해왔다.
제아무리 현실이라도 그리 오래 해매지는 않겠지.
반대로, 게임으로 에로몬을 배운 내게 있어 에로몬의 일상은 너무나 어려운 부분이다.
에로몬은 어떤 음식을 먹지? 생체 리듬은 또 어떻게 조절하고. 아픈 상태는 어떻게 알아차려야 하는 것일까.
현실은 게임보다 조금 더 가혹하다.
무작정 머핀만 먹인다고 호감도가 맥스로 오르는 일은 없는 것이다.
"저기, 성박사님."
"네 별룡씨. 무슨 일이신가요."
"제가 에로몬을 키우는 건 처음이라 그런데, 혹시 육성 팁이 적혀 있는 책은 없을까요?"
"흐음- 일단 별룡씨의 수준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턱을 쓰다듬던 성박사가 앞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어 착용했다.
"문제입니다. 별룡씨는 에로몬을 돌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콘, 콘테스트용 머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정답.
성박사의 가느다란 속눈썹이 충격과 놀라움을 담아 금붕어처럼 깜빡거렸다.
"이건, 확실히 도움이 필요한 수준이군요."
"그렇죠?"
"책은 제가 준비해 드릴 테니. 그래, 그동안 산책을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요?"
"산책이요?"
내가 산책이라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던 두 꼬맹이가 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눈빛이 빤짝빤짝.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폼새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목줄을 입에 물고 올 기세.
만약 산책을 포기했다간 호감도가 잔뜩 떨어질 것만 같다.
"어린 에로몬은 산책을 좋아합니다. 유생체 에로몬을 케어하는 대표적인 방법이죠."
"평화적이고 좋은 방법이네요. 트레이너가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점만 뺀다면요."
"흐흐흐- 좋네요, 산책~♡ 그럼 제가 미리 준비해 놓은 목줄을―"
"아, 서큐버스씨는 제외. 저와 할 일이 있습니다."
"네네? 왜요? 뭔데요?"
난데없는 날벼락에 팔짝 뛰는 서큐버스.
성박사가 그런 서큐버스에게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수근수근. 속닥속닥.
몇 마디의 속삭임이 오고 간 이후.
준비해 놓은 목줄을 안타까워하던 서큐버스는, 순식간에 음흉한 얼굴이 되어 성박사 쪽에 붙어서 손을 흔들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서큐버스?"
"흐흐- 확실히 그러네요. 다녀오세요 주인님~♡"
뭔가, 뭔가 기시감이 드는데.
본능적으로 불안감이 엄습.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큐버스를 노려봤다.
"...냥냥♡"
"아니. 시치미 떼도 소용없으니까. 우리 들어와서 다시 얘기하자고."
"알겠습니다~♡ 아, 주인님. 제가 목줄 빌려 드릴까요?"
"...필요 없어."
그렇게 나는 운디네와 드라이어드를 데리고 마실을 나갔다.
***
마운틴 시티에 존재하는 건물은, 대부분이 비슷한 질감과 색깔을 지닌 회색빛의 건물들이다.
그 이유는 같은 봉우리를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인데.
동일한 재질의 돌로 만들어진 도시는 중구난방한 거리에 묘한 통일감을 불어넣어 준다.
"뽈록!"
"그래, 이것도 아마 에로몬이 깎았겠지?"
도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운디네와 드라이어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편리했다.
일단은, 마음을 열어놓은 동료가 생긴 셈이니까.
[운디네가 경험치를 획득했다.]
[드라이어드가 경험치를 획득했다.]
"오. 이런 식으로도 경험치가 얻어지네."
"뽈록?"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이쪽 이야기."
모험으로도 경험치가 얻어진다는 이야기는 나만의 비밀이다.
운디네는 내 비밀을 캐묻고 싶은지 계속 달려들지만.
필살. 쓰다듬으며 얼버무리기!
쓰다듬을 받은 운디네의 몸이 흐물흐물 물거품처럼 녹아버렸다.
그 모습을 본 드라이어드가 깜짝 놀라며 내게 달려들었다.
"!!!"
"그래그래. 드라이어드 너도 쓰다듬어 줄게."
쾅! 쾅!
그렇게 거리를 걷다 보니 공사장이 보였다.
사람들이 봉우리를 깎아 건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가 3층짜리 빌딩으로 변화하는 모습.
드라이어드와 운디네는 부리던 애교도 잊은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구경했다.
"...근데 신기하긴 하다 야."
= 하압!!!
턱에 난 수염과 볼록한 바지춤. 몇 번을 봐도 남자가 확실했다.
그런데 어떻게 손날치기로 바위를 깎아내는 것이지 휴먼?
뉴타입인가. 뉴타입인 건가.
어쩐지 건물이 묘하게 자큐의 투구를 닮았더라니.
"뽁뽁!"
"그치? 아저씨가 땀을 많이 흘리네. 힘들어 보인다."
"...!!!"
"너도? 아니, 그러려면 조금 더 자라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던 우리.
그런 우리의 사이로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허허, 그래도 웃고 있지 않느냐? 저것은 저것 나름대로 보람찬 일이란다."
"그러게..."
잠깐만.
누구냐. 이 사람은.
누군가가 우리의 대화를 가로채갔다.
심지어 아리따운 여성도 아닌 남성의 목소리다.
깜짝 놀란 나는 두 꼬마 에로몬의 손을 잡고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적당히 물러나서 다시 고개를 돌리니. 왠 사무라이 코스프레 할아버지가 우리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누구세요?"
"흐흐- 나는 지나가는 늙은이올시다."
아니다.
지나가는 할아버지는 절대로 저런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강제 이벤트인가? 굉장히 수상한 사무라이 복장이다.
부디 NTR 이벤트가 아니기를 빌어야겠군.
다짐을 마친 나는, 한결 날카로운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노려봤다.
"혹시 제게 용무가 있으신가요?"
"아니. 아무것도 없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대답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순순히 돌아가나 싶더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
"..."
"......"
뭐지. 혹시 신종 시비 거는 방법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 정지? 최면술?
속으로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매의 눈으로 운디네와 드라이어드를 확인. 이상한 점이 없는지 샅샅이 훑어봤다.
아랫배에 이상한 문양도 없고. 끈적거리는 채액도 없으며. 눈빛이 흐려지지도 않았다.
좋아―
"흐음..."
"..."
"...?"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의 시선이 이상했다.
할아버지는 에로몬이 아니라 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노리는 것은 나였나?
나는 핑크게이의 소름을 느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슬쩍 다가오더니. 그와 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제 얼마나 가깝냐면 ―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
"자네, 혹시 내가 누군지 아시는가?"
"어... 마을 안내 할아버지?"
그 말을 듣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쪼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