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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Make Human Company 창고


1. 능력자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이론이 하나 있었다. 정확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익명의 능력자들이 직접 겪어보고 알음알음 퍼진 이론이었다. 그것은 바로 마력이 다른 물리학적 힘들 보다 더 우월한 힘이라는 것. 예를 들어, 마력을 가진 사람 A와 B가 있고, 마력이 없는 사람 C가 있다. A와 B는 능력자이긴 하지만 강한 수준은 아니다. 이런 경우, A와 B가 서로 주먹을 들고 싸운다면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는 힘들다. 애초에 능력 자체가 강하지 않고 무기도 주먹뿐이니까. 하지만 A와 C가 싸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의 주먹은 아주 작은 마력으로 강화된 것이라도 C에게 치명상이 된다. 그리고 C의 공격은 야구배트로 풀스윙을 날리더라도 마력을 가진 A에겐 치명상이 아니다. 즉, 마력을 지니고 있는 '능력자'는 특수 능력이 없더라도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이론이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나 밝혀진 것이 없고 그저 능력자들이 경험한 체감에 의존해 쌓아 올린 가설이었다. 그래서 머리 한편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는데, 병호 씨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올랐다. 실제 능력자끼리의 싸움에서 소총탄 같은 위력의 공격을 막아내려면 내구가 최소 A는 되어야 할 것이다. 소총이 쏘아내는 총알은 정말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갖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공격이 마력이 담기지 않은 공격이고, 맞는 대상이 마력을 지닌 능력자라면? 겨우 E+급의 내구 능력치로도 치명상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왜냐? 마력이 더 우월한 힘이기 때문에. 물론 아직까지도 가설일 뿐이지만,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내 부탁을 들은 병호 씨가 흔쾌히 상태창을 공유해 주었는데, 그의 능력은 총알을 막는 데에 딱히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었고, 내구도 정말 E+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총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졌다.' 물론 아직까지도 군부대를 점령한 세력은 위험하다. 군대에는 소총 외에도 강력한 위력을 가진 무기들이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소총의 위협만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이 정보를 얻은 것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병호 씨." "아닙니다. 저희 백화점 사람들을 구해주신 영웅이신걸요." 훈훈하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의무실을 빠져나왔다. 진세림이 나를 뒤따라 나오면서 물어봤다. "이제 떠나는 거야?" "가야죠. 원래 그저께 바로 파주로 갈 예정이었는데 좀 늦어졌습니다." 서울에 있는 D마트 대피소를 너무 오래 비워두기엔 불안했다. 변종 좀비가 여기서만 나타나는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 빨리 돌아가야만 한다. "잠시만. 가기 전에 줄 게 있어." "네? 뭐 안 주셔도 괜찮은데." "사양하지 말고, 2층으로 가자. 그게 내 방에 있거든." 함께 진세림의 방으로 가자 그녀는 천으로 감싸놓은 기다란 무언가를 들어서 건네주었다. 나는 받아서 바로 천을 풀어봤다. "이건……." "환도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때 사용했던 무기를 재현해서 만든 거." "와……." 이런 살상용의 기다란 칼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만화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물건이니까. 손잡이부터 칼집까지 모두 하얀색이라서 상당히 눈에 띄는 녀석이었다. 수실이나 별다른 장식이 달려있지 않아 담백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지만, 칼집입이나 칼집끝, 코등이 같은 부분은 금색의 금속을 사용해서 상당히 화려하다. "뽑아봐도 되나요?" "물론이지." 나는 곧바로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뽑아봤다. 스르릉-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며 예기를 뽐낸다. 길게 뻗은 도신은 끝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어때?" "제가 환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완전 제대로 된 물건 같은데요?" "그야 당연하지. 무형문화재 환도장께서 직접 만드신 물건이니까." "……네?" "그걸 만든 할아버지가 이 근처에 사는 분이셨거든. 그래서 백화점으로 대피하실 때 칼을 대여섯 개 가지고 오셨어. 그중에 하나를 나한테 주신 거고." 나는 조심스럽게 환도를 칼집에 갈무리했다. "이걸 저한테 주시면 세림 누나는 뭘로 싸워요?" "사실 나는 근력이나 체력이 낮아서 칼 들고 싸울 일이 잘 없어. 그제 변종 좀비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그거 안 썼어. 다른 애 빌려줬지. 그러니까 너 가져, 도하야." "……이렇게 귀한 걸 그냥 받아도 괜찮아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엄청 탐났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칼이라곤 횟집에서 사용하는 사시미칼뿐이었으니까. 이런 제대로 된 칼이 있다면 앞으로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진세림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후후. 칼 잡은 손에 힘이나 풀고 말해. 눈이 아주 반짝반짝한데?"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응. 할아버지가 지금은 여기에 안 계시는데, 그분도 자기가 만든 칼이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에게 가기를 원하실 거야." 나는 환도를 대충 벨트 옆구리에 끼워서 허리춤에 찼다. 검집에 동그란 고리가 달려 있는 것을 보니 원래 이렇게 차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검색해 봐야겠다. 세레나가 내 허리춤에 달린 환도를 보면서 말했다. "와아……! 도하야, 너 지금 엄청 멋있어!" "그러게. 잘 어울리네." 진세림의 맞장구까지. 나는 멋쩍게 웃으며 코밑을 검지로 쓱 훑었다. 2. 백화점 사람들은 1층으로 우르르 몰려나와 우리를 환송해 주었다. "도하 군, 벌써 가는 거야? 뭐가 그렇게 급해?" "어제 힘도 많이 썼을 텐데 며칠 좀 푹~ 쉬었다 가지." "파주로 간다면서요? 거긴 진짜 위험하니까 총 든 놈들 안 마주치게 조심해요, 형." "와, 그 검 세림 누나가 준 거예요? 방랑 검객 같아서 멋있는데요?" 마지막은 좀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면 내 심성이 꼬인 건가?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방랑 검객이 어디 있냔 말이다. "모두, 인연이 닿는다면 또 봐요. 잘 지내시고요—!" "잘 지내요—!" "도하 형도—!" "조심히 가요—!" 나와 세레나는 그렇게 상투적인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백화점을 떠나갔다. 목적지는 파주에 있는 Make Human Company의 창고. 사실 일산에서 파주까지는 자전거로도 아주 가까운 거리기에 원래대로라면 금방 도착할 예정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곳곳에 있는 군부대 세력을 피해서 빙빙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저녁쯤에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님, 자전거 타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오—!" "나도—!" 우어어어어어— 우어어어어— 뒤를 쫓아오며 대화에 호응해 주는 좀비 무리와 함께, 우리는 파주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3. 같은 날 저녁, 파주에 있는 Make Human Company의 창고 앞. 슬슬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을 무렵. 어깨에 소총을 매고 군화를 신은 남자들 5명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아, 씨발. 좆같은 능력자 새끼들. 왜 우리가 멀쩡한 여자 놔두고 인형한테 물 빼러 와야 하냐고. 안 그래?" "능력이 벼슬인데 뭘 어떡하냐." "그니까 그 새끼들 잘 때 쏘자니까? 능력자여도 자다가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다고!" "자기들끼리 불침번을 서는데 무슨 수로? 걔네 베개 밑에 총 넣어놓고 자는데 한 방에 못 죽이면 역으로 당해." "불침번 그거 한 명씩 세우는 거, 그게 무서워? 막상 해보면 될 거라니까?" 그들은 인근 군부대 세력에 속해있는 남자들이었다. 사실 같은 군부대 세력 안에서도 능력자들과 비능력자들에 대한 구분이 존재했다. 능력자들은 자신들을 특별 계층으로 분류하고, 납치해온 여자들을 윤간하는 일에 비능력자들은 끼워주지 않았다. 비능력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갔으나 미지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갈등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지점까지 발전되었던 시기에, 비능력자들 중 한 명이 발견했다. 이 Make Human Company의 창고 건물을. 이곳에는 인간보다도 아름다운 리얼돌들이 여러 체 구비되어 있었다. 비능력자들은 이곳의 리얼돌들을 상대로 성욕을 해소하면서 불만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고, 그렇게 군부대 세력은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유지했다. 그것이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비능력자들은 몰래 군부대를 빠져나와 리얼돌들이 있는 창고로 찾아왔다.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창고로 들어가던 남자들 중 선두에 서있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섰다. "잠깐만. 뭐냐, 이거? 마지막으로 문 안 닫고 나왔던 놈 있냐?" 그들은 일주일 동안 자기들끼리만 창고의 리얼돌들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오늘, 분명히 닫혀 있어야 할 창고의 문이 열려있었다. "뭐야, 씨발. 누구 들어가 있나 본데?" "쉿. 다 닥쳐. 발소리 죽이고, 사주경계해." 선악이나 도덕관념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모두 군필자들.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서서 쏴 자세를 취하고 주위를 경계했다. "들어간다." Make Human Company의 창고 건물은 창고라기보다는 사무실 같은 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건물 복도로 진입하자, 리얼돌들이 있는 안쪽의 방 너머에서 희미하게 남자들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흣, 흐, 흣, 후우…, 헉, 헉, 헉—!" "하아, 또 쌀 거 같아. 여기 인형들 왜 이렇게 예쁘냐?" "왜 네가 쌀 거 같은 걸 나한테 보고해, 인마. 흣, 흣!" "흐흐. 예쁜 건 더럽히는 재미가 있다니까……." 안 봐도 리얼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뻔한 상황. 5명의 남자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험악해졌다. "저 씹새끼들이." "뭘 꾸물거려? 빨리 들어가 다 죽여버려!" "자, 잠깐, 기다려!" 탁탁탁탁탁—! 선두에 선 남자는 재빨리 달려가서 닫혀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방 안에는 6개의 리얼돌들과 2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남자 둘은 바지를 벗은 채로 리얼돌을 붙잡고 열심히 허리를 놀리는 중이었다. "누가 이거 마음대로 쓰랬어, 이 씨발새끼들아!?" 선두의 남자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조정간 연발로 해둔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타타타타타타탕—! 리얼돌과 열심히 섹스를 하는 중이었던 2명의 남자들은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총에 맞아 사망했다. 문제는 남자가 총을 대충 드르륵 긁어버린 탓에 함께 있던 6구의 리얼돌들도 총알받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선두의 남자를 뒤늦게 따라온 이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아~ 아. 그니까 기다리라고 했잖아, 병신아." 그들은 뒤늦게 방안으로 들어와 리얼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에휴, 씨발. 골고루도 쐈다, 아주. 6개 중에 멀쩡한 게 없네." "……화나서 인형 생각은 못 했네." "웩, 여기엔 이 새끼들 정액 들어있다. 뒤지면서 오줌도 나왔어." "총 좀 맞았어도 보지만 멀쩡하면 됐지 뭘, 난 깔끔한 거 하나 가져다가 한발 뺄래." "미친 새끼. 이 시체들 보고도 총알구멍 뚫린 인형에다 박고 싶냐?"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투덜거렸다. 방금 죽은 2명의 남자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 모습을 모두 숨어서 지켜본 김도하는 생각했다. '사람을 자주 죽여본 놈들이구나.' 물론 그의 옆에는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세레나가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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