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쾌락 지옥
"흐으으응..!"
길게 늘어선 마왕성의 복도를 레인은 힘겹게 걷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천천히 걸음을 떼는 모습은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디아, 죽인다!'
이미 쾌감에 절여진 머릿속은 복잡한 사고를 할 만큼의 여유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에서 깨고, 뱃속의 무언가가 진동하기 시작한 지 벌써 몇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저 쾌락을 버티며 사태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디아를 기다릴 뿐이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윽!"
결국 힘이 다한 다리는 레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벽을 짚고 다시 일어나 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대로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다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디아를 찾으러 침실 밖으로 나온다.
여기까지는 옳은 선택이었다.
실제로 기다림을 선택했다면 돌아오지 않는 디아로 인해 쾌락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인은 디아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디아가 아니라도 좋았다.
스스로 뱃속의 무언가를 빼지 못하는 지금 다른 누군가가 질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것을 빼주길바랬다.
그러나 문 밖을 나선 이후 누구와도 만나지 못했다.
마왕성이 넓은 건지 레인은 커다란 복도에 홀로 쓰러져 있었다.
'여기 까진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마음이 꺾이려 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은 레인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종류의 고통이었다.
"어, 마왕님? 아! 이제 마왕님이 아니었나?"
앞쪽에서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인에게는 죽기 직전(?) 보인 마지막 희망이었다.
"제발 도와줘..!"
더는 용사로서의 체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고통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었다.
힘겹게 올려다본 그녀의 모습은 동물의 귀와 꼬리를 가진 수인의 모습이었다.
'마족인가?'
마물과 마족들의 본진인 마왕성이니 당연한 말이었다.
오히려 레인은 누군가를 만났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레인은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더 이상 끌었다가는 쾌락의 파도 속에서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너 용사 맞지?"
"맞아! 맞으니까.. 흐응?"
녀석은 갑자기 레인을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레인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아 맞다! 미리암이 마왕님의 신체를 건들면 징계를 때려버린다고 공문을 내렸었지."
그러곤 멋대로 끌어안은 레인의 몸을 멋대로 놓아버렸다.
스스로 신체를 지탱할 힘이 없는 레인이었기에 다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무슨... 짓이냐!"
"앗! 미안. 지금 그 몸을 만지면 징계를 받아서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앞의 녀석은 당장에라도 레인의 몸을 만지고 싶은지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조금만 부추기면 알아서 이 몸에 손을 댈 것 같았다.
"지, 지금 내 뱃속에 이물질이 들어갔다.. 그것만 제거해 주면 돼!"
"이물질?"
그녀는 쪼그려 앉아 레인의 배에 가까이 접근했다.
드디어 이 쾌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레인은 뒤로 쓰러진 상태로 눈을 감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배에 닿는 녀석의 숨결만이 느껴질 뿐 그 이외의 자극은 느껴지지 않았다.
"너도 마왕의 신체에 관심이 있는 거잖아! 만질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단 말이다!"
지금까지 봤던 마족들은 전부 그랬다.
마왕의 신체를 탐했고 하나같이 돋보적인 변태들이었다.
"용사 씨의 부탁은 그것 뿐인 거지?"
"그래 그러니까..!"
"그럼 그걸 빼주면 더 이상 나한테 볼 일은 없어지는 거네?"
"무슨!"
아아. 또 그 미소다.
이곳에서 만난 녀석마다 보여준 사악함이 깃든 표정.
"이거 소리를 들어봤을 때 아무리 봐도 마왕님의 진동 마법이란 말이지."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알고 있달까 나도 마왕님께 직접 배운 마법인걸."
그녀는 검지를 세우고 어떤 주문을 외운 뒤 레인의 아랫배를 가리켰다.
"얍!"
"히으윽!"
가뜩이나 버티기 힘들었던 진동의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
이미 충분히 달아올랐던 몸은 순간적으로 가볍게 몇 번 가버렸다.
"용사씨 하반신이 떨리고 있어! 너무 귀엽다!"
"너! 당장 멈추지 모...흐으응!"
아슬아슬한 강도로 떨리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악의적으로 강해진 진동은 이미 가버린 레인의 몸에 또 다른 절정을 가져다주었다.
"오! 조수 나오고 있어! 용사 씨도 사실은 좋았던 거구나?"
복도 한복판에서 쓰러진 채 석재 바닥을 적시고 있는 게 어느 부분에서 좋아한다고 볼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 것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게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으.. 흐응!"
널부러져있는 레인의 몸은 절정에 달할 때에만 작게 움찔거렸다.
남자 때와는 다르게 가버린 직후에 현자타임이 찾아오기는커녕 멈추지 않는 자극에 더욱 흥분될 뿐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없는데. 그러면 더 강하게 해볼까?"
"이건 그냥 체력이 없어ㅅ..으하아앙!"
뱃속의 떨림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그리고 이 정도로는 뭔가 아쉬우니까."
"?!!"
뱃속의 떨림에 굴곡이 생겼다.
일정하게 '강'정도의 세기로 진동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돌멩이는 강과 약을 영 점 몇 초 단위로 넘나들며 색다른 자극을 가했다.
"히읏! 읏!"
진동의 세기가 약에서 강으로 바뀔 때마다 레인의 하반신이 작게 통통 튀어 올랐다.
오히려 일정하게 강하게 떨릴 때보다 참기 힘든 쾌감이었다.
"헤에. 귀여워."
마치 동물원에서 철창 너머로 동물을 관찰하듯이 그녀는 쪼그려 앉아 레인의 추태를 방관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족들 특유의 사악한 미소를 띤 채.
"아무나.. 도와줘."
한계가 온 지는 이미 한참 지났다.
용사로서의 프라이드는 갈가리 찢겨나가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을 것이다.
"아쉽지만 여기는 마왕님의 방 근처라서 지나다니는 녀석들이 거의 없거든 만약 누군가 지나간다고 한다면 그건 마왕님이.."
"내가 어쨌다는 거지 라미?"
"마왕님?!"
정신이 피폐해져서 그런지 디아가 라미라고 불린 녀석의 뒤에 접근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미리암님으로부터 마왕님의 신체를 건드리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거든요. 그래서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죠."
"변명은 그게 다인가?"
"죄, 죄송합니다!"
디아는 무릎을 꿇은 라미를 지나쳐 레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검지와 중지를 레인의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흑!"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건 분명 2차전이다.
하지만 레인에게는 조금도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살려ㅈ.."
"그냥 돌멩이를 빼는 것뿐이니까 가만히 있어."
"에?"
어느샌기 디아의 손에는 진동하고 있는 돌멩이가 들려있었다.
하반신에서도 더 이상 자극은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 만에 쾌감으로부터 해방되어 주어진 자유에 레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흑."
서러웠다.
물론 지금까지의 인생도 죽고 싶을 정도로 서러웠지만 진짜로 죽지 못해 굴욕을 당하는 지금 상황이 더욱 서러웠다.
"..."
레인은 원래의 몸이었을 적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어떤 일이든 그저 참고 견뎠다.
그 결과 웬만한 일에는 감정적으로 둔감해지게 되었다.
'죽고 싶다.'
그저 쓰러진 채 수 백 수 천 번은 더 바랬던 소원을 되뇌고 있을 때 누군가가 몸을 들어 올리는 느낌이 났다.
익숙한 느낌으로 미루어 보아 공주님 앉기였다.
"라미. 더 이상 뭐라고 하진 않을 테니 이만 돌아가라."
"네엡!"
녀석은 한껏 과장된 몸짓으로 경례를 한 뒤 뒷걸음질로 유유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복도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기긴 이게 다 전부 너 때문..!"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소리치려 했지만 방전된 지 오래된 신체는 디아의 팔 위에 축 늘어졌다.
그래도 더 심한 짓을 당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끝난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디아 녀석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와중 어느새 마왕의 침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침대로 걸어가 레인을 그 위에 눕혔다.
'내가 잠시 착각했군! 이 녀석 그냥 복도 위에서 하는 게 싫어서 장소를 이동한 것뿐이었어!'
레인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올 테면 와봐라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텨주마.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디아의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레인은 살며시 눈을 떴다.
"뭐해?"
"오, 오는 게 아니었나?"
"뭐야 설마 아직 부족해? 더 해줬으면 좋겠어?"
"아니아니아니. 절대로 하기 싫다!"
"그럼 됐어."
디아는 작은 비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번 건 나도 조금 심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디아는 레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레인은 불안한 손길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역시 마왕 녀석이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머리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났다.
"쫄지마. 그냥 머리를 쓰다듬는 것 뿐이니까."
"거짓말하지 마라. 네 녀석 이러면서 은근슬쩍 또 야한 짓을..."
"해줘?"
"아닙니다."
디아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머리를 허락했다.
계속 쓰다듬 받고 있자니 그렇게 썩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흐으응."
입에선 쾌락의 신음이 아닌 기분 좋은 신음이 흘렀다.
'정신 차려라. 이건 흔한 당근과 채찍 전법일 뿐이다. 어차피 또다시 나를 범할 게 분명해.'
그래도 주는 당근을 받아먹지 않는 건 손해다.
이건 그저 당근일 뿐이니 별다른 생각을 품을 필요 없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럼 그렇지.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잘해줄 리가 없었다.
지금 레인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상황,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면 필시 이 신체를 원하는 게 분명했다.
'어차피 명령하면 되지 않나? 왜 굳이 부탁하는 거지."
"그야 용사와 관련된 일이니까 그러지."
용사에 관련된 일.
아마 후임 용사인 메르에 관한 일이겠지.
"새로운 용사가 마왕성까지 거의 도착했어."
"그래서 녀석을 잘 아는 나보고 싸워달라는 건가?"
"에이. 어떻게 예전 동료와 싸움을 붙일 수 있겠어. 내가 부탁할 건 다른 거야."
"다른 것이라면?'
디아는 무언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뜸을 들였다.
"사실 그 신체는 서큐버스거든. 그리고 서큐버스는 성적으로 관계를 가진 인간을 권속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었다.
"네가 그 용사를 범해서 권속으로 만들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