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캐리머신 예은과 울보 서진이
어느덧 우리는 마지막 방에 도달하게 되었다.
중간 중간 기겁을 하며 나에게 달라붙는 서진을 제외하면.
나름대로 예은이와 나는 방탈출의 묘미를 제대로 느꼈다고 할 수 있었다.
톡 톡
“도현아 여기와서 이것좀 봐봐..”
스테인리스 잔을 들어올리며 그 아래에 적힌 그림을 가리키는 예은.
또....무언가를 찾아냈구나...
“응 뭔데?”
예은이 가리키는 그림을 바라보자. 해골이 한손에는 스테인리스 잔을, 한손에는 포도주를 들고있는 그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엔 붉은색 글씨로 글자가 적혀져있었다.
[ 마지막 제물이 가리키는 것은 포도주 안에 들어있다. ]
이게 도대체 무슨의미일까..?
전혀 갈피도 못잡고 고민중인 나의 시야에 눈을 번뜩이는 예은이 보였다.
“아....아!! 나이거 뭘 의미하는지 알것 같아”
그러더니 스테인리스 잔을 가져가는 그녀.
손에 들고있던 스테인리스 잔을 바닥의 흰색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곳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덜컥.
책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책하나가 튀어나왔다.
책의 이름은 [붉은 포도주]
그리고 그녀는 그 책을 들어 빨간색 동그라미가 칠해진 지점에 펼쳐놓았다.
역시... 캐리머신 예은이 다웠다.
실제로 우리가 방탈출을 진행하면서 8할은 예은이가 모조리 풀어내었고.
우리는 조수 역할밖에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 혼자였지만.
“으으으..... 도현아.. 이거 언제끝나...?”
“곧 있으면 나갈 수 있을거 같은데? 조금만 참아.”
“우으으... 알겠어.”
세번째 방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 상태.
서진이가 겁이 많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는데. 상당히 중증인것 같았다.
다락방이 갑자기 열렸을때도..
ㅡ와아아악!!! 흐....흐..흐아아앙
시계에서 부엉이가 튀어나오며 종을 울렸을때도..
ㅡ히....히이익!!
들어왔던 문이 쿵! 하며 닫혔을때도... 그녀는 매번 다른 리액션을 취하며 겁내기 바빴다.
ㅡ나 더이상 못하겠어.... 흐으윽
몇번이고 비상 호출을 하려는 그녀를 계속해서 달래주고, 어루만져줌을 반복.
나는 더이상 방탈출을 하러온게 아니라 서진이 전용 멘탈케어 로봇으로 전직했다.
나는 익숙해진 손길로 서진이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혼자 열중인 예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쿵.....!
[ 안돼.... 안돼...!!! 지옥 끝까지 찾아가... 너를 저주하겠다.... ]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귀신이 내는듯한 목소리를 끝으로,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불이켜지며 어두웠던 내부는 순식간에 환해졌다.
끼이익
그리고 열린 문에서 직원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짝 짝 짝
“축하드립니다~ 저희 카페 최고기록이네요!”
그렇게 멈춘 타이머를 확인하는 직원. 멈춘 타이머 속에 표시된 시간은...
49:10
제한시간을 11분이나 남긴채 탈출한 우리들. 사실은 예은이 혼자 탈출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네? 정말요...?”
최고기록이라는 한마디에 방방 뛰며 기뻐하는 예은.
“네네 그래서 저희가 작은 선물과 함께 기념사진 무료 이용권을 드리려고 합니다.”
“와아... 감사합니다...”
“흐윽....흐으윽....”
어디서... 훌쩍이는 소리가...
꼬옥.
내 다리를 붙잡는 감촉이 느껴져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러자, 엉엉 울며 주저 앉아버린 서진의 모습이 보였다.
“흑......흐으윽....”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그녀의 얼굴엔 분비물이 가득했다.
눈,코,입 할 것 없이 엉망이 되어버린 그녀의 얼굴.
나는 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어 조심스래 서진의 얼굴을 옷으로 닦아 주었다.
슥 슥
“서진아.. 괜찮아? 뚝하자 뚝.”
“히이잉... 넌... 이게... 괜찮아 보여...? 흐아아앙...”
“이제 다끝났어 서진아.”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아이 같은데...
평상시엔 기도 쌔고, 입도 험하고, 화도 많이내는 그녀였지만. 지금 내게 보여주는 이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귀여웠다.
사람이 우는걸보고 귀엽다고 하면 실례인걸 알지만. 예쁜 얼굴을 한 여자가 칭얼거리며 우는 모습은 심장을 아프게 하기 충분했다.
“정말...? 이제 우리 끝난... 거야?”
코를 흥하고 내 옷에 풀며 되묻는 서진.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게 눈에 보였다.
“응.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자 서진아.”
“웅.... 알았어...”
서진이의 손을잡고 일으켜세우는 도중.
등뒤에서 서늘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자 나를 째려보는 예은이 있었다.
“칫... 아주 드라마를 찍는구나 드라마를 찍어...”
혀를 차며 발을 동동구르는 예은. 그녀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져있었다.
“진정됐으면 빨리 일어나지 그래? 이 울보녀.”
“뭐! 너 할말 다했냐!!”
“하~ 내가 뭐 거짓말이라도 했어? 방탈출 하는내내 비명지르고, 울고, 도현이만 찾아대고. 결국 나혼자 다 했잖아 안그래?”
“아니! 뭐...뭐뭐 불만있냐! 사람이 겁이 많을 수도 있지그래...”
자기가 부끄러운건 아는걸까... 큰 소리를 치던 서진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고개를 떨궜다.
“자자 고객님? 이제 슬슬 나가주셔야 할것같은데...”
그렇게 말싸움을 하고있자 문 밖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는 직원분이 보였다.
“아 네! 지금 나갈게요! 죄송합니다~”
“네네 나오시면 기념촬영 바로 들어갈게요~”
“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세사람은 기념촬영을 마치고 작은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은 다름아닌 숙박권. 근처 고가 모텔의 숙박권 이였다.
..... 이거 노리고 준거맞지?
가만보니... 선물을 건내줄때 희미하게 웃으셨던거 같은데...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선물인데.
속으로 숙박권을 선물해준 의도가 뭘까 생각하며.
나는 그녀들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
갑작스럽게 치맥이 땡겨 나는 그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슬슬 배도 출출해졌겠다... 우리 치맥 어때?”
“좋아!”
“나도...뭐 상관없어”
내일이 월요일인것을 망각이라도 했는지. 우리 세사람은 기세를 몰아 치킨집으로 향했다.
치킨집으로 들어오자. 울보였던 그녀는 어디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서진이는.
재빠르게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기시작했다.
“사장님! 여기 후라이드 양념 반반으로 주시고 맥주500 3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흐흐....맛있겠당...”
“야 울보. 아까처럼 행동해보시지?”
“뭐래~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지.”
막상 치킨집에 오니 아까의 성의 없던 대답은 거짓말인것 처럼.
서진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역시.... 한국인은 치맥이지...
한국인 이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치킨&맥주라는 조합엔 누구든지 환호할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진짜 재밌었지? 도현아?”
“응 방탈출이라는 것도 색달라서 좋았어.”
“우리... 다음에도 또 올까? 울보는 빼고.”
“뭐?”
노골적으로 서진이를 빼고 나와 단둘이 다시 오고싶다는 말을하는 그녀.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진이는 치킨에 정신이 팔려 못들은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히히..”
“그래..”
띠링!
예은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자 내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나 잠깐 화장실좀...”
“응~ 갔다와 도현아~”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톡을 확인하기위해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톡이 온걸까? 혹시... 서희인가?
***
어디보자......
휴대폰을 켰다. 그러자 서희가 보낸 톡의 내용이 보였다.
-서희 : 도현아? 뭐하고있어? 나 너무 심심해....
-서희 : 그래서 말인데... 지금 너희집 가도돼?
-서희 : 톡보면 전화줘♡
큰일났다. 지금 서희가 우리집에 오고싶어한다.
....서희한텐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된다고 확실하게 말하자...
나는 휴대폰을켜 서희에게 답장을 보내려던 그때였다.
뚜르르르
화면에 적힌 이름.
[서희]
화들짝놀라며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응 도현아 지금 뭐하고있었어?
“아...내가 전화하려고 했는데...”
-좀 시끌벅적하네? 지금 혹시 밖이야?
밖인걸 들킨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대충 둘러댔다.
“응. 지금 아는 친구랑 치맥하러 나왔어...”
-친구? 혹시... 여자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여자라고 인정했다간 큰일이 날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아니아니 내 고등학교 동창”
-그래..? 그럼 나도 가도되지?
“어...?”
여기에 온다고? 절대 안된다. 서진와 예은이랑 같이 있는 모습을 들키면 난 끝이다.
어떻게든 서희를 이곳으로 오지않게 하기위해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러댔다.
결국 하찮은 머리로 생각해낸 답은...
“그건 좀 힘들거 같아.. 오늘은 오랜만에 남자들끼리만 놀기로 했거든...”
-음... 도현이가 그렇다면... 알겠어. 그럼 내일 보자
“응 내일 보자 서희야...”
-너무 과음하지말구... 알았지?
“알겠어... 들어가~”
-사랑해♡
뚝.
휴우우우우.... 살았다.
다행이도, 서희는 내 거짓말을 믿어준것 같았다.
마치 여자친구와 통화를 한 것 같은 느낌.
실제로 나와 서희는 아직 사귀지 않을 뿐이지 거의 연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여자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남친? ......그냥 쓰레기였다.
근데.... 지금 그 쓰레기가 여깄다. 바로 나.
왠지모르게 서희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면서 나는 동시에 안도를 했다.
“슬슬 돌아가볼까...”
나는 휴대폰을 끄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테이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