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119. 불꽃망치 부족의 내전
아침.
내게 안겨 잠든 월광이와 슬라코를 떼어내고 알아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마법으로 불을 피우고 몬스터 소재에서 선별한 고기와 숲에서 채집한 야채에 기름을 둘러 간단한 볶음을 만들었다. 거기에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준비한 빵을 곁들이면 완성이다.
이세계의 빵은 효소를 거의 쓰지 않아 엄청나게 딱딱해서 수저 대용으로 사용해 기름과 찌꺼기를 듬뿍 머금은 후에야 겨우 먹을 수 있다.
쌀쌀한 아침 기온과 더불어 따뜻한 수프가 고픈 식사였다.
누군가 야영하면서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수프를 만들어 주지 않으려나? 치킨 스톡처럼 말이다.
단언컨데 뜨거운 물에 넣기만 해도 완성되는 인스턴트 국물류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2년 차 자취생은 생각한다.
음식 냄새를 맡은 일행들이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근처에 모여들어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웠다.
바르드룸 박사는 작업 도중에 잠이 들었는지 자동차 옆에 엎어져 있어서 나중에 따로 갖다 줬다.
그리고 야간 경계를 서 준 오크 워리어 칼랑가에게도.
‘주인, 보고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때 마력 패스를 통해 칼랑가가 말을 걸어왔다.
육성으로 대화하지 않고 일부러 패스를 통해 말을 건 것은 아마도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일이겠지. 이럴 때를 위해서였는지 그는 어젯밤 소환됐을 때부터 줄곧 조용히 있었다.
진화를 이루고 난 이후부터 칼랑가의 지능이 부쩍 늘어난 듯했다.
‘뭔 일 있었어?’
‘저 두 드워프에게 뭔가 사정이 있는 듯합니다.’
‘자세하게 얘기해봐.’
‘실은….’
그렇게 칼랑가에게서 어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를 보고받았다.
‘흐음, 그래?’
그리고 내 반응은 그저 그런 것이었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확실했던 건 아니야. 그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을 뿐.’
칼랑가를 통해 들은 바르드룸과 애드미나의 대화로 유추해볼 때 두 사람은 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추후의 일을 위해 나를 이용하려 했던 것도.
그런 생각은 애드미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굴린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담았는지. 그리고 그 순간 그 속에서 떠오른 이채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처음부터 생각하고 나를 이용하기 위해 행동했던 것이다.
바르드룸과의 실없는 대화도 어쩌면 내 경계심을 느슨하게 하려고…는 조금 오버인가?
두 사람의 티키타카는 한 두 번 연습한 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알고도 굳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내게도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드워프 추적자들이 사용했던 ‘사기환’이라는 약품.
그들은 그것을 복용하는 것으로 몸에 사기를 두르며 중급 마족 급으로 힘이 늘어났다.
강해지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에 사기가 포함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리스톨에서 암흑 사제가 사기를 추출하기 위해 행하던 끔찍한 실험과 그로 인해 발휘된 그 위력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늑대 엄마의 부탁과 월광이의 인도로 사기의 출저를 찾아 드워프들과 마주쳤지만.
설령 그것이 없었더라도 내 주위에서 저렇게 눈에 띄게 사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진압해 두 번 다시 사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두 사람의 동향을 살펴야겠어. 두 사람을 추적하던 드워프들이 사기를 사용하던데, 만약 적대 관계라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만약 그들도 사기를 사용한다고 하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때는 내가 직접 해결하겠어.’
무심코 패스에 기세를 담았는지 칼랑가가 몸을 부르르 떨며 두려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분부대로.’
결국 칼랑가는 끝까지 육성으로 말을 내뱉지 않고 조용히 판데모니아로 돌아갔다.
한창 시끄럽던 녀석이 갑자기 조용해지니 느낌이 조금 이상했지만, 그저 공과 사를 잘 파악하게 됐을 뿐이다. 평시였다면 분명 언제나처럼 조금 시끄러운 친구일 것이다.
* * *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바르드룸 박사가 고친 자동차에 탑승하게 됐다.
목표는 평지의 저 멀리 보이는 산맥.
애드미나의 불꽃망치 부족이 살는 지역이 그곳이었다.
자동차는 4인 탑승이 가능해 운전석과 조수석에 바르드룸과 메이브. 뒷좌석에 나와 월광이, 애드미나가 앉았다. 슬라코는 슬라임 형태로 내 무릎에 앉아 차체의 흔들림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했다.
서스펜션이 없는지 심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엉덩이가 아픈 것을 견디며 타고 있었는데.
불현듯 들려온 앞좌석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가 심상치가 않았다.
“위, 위에 배기관이 있다는 말은… 설마 서, 석탄으로 움직이는 건가요?”
“아쉽지만 아닐세. 이 자동차는 불의 정령석과 바람의 정령석을 사용한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라네.”
“그, 그렇군요….”
“하지만 접근은 나쁘지 않군. 자동차를 초기에 제작했을 때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구현하기 위해 그 방법도 회의에서 몇 번 올라왔지만 결국 폐기돼버렸네. 석탄을 사용하려면 그만큼 일정 양이 필요할 텐데, 결국 무게 지탱에 에너지를 전부 소모해버리기 때문에 효율이 낮다는 결론이 났었지. 만약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차체가 거대하고 석탄의 효율을 높일 수만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말이야.”
“그, 그럼 모양을 바꾸는 건 어떨까요? 차체를 일자로 길게 늘어지게 해서 석탄을 태우는 엔진을 제일 앞에 두고 전체를 끌고 가는 형식으로요.”
“흠, 나쁘지 않은 발상이군. 하지만 차체가 길어질수록 제어에 들어가는 부담이 더욱 커질걸세. 하나의 일자 형태가 아닌 직사각형을 이은 형태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제어… 아, 그러면 차체가 달리는 길을 정해서 거기에만 달릴 수 있도록 선로를 만드는 건 어때요?”
“하하하! 만약 그런 것을 실연한다면 국가 사업이 될 게야. 도저히 일개 연구 기관이 혼자서 진행할 수 없는 스케일이 될 걸세.”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해 대화를 나눈 덕분인지 메이브의 어투에는 평소의 떨림이 없었다.
그 대신 내가 속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이세계에서 증기기관 열차가 태어나려는 순간을 목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메이브야 원래부터 지식이 방대했고 머리도 좋았지만 바르드룸 박사는 천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힌트만으로 현대 지구의 기술을 떠올리는 것은 마치 인류 역사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들이 한 사람에 집약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강태진, 너도 고생이네. 설마 박사 같은 부류의 인간가 또 있을 줄은.”
“아, 뭐, 응.”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대충 그렇게 대답했다.
저 상태의 메이브는 가만히 놔두면 말을 멈출 줄을 모르는데, 똑같은 인간을 만나니 상승효과로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바르드룸과 메이브가 끝없이 얘기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정신을 돌리기 위해 직접 애드미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아직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을 못 들었는데.”
“어제 있었던 일?”
“어제 그 말 탄 드워프들한테 쫓기고 있던 거 말이야.”
“아아, 그거?”
애드미나는 정말로 방금 떠올린 것처럼 답했다.
“언제나 있는 일이야. 지금 부족 내부에서 세력이 두 개로 쪼개져서 서로 싸우는 중이거든. 마침 내가 박사를 데려오기 위해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어서 이때다 하고 습격한 것이겠지.”
“호위는? 너 부족 딸 아니야?”
“당연히 있었지. 있었는데… 저 망할 박사가 갑자기 자동차 실험을 하겠다고 나를 태운 채 달려나갔다가 이 사달이 난 거야. 호위들은 따라오지 못하고, 몰래 쫓아오던 가르통이 대신 쫓아오기 시작했지.”
“갑자기 실험이라니….”
딱 봐도 수상쩍은 소리였으나 애드미나는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코웃음을 치며 부정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절대 아니니까 안심해. 저런 영감탱이여도 신뢰가 가는 드워프야.”
그녀의 말에 살짝 안심하는 내가 있었다. 기껏 메이브와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적대 관계가 된다면 그녀의 마음이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뭐 때문에 부족이 쪼개졌는지는 알려줄 수 있어?”
“그거야 뭐, 어제 네가 봤던 것 때문이지.”
‘사기환’. 그녀는 그 주제에 대해 말하려 했다.
“자세히 들려줄 수 있어?”
애드미나는 흔쾌히 불꽃부족 드워프의 내부 사정을 알려줬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불꽃부족은 원래부터 두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한 쪽은 전통적인 금속 가공 방식에 더해 신문물인 마도학을 들여서 물질적인 기술력을 추구했고, 한 쪽은 연금술을 탐구해 마력에 관한 기술력을 추구했다.
물질 기술은 족장이, 마력 기술은 부족장이 이끌었다.
두 파벌은 어디까지나 경쟁 상대였고 결코 적대 관계나 그런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드워프 특성상 금방 열이 올라 자잘한 다툼은 있었으나 서로서로를 인정하며 절차탁마하는 상생 관계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족장 파벌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기술을 들여왔다.
“그게 사기였던 거였네.”
“응, 맞아. 언제부터인가 부족장 파벌은 사기를 연구하기 시작하더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양한 발명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어. 사기환도 그 결과물 중 하나야.”
“그런 불쾌하고 위험한 일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어?”
“당연히 했지! 사기 같은 위험한 힘에 손을 들였다가는 광신교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지.”
결국 사기에 반대하는 족장파와 사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부족장파의 내전이 일어났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부족장파의 힘이 터무니없이 강해져버린 것이다.
사기환만 해도 그렇다.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두 배 이상의 힘이 간단히 들어오는데 기존의 기술력으로는 이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무기에 사기의 힘을 깃들이는 시도도 여러 번 있어서 그 위력은 ‘마검’에 근접해 있다고 여겨졌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족장파는 기술고문으로 바르드룸 박사를 다급하게 복귀시키기로 결정했다.
“박사만 있으면 사기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 한 두 개쯤은 뚝딱 만들겠지만, 문제는 더 있어. 도대체 어디서 섭외했는지 부족장파가 ‘검성’이라는 엄청난 실력자를 호위로 고용했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어딘가의 암흑 길드에 속해 있는 마스터라고 하더라.”
“마스터? 대륙에 10명 밖에 없다는 그?”
“‘알려진’ 마스터가 10명일 뿐이지. 알려지지 않은 마스터가 재야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야.”
정말로 상대 진영에 마스터가 있다면 조금 곤란할지도 모른다.
불과 며칠 전에 싸운 레밀리아가 마스터였는데, 그녀는 마스터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였다.
만약 검성이라는 사람이 오랜 기간동안 마스터로서 활동하고 있었다면 힘겨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강태진, 너는 여차할 때를 위해 내 호위를 계속해서 맡아줘.”
“음, 그거야 약속했으니까….”
“보수는 몸으로 때우는 걸로 했으니 불만은 없겠지?”
이번에도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애드미나가 확 결정을 내려버렸다.
적어도 사기에 관해서 그녀가 있는 진영의 드워프들이 손을 데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안심이었다.
적들도 명확해서 검성만 없다면 생각보다 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창 치고받고 싸우는 와중에 부족장파를 들쑤시다 보면 사기에 관한 단서가 뭔가는 나오겠지.
“슬슬 도착하겠군.”
그러다 어느덧 우리는 불꽃망치 부족이 사는 산맥에 도착했다.
자동차 덕분인지 아직 해가 뜬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엉덩이가 아픈 것만 빼면 아주 빠른 여정이었다.
그런데….
“침입자다! 녀석들을 포박해라!”
성문에 도착한 우리를 반긴 것은 무장한 드워프의 병사들이었고, 그들의 뒤에서 어제 만난 가르통이 씨익 웃으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자마자 트러블이냐고,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