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80. 지하 수도
“끼이이이야아아아아앗!!!”
“뀨우웅!”
나는 터져 나오는 괴성을 참지 못한 채 정신을 잃은 것처럼 마구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필사적으로 ‘녀석들’한테서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어딜 가도, 어딜 달려도, 녀석들이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오며 그 흉악한 몰골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녀석들이 누구냐고?
그야 물론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좀비들이지.
“아아아… 아아아아….”
“그어어어….”
“우으으… 아아아….”
목이 쉰 노인 같은 소리를 내며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쫓아오는 좀비들. 발걸음은 느렸지만, 정말로 지하 수도를 빼곡히 채울 정도로 수가 많았다. 도망치는 곳곳마다 녀석들이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았다.
“흐아아압!”
“뀽!”
정면에서 파도처럼 넘쳐오는 좀비 떼를 점프로 피해 녀석들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대로 옛날 만화에서 나온 장면처럼 발을 빠르게 놀려 머리나 어깨를 밟고 넘어갔다.
가끔 밟은 곳이 뭉개지며 밸런스를 잃을 뻔했지만, 좀비에게 물리지 않겠다는 일념에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고 다시 뛰어올랐다. 그때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발을 디뎠는데 제대로 뭔가를 밟은 감촉이 났지만.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필사적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만 쳤다.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슬라이딩하며 코너를 돌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좀비들이 벽을 만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뀨우우웅!”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해 다리를 바퀴처럼 굴려서 왔던 길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나를 쫓아오던 좀비들로 여기도 마찬가지로 완전히 막혀버렸다.
“끼야아아아아악!”
“규우우웅!”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좀비밖에 없다. 도망칠 쥐구멍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성을 잃은 듯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 쳇바퀴를 돌듯 온몸으로 아우성쳤다.
무엇을 숨기랴. 사실 나는 공포 영화가 질색이다.
평범하게 귀신이나 저주받은 물건이 나오는 것은 물론,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나 외계인도 무서워서 눈 뜨고 보지를 못한다. 유튜브를 보다가 한 번 실수로 튼 공포 영화 리뷰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잔 적도 있을 정도다.
물론 좀비물도 마찬가지.
썩은 시체가 살아 돌아와 움직이며 살아있는 사람을 깨물고 똑같은 좀비로 만드는 것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이성을 잃고 좀비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면 작은 공포가 눈덩이를 불리듯이 커져서 나중에는 오금을 지릴 정도가 된다.
그래도 지구에 있었을 때는 괜찮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영상 속의 이야기였으니까. 하룻밤만 지나면, 아니, 이틀 밤만 지나면 잊고 다른 밝고 즐거운 이야기를 보며 무서웠던 기억을 덧씌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판타지 배경인 이세계. 좀비는 실존하고, 지금 내 상황은 현실이다.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
“끄아아아아악!!!”
“뀨웅~”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에 기겁해 하며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퍽! 퍼억!
마치 으깨진 토마토나 삶은 계란 같은 감촉이 느껴지며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것이 더욱 공포심을 자극하며 나를 발광시켰다.
“끼에에에에엑!!!”
“뀨이이잉!”
-퍼버버벅!
팔 뿐만이 아니라 온몸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자 사방에 살과 액체가 튀기며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키에에에에… 엑?”
“뀽?”
정신을 차리자 나를 중심으로 반경 3m가량의 공백 지대가 생성되었다.
좀비들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듯 섣불리 내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공백 지대를 채우고 있는 것은 좀비들의 무너진 살점과 뼈들. 벽과 천장까지 튄 육편이 끈적끈적하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무심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맞다. 나 존나 세지.”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자 좀비들의 레벨이 눈에 들어왔다.
[좀비 Lv.7]
[좀비 Lv.10]
[좀비 Lv.8]
"하아…."
지금 내 레벨의 1할도 되지 않는 수준에 무심코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음 순간에는 공포심이 반전되어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까짓 것들 때문에 그 난리를 피웠다고?”
좀비 하나가 겁도 없이 달려들었기에 주먹을 휘둘러 녀석의 상체를 강타했다.
-퍼어어엉!
산산조각이 난 게 아니라 아예 폭파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주먹이 맞닿은 부위에서부터 좀비가 터져나갔다.
튕겨 나간 살점과 뼈에 뒤에 있던 좀비들도 같이 쓰러졌다.
“흐, 으흐… 으흐흐흐….”
미친 듯한 쾌감이 머릿속을 질주했다.
방금 전 손맛.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쌍할 시간이다 좁밥들아!”
“뀽!”
나는 칼을 뽑아 들고 좀비들을 향해 돌진했다.
녀석들의 앞에 쇄도한 것과 동시에 마력을 두른 칼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검기가 쏘아지며 눈앞의 좀비들을 모조리 갈아버렸다.
길 끝까지 이어질 것 같던 좀비의 벽이 허물어지며 시야가 뻥 뚫렸다.
속이 다 시원한 기분이다.
“어어어… 으어어어….”
“으으으으….”
그러나 그런 공백 지대를 메우는 것처럼 또다시 좀비 떼가 나타나 지하 수도를 채웠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한 번 씨익 웃어주고는 검술 스킬을 담은 칼날을 휘두르며 좀비들을 마구 베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는 슬라코가 무수히 많은 촉수 검을 꺼내며 좀비들을 말 그대로 도륙해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었으나 지루하거니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 강한 캐릭터로 게임을 하는 감각이어서 쾌감마저 돌 지경이다.
그리고 게임에는 무릇 보상이 따르는 법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참 오른 레벨 때문에 더 이상 잡몹 상대로는 레벨이 오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수가 많다 보니 좀비 떼를 썰어버리는 것으로도 레벨이 팍팍 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공포물이었던 지하 수도가 지금은 그야말로 경험치를 퍼주는 보너스 스테이지가 되었다.
“하하하하! 경험치 맛 좋다! …아, 그렇지!”
그때 나는 엄청난 발상을 떠올려서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판데모니아!”
그렇게 외치자 나를 중심으로 검은 그림자가 허공에 그려졌다.
그곳에서 번뜩이는 무수한 붉은 안광이 살기를 피우며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F급부터 C급까지 다종다양한 몬스터의 퍼레이드가 그곳에 나타났다.
“자아, 학살의 시간이다.”
나는 페르고트에서 했던 폭렙 방식을 여기서도 사용할 생각이었다.
“모조리 쓸어버려!”
-크르르르!!!
-끼익! 끼익!
-우워어어어어!!!
-크와아아악!!!
내가 조교 한 몬스터가 모조리 밖으로 뛰쳐나오며 마치 거대한 해일이 지상을 쓸어버리듯 좀비 떼를 뒤엎기 시작했다.
“주인을 위하여어어어어!”
그 제일 앞에서는 칼랑가가 늑대형 몬스터를 타고 과감하게 돌진하고 있었다.
저 녀석의 기행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만큼은 분위기를 아주 잘 읽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서 좀비 떼가 사라지고, 지하 수도 저 멀리서부터 좀비들의 비명과 파괴음이 메아리쳐왔다.
그리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직업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이 멈추지 않는다.
“우하하하!”
기쁜 마음에 춤까지 출 것 같았다.
그리고 종합 레벨이 250을 넘긴 순간 색다른 메시지가 떴다.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마스터’의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투기’를 습득했습니다.]
[스킬 ‘오러 블레이드’를 습득했습니다.]
오오오?
설마 이세계에 ‘마스터’나 ‘오러 블레이드’가 존재할 줄이야.
나 소드 마스터가 된 건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투기와 오러 블레이드 스킬에 집중하자 몸에서 백색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뭔가 느낌이 오는데?”
아까 전까지만 해도 어렴풋이 느껴지기만 하던 마력과는 다른 느낌의 에너지가 이제는 손발을 움직이듯이 자연스럽게 조종할 수 있게 됐다.
마력과 성질이 비슷했으나 신체에 둘렀을 때 느껴지는 힘의 상승과 전능감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초인이 된 듯 감각마저 몇 배로 강화되며 저 멀리서 벌어지는 좀비 학살 현장이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투기를 검에 두른 순간.
-키이이이잉!
청명한 쇳소리가 울리며 눈 부신 빛의 검이 발현됐다.
투기의 백색과 내 본연의 마력 색깔인 연녹색이 섞인 밝은 에메랄드빛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오오오오….”
왠지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빨리 오러 블레이드를 써보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둘러봤으나, 몬스터들이 이미 사방에 있던 좀비 떼를 모조리 없애버린 후였다.
“에효.”
살짝 실망감이 들며 한숨만 내뱉었다.
결국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은 나는 오러 블레이드를 전등 삼아 어두운 지하 수도 길을 밝게 비추며 정처 없이 걸어 나갔다.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천장을 뚫고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이곳이 케이나와 케이트의 고향인 것을 떠올리고 그만뒀다. 괜히 그녀들의 마을을 부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레벨업 메시지가 끊임없이 울려왔다.
역시 물량에는 물량. 인해 전술은 고서기에도 등장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조금 여유가 생겨서 몬스터들한테 출구도 찾아보라고 패스를 통한 지시를 전달했다.
“뀽, 뀨귱~”
슬라코가 좀비들이 사라져 뻥 뚫린 지하 수도를 흥미롭게 이리저리 바라보며 돌아다녔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호기심 많은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이곳저곳에 고개를 들쑤시는 모습을 보자 정신이 저절로 힐링 되는 기분이었다.
“뀨웅~!”
슬라코가 빨리 오라는 듯이 표면의 일부분을 부풀려서 까닥까닥 흔들었다.
귀여워라~♡
그런 식으로 슬라코와 함께 지하 수도를 탐험하던 도중이었다.
‘주인, 잠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패스를 통해 칼랑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무슨 일 생겼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위험이 없는 것은 확인했으니 직접 확인해주십시오.’
나와 슬라코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위험이 없다고 하니 가도 별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한참을 걸어 칼랑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칼랑가가 안내한 장소를 봤을 때, 나는 턱을 쩍 벌린 채 벙찐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거대한 지하 공동안에서 벌거벗은 남녀 수백 명이 광란의 난교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