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40. 천생연분
일단 외로운 지우씨에게는 파트너가 있어야 했다. 그녀는 단순히 솔로로 있던 기간이 오래되어서 외로웠을 뿐. 나 말고도 언제든지 다른 남자와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나보다 고스펙이어야 지우씨는 만족하고 옮길것이었으니 적어도 나보다는 잘난 남자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남자는 셋 중 하나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 말하기도 뭐 하지만 나는 중상위권 정도의 수준이었기 때문에―나보다 잘난 남자는 이미 결혼했거나, 애인이 있거나 아니면 게이거나 셋 중 하나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에서 개인적으로 받아둔 연락처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별나방’
별나방님은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애인이 없는 잘난 사람 중에 속했다. 적어도 목소리와 버는 돈 만큼은 끝내주었으니까.
이미 한번 까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김지우 편집자님의 첫사랑이었다. 변태성향은 서로 이해해주면 된다. 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문자로 별나방 작가님에게 중요한 일이 있다고 직접 만나 봐야겠다고 연락을 보냈고, 그렇게 온 답장은
[꼭, 만나야 해요?]
이거였다.
웬진 몰라도 별나방 작가는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자발적 아싸같다고 해야 하나? 나는 작가님을 끌어내야 했기 때문에 살짝 과장을 섞었다.
[오리꿀: 편집자님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꼭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별나방: 편집자님에게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오리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괜찮나요?]
[별나방: 아무리 그래도 직접 보는 건 힘들 것 같은데요. 제가 사정이 있어서...]
[오리꿀: 저, 작가님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말까지 하기는 싫었지만 만나주시지 않으면 저도 최후의 수단으로 작가님의 비밀을 퍼트리고 다닐겁니다.]
[별나방: 아.]
[별나방: 어떻게 알아요?]
[오리꿀: 다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별나방: 시발. 알았어요.]
[별나방: 내일 1시. OO동 XX카페에서 봬요. 하지만 저에 대한 비밀은 지켜 주셔야합니다.]
[오리꿀: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약속 꼭 지킵니다.]
내가 아는 비밀은 별나방 작가가 후타나리에 미친 변태라는 것. 뭐 사실 소설 독자들은 대부부분 눈치채고 있는 비밀이겠지만 비밀은 비밀이다. 일단은 지우 편집자가 직접 알려 준 정보니까. 그렇게 나는 별나방 작가와 약속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
XX카페는 생각 외로 밝고 따스한 분위기의 개인 카페였다. 좀 더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기에 비밀스럽고 음란한 이야기할 생각이었던 계획이 어그러질까 나는 최대한 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아인슈페너 한잔을 시키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며 별나방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 유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카페로 들어오는 조그마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휙! 휙!
그녀는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 자리를 향해 왔다. 어째서?
“오리꿀 작가님?”
어디선가 들어 본것만 같은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기억에 닿는 사람이 없는데... 누구였지? 그런데 왜 나에게 말을 걸지? 나는 어떻게 알고 있지?
“어...? 맞는데요? 설마?”
“설마라뇨. 이미 알고 있으셨을 거잖아요? 이걸로 협박까지 하셨으면셔...”
“설마 별나방 작가님?”
“모르고 있었어요?”
나와 그녀 둘 다 깜짝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뭐야?” “뭐지?”
별나방 작가로 추정되는 여자는 나에게 소리쳤다.
“아니 그런 거짓말로 나를 꾀어내고... 당신 뭐예요?”
“아니 비밀은 알고 있었는데 이런 비밀은 몰랐죠. 근데 어떻게 된거예요?”
“아니 네가 알고 있는 비밀이 뭔데?”
“후타...”
퍽!
내 머리 위로 그녀가 들고 있던 작은 핸드백이 후러쳐진다. 그리고 내 앞에 빠르게 앉아 살인할 것만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속삭였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죽여 버릴거예요.”
나는 분위기에 압도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뭐죠? 일러레님?”
“말했듯이 편집자님일 때문이예요.”
“아아. 귀여운 내 편집자님... 고귀하고 아름다운... 그런 분에게 무슨 일이라도... 설마 찝적대려는 건 아니죠?”
이미 따먹었는데요...?
하지만 이 말하면 죽을 것 같아서 나는 꾹 입을 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죠?”
“반대입니다. 편집자님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어서요. 어... 음... 사실... 반대로 편집자님이 저에게 접근 중이거든요...”
“아...”
별나방 작가는 갑자기 표정이 무너지더니...
“아악!!”
이상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갸갹!!!”
“저기요! 가게에서 조용히 좀 부탁드려요!”
“네...”
카페 주인이 이상한 표정으로 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괴성은 계속 되었을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별나방 작가님은 얼굴을 푹 숙이고 흑흑대면서 엄청 괴로워했는데, 별나방 작가가 쿨한 알파남으로 생각했던 나에게는 꽤 쇼크였다.
여자인데다가 왠지는 몰라도 자기 편집자에게 이상한 집착까지 하는 사람이라니...
“어쩌면 좋죠...?”
“저는 일단 반대하는 편입니다. 김지우 편집자님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내가 진지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듣지도 않는 것처럼 대답했다.
“저는 어쩌면 좋죠?”
“사실 그래서 저는 별나방 작가님과 김지우 편집자님을 연결해 줄 생각이었어요.”
“네... 네? 뭐라고요? 저를요?”
“그런데 여자셨을 줄이야... 생각대로 되진 않겠네요.”
“저 오리꿀 작가님?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레즈도 아니고... 네?”
“저, 김지우 편집자님을 좋아해요.”
별나방 작가님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아니 왜?
“김지우 작가님이 저를 좋아하게 해주실수 있나요?”
“으음.... 김지우씨가...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죠?”
“...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 않을까요?”
“흐음...”
어쩌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김지우 편집자는 한번 별나방 작가님을 좋아한적 있었고, 실망한 이유는 트렌스젠더 삘나는 변태였다는 이유였으니까...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건 남자나 여자나 가능한 거고... 그러니...
‘애초에 여자면 상관없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흠... 그럼 한번 작전을 짜볼까요?”
“작전이요?”
“레즈 성향이 없으면... 만들어 주면 되는 거니까요...”
“?”
내 경험상,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다.
반드시.
***
서울의 꽤 나쁘지 않은 레스토랑, 적당히 잘 차려입은 나는 두 사람을 기다린다. 민아와 연우에게 들켜지 않고 몰래 나가는 건 쉽지는 않았지만 대업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또각, 또각.
지우씨가 천천히 레스토랑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정장이 아닌,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지우씨는 이전의 중성적인 매력과 곁들어져 엄청난 섹시미를 풍기고 있었다.
‘오늘은 작정했군.’
지우씨는 내 초대에 잔뜩 기대한 상태인 것 같았다. 머리도 깔끔하게 셋팅하고, 잘 안 하던 화장도 오늘따라 진하게 했으며, 유난히 허리와 가슴이 강조되는 드레스는 나 따먹어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뻗고 지우씨를 불렀다. 지우씨는 미소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다가, 내 옆에 앉은 처음 보는 여자를 보고 뻗뻗하게 굳었다.
“...?”
나는 황당해하는지우씨의 손을 잡아끌며 반강제로 앉혔다.
“걱정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니까.”
“아... 네...”
지우씨는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앞에 앉아 있느 처음 보는 여자를 응시한다. 긴 포니테일 머리에 작은 몸이 귀여웠고 뭔가 강한 기운이 풍겨나오면서도 여성스러운 느낌이 매력 있는 여자. 그 여자가 왜 오리꿀 작가님 옆에 앉아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제 또 나는 버려지는 걸까?
...같은 생각을 지우씨는 하는 것 같았다. 표정에 다 들어났으니까.
“소개부터 할게. 이분은 스물 세 살 백지은씨. 지우 너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야. 아니, 오히려 나보다 너에게 더 가까운 사람이기도 하지. 누군지 알겠어?”
백지은, 그러니까 별나방 작가는 소심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녀는 긴장해서 조금 떠는 듯싶었다. 그녀도 김지우 편집자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니까. 항상 화면으로 보다가 생얼굴 거기다 꾸미기까지 한 김지우 편집자를 보니 엄청 긴장하는 듯싶었다.
지우씨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걸요? 전혀 모르겠어요.”
나는 지우씨에게 사실을 말한다.
“이분이 사실, 별나방 작가셔.”
“......?”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지우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내가 하는 말을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있었다.
“별나방 작가는 사실 여자야.”
“......네? 네에? 네에에에에에???”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되는 양 지우씨는 눈이 땡그래지면서 자리에 일어서서 소리쳤다.
“저기, 가게 안에서는 조용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웨이터가 제지하는 모습이 어디선가 본것 같지만 패스.
얼굴이 새빨개진 지은씨와 어리둥절하고 혼란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은씨를 바라보고 있는지우씨.
“편집자님, 그동안 속여서 죄송해요...”
“아... 아...? 아...!”
그동안 수상했던 행보, 어딘가 이상한 대화, 그리고 남자라고 하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변태적인 성향...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지우씨는 무언가 막혀 있던 궁금증들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느꼈다.
“아아... 그래서... 그래서...!”
“일단은 식사부터 하자. 오늘은 코스요리니까 걱정 말고 먹어. 내가 사주는 거야.”
“그래요. 일단은 먹기부터 하죠.”
정식 코스요리가 하나둘씩나오고 와인도 몇 개 딴다음에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본론이 뭐죠? 별나방작가님은 왜 갑자기 신분을 저에게 드러낸 거고요?”
“본론이라... 본론부터 말하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했다.
“우리 쓰리썸하자.”
“??????”
“??????”
백지은씨와 김지우씨 모두가 황당해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우씨는 나에게 화난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무슨 얘기예요?!”
“말 그대로야. 별나방 작가님이 너에게 관심 있데.”
그렇게 말하자 지은씨는 부끄러움을 타면서 지우씨를 바라본다. 지우씨는 그런 진지한 모습에 약했다.
“하아... 별나방 작가님이 이상한 건 이미 알았지만 오리꿀 작가님도 역시... 저는 뭔가 씌인 걸까요?”
“아니 아니. 그렇게 이상한 거 아니야? 어차피 우리 사귀는 사이는 아니잖아. 그치?”
지우씨는 못마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런 거 신나게 즐겨보자고. 응?”
이렇게 말하니 내가 엄청난 변태같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그 말을 들은 지우씨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옆에 있는 와인을 한 번에 쑤욱 들이키고는 다시 한 번 따르고 또다시 쑤욱 들이켰다. 그렇게 연속으로 세 번을 들이키고 나서야 지우씨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듯싶었다.
“저도- 별나방 작가님도, 오리꿀 작가님도- 모두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너무한 거 아니예요? 저는... 그냥 좀 사람냄새가 좋았을 뿐인데...”
‘아차... 실패인가?’
“도대체가...”
쿵.
‘어?’
지우씨가 술에 약한 건 알았지만... 벌써?
"코오..."
지우씨는 몇잔을 더 들이킨게 화근이 되었는지 벌서 꽐라가 되어서 쓰러져 자버린것이다.
나와 백지은은 그 모습을 보고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