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22. 데이트인가?
딸기향...
어디서 많이 맡아본 적 있다 싶은 냄새였다.
여동생이 방송용 분장을 했을 때 슬며시 났던 향이 딸기향이었다.
왜?
지금 연우가 내 침대에 있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엔 딱히 이유도 없이 민아를 침대에서 쫓아냈고...
내 침대에 뭐가 있나?
큼큼-
계속 냄새를 맡다 보니 뭔가 딸기향에 가려진 어떤 시큼하고 따뜻한 향기가 난다.
뭔가 익숙하고...
매우 그리운 냄새...
어디서 맡았더라?
고민을 계속해보았지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연우가 내 침대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본인에게 물어봐야겠어.’
민아와 연우. 두 여자가 내 집으로 온 이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만 일어난다.
스리슬쩍 목덜미 뒤를 스쳐가는 불안한 기색이 어떠 한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나는 절대 부정했다.
똑똑똑
나는 여동생의 방문을 두드린다.
대답이 없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연우의 방으로 들어간다.
연우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동생은 돌아보지도 않고 컴퓨터에 집중한다.
“야.”
내가 물었다.
“왜 내 침대에 들어가 있었어?”
“... 무슨 소리야...?”
시치미 뚝 떼고 아닌척하는 모습에 어렸을 적 내 아이스크림을 몰래 꺼내 먹고는 모른척할 때와 똑같았다.
“방금 나 오자마자 뛰쳐나온 거 맞지?”
“헛소리하지 마. 그런 일 없었어,”
“그럼 방금 그건 무슨 소리였어?”
“환청이겠지.”
여동생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감자칩을 집어먹는다.
와작와작
나는 지긋이 연우를 바라본다. 연우는 절대 뒤를 돌아보며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동생의 흔한 습관이다. 거짓말할 때의.
하지만 나는 더는 선을 넘지 않는다.
“알았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됐고, 다음에는 멋대로 들어오지 마 내 허락 떨어지면 문 열어.”
“맘대로 해라.”
마지막까지 냉홀찬 말이었지만 끝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연우의 목에 어려있는 땀들 그리고 방 안에서 진한 딸기향 사이 속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들.
‘자위 한 건가?’
그 정체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왜일까?
대체 왜 내 침대 위에서?
보통은 자기 방에서 하지 않나?
나는 연우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실이라는 개방된 공간에 있는 내 침대에 무슨 매리트가 있다는 것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남긴 채,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길게 늘어뜨러진 곱슬머리가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났다.
민아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안녕.”
“안녕하세요...”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인사.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민서에게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 뭐지?’
그 뭐랄까.
고.. 고.. 고... 고..
하는 효과음이 그녀에게서 흘러나올 것 같은 기세, 나를 향해 쇄도하고 있는 무언의 압박감이 내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무언가, 무언가 말해야 했다.
“저기... 민아야, 내 여동생이 뭐 하고 있는지 봤어?”
“... 네?”
화제를 돌리자, 압박이 조금 약해졌고, 민아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연우 언니요? 저는 계속 방 안에만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응, 별거 아니야. 방금 전까지 내 방에 있었던 거 같았는데 아니라고 해서.”
“이상하네요...?”
이상하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여동생이 내 방에 있는 것은 충분히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집 주방은 거실과 따로 나뉘어 있었으니 주방일 때문에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지? 아마 내 착각이었나 봐.”
“흐응...”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서 갔다. 그러자 갑자기 서더니,
“아차!”
하고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작가님. 우리 같이 어디 나가지 않을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소매를 다시 붙잡았다.
***
그렇게 나는 또다시 밖으로 나가야 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시간. 마땅히 갈 데가...? 나는 의문을 표한 채로 그녀에게 끌려 나왔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도시 중심지. 반짝이는 조명들과 눈을 사로잡는 가게들의 화려한 상품들이 눈을 사로잡고,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최신 음악들이 발걸음을 빠르게 만드는 그런 곳.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면서 수다를 떨고 젊은 커플들이 서로에게 푹 빠진 채 걸어 다니는 거리였다.
안 그래도 부산한 거리인데 크리스마스 진전인 상황.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민아와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걷다가 문득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생각나 물었다.
“민아야. 어디 가보고 싶은데라도 있어?”
민아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평범의 극치였다. 저번처럼 후드를 푹 눌러쓰고 그녀는 춥지도 않은지 휘황찬란한 거리를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재밌어하다가 내 말을 드고 나를 바라보았다. 배시시 웃으면서 말하는 민아.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응?”
“저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이제까지 못 나가다가 막상 나갈 수 있게 되니까 조금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님이랑 나온 거예요.”
그래서인가? 아직도 그녀는 내 소매를 잡고 놔주지 않고 있었다. 아직은 사람이 많은 곳에 나가는 것이 조금 두려운 것일까? 모르겠다.
“저녁은 먹었어?”
“아직이요.”
“그럼 근처에 괜찮은 일식집 있으니까 거기로 가볼래?”
“좋아요.”
그렇게 우리는 걷는다. 화려한 거리가 아니라, 외진 골목의 골목 속으로. 그런 곳에 의외로 맛집이 있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가려는 곳도 그러한 곳 중에 하나였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 때마다 민아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걸까? 걱정되는 걸까. 어쩌면 기대하며 두근거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민아의 반응에 문득,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왜일까? 나이가 같아서일까? 그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여기야. 아직 장사하는 중이네.”
상당한 구식 건축물. 문까지 삐거덕거리는 곳이었지만 의외로 맛과 가격은 훌륭한 곳이었다.
우리는 가게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초밥과 따뜻한 우동 2인분. 한 겨울에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돈 있어?”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조금씩 돈이 들어오고 있어요...”
“응? 무슨 일?”
내가 신기해하면서 묻자 그녀는 조그마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면서 배시시 웃었다.
“비밀...이에요.”
뭐, 민아가 밝히기 싫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이건 내가 사줄 테니까. 나중에 돈 많이 벌게 되면 한턱 쏴.”
“알았어요... 작가님은 돈 많이 벌지 않아요?”
“그렇게 많이는 못 벌어. 수주가 많이 들어와야 많이 벌 텐데 말이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팬박스...에서 후원하는 사람들 많을 거 같은데요... 그림도 예쁘고 내용도 좋잖아요.”
“....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봐주는 건 아냐. 한 번만 구독하고 끊는 경우도 있고.”
“흐응... 그래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다. 조명에 반짝이는 신선한 초밥과 올려진 부재료가 풍성한 우동은 여전히 이 집이 맛집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배가 고팠는지 정신없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드문드문 말도 했지만 음식이 음식인지라 빠르게 배를 채우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고, 곧이어 우리는 살짝 나온 배를 두드리며 가게 밖을 나섰다.
“후- 맛있었어요. 어떻게 이런 데를 안거에요?”
“내가 이 지역 처음 왔을 때 먼저 한 게 맛집 탐방이었거든.”
“아하...”
나는 그녀의 후드 위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다음은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두 손을 모아 꼼지락대면서 조용히 말했다.
“칵테일... 마시고 싶어요...”
“술?”
“성인 되고...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어서요.”
“흐음...”
그렇게 말하면 간다고 하기도 안 간다고 하기도 껄끄러워졌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를 위해서 나온 거니.
“좋아. 칵테일바도 한 군데 알고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예이!”
그녀가 조그마하게 좋아하는 모습이 왜 이리 귀여운지... 응?
잠깐. 이거 데이트인가?
문득 드는 생각에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대학 신입생에게 거리 구경시켜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뭔가...
그녀는 언제나 내 소매를 붙잡고 있었고, 언제부턴가 인지 내 팔에 기대고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살짝씩 가슴이 닿기도 했다.
이거 데이트잖아? 내가 지금 민아랑 단 둘이 데이트하는 중인가?
그런데 술이라니...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
.
.
“그니까요 자까님.... 제가요...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내가 시킨 것은 피냐 콜라다. 그녀가 시킨 것은 이름이 신기해서 스크루 드라이버. 예상대로 민아는 훅 가버린 채였다.
“그래 그래, 너 많이 힘든 거 나 알아. 이제 괜찮잖아?”
“웅.... 네 맞아여....”
그녀는 점점 내 품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거의 껴안을 지경으로 파고들자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바텐더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사이좋은 커플이시네요.”
그런 한마디에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을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민아의 곱슬머리는 쓸어내릴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작가님... 저... 저여....”
“응? 왜?”
“저... 저.... 쿨-”
하지만 그녀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민아야...?”
그 모습을 본 바텐더는 유리잔을 닦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아니, 그런 거 아닌데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늘도 꼬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어른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돋우며 민아를 지지하고 일어섰다.
초등학생만큼 조그마한 그녀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녀는 가볍게 신음하며 내 손이 이끌려 일어선다.
“으응...”
“잘 마셨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거 아니래도!
하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밖으로 나설 뿐이었다.
따뜻한 칵테일바에서 나와 한겨울의 찬 바람을 얼굴로 맞으니 민아의 따뜻한 몸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안아 들고 거리를 걷는다.
“작가님...”
그녀가 취한 채로 조용히 말한다.
“저는 작가님이 좋아요...”
그래 너 내 팬이잖아.
“좋아해요....”
“......”
나는 애써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화려하기 짝이 없는 부산한 거리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갔다.